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7편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 경향신문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
-경향신문 사회부 이범준 기자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의 사법개혁 움직임을 저지한 사실을 밝혀낸 경향신문 3월6일자는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 등 대법원 고위층이 직접 개입하고, 양승태 대법원장의 묵인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다음날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법원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렸다. “법원행정처는 해당 판사에게 연구회 활동과 관련하여 어떠한 지시를 한 적이 없습니다. 일부 언론 보도는 당사자 확인절차 없이 이루어진 보도이며, 앞으로 근거 없는 의혹 제기는 자제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렇게 대법원이 사실을 부인하면서 전국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소집됐다. 판사들은 행정처가 은폐시도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양승태 대법원장은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한 달여 뒤인 4월18일 진상조사위원회는 은폐시도 의혹에 대해 다음과 같은 조사 결과를 내놨다. “고영한 처장이 정식의 확인 없이 해명글을 게시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처장의 해명글이 사건 은폐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음.” 확인도 없이 해명한 것이고 허위인 것도 맞지만 은폐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틀 뒤 4월20일 고영한 처장 등 대법원은 이렇게 밝혔다. “여러분께서 누구보다 더 큰 충격을 받으셨겠지만, 사법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저로서도 진상조사보고서를 읽어 나가면서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판사들과 시민들을 속여온 양승태 대법원은 이제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비싼 돈 내고 전공도 못 듣는 ‘학문의 錢당’-대학은…
비싼 돈 내고 전공도 못 듣는 ‘학문의 錢당’-대학은 돈의 전당
-한국일보 기획취재부 박상준 기자
‘장미칼’ ‘쁠몰’ ‘양민학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 단어들을 꼭 껴안고 지냈습니다. 취재를 하며 만난 대학생들의 억울함, 허탈함은 생각보다 컸고, 교수들의 답답함은 생각보다 깊었습니다. 학생들은 수 백만원 등록금, 입학금을 내면서도 제대로 된 교육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의실은 모자라고, 있는 강의실 중 상당수는 비좁습니다. ‘블랙홀’이라는 나쁜 자리에 앉지 않기 위해 지각을 한 것도 아닌데 달리기까지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학점 경쟁은 말도 못할 정도로 치열합니다. 대학들은 말끝마다 “돈 없다”고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듭니다. 수 백억원, 수 천억원씩 적립금을 쌓아 두고 학생들 등록금은 엉뚱하게 쓰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으니까요. 교육부는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풀기보다는 돈이 아쉬운 대학들에 재정 지원금을 앞세워 ‘내 말 잘 들으면 돈 줄게’ 하는 식으로 나쁜 버릇을 들이고 있습니다.
19년 전 대학을 졸업한 기자가 지금 대학생들이 답답함을 푸는 데 작은 보탬이 되는 것은 그들의 답답함을 자세히 소개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많은 이들로부터 반응이 왔습니다. 대학 관계자들의 해명, 대학생들의 폭풍 공감, 그리고 추가 제보까지. 대학생 자녀를 둔 지인들은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학교 다니는 줄 몰랐다”며 심란해 했습니다.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면서 대학생들이 이끌 우리의 앞날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그들은 온 마음을 다해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단 그들의 노력이 헛것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커져가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대학의 무심함, 교육부의 엉뚱함이 어우러져 배는 산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새 정부에서는 대학생들이 좀 더 나은 교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취재를 위해 기꺼이 내부 고발을 해 준 대학생들과 교수들께 감사드립니다.
연속기획 구의역 사고 이후 추적 CBS
연속기획 구의역 사고 이후 추적
-CBS 사회부 강혜인 기자
기사를 쓰다 보면 가끔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열심히 취재하고 기사를 썼는데 변한 게 아무것도 없을 때. 그래서 결국 누군가의 아픔을 그저 기사의 한 소재로만 삼은 셈이 될 때. 그 기분이 너무 싫어서 이번만큼은 끈질기게 붙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우리가 약속한 건 변화였습니다.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시민과 노동자가 안전한 사회, 청년이 배고파하며 일하지 않는 사회,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차별을 내포하지 않는 사회요. 약속이 지켜지는지 감시하는 건 언론에 주어진 책무였습니다. 만일 또 사고가 반복됐을 때 '그러게 왜 진작 제대로 취재하지 않았지' 하는 뒤늦은 반성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았달까요.
