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격차사회를 넘어-밀려난 삶들의 공간
한겨레신문 전종휘 기자
기자로서 늘 목마름을 느낍니다. 세상의 진실을 원고지 5매짜리, 10매짜리 기사에 담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진실은 때로는 관료들이 생산한 비인격화한 숫자에 짓눌려 있거나, 전화 인터뷰 한두 명하고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는 기자의 게으름에 은폐돼 있다는 의심을 평소에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양극화와 격차사회. 현재 한국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현안입니다. 모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관련 보도도 쏟아집니다. 하지만 늘 어디선가 본 듯한 내용입니다. 새롭지 않은 것은 뉴스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런 분위기를 알리바이 삼아 현실을 눈감는 것은 기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한겨레 취재진의 고민이었습니다. 저와 이정국, 김선식 기자가 찾아낸 답은 ‘공간에 대한 천착’이었습니다. 격차사회의 현실이 그대로 녹아 있는 공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건 어떨까? 악마가 디테일에 있듯, ‘진실이라는 이름의 천사’ 또한 디테일에 있다는 게 취재진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찾은 곳이 바로 노인들의 일터, 고물상이었습니다. 고물을 나르며 고단한 노년을 보내는 그들의 삶은 곧 취재진의 미래이기도 했습니다. 이어 갈매마을 철거촌과 현대차 울산3공장, 아동일시보호소, 택시, 고시촌 피시방, 성수동 제화공장을 잇따라 찾았습니다.
현장은 기자에게 취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배움터이기도 했습니다. “노동하다 다친 사람에게 국가는 왜 정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느냐”는 고물상 ‘1톤 리어카’ 아저씨의 분노어린 눈길과 두 번씩이나 버려지는 운명의 슬픔을 간직한 혜진이의 눈망울, 기성세대를 향한 원망을 게임 모니터로 돌리는 청년 백수의 허망한 눈동자까지, 세상은 온통 가르침 투성이였습니다. 기자가 가야할 곳은 여전히 현장이었습니다.
이번 기획이 다소라도 빛이 났다면 그건 아마도 태양처럼 버티고 선 현장의 민중들과 달처럼 묵묵히 그 빛을 품고 적어 내려간 이정국, 김선식 두 후배의 노력 덕분입니다. 그들의 투지와 끈기가 있었기에 취재진은 사막 한가운데를 향해 한걸음이라도 더 발을 뗄 수 있었습니다.
회차 심사평
제270회 전체 총평
한겨레 ‘격차사회를 넘어’ 현장 목소리 미시적 접근 ‘호평’
꽃샘추위 속에서도 화신(花信)과 함께 좋은 기사들이 지역에서 쏟아졌다. 최고점도 지역에서 나왔다. 270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에는 총 36건의 작품이 출품된 가운데 예심을 통과한 6개 부문 10건 중에서 8건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흔히 특종은 취재보도의 ‘꽃’으로 비유된다. 9건이 출품된 취재부문은 이달에도 가장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예심을 통과한 ‘북한 3차 핵실험 최초 보도’(연합뉴스), ‘영훈국제중 부정입학 등 연속보도’(KBS), ‘박근혜 정부 조각 검증’(동아일보) 등 3건이 막상막하의 경쟁을 벌인 가운데 ‘발로 뛴 취재 노력’이 가장 돋보인 ‘영훈국제중 부정입학 연속보도’만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비슷한 제보와 동일한 사안으로 취재경쟁을 벌인 다른 매체들보다 한발 앞선 현장 취재가 심사위원들에게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3차 핵실험 최초보도는 외신보다 한발 앞선 ‘시간차 특종’임에도 핵실험 자체가 예견된 사안이었고 후속보도가 미약했던 것이 감점 요인으로 작용해 아쉽게 탈락했다. ‘박근혜 정부 조각 검증’은 타사와 비교해 가장 체계적인 인사검증을 시도했다는 호평을 받았지만 ‘결정적 한방’이 없었다는 점 때문에 역시 아쉽게 탈락했다.
기획보도 신문부문에서는 유일한 출품작이지만 다양한 실험으로 주목받은 ‘2013 격차사회를 넘어-밀려난 삶들의 공간’(한겨레)이 별다른 이견 없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격차사회의 공간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미시적으로 접근한 점이 호평을 받은 가운데, 거시적 접근이 더해졌으면 기사의 완결성이 더 갖춰졌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기획보도 방송부문에서는 일상화되다시피한 탈북을 이념이 아닌 생존의 시각으로 접근해 1년 이상 공들여 만든 탈북자와의 ‘동행 다큐’ 성격을 띤 ‘탈북자 이은혜’(KBS 시사기획 창)가 수상작으로 뽑혔다. 다만, 취재과정에서 발생한 ‘취재원 조난’이라는 돌발 상황 속에서 벌어진 일이더라도, 취재진이 취재원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디까지 개입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
12건이 출품된 지역취재보도부문에서는 ‘절도범에 의해 다시 한국으로 넘어온 관세음보살좌상’(충청투데이), ‘도난 日 국보급 수백억 원대 불상 2점 위작 판정 부산항 무사 통관’(부산일보), ‘충남교육청 장학사 인사 비리 연속보도’(대전CBS) 등 예심을 통과한 3건이 모두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행운을 안았다(그동안 동일한 소재나 주제를 다룬 복수의 기사는 대개 자체 경합 끝에 1건만 선정되곤 했었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 관세음보살좌상을 다룬 두 기사의 경우, 지역 이슈에 머물 수 있는 사안을 전국적 이슈로 만든 끈질긴 기자정신과 치열한 취재노력이 ‘목적의식의 과잉’이라는 약점을 덮기에 충분했다.
교육계의 고질병이기에 파헤치기 어려운 인사비리를 전국적인 쟁점으로 끌고 간 장학사 인사 비리 연속보도는 수상작 중에서 최고점을 기록한 영예를 안았다. 다만, 쉬쉬하는 가운데 관행적으로 진행되어온 인사비리에 제동을 건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경찰 수사발표를 따라간 ‘답습형 보도’라는 지적도 있었다.
5건이 출품된 지역기획보도 방송부문에서는 ‘한반도의 고래’ 2부작(울산MBC)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한반도의 고래’가 참신한 소재가 아니라는 혹평도 있었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함께 1년여 동안 해양탐사를 실시해 참치를 따라 몰려온 고래 떼 수천마리의 먹이 포식 장면을 포착하고 귀신고래, 혹등고래 등 다양한 고래를 탐사취재한 점은 호평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전문보도 사진부문에서는 ‘국방장관 후보자 휴대전화 고리에 박정희ㆍ육영수 사진’(연합뉴스)과 미숙아 문제를 앵글에 담은 ‘세상이 궁금해 일찍 나온 작은 천사’(서울신문)가 경합을 벌인 가운데 세간에 화제가 된 국방장관 후보자 휴대전화 고리 사진보도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국방장관 후보자 휴대전화 고리 사진보도는 ‘우연한 포착’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후작업(편집)의 성과가 돋보였다.
<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