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8편
국방장관 후보자 휴대전화 고리에 박정희·육영수 사…
국방장관 후보자 휴대전화 고리에 박정희·육영수 사진
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지난 2월13일 박근혜 당선인은 초대 국방부장관에 김병관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내정했다.
초대 안보수장에 대한 초미의 관심을 대변하듯 각 언론사는 관련 기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안인선의 여파였을까? 기사의 양에 비해 내정자의 자료 사진은 턱 없이 부족했다. 어김없이 데스크의 취재지시가 떨어졌다.
언론 경험이 많지 않은 내정자가 노출을 꺼리기 전에 그리고 국방부의 의전을 받기 전 내정자를 만나는 것이 관건이었다.
수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한 끝에 임시 집무실로 향하는 시간을 알아냈고 급히 차를 돌려 내정자가 집에서 나서는 모습과 전쟁기념관에 마련된 임시 집무실 내부 모습 등을 단독으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단독을 발견한 건 마감을 위해 황급히 컴퓨터를 켠 순간이었다.
사진 취재는 촬영도 중요하지만 후작업을 통해 종종 특종을 건지기도 한다.
마감하며 혹시 간과한 것이 없나 수백 장의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보다 유독 한 장의 사진에 눈길이 갔다. 어색하게 매달려 있던 휴대전화 고리. 확대를 해보니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사진이 담겨 있는 게 아닌가.
김 내정자가 친박계열임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휴대전화에 임명권자의 부모인 박 전 대통령 내외의 사진을 단 것은 의외였다.
이에 기자는 사진부장에게 즉각 보고하고 김 내정자의 휴대전화 고리를 확대 편집해 보도했으며 이는 누리꾼들의 즉각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김 내정자는 사진 보도 후 평소 두 분을 존경해서라고 밝혔다가 정치군인 아니냐는 호된 여론의 역풍에 시달려야 했다.
한반도의 고래 울산MBC
한반도의 고래
울산MBC 전상범 기자
우리나라 동해는 고래의 바다로 불릴 만큼 고래 개체수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바다에 어떤 종류의 고래가 얼마나 서식하고 있는지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한반도의 고래 분포와 서식환경 등 모든 것을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고래연구소와 포경선 출신의 고래 전문가들로 공동 조사팀을 꾸렸다. 그렇게 1년 동안의 해양 탐사가 시작되었다.
첫 출항부터 여정은 험난했다. 거센 풍랑으로 바다는 우리에게 촬영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고, 힘겹게 출항한 이후에도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망망대해에서 고래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칠을 기다린 끝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낫돌고래, 수천마리 떼를 지어 유영하는 참돌고래, 수면 위로 고개를 살짝 내밀고 이내 사라져 버리는 밍크고래까지, 우리는 생생한 고래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해 바다의 불편한 현장도 목격할 수 있었다. 항공 촬영으로 밍크고래의 불법 포경 현장을 잡아낸 것이다. 밍크 고래의 개체 수 급감 원인이 불법 포경임을 입증하고, 인간에 의해 잔혹하게 죽어가는 고래의 수난사를 보여줬던 순간이었다.
한 달 간의 고래연구소와의 음향 조사는 인간과 고래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첫 연구 사례였다. 어민들이 고래 떼로 인한 막대한 조업 피해를 호소하고 있었고, 그들이 주장하는 솎아내기 식 포경은 발전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없었다. 특정 주파수대를 이용해 고래 떼를 퇴치하는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장비 소형화와 보급을 통해 인간과 고래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우리는 1년 동안의 탐사를 통해 동해의 다양한 고래뿐만 아니라, 제주도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의 수중 모습, 동해 가스전에 몰려드는 참치 떼 등 다양한 수중 생태를 보았다. 그들을 마주쳤을 때의 경이로움은 우리를 설레게 했고, 바다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충남교육청 장학사 인사 비리 대전CBS
충남교육청 장학사 인사 비리
대전CBS 신석우 기자
1월5일 토요일. 당직 근무를 마치고 가족들과 식사 도중 ‘부르르’ 떨린 전화기. “장학사 한 명이 구속됐다. 문제를 유출했다고 하더라.”