‘내일은 좋아질까’, ‘조금만 더 참으면 나아질까’,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내일을 그리며 오늘을 참아내는 노동자들을 보며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면서도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니 열심히 해야 한다’며 이들이 책임감을 보일 땐, 그 책임감을 싼값에 이용하려는 사회가 원망스러웠습니다. 노동은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취재 후기를 쓰는 순간에도 마음이 후련하지만은 않네요. ‘이 정도면 많이 했네’하는 식의 반박에 속을 많이 끓였습니다. 똑같은 권리를 가진 노동자들을 차별한 건 우리인데, 이 모든 불합리한 구조를 원래대로 돌려놓는 게 우리의 의무인데, 누군가는 이걸 그저 노동자를 위한 시혜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끝까지, ‘질릴 때까지’ 취재해야겠습니다.
속초세관 보세창고 비리 G1강원민방
속초세관 보세창고 비리
-G1강원민방 속초지국 조기현 기자
속초세관은 수입 통관 어패류의 안전한 관리와 밀반출 차단을 위해, 보세창고를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취재팀이 확인한 세관 보세창고는 불법 비리 창고 그 자체였다.
보세창고 관리팀장은 수조 사용료로 1억 원이 넘는 돈을 자신의 통장으로 입금 받아, 5천만 원 넘게 횡령했다. 특히 속초세관과 운영업체가 모르게 하려고 계약서를 위조해, 몰래 업체와 계약서를 체결하는 불법도 저질렀다. 업체에 수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협박해, 항목에도 없는 사무실 사용료 명목으로 돈을 갈취하기도 했다. 관리팀장의 묵인하에 일본과 러시아 등에서 수입한 어패류가 통관도 거치지 않고 밀반출되기도 했다.
속초세관의 관리는 소홀하기만 했다. 수조를 사용하는 업체에서 어패류의 폐사와 도난이 잇따랐지만, 속초세관은 국내 어패류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기에만 급급했다. 하지만 피해 어패류에는 수입산도 다수 섞여 있었다. 속초세관은 국내 어패류도 보세창고를 거칠 경우 출입 수량을 확인하도록 돼 있지만, 이것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보도 이후 신속하게 개선 대책이 마련된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경찰은 속초세관 보세창고 관리팀장을 업무상 횡령과 사기, 사문서위조 등 5가지 혐의를 적용에 검찰에 송치했다. 속초세관도 수사를 벌여 보세창고 운영업체를 경고 처분하고, 운영업체 보세사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 한편 수입물품과 국내물품을 구별해 보관하도록 시설 개선을 명령하는 등 대대적인 시설 개선에 착수했다. 취재팀은 보세창고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끝까지 감시할 계획이다.
두 장짜리 보고서가 밝혀낸 ‘한 여고생의 죽음’ …
두 장짜리 보고서가 밝혀낸 ‘한 여고생의 죽음’
-KBS전주 취재부 서승신 기자
“선배 통신회사 직원이라고 나왔는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네요.”
전북교육청 한 부서에서 초등학교 관련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기자에게 아르바이트 촬영보조(오디오맨)가 던진 말이다. 전날 언론들이 모 저수지에서 통신회사 여직원이 물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는데 특성화고 3학년 여학생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왜 뚱딴지같은 말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조금 전 인터뷰를 받고 나온 사무실의 책상 위 서류들 사이에서 우연히 그 내용을 봤다는 것이다.
교육청의 2장짜리 내부보고서는 그렇게 존재를 알렸고 어렵게 확보한 내부 보고서에는 숨진 홍 양의 삶의 이력과 사안경위, 교육청 대책 등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숨진 학생의 학교와 교육청 3개 팀이 조사한 내용을 취합한 것으로 교육감 등 상부 보고용이었다.
