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8편
한국전쟁 60주년 기획그래픽 '인천상륙작전' 중앙…
한국전쟁 60주년 기획그래픽 '인천상륙작전'
중앙일보 그래픽팀 장주영 기자
올해는 한국전쟁 60주년. 그러나 전쟁의 기억은 우리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6월 월드컵의 열기는 망각을 낳았다. 어쩌면 공허한 외침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래픽이 될 수도 있다. ‘인천상륙작전 인포그래픽’을 만들면서 생긴 두려움이었다.
‘북침설’ 등 황당한 주장을 차치한다면 한국전쟁에 대한 의견은 개인의 자유 영역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기억할 것인가, 잊을 것인가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비극. 그것만으로 잊혀지지 말아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이런 믿음으로 중앙일보의 ‘인천상륙작전 인포그래픽’은 만들어졌다.
왜 인천상륙작전인가? 젊은 세대들에게 인천상륙작전은 국사책 한켠에 있는 단어로만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 인천상륙작전이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엎는 계기가 됐다는 상식은 이미 상식이 아니었다. 여기에 해외언론이 노르망디상륙작전을 그래픽으로 제작한 것도 우리에게 자신감을 줬다. 인천상륙작전의 자세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면, 그 나름 대로 의미가 있는 작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 방향이 정해지고 우리는 자료를 얻기 위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를 찾아갔다. 해군사(海軍史)를 당하고 있는 최권삼 연구원에게서 상륙군의 무기 현황, 북한군의 방어 현황 등 방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서는 당시의 기록 사진 등을 찾아, 상륙군의 복장과 무기 현황 등 디테일을 살릴 수 있었다. 인천 월미도 등 실제 상륙지점을 방문, 해안선의 모양을 그려왔다.
취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지만 제작에는 큰 애를 먹었다. 인천 앞바다와 월미도 등 바탕을 딱딱한 그래픽 보다는 아닌 회화(繪畵)적인 느낌이 더 어울릴 것 같아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배경을 직접 그렸다. ‘회화 느낌이 지면에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그리고 또 그리기를 반복했다. 최적의 색감을 찾기 위해서다. 애꿎은 도화지만 쓰레기통을 채워갔다. 제작 기간만 2주가 넘게 걸렸다.
항상 지난함 뒤에는 나약함이 똬리를 튼다. ‘헛심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독자들이 이러한 노력을 알아줄까’라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쳐들었다. 그럴 때마다 ‘비록 몰라주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그래픽을 만들자’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6월 24일. 그래픽이 지면에 실렸다.
지면을 보며 뿌듯함 보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방대한 취재 내용은 모두 반영되지 못했고, 매끄럽게 정리가 덜 되 느낌도 들었다. 다만, 우리는 남들 보다 한발 먼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다음에는 우리만의 색깔을 내는 인포그래픽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얻었다. 끝으로 매일매일 마감을 해야 하는 신문 업계의 순리를 거부한 두 기자의 직무유기(?)를 눈감아준 고윤희 에디터와 신재민 데스크, 그리고 다른 그리픽 부원들의 너그러움에 감사의 말을 전한다.