그날 밤 첫 기사와 후속 박스 기사를 출고했다. 쏟아지는 제보들. 몇 꼭지의 기사가 나간 뒤 장학사 한명이 자살을 시도했고 끝내 숨졌다. 꼭 기사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마음이 많이 아팠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종성 교육감의 연루 의혹을 보도했다. 경찰 소환조사를 받고 나온 교육감이 음독했다. 퇴원하기까지 1주일, 노심초사하는 날들이었다. 원했던 건 사람이 상하는 일이 아니었다. 교육감은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고, 현재는 장학사를 넘어 행정직 인사 비리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두 달, 모든 신경은 여기에 쏠려 있었다. 백지를 앞에 두고 조직도를 그려보기도 하고 각자의 역할을 넣어보기도 하고 ‘퍼즐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제보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앞으로 기자생활동안 이런 보도를 또 다시 할 수 있을까. 우선 호흡이 길었다. 1월5일부터 지금까지 기자상 상신은 교육감 구속 영장이 발부된 3월6일자까지 포함됐다. 기사를 취합하다보니 두 달 동안 나름 의미 있는 단독 기사가 15꼭지 정도 됐다.
대부분 민감한 사안들이어서 행여 문제가 있을까 확인에 확인을 거듭한 것들. 이후 경찰 수사 과정에서 사실로 밝혀져 다행이었지만, 기사를 출고할 당시의 긴장감이란. 이 기간 동안 교육감을 비롯해 장학사 3명과 교사 1명이 구속됐고 20여명에 가까운 현직 교사들의 혐의가 입증돼 현재 사법 처리를 앞두고 있다.
꼭 써야 할 것과 쓰지 말아야 할 것, 지금 당장 써야 할 것과 좀 더 있다가 써야 할 것을 구분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기사를 ‘왜 쓰는지’ 잊지 않기 위해, 넘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앞서 사람이 상했던 터라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교육청 조직원들의 명예도 빼놓을 수 없었다. 문제의 근원은 교육청 자체가 아니라 교육청의 시스템이다. 내가 바라는 건 극소수 조직원들의 각성과 시스템의 개선이다.
도난 日 국보급 수백억원대 불상 2점 ‘위작’ 판정…
도난 日 국보급 수백억원대 불상 2점 ‘위작’ 판정 부산항 무사 통관
부산일보 이대성 기자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일본의 국보급 불상 2점이 절도범들에 의해 부산항으로 다시 반입됐다.” 취재에 착수해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가면서 과제는 더 복잡하고 미묘해졌다. 백과사전에도 소개돼 있을 정도의 유명한 불상들을 문화재 감정위원은 위작으로 결론내렸다.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라고 판단했다.
기자이기에 앞서 국민으로서 “과연 다시 국내로 들어온 불상을 적극적으로 보도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당시 해당 불상 2점을 감정했던 감정위원은 이렇게 해명했다. “누구나 하는 실수다”, “전문가라도 가짜를 진짜로, 진짜를 가짜로 판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문화재청 담당자도 “가짜라고 판별해도 큰 문제가 없다. 들여온 사람의 인적사항이 남기 때문에 언제든지 수사해 범인을 검거하고 문화재를 환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화재 위작 판정 문제는 그리 쉽게 넘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문화재청은 반출 문화재에 엄격한 판별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우리 선조의 문화재를 위작으로 판정해버린 문화재청은 이번 사건으로 신뢰를 잃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불법 반입과 관련해 어떤 규정도 없었다.
파급 효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위작 판정으로 우리 선조의 국보급 불상이 국내로 반입된 사실을 몰랐던 문화재청의 ‘사후약방문’식 어리숙한 뒷수습들, 문화재 감정위원의 비전문성이 드러났다. 불상 환수운동, 일본 내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 제고 등으로도 확대 재생산됐다. 법원은 약탈 정황이 명확한 부석사 관음보살좌상을 반환하지 못하도록 판결했고, 일본 정부가 반환 요구 의사를 적극 표현하면서 한일 간 외교 문제로 번진 상태다.
불상 문제 해결이 장기화되고 있다. 본보의 보도는 수면 아래에 있던 한일 간 문화재 반환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고,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화재 감정위원들의 위신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그들의 위상 강화와 근무여건 개선에 반면교사가 됐으면 한다.
절도범에 의해 다시 한국으로 넘어온 관세음보살좌상…
절도범에 의해 다시 한국으로 넘어온 관세음보살좌상
충청투데이 고형석 기자
일본에서 불상 2점을 훔쳐 우리나라로 밀반입한 일당 일부가 경찰에 검거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당시만 해도 그냥 대수롭지 않은 사건 정도로만 생각했다.
