취재후기
(252회) 검찰, 곽노현 교육감 수사 보도 / SBS
검찰, 곽노현 교육감 수사 보도
SBS 이한석 기자
취재가 시작된 건 1년도 지난 얘깁니다.
국새사기 사건 취재보다 오히려 시작은 한 달 더 빨랐습니다.
교육감 선거 이후 교육계에서는 여러 소문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자 귀에 박힌 건 진보 후보들이 단일화 합의를 맺으며 돈이 오갔다는 내용입니다.
첩보라고 하기엔 풍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지나칠 수는 없는 얘기였습니다.
당시 사회부 기자였던 저는 곽노현 후보와 박명기 예비후보 주변 관계자들과 무작정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묻히는 가 싶었습니다.
수십장을 돌린 제 명함이 무색해졌습니다.
한 두번 도 아닌 경험이라 시간낭비 였나라는 후회가 들었지만 실망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반 년여가 지난 뒤 사건의 실체를 들여달 볼 수 있는 문건이 도착했습니다.
박명기 예비후보가 작성했다는 문건을 입수하게 된 겁니다.
출입처는 국방부로 바뀌었습니다만 곽노현 후보측과 만났던 구체적인 일시와 협의내용, 협의 과정에서 양측의 갈등과 극적인 합의, 박 후보가 작성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내밀한 내용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하는 교육감 후보자들의 돈거래, 제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돈이 오갔는지는 문건을 통해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문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워 봤습니다.
먼저, 문건을 작성하게 된 배경... 약속했던 보전금 7억원이 예정된 기일 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박 후보측에서 곽 후보 측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가설은 가설에서 멈췄습니다.
기자에게는 계좌추적 권한도 통화내역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선출직 교육감을 상대로 명확한 근거없이 취재에 나설 수도 없었습니다.
문건은 중요한 단서였지만 취재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8 달 뒤 주민투표를 열흘 정도 앞둔 시점에 검찰이 선관위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토대로 교육감 후보자 단일화 의혹과 관련한 금품 거래 내사에 착수했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피내사자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나 체포영장 집행이 가능할 지가 변수였습니다.
무상급식이라는 사상 초유의 주민투표 결과를 앞두고 검찰의 결단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렇게 10여일이 흘렀고 무상급식 투표가 무산 된 이틀 뒤 검찰은 박명기 예비후보를 전격 체포합니다.
박 교수와 주변인들에 대한 계좌추적으로 석연치 않은 1억여원의 돈의 흐름을 검찰이 확인한 겁니다.
무상급식 투표 직후, 오세훈 시장이 사퇴한 시점에 검찰의 곽노현 교육감 관련 수사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불러 올 것이 명확한 상황이었습니다.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습니다.
법조팀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사건 관계인들의 집과 사무실 주변에서 법조팀 기자들 한사람 한사람이 며칠밤을 꼬박 세웠습니다.
그만큼 미묘한 사안이었기에 직접 확인해야 기사를 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신중하게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법조팀으로부터 박 교수의 신병을 검찰이 확보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이어서 돈을 전달한 곽 교육감의 지인과 서울시교육청에 대한 취재가 극도의 보안속에 이뤄졌고 체포 11시간 뒤, 8시 뉴스 특종보도로 이어졌습니다.
법조팀의 조직력과 순발력이 돋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곽노현 당시 후보와 박명기 예비후보와의 단일화 과정, 진보 교육감 단일화에 이은 서울시 초중고 전면 무상급식 실시.
진보세력의 정치적 결단은 이념적 갈등과 논란을 떠나 의미 있는 결과임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번 검찰 수사를 두고 많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에 따른 검찰의 표적수사, 야권 탄압...공안 검찰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셉니다.
곽노현 교육감은 2억원의 돈을 전달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대가성이 없는 선의의 돈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곽 교육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불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는 곽 교육감 측 변호인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범죄사실이 소명됐다며 증거인멸 가능성을 이유로 곽 교육감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물론 2억원의 대가성 여부는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올때까지 유무죄를 판가름할 재판의 주요 쟁점이 될 것이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부분입니다.
교육감 후보자 단일화 금품거래 의혹을 1년 넘게 취재해오면서 가진 의문이 있습니다.
선거법이 엄격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굳이 이들은 돈거래를 해야만 했을까... 천문학적인 선거비용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인데 합법적으로 충분한 선거비용을 마련하기란 교육자들에게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교육자들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거에서 떨어지면 이들을 기다리는 건 감당할 수 없는 채무, 결국 채무에 대한 부담이 도덕적으로 가정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교육계 인사들로 하여금 선출직 공무원 시대의 신종 매관매직을 자행하도록 강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현실과 타협하지 못한 선거법의 비현실적인 규제가 되려 교육계을 개혁하려는 참된 교육자들의 발목을 잡게 된 게 아니었을까, 안타까움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정말 지독한 선거입니다.
이 회차 수상작 2011년 8월
제252회(2011년 8월)에서 상을 받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