영산강 살리기 사업, 이대로 좋은가 광주MBC
‘영산강 살리기 사업, 이대로 좋은가’
광주MBC 보도제작국 김철원 기자
지난 2월 영산강 사업 죽산보 공사현장 인근의 보리밭 15헥타르가 35밀리미터의 비에 침수된 적이 있었다. 속도전이 부른 해프닝성 사고였고 공사의 본질과도 관련성이 적었지만 시공업체는 이상하리만치 사력을 다해 보도를 막으려 했다. 공사 책임자는 기사 작성중인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가 나가지 않게 해주면 큰 보답을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도 서울 뉴스데스크에 해당 보도가 나가는 지 여부를 확인하러 기자에게 전화를 해왔다. 개의치 않고 보도를 하긴 했지만 뭔가 개운치가 않았다.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덮으려고 할까?’ 이런 의문은 영산강 사업 취재를 자청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로부터 한 달 쯤 지났을까? 대한하천학회가 발표한 지하수 상승에 따른 침수피해 논란을 취재하던 때였다. 우리와 인터뷰를 마친 죽산보 인근에 산다는 주민은 신문과 방송에서 영산강사업을 왜 찾을 수 없냐고 물었다. 인터뷰한 것이 방송은 되는 것이냐며 의심도 했다. 신문방송에서 안 다뤄주니 비나 많이 와서 다 쓸어가 버리면 공사를 중단하지 않겠냐는 극단적 얘기도 했다.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취재*보도했다고 변명했지만 돌아와서 생각하니 주민들이 말이 맞았다. 2조 6천억 원이나 투입되는 초대형 국책사업이고 어쩌면 수백만 지역민들의 운명이 달려 있는 사안인데도 영산강사업에 대한 심층보도는 가뭄에 콩나듯 했다. 오히려 낙동강에 비해 영산강에 배정된 예산이 적다며 4대강사업의 호남 홀대론을 주장하는 보도가 일부 정치인과 자치단체장들의 입을 빌어 지역의 신문과 방송을 뒤덮고 있었다. 지금 현재 영산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기록으로 남겨 후손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보도되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했다. 발주처인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은 광주 MBC의 취재 요청을 철저히 외면했고 시공업체들은 취재 현장마다 따라붙어 우리가 뭘 취재하는지 감시했다. 기획보도 시점이 임박할 때쯤엔 MBC 노조의 파업이라는 변수를 만나 연속보도가 2회만 방송되고 중단되기도 했다. 당시에는 기사 욕심이 앞선 나머지 파업 때문에 애써 준비한 기획기사가 사장됐다며 불평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52일간의 파업은 이번 기획에 있어 꼭 필요한 숙성기간이었던 것 같다.
기사에서도 밝혔지만 영산강 살리기 사업이 끝나면 지금보다 더 좋아질 지 나빠질 지 단정할 수 없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 비판과 견제까지 미뤄서는 안될 일이다. 국민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자는 단순한 요구를 하는데도 정부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짓고 나서 오래 되면 재개발을 하는 건물이나 구도심과 달리 4대강은 한 번 공사가 끝나면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기가 어려운 비가역성이 있기 때문에 신중하자는 것 아닌가. 오늘의 이 ‘우려’가 미래에 ‘사실’로 확인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기획보도를 준비할 때 집사람에게 아이가 생기는 경사가 생겼다. 태명을 ‘강’이라 지었는데 강처럼 모든 것을 받아 안으면서 유유하게 살라는, 우리의 아름다운 강처럼 멋있게 크라는 아빠의 바람을 담았다. 아마도 이번 상은 엄마 뱃속에 있는 ‘강’이가 아빠에게 미리 준 선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부산MBC 기자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올 1월 이달의 기자상을 타기도 했던 부산MBC의 ‘닻올린 낙동강 살리기 사업’ 보도는 여러 모로 자극이 됐다. ‘낙동강에서도 했는데 영산강에서 못하랴’식의 생각을 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취재를 도와준 여러 전문가들과 보도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데스크, 격려해줬던 동료기자들과 수상의 영광을 함께 하겠다.
산복도로 리포트:부산원도심 재창조 국제신문
〈산복도로 리포트:부산원도심 재창조〉
국제신문 배재한 기자
먼저 부족한 기사에 이달의 기자상이라는 큰 영예를 주신 한국기자협회와 심사위원님께 머리숙여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더 좋은 기사를 쓰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부산의 도심 산허리를 감싸고 수십킬로미터의 산중턱 도로로 연결된 이른바 산복도로.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은 이 산복도로는 일제강점기와 8긿15 해방, 한국전쟁과 산업화의 직접적 산물입니다.