문화재청 관계자가 동석한 브리핑 자리에서 이 관계자는 불상이 장물이기 때문에 유네스코 협약 등에 따라 불상을 일본에 돌려주게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무리 장물이라지만, 그래도 원래 우리 것이었는데 무조건 돌려줘야 한다니.
타부서 선배에게 귀가 솔깃한 정보를 들었다. 불상들이 최초로 만들어졌던 충남 서산 부석사에서 근무했던 스님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연락을 취해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털어놨다. 2점의 불상 가운데 적어도 관세음보살좌상은 일본에 넘겨주지 않아도 될 만한 증거가 있다고 했다.
10년 전 관세음보살좌상이 일본에 보관돼 있을 당시 대마도 관음사 주지스님이 부석사를 방문했고 이 스님은 “불상 안을 들여다봤는데 그 안에 각종 복장물(오곡·오학·직물·복장기)이 들어있었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불교에서 복장물은 불상 제작에 주요 증거가 된다. 관세음보살좌상이 만들어졌던 고려시대에 불교를 일본에 전파하기 위해 불상을 넘겨줬다면 몸 안의 복장물을 비우거나 새롭게 만든 불상을 만들어주는 것이 불교계의 관례다. 하지만 관세음보살좌상처럼 복장물이 있었다는 것은 적어도 당시 일본에 선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즉 일본이 약탈해갔다는 것이다. 또 이미 17년 전 서산 부석사에서 관세음보살좌상을 돌려줄 것을 일본 측에 요청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불상이 과거 14세기, 일본에 약탈된 것이라는 일본인이 작성한 논문을 입수하기도 했다.
이후 전국 시민단체와 불교계, 정치권은 잇따라 성명을 냈고 문화재청은 관세음보살좌상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넘어간 것이 맞는지와 그 시기, 배경 등에 대한 학술연구 추진을 발표하기도 했다. 20여일에 걸쳐 모두 16차례가 이뤄진 추적보도를 하는 동안 주변 사람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시사기획 창 ‘탈북자 이은혜’ KBS
시사기획 창 ‘탈북자 이은혜’
KBS 안양봉 기자
‘탈북자 이은혜’편의 메인 음악은 모두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의 음악을 사용했다. 특히 이 다큐멘터리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조난 나흘째 밤, 탈북여성과 취재진이 만나는 장면에서는 4분58초 동안 ‘FUORI DAL MONDO(이 세상의 바깥)’를 배경 음악으로 사용했다.
방송 전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느낌을 물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이에요. 굉장히 힘들었고 슬프지만 아름답게 끝나는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그런 느낌이에요.” 이 말을 듣고 얼마나 아들이 대견스럽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다큐멘터리로 전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우리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특별한 포장 없이, 그 음악처럼 잔잔하게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사건의 시작은 2010년 10월말이다. 중국 은신 탈북자들의 극단적 인권 침해 상황을 전하기 위해 나선 취재였다. 탈북자들이 어떤 과정을 밟아 한국으로 들어오는지를 담으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인권 NGO단체의 소개로 만난 탈북 여성 이은혜씨 일행 4명이 영하 10도의 추위에 중국 북방 산악지역에서 조난당하는 전혀 예상치 않았던 상황이 발생했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취재 편의를 위해 건네준 위성전화기로 통화할 수 있는 우리들밖에 없었다.
그들은 배고픔과 추위, 갈증 그리고 공포에 휩싸인 목소리로 다급한 사정을 전해왔다. 취재원 조난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제3국과 현지 대사관에 그들의 상황을 알리고, 우리도 조난당한 국경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숨 가쁜 나흘이 흘러갔다. 그리고 그들과 우리는 마침내 죽음의 문턱에서 극적으로 만났다. 이은혜씨 일행은 2011년 한국에 들어왔고, 한국 정착 교육을 마치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만의 기억으로 남길 수 있었던 2010년 당시를 방송으로 제작해 모두의 이야깃거리로 풀어내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이은혜씨에게 감사드린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언제 그렇게 간절하게 ‘꼭 좀 살려주세요’라는 말을 들어볼 수 있을까? 항상 그 간절함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한다.
