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돈 내고 전공도 못 듣는 ‘학문의 錢당’-대학은 돈의 전당
-한국일보 기획취재부 박상준 기자
‘장미칼’ ‘쁠몰’ ‘양민학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 단어들을 꼭 껴안고 지냈습니다. 취재를 하며 만난 대학생들의 억울함, 허탈함은 생각보다 컸고, 교수들의 답답함은 생각보다 깊었습니다. 학생들은 수 백만원 등록금, 입학금을 내면서도 제대로 된 교육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의실은 모자라고, 있는 강의실 중 상당수는 비좁습니다. ‘블랙홀’이라는 나쁜 자리에 앉지 않기 위해 지각을 한 것도 아닌데 달리기까지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학점 경쟁은 말도 못할 정도로 치열합니다. 대학들은 말끝마다 “돈 없다”고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듭니다. 수 백억원, 수 천억원씩 적립금을 쌓아 두고 학생들 등록금은 엉뚱하게 쓰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으니까요. 교육부는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풀기보다는 돈이 아쉬운 대학들에 재정 지원금을 앞세워 ‘내 말 잘 들으면 돈 줄게’ 하는 식으로 나쁜 버릇을 들이고 있습니다.
19년 전 대학을 졸업한 기자가 지금 대학생들이 답답함을 푸는 데 작은 보탬이 되는 것은 그들의 답답함을 자세히 소개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많은 이들로부터 반응이 왔습니다. 대학 관계자들의 해명, 대학생들의 폭풍 공감, 그리고 추가 제보까지. 대학생 자녀를 둔 지인들은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학교 다니는 줄 몰랐다”며 심란해 했습니다.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면서 대학생들이 이끌 우리의 앞날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그들은 온 마음을 다해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단 그들의 노력이 헛것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커져가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대학의 무심함, 교육부의 엉뚱함이 어우러져 배는 산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새 정부에서는 대학생들이 좀 더 나은 교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취재를 위해 기꺼이 내부 고발을 해 준 대학생들과 교수들께 감사드립니다.
회차 심사평
제319회 전체 총평
2017년 3월 ‘이달의 기자상’(319회)에는 경향신문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 등 모두 7건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최근까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특종 보도가 잇따랐으나 이제 사건이 검찰 기소 및 재판 국면에 진입하면서 출품 후보작 내용도 전반적으로 일상적인 취재 및 보도를 다룬 작품들이 출품됐다. 반면 그동안 워낙 큰 이슈 때문에 큰 눈길을 끌지 못했던 지역 보도들이 이번에 다수 출품돼 호평을 받았다.
‘취재보도 1부문’에 선정된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 보도는 사법개혁 논의가 확산되면서 증폭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긍정 평가를 받았다. 보도 이후 전국 법원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판사회의가 열렸고, 대법원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나설 정도로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기획보도 신문 통신 부문’ 수상작인 한국일보 <비싼 돈 내고 전공도 못 듣는 학문의 전(錢)당-대학은 돈의 전당> 보도는 대학들이 최근 몇 년 사이 교육부의 재정 지원금을 받기 위해 교육부가 ‘유도하는 대로’ 경쟁적으로 구조조정을 강행한 실태와 그 후유증을 잘 다뤘다. 운이 좋아야 수강을 신청할 수 있는 대학. 과연 그런 대학의 현실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힘 있게 기획하고 보도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기획보도 방송부문’에 선정된 CBS <연속기획 구의역 사고 이후 추적> 보도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사고가 마무리된 뒤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과거 보도 관행에서 벗어나 구의역 사고 이후를 지속적으로 추적, 여전히 안전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는 현장의 문제점을 잘 짚어냈다. 국민들의 관심이 떨어지면 언론이 자연스럽게 발을 빼던 것이 현실이지만, 이 보도는 그 현실을 살피는 깊은 고민과 함께 잘 기획한 흔적이 많았다. 다만 왜 그런 일이 되풀이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 지적이 부족해 다소 아쉽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지역취재보도 부문’에서는 G1강원민방 <속초세관 보세창고 비리>, KBS전주 <두장짜리 보고서가 밝혀낸 여고생의 죽음>, TBC <금복주 하청, 눈물의 상납 관행> 등 3편이 선정됐다.
<속초세관 보세창고 비리> 보도는 어떻게 기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철저히 비리를 파헤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수작이라는 평가다. 기자들은 세관 보세창고 간부의 횡령, 어패류 불법 밀반출 등의 각종 불법 비리를 치밀하게 취재, 보도해 사법당국의 수사를 이끌어냈다. 또 세관측이 강력한 대책도 마련토록 하는 등 언론 본연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두장짜리 보고서가...> 보도는 대기업 현장실습에 나섰던 여고생의 죽음이 단순 사고사나 자살로 간과될 수도 있었으나 ‘두 장짜리 내부보고서’를 단서로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끈질기게 진실규명을 촉구하고 공론화한 점이 높이 평가됐다. 정치권과 교육계가 각종 대책위와 조사팀 등을 구성해 실태조사와 개선방안 마련에 나서는 등 사회적 파장이 상당했던 점도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다.
<금복주 하청 눈물의 상납 관행> 보도는 소위 갑질의 대표적 사례를 딱 떨어지게 잘 찾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취재기자가 자평했듯, 지역 기여도가 있는 향토기업의 갑질 횡포를 지역언론이 폭로한 것은 기업 윤리와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언론의 사명을 우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보도는 지역 토착기업의 뿌리 깊은 불공정 행태를 고발한 수작으로 평가됐다.
‘지역기획보도 신문 통신’ 부문에서는 경인일보 <전국 정수장 저질 활성탄 납품비리>가 선정됐다. 이 보도는 저질 제품이 납품돼 국민 건강을 위협한 활성탄의 정수장 납품 프로세스를 개설할 방안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 현직 간부 · 국립대 교수 등 13명을 재판에 넘긴 이 보도는 지난해 6월부터 무려 10개월간 이어졌다. ‘물은 서민생활과 직결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끈질기게 추적 보도한 일종의 비리 탐사보도로서, 워낙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사회적 영향을 극대화한 점이 높이 평가돼 기획보도 부문 수상작에 선정됐다.
(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