이 산복도로는 부산의 중구 동구 서구 사하구 영도구 부산진구 등에 걸쳐 있습니다. 이곳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이 자그마치 120만 명이나 됩니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산복도로에 살고 있지만 산복도로는 부산의 골칫덩이에 불과했습니다. 부산항으로 배가 들어올 때 마천루처럼 보이는 산중턱의 불빛을 보고 감탄했다가 아침에 판자촌임을 알고 실망했다는 자조적인 얘기를 한 두 번씩 듣지 않은 부산사람은 없을 정도입니다.
취재팀의 문제의식은 여기서부터 출발했습니다.
한국전쟁 60주년을 맞는 해이자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시작된 지 100년이 되는 해(2010년)를 맞아 산복도로에 대한 대탐사를 결정했습니다.
2010년 새해 첫날부터 시작해 매주 한 차례 한 면씩 6개월 동안 계속됐습니다. 〈산복도로 리포트〉가 보도되는 6개월 동안 사내는 물론 외부의 평가도 뜨거웠습니다. 부산에 적합한 지역적 아젠더를 제대로 잡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취재팀의 팀장 역할을 한 저는 부산시청을 출입하는 사회부 기자로서 주중에는 출입처 기사 취재에, 주말과 휴일에는 산복도로 취재에 매달렸습니다. 나날의 기사 부담과 출입처 일정에 쫓기면서 ‘산복도로 취재수첩’을 한장 한장 채워나갔습니다. 이 시리즈가 계속되는 6개월 동안 주말과 휴일이면 어김없이 부산의 산복도로를 걷고 또 걸었습니다. 또 산복도로와 연결된 산동네를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기사는 언제나 밤 새워 썼습니다. 그만큼 저는 부산의 산복도로에 푹 빠졌고, 〈산복도로 리포트〉 취재 보도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수상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받고 저의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취재팀의 일원이었던 후배 조민희 정홍주기자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번 수상이 그들에게 훌륭한 기자로 성장하는 디딤돌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번 시리즈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한 편집긿제작 간부님들, 취재 협조는 물론 온갖 자문을 아끼지 않은 부산발전연구원 김형균 박사님 등 도움을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산복도로 리포트〉를 취재하면서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 것은 더없는 행복이었습니다. 〈산복도로 리포트〉가 산복도로 르네상스의 작은 단초가 되었으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환경미화원 인권보고서 CBS
「환경미화원 인권보고서 <쥐들과 함께 살고 화장실서 밥 먹는 그녀들>」
CBS 사회부 김효은 기자
우리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피했다.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길 극도로 꺼려하는 환경미화원들을 취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직업을 숨기는 사람이 바로 환경미화원이었다.
따라서 이번 기획은 스스로를 감추는데 익숙한 사람들을 밖으로 드러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낯선 외부인이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자 그들은 방해가 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괜한 핑계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업무 시간에 제대로 쉴 만한 시간이 없다는 점을 알고서 우리가 왜 환영받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과 여러 날을 함께 했다. 서울 종로구와 중구, 성산대교, 의정부와 남양주시에서 하룻밤 이상을 꼬박 샜다.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대학병원과 대학교에서도 그들과 하루 종일 붙어 다녔다.
취재 과정은 때론 고역이었다. 지하에 있는 초대형 재활용 처리시설에 들어간 지 10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코가 따갑고 목이 칼칼해 견디기 어려웠다.
유난 떤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꾸역꾸역 참았다. 숨 막히는 현장을 목도하고 나서는 가슴이 먹먹해져 울컥했다.
'청소부'들이 일하는 환경은 예상보다 훨씬 열악했다. 도심에 숨겨진 거대한 지하 공간과 한강 다리 아래 외진 공간, 쓰레기 수거차량으로 병풍을 친 육교 밑 등 일반인들은 쉽게 접근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게 오히려 편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과 마주치길 꺼려한 탓이다.