모 장학사에게 문건의 내용에 대해 물었더니 다 맞고, 너무나 안타까운 일인데 요즘 학생들 자살이 적지 않아 교육부에는 실족사로 보고했다고 했다. ‘현장실습 중 업무 스트레스가 많았다’라고 분명히 적혀 있는데 왜 이 학생의 죽음은 진실 규명 없이 그냥 숨겨지듯 묻혀야 하는지, 또 현장실습의 구조적인 문제는 왜 사라지지 않고 계속 거듭되는지….
특히 전북교육청은 이른바 진보교육청 중에서도 핵심이면서 학생 인권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는 곳 아닌가? 기자의 고민이자 안타까움, 분노는 그렇게 취재의 시발점이자 원동력이 됐고 현재도 멈추지 않고 진행 중이다.
금복주 하청, 눈물의 상납 관행 TBC
금복주 하청, 눈물의 상납 관행
-TBC 사회부 박정 기자
우리 모두 어디선가는 '을'입니다. 이른바 갑질이 공분을 사고, 사회에서 뿌리 뽑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가 만난 업체는 금복주와 10년 넘게 거래했지만 거래계약서를 쓰지는 않았습니다. 금복주는 계약서 없는 계약으로, 관행이라는 명분 아래 갑을 자처했습니다. '우리 사이 의리'를 내세워 거래는 이어졌지만 명절 상납금을 거부하는 을에게, 갑 금복주는 한 마디를 남긴 채 거래를 중단합니다.
"어느 하청이 이지랄 하는데? 고마운 줄 알아야지."
모든 산업과 기술의 발전은 을의 손을 거치지만 달콤한 영광은 갑만의 것이었습니다. 노력과 책임은 분담하지만 성과는 독식하고, 응당한 거래에 부당한 갑질을 덧붙이는데 서슴없습니다. 하지만 지켜내야 하는,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위해 을은 기꺼이 을을 자처하고 눈과 귀와 입을 닫았습니다.
반복되는 역사 속에 갑은 독식과 갑질을 자연스러운 결과로, 자신들이 일구어낸 당연한 권리로 여기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방관도 한몫했을 겁니다.
우리는 자주 갑의 횡포를 목격하고 또 경험합니다. 이번 취재는 을이 목소리를 내는 게 두렵거나 외로운 일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이 기사가 을로 살아가기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힘을 보탤 수 있길 바랍니다.
을이 지켜보고 을이 목소리를 내는 일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우리 사회 모든 을을 응원합니다.
전국 정수장 ‘저질 활성탄’ 납품비리 경인일보
전국 정수장 ‘저질 활성탄’ 납품비리
-경인일보 사회부 전시언 기자
'저질 활성탄 납품비리 사건'은 공공재 구매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와 공직사회 비리가 국민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 등 수돗물 공급은 도맡은 공공기관들은 먹거리 안전과 직결되는 수돗물의 품질을 높이겠다는 명목으로 정수장 시설 고급화에 세금을 써왔다. 대표적인 것이 정수제의 일종인 활성탄을 활용하는 공정을 도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뒤로는 수돗물의 품질을 더욱 나쁘게 하는 비리와 비위를 저질렀다. 그러면서도 음용캠페인과 같은 '대국민 사기극'을 벌여왔다.
국민들은 최소 12년 동안 수도요금을 꼬박꼬박 내고도 '저질 활성탄'으로 정수된 물을 공급받았다. 수돗물에서 역한 냄새가 나는가 하면 부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경인일보는 지난해 8월 16일 도내 정수장에 저질 활성탄이 사용됐다는 첫 보도 이후 관피아, 수상한 검사기관 등 활성 납품비리와 관련된 공직사회와 업계에 만연해 있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K-water 등은 TF를 만들고 내부감사를 실시하는 등 일제히 정비에 나섰다. 검찰은 5개월여간의 수사 끝에 수자원공사 간부를 비롯한 13명을 법정에 세웠고 이 중 8명은 구속기소됐다.
검찰 수사는 일단락 됐지만, 비리 연루자들이 완전히 파헤쳐지진 않았다. 앞으로는 K-water 등 정수장 관련 공공기관들이 직접 나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길 소원한다.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주신 제보자분들과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가르침을 주신 경인일보 선배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