2013 격차사회를 넘어-밀려난 삶들의 공간 한겨레…
2013 격차사회를 넘어-밀려난 삶들의 공간
한겨레신문 전종휘 기자
기자로서 늘 목마름을 느낍니다. 세상의 진실을 원고지 5매짜리, 10매짜리 기사에 담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진실은 때로는 관료들이 생산한 비인격화한 숫자에 짓눌려 있거나, 전화 인터뷰 한두 명하고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는 기자의 게으름에 은폐돼 있다는 의심을 평소에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양극화와 격차사회. 현재 한국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현안입니다. 모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관련 보도도 쏟아집니다. 하지만 늘 어디선가 본 듯한 내용입니다. 새롭지 않은 것은 뉴스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런 분위기를 알리바이 삼아 현실을 눈감는 것은 기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한겨레 취재진의 고민이었습니다. 저와 이정국, 김선식 기자가 찾아낸 답은 ‘공간에 대한 천착’이었습니다. 격차사회의 현실이 그대로 녹아 있는 공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건 어떨까? 악마가 디테일에 있듯, ‘진실이라는 이름의 천사’ 또한 디테일에 있다는 게 취재진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찾은 곳이 바로 노인들의 일터, 고물상이었습니다. 고물을 나르며 고단한 노년을 보내는 그들의 삶은 곧 취재진의 미래이기도 했습니다. 이어 갈매마을 철거촌과 현대차 울산3공장, 아동일시보호소, 택시, 고시촌 피시방, 성수동 제화공장을 잇따라 찾았습니다.
현장은 기자에게 취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배움터이기도 했습니다. “노동하다 다친 사람에게 국가는 왜 정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느냐”는 고물상 ‘1톤 리어카’ 아저씨의 분노어린 눈길과 두 번씩이나 버려지는 운명의 슬픔을 간직한 혜진이의 눈망울, 기성세대를 향한 원망을 게임 모니터로 돌리는 청년 백수의 허망한 눈동자까지, 세상은 온통 가르침 투성이였습니다. 기자가 가야할 곳은 여전히 현장이었습니다.
이번 기획이 다소라도 빛이 났다면 그건 아마도 태양처럼 버티고 선 현장의 민중들과 달처럼 묵묵히 그 빛을 품고 적어 내려간 이정국, 김선식 두 후배의 노력 덕분입니다. 그들의 투지와 끈기가 있었기에 취재진은 사막 한가운데를 향해 한걸음이라도 더 발을 뗄 수 있었습니다.
영훈국제중 부정입학 연속보도 KBS
영훈국제중 부정입학 연속보도
KBS 공아영 기자
아주 작은 의심에서부터 취재는 시작됐다. 지난 2월 중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이 영훈국제중학교에 ‘비경제적 사회적 배려자 전형’으로 입학해 논란이 됐었다. 이런 사례가 비단 이 부회장뿐이겠냐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나눴다. 그러던 중, 한 장의 문건이 입수됐다. ‘2013년 영훈국제중학교 비경제적사배자전형’ 신입생 16명의 명단이었다.
흥신소 직원 생활이 시작됐다. 문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단 두 가지. 학생 이름과 출신 초등학교뿐이었다. 요즘은 어디나 개인정보 보호가 삼엄한 수준. 부모가 무슨 일을 하는지, 실제 사회적 배려 대상자인지 추적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맨땅에 헤딩이란 생각으로 무조건 현장으로 향했다. 졸업식에 참석했고, 11년 동안 쌓아온 모든 인맥을 동원했다. 그동안 취재원 관리가 엉망이었구나 하는 반성을 참 많이도 했다. 선후배 동료 기자들에게 SOS도 요청했다. 취재 내내 취재윤리와 아닌 것 사이에서 고뇌해야 했다. 아이들이 관련되다보니,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다행히 의미 있는 결과물이 나왔고, 후속 보도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입학하고 싶어요? 그럼 2천만원” 국제중학교는 어느새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돼 있었다. 입학을 위해 밤새 공부하고,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고. 국제중 입학만을 위한 학원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학교 측은 이런 열망을 교묘하게 악용했다. 편입생이나 대기자들에게 부정한 돈을 요구했다. 직접 이런 요구를 받고 돈을 내고 자녀를 입학시킨 학부모의 증언은 그래서 실로 충격적이고 씁쓸했다. 이 이야기를 기자에게 풀어내준 학부모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취재에 응하기까지 말할 수 없는 고뇌의 과정이 있었지만, 우리 교육의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려주셨다.
사건은 진행 중이다. 교육청이 특별감사를 벌이고 있고, 검찰수사도 예정돼 있다. 그러나 사실, 얼마나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지는 벌써부터 의구심이 든다. 그래서 예의주시하겠다. 필요하면 후속보도도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