간이 휴게실이 자리 잡은 습한 지하 공간에서는 쥐가 출몰하고 역한 냄새가 올라왔지만, 그들은 이곳을 천국이라 부르며 만족해했다.
모두가 잠든 시각, 하루를 시작하는 그들을 따라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밤샘 노동을 하는 그들에겐 낮과 밤이 바뀐 지 오래다. 대인관계는 산산조각 나 있었다. 가족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양복을 입고 출퇴근을 하며 '변신'하는 이도 있었다.
환경을 위해, 즉 다른 사람들을 위해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환경미화원들은 그렇게 스스로를 거리에 던지고 있었다.
환경미화원들의 시공간을 기록한 이번 기획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번 보도로 인해 그들의 작업 환경이 개선되고,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이유있는 질식사 MBC
“이유있는 질식사”
MBC 보도제작3부 김경호 기자
“드럼세탁기에 들어갔던 어린이가 질식해서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최근 2년 사이에 세 번이나 뉴스를 통해 전해진 소식입니다. 드럼세탁기에 들어가면 위험하니, 아이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잘 지도해야 한다는 친절한 설명도 뒤따랐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드럼세탁기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사고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그것도 한 업체의 세탁기에서만 세 번이나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해당 제조 업체는 가정 교육을 원인으로 돌렸습니다. 가정에서 어린이들에게 철저하게 세탁기 안전 교육을 실시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이 소홀해서 자꾸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린이 안전에 앞장서겠다며 대대적인 캠페인까지 벌였습니다. 과연 원인은 거기에 있었던 것일까...
사고 당시 판매된 해당 업체의 국내용과 수출용 드럼세탁기를 비교해봤습니다. 그 결과, 안전 구조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음을 알아냈습니다. 미국 수출용 세탁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어린이 안전 사고를 막기 위해 안에서도 열리는 문이 달려있었던 반면, 국내용 세탁기는 안에서는 절대 열 수 없는 문을 달아 판매한 것이었습니다.
왜 이 업체는 굳이 국내에선 안에서 문이 열리지 않는 세탁기를 판매했던 것일까.. 문제의 부품을 납품한 이탈리아 제조업체들을 취재했습니다. 그 결과 당시 국내용과 수출용에 적용한 문의 잠금장치 가격에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판매된 세탁기의 잠금장치가 훨씬 싼 부품이었고, 국내에서 이 부품을 사용함으로써 해당 업체는 12억 원의 납품 단가를 절약한 것이었습니다
이 업체가 이처럼 국내와 미국의 소비자를 차별할 수 있었던 건 한국과 미국 정부의 서로 다른 안전 규정에 원인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드럼세탁기 안전 사고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었던 반면, 미국 등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어린이 안전 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 규정을 마련해 시행해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안전 규정에 따르면 드럼세탁기는 어린이가 들어갈 경우를 대비해, 반드시 안에서 문이 열리도록 하고, 구체적인 열리는 힘의 크기까지 정해놓고 있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에서 이 규정에 맞춰 안에서도 열리는 세탁기를 판매해온 해당 업체가, 한국에선 규정이 없다는 핑계로 안에서 문이 열리지 않는 위험한 세탁기를 계속해서 판매해온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업체는 2년 전 국내에서 두 명의 어린이가 사망한 뒤에도 해당 세탁기의 리콜을 실시하지 않았고, 세 번째 아이가 희생된 올해에야 뒤늦게 리콜을 실시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80만 대가 넘는 해당 세탁기는 여전히 위험한 상태 그대로 국내 가정에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국내 업체들이 국내와 외국의 소비자를 차별한다는 지적은 여러 차례 있어 왔지만, 이처럼 어린이들의 소중한 생명을 담보로 차별적인 영업 행태를 보인 경우는 알려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번 보도를 계기로 소비자의 안전을 무시하는 업체와 정부의 행태가 달라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금호-비컨 이면계약 드러났다...시장기만 의혹 이데…
금호-비컨 이면계약 드러났다...시장기만 의혹
이데일리 전설리 기자
올해 초 데스크로부터 금호아시아나그룹 전현직 고위 관계자들을 집중적으로 접촉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금호가 겪고 있는 유동성 위기의 배경과 그룹 내부 동향, 그리고 2년 전 금호타이어의 2대 주주로 전격 등장해 유동성 위기설을 잠재운 해외 투자자 비컨과 금호간 이면 거래 의혹 등을 파악해 보라는 지시였다.
