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무엇을 기억하는가
국제신문 오상준 기자
3D, 4D시대에 '촌스러운' 흑백 무성영화 '아티스트'가 올해 미국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향수와 추억을 제대로 자극하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작품이다.
'부산은 무엇을 기억하는가' 시리즈 역시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는 동상, 기념비, 기념탑 같은 부산의 '기억 자산'을 끄집어내 재조명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부산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도시다. 기념물을 통해 본 부산의 기억과 정체성 찾기라는 새로운 시도다.
부산은 항구도시인 데다 해방으로 말미암은 귀환동포와 6·25 전쟁으로 생긴 피란만의 대규모 유입이 이루어졌다. 게다가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면서 임시수도, 부마항쟁의 도화선 같은 다양한 역사적 기억이 빚어졌다. 인제야 그때 그 시절의 추억과 기억의 흔적을 더듬어보지만 상당수가 사라지거나 방치된 상태다. 부산이 경제 개발과 도시 인프라 구축을 위해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리즈가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을 단순히 회상하고 소개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억 자산'이 일상생활 속 오늘날의 의미를 찾아내고 부산의 정체성을 짚어보며 나아가 부산의 문화·관광·청소년 교육자원으로 끌어올려야 기획기사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부산대 사회학과 박재환 김희재 교수가 이끄는 '대안사회를 위한 일상생활연구소' 회원들과 지난해 7월부터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스터디를 하고 토론을 하며 현장을 찾았다.
공동작업 형태의 기획기사로 작업의 진척은 더뎠지만 폭넓은 시각에서 기념물을 통해 본 부산의 기억을 정리할 수 있었다. 당시 사회1부 부산시청 출입기자로서 짬을 내 기획기사를 준비하기가 쉽지 않아 다소 힘들었지만 부산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던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11회의 시리즈가 마무리될 때쯤 다행히 부산시가 기념비, 동상을 비롯한 공공조형물에 대한 체계적 관리에 나섰다. 대학, 연구소, 지자체를 비롯한 지역사회가 부산의 기억을 자산화하기 위해 시민강좌를 마련하는 등 기억 자산에 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부산교육대는 초·중·고교 교사 대상 '기념물을 통한 부산 알기 직무연수' 프로그램을 이번 여름방학에 개설하기로 했다.
유럽의 전통 있는 도시를 보면 도시의 가치는 고층 건물이나 긴 다리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을 갖춘 기억 자산에 달려 있다. 독일 로렐라이 동상, 덴마크 인어 동상, 벨기에 오줌싸개 동상이 그렇다. 기억 자산은 다른 도시와 차별화된 부산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관광·교육자원뿐 아니라 도시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도시재생의 밑거름이다.
어쨌든 부산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도시이지만 이 시리즈를 제대로 '기억'해주신 이달의 기자상 심사위원의 안목에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회차 심사평
제259회 전체 총평
제259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평
기자상 심사위원회
제 259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는 ‘새로 등장한 플랫폼을 어디까지 심사 대상으로 인정할 것이냐’라는 고민으로 시작되었다. 출품된 총 33건의 작품 중 팟캐스트(‘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은폐 사건 특종 보도’, 오마이뉴스)나 유튜브(‘총리실 불법 사찰 관련 연속 보도’, 리셋 KBS 뉴스9)를 통해 방영된 기사들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매체는 한국기자협회의 정식 회원사가 아니다. 따라서 이들 매체가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느냐를 놓고 논란이 제기됐다. 그러나 논의 결과 어떤 종류의 매체건 그 매체에 속한 기자가 한국기자협회 회원일 경우 기자상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한국기자협회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한국기자상 심사위원회 또한 이를 준용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이들 매체의 등장이 언론 기능의 활성화를 촉진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 또한 작용했다.
