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
-경향신문 사회부 이범준 기자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의 사법개혁 움직임을 저지한 사실을 밝혀낸 경향신문 3월6일자는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 등 대법원 고위층이 직접 개입하고, 양승태 대법원장의 묵인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다음날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법원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렸다. “법원행정처는 해당 판사에게 연구회 활동과 관련하여 어떠한 지시를 한 적이 없습니다. 일부 언론 보도는 당사자 확인절차 없이 이루어진 보도이며, 앞으로 근거 없는 의혹 제기는 자제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렇게 대법원이 사실을 부인하면서 전국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소집됐다. 판사들은 행정처가 은폐시도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양승태 대법원장은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한 달여 뒤인 4월18일 진상조사위원회는 은폐시도 의혹에 대해 다음과 같은 조사 결과를 내놨다. “고영한 처장이 정식의 확인 없이 해명글을 게시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처장의 해명글이 사건 은폐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음.” 확인도 없이 해명한 것이고 허위인 것도 맞지만 은폐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틀 뒤 4월20일 고영한 처장 등 대법원은 이렇게 밝혔다. “여러분께서 누구보다 더 큰 충격을 받으셨겠지만, 사법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저로서도 진상조사보고서를 읽어 나가면서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판사들과 시민들을 속여온 양승태 대법원은 이제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회차 심사평
제319회 전체 총평
2017년 3월 ‘이달의 기자상’(319회)에는 경향신문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 등 모두 7건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최근까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특종 보도가 잇따랐으나 이제 사건이 검찰 기소 및 재판 국면에 진입하면서 출품 후보작 내용도 전반적으로 일상적인 취재 및 보도를 다룬 작품들이 출품됐다. 반면 그동안 워낙 큰 이슈 때문에 큰 눈길을 끌지 못했던 지역 보도들이 이번에 다수 출품돼 호평을 받았다.
‘취재보도 1부문’에 선정된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 보도는 사법개혁 논의가 확산되면서 증폭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긍정 평가를 받았다. 보도 이후 전국 법원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판사회의가 열렸고, 대법원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나설 정도로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기획보도 신문 통신 부문’ 수상작인 한국일보 <비싼 돈 내고 전공도 못 듣는 학문의 전(錢)당-대학은 돈의 전당> 보도는 대학들이 최근 몇 년 사이 교육부의 재정 지원금을 받기 위해 교육부가 ‘유도하는 대로’ 경쟁적으로 구조조정을 강행한 실태와 그 후유증을 잘 다뤘다. 운이 좋아야 수강을 신청할 수 있는 대학. 과연 그런 대학의 현실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힘 있게 기획하고 보도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기획보도 방송부문’에 선정된 CBS <연속기획 구의역 사고 이후 추적> 보도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사고가 마무리된 뒤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과거 보도 관행에서 벗어나 구의역 사고 이후를 지속적으로 추적, 여전히 안전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는 현장의 문제점을 잘 짚어냈다. 국민들의 관심이 떨어지면 언론이 자연스럽게 발을 빼던 것이 현실이지만, 이 보도는 그 현실을 살피는 깊은 고민과 함께 잘 기획한 흔적이 많았다. 다만 왜 그런 일이 되풀이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 지적이 부족해 다소 아쉽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지역취재보도 부문’에서는 G1강원민방 <속초세관 보세창고 비리>, KBS전주 <두장짜리 보고서가 밝혀낸 여고생의 죽음>, TBC <금복주 하청, 눈물의 상납 관행> 등 3편이 선정됐다.
<속초세관 보세창고 비리> 보도는 어떻게 기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철저히 비리를 파헤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수작이라는 평가다. 기자들은 세관 보세창고 간부의 횡령, 어패류 불법 밀반출 등의 각종 불법 비리를 치밀하게 취재, 보도해 사법당국의 수사를 이끌어냈다. 또 세관측이 강력한 대책도 마련토록 하는 등 언론 본연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두장짜리 보고서가...> 보도는 대기업 현장실습에 나섰던 여고생의 죽음이 단순 사고사나 자살로 간과될 수도 있었으나 ‘두 장짜리 내부보고서’를 단서로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끈질기게 진실규명을 촉구하고 공론화한 점이 높이 평가됐다. 정치권과 교육계가 각종 대책위와 조사팀 등을 구성해 실태조사와 개선방안 마련에 나서는 등 사회적 파장이 상당했던 점도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다.
<금복주 하청 눈물의 상납 관행> 보도는 소위 갑질의 대표적 사례를 딱 떨어지게 잘 찾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취재기자가 자평했듯, 지역 기여도가 있는 향토기업의 갑질 횡포를 지역언론이 폭로한 것은 기업 윤리와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언론의 사명을 우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보도는 지역 토착기업의 뿌리 깊은 불공정 행태를 고발한 수작으로 평가됐다.
‘지역기획보도 신문 통신’ 부문에서는 경인일보 <전국 정수장 저질 활성탄 납품비리>가 선정됐다. 이 보도는 저질 제품이 납품돼 국민 건강을 위협한 활성탄의 정수장 납품 프로세스를 개설할 방안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 현직 간부 · 국립대 교수 등 13명을 재판에 넘긴 이 보도는 지난해 6월부터 무려 10개월간 이어졌다. ‘물은 서민생활과 직결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끈질기게 추적 보도한 일종의 비리 탐사보도로서, 워낙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사회적 영향을 극대화한 점이 높이 평가돼 기획보도 부문 수상작에 선정됐다.
(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