2008년 8월 당시 금호는 대우건설 풋백옵션에 대한 우려가 불거진 가운데 금호타이어의 2대주주였던 쿠퍼타이어가 풋백옵션을 행사하기로 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심각한 위기 상황에 내몰렸다. 그러나 비컨이 쿠퍼의 풋백옵션 행사 물량을 받아주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위기설을 잠재울 수 있었다.
시장의 우려는 가라앉았지만 이데일리는 금호와 비컨간 거래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후 2년간 이면 거래 의혹에 대해 취재했다. 올해 초 새로 출입처를 배정받은 필자는 그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취재 과정은 쉽지 않았다. 눈보라 속에 차에 갇혀 소득 없이 발길을 돌린 날도 있었고,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자 마자 전화를 끊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건의 특성상 실체를 알만한 사람들이 모두 금호그룹 내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어 결정적인 제보나 증언, 증거물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오랜 추적 끝에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전직 금호 관계자를 만나 결정적인 힌트를 확보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니었지만 거래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만한 것이었다.
이 실마리를 기반으로 산업부 기자인 필자는 대략적인 이면 거래의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금융부 동료기자들과 본격적인 공조 취재에 착수했다.
금호가 이미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뒤였기 때문에 채권은행은 이면 거래의 내용에 대해 상당 부분 파악하고 있었다. 금융감독당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퍼즐을 맞춰 나가면서 검증 작업도 병행했다. 과거 공시 내용과 사업보고서, 감사보고서, 이사회 자료 등 관련 문건들을 샅샅이 뒤졌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와 회계법인 전문가 등도 접촉했다.
결국 사건의 실체를 완벽하게 파악한 이데일리 취재팀은 이면 거래 내용을 단독 보도할 수 있었다.
취재 결과 금호타이어가 새로운 투자자라며 끌어들였던 비컨은 케이먼 군도에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였고, 비컨이 금호타이어 지분(쿠퍼타이어의 풋백옵션 행사물량)을 사기 위해 조달한 자금은 모두 금호타이어가 빌려준 돈이었다. 금호타이어는 자체 자금을 페이퍼 컴퍼니에 빌려준 뒤 이 돈으로 자사의 주식을 매입하도록 유도했다. 사실상 자사주를 취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금호가 분식회계, 자사주 취득규정 위반, 공시 위반 등의 위법을 저지른 혐의도 드러났다.
금호는 2008년 말 비컨의 대여금에 대한 회수 가능성을 감안해 충담금을 적립했어야 했음에도 1년 뒤인 2009년에서야 적립했다. 정도가 심각하지는 않지만 일종의 분식인 셈이다.
또한 거래 과정에서 전환사채(CB)를 갚기 위해 금호타이어가 금호타이어 홍콩법인에 빌려준 대여금 9000만달러(1136억원)의 자금 용도를 이사회와 금감원에 `시설자금`으로 허위 보고했다.
실제로 이데일리 기사가 보도된 이후 금호타이어는 홍콩법인에 자금을 빌려준 용도를 `운영자금(차입금상환)`으로 정정 공시해 허위 기재를 인정했다.
또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교수)는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 조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당국은 현재 금호타이어의 위법 사례에 대한 조사에 착수, 진행 중에 있다.