이에 따라 심사 대상에 포함된 리셋 KBS 뉴스9의 ‘총리실 불법 사찰 연속 보도’는 취재 보도 부문에 출품된 10건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으며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파업 중인 기자들의 노작(勞作)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 이 기사는 구체적인 물증을 통해 불법사찰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그간의 공방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법원 판결문에서 불법사찰 문건의 존재를 확인하고 증거열람 복사신청 등을 통해 이를 확보하는 등 관련 문건을 입수하는 과정에서 불법·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공식적으로 접근한 점 또한 높이 평가됐다. 단 노무현 정부 아래 이뤄진 감찰과 이명박 정부아래 이뤄진 민간인 불법 사찰을 분명하게 구분해 발표하지 못한 점, 이로 인해 보도의 신뢰성을 스스로 떨어뜨린 점 등은 감점 요인으로 작용했다.
취재 보도 부문에서는 이와 더불어 한겨레21의 ‘청와대 행정관,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지시 증언, 재판 기록 단독보도’와 한국일보의 ‘고리원전 1호기 정전사고 연속 특종보도’ 등 총 3건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이중 한겨레21 보도는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됐다는 점에서 오마이뉴스가 출품한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 인멸 은폐 사건 특종 보도’와 경합을 벌였다. 오마이뉴스 보도는 장진수 전 주무관 연속 인터뷰를 통해 불법사찰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들을 폭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쟁점화했다는 점에서 호평받았다. 그러나 최초 보도라는 측면에서 한겨레21이 상대적으로 앞섰다는 점, 정 전 주무관의 증언 외에 방대한 재판 기록 등을 통해 사안에 접근하려 노력했다는 점 등으로 인해 한겨레21이 최종 수상작으로 결정되기에 이르렀다.
한국일보 보도는 고리원전 1호기 정전 사고가 상부에 제대로 보고되지 않은 데 대한 의문을 갖고 사안을 추적한 결과 원전 간부들이 사고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드러났듯 원전 관련 정보는 이해 관계자들에 의해 은폐되고 왜곡되는 일이 흔하다는 점에서도 한국일보 보도는 주목할 만하다는 평가였다.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에서는 한겨레의 ‘FTA, 깨어진 약속’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이 보도는 투자자-국가 소송제(ISD)가 한미FTA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ISD 소송을 이미 다양하게 경험한 미국·캐나다 등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관련국 현지 취재를 통해 ISD 관련 의문점을 다각적으로 해소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역 기획보도 신문 부문에서는 국제신문의 ‘부산은 무엇을 기억하는가’가 기획의 참신성 등을 인정받아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지역 취재보도 부문에는 총 12편의 작품이 출품돼 치열한 경합을 벌인 결과 경기일보의 ‘MB 사돈기업의 권력형 골프장 추진 논란’, TJB 대전방송의 ‘4대강 세종보, 치명적 결함 단독 보도’ 2편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경기일보 보도는 골프장 건설을 위해 저수지가 용도 폐기된 현장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이 대통령 사돈기업(한국타이어)의 골프장 건설 계획과 연관돼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TJB 대전방송 보도는 세종보 공사에 참여한 잠수부의 증언을 토대로 탐문을 벌인 결과 보 수문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점을 최초 폭로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밖에 민주통합당 국민참여경선의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지적한 뉴시스광주 보도(‘민주통합당 투신자살 사건 최초 보도 및 후속 보도’)와 국보 낙서범으로 몰릴 뻔한 한 청소년의 억울함을 풀어준 경상일보 보도(‘국보 천전리 각석 낙서범 진위 의혹 연속 보도’) 또한 수상작으로 결정되지는 못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문 보도 부문에서는 한국일보 사진부의 ‘민간인 사찰의 몸통, 이영호의 수난’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몸통’을 자처한 기자회견을 일방적으로 끝낸 직후 회견장을 떠나 기자들과 몸 싸움을 벌이다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진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순간 포착한 이 사진은 기자회견 내내 호통을 치던 이씨 모습과 대비되면서 임팩트가 더 컸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