결국 금호 이면 거래의 최대 피해자는 비컨의 인수 발표 이후 잠재된 유동성 리스크를 모르고 주식을 사들인 투자자들이다.
금호그룹이 불과 1년 뒤에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된 점을 미뤄볼 때 금호가 당시 페이퍼 컴퍼니를 끌어들여 시장을 기만하지 않았더라면 투자자들은 손실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데일리의 이번 보도로 기업들이 `진실은 반드시 드러난다`는 점을 각인해 더 이상 시장을 기만하는 행위를 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제2조두순 사건 연속 특종보도 한국일보
제2조두순 사건 연속 특종보도
한국일보 고찬유 기자
To 사랑하는 내 새끼들, 7남매
“잘못된 생각을 바꿔라”(사건담당 경찰), “전형적인 못된 기사.”(타사 기자)
7남매, 느그들 맘고생이 심했지. 못난 아비 때문에 감당해야 했던 오해와 질시, 회유와 협박. 무엇이 정의인지, 왜 취재해야 하는지,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머리를 싸맸던 숱한 시간을 그들은 모르겠지. 아비도 괴로웠다.
6월 9일 ‘대낮에 운동장서 초등생 납치 성폭행, 상처 심해 6시간 대수술’이란 첫 보도가 나간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기사욕심에 피해아동이 겪을 2차 피해는 무시” “피해아동 부모가 소송한다고 거세게 항의” 등 사건담당 경찰의 말에 등골이 서늘했다. 물론 우리의 취재결과 이는 모두 거짓이었음이 드러났지만(경찰, 제2조두순 사건 조직적 은폐의혹).
하긴 보도 전날 밤에도 “(대략적인 사건내용을) 몇 곳(언론사)이 알고 있는데 피해아동 부모가 막아서 안 쓴다더라”는 경찰의 회유성 전화를 받은 터였다. 역시 피해아동의 2차 피해 방지가 핵심이었다. 우린 졸지에 몰인정한 모리배들로 치부돼버렸지.
불쾌했지만 참았다. 아니 진심으로 곰곰 따져봤다. 정말 기사욕심에, 2차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동료들은 묻어두기로 한(결국 보도하지 않은 곳은 없었다) 사건을 까발린 것인가? 너희에게도 가족회의시간에 진지하게 물었지.
우리가 얻은 결론이 이랬지. 대략 아는 것과 정확히 취재하는 건 비교대상이 아닐뿐더러, 최대한 피해아동의 신원은 가렸고, 가급적 피해아동 주변 취재는 삼갔으며, 사건의 의미와 향후 대책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고. 남들이 뒤늦게 사건을 파고들 때 ‘학교가 위험하다’는 기획을 시작한 건 그래서 느그들 덕분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인지라 과도한 취재경쟁이 사건의 본질을 가리는 일도 발생했지. 아비는 두려웠지만 너희는 침착하더구나. 범인의 이름과 얼굴사진이 공개 됐을 때도 느그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막내아들이 들려준 말이 새삼 떠오른다. “피해아동 아버지는 범인 이름과 사진을 볼까 봐 아이에게 TV나 신문을 보여줄 수 없대요.” 공개여론이 들끓고 여기저기서 범인의 이름이 오르내려도, 어쩌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는, 비공개 원칙을 지켜준 우리의 보금자리 한국일보가 자랑스럽고 고맙다.
여러 제약과 나름의 고민에도 불구하고 착실히 취재해 준 느그들, 미덥고 고맙다. 첫날 밑도 끝도 없는 아비의 한마디에 종일 병원을 뒤지면서도 아이의 상태를 걱정하던 둘째, 보도 뒤에도 가끔 개인적으로 병원을 찾아 아이 가족의 안부를 묻는 막내아들, 끈기 있게 경찰의 은폐의혹을 밝혀준 첫째, 그리고 관련 기획을 하느라 학교현장을 누빈 셋째와 넷째, 막내딸.
느그들, 잊지 마라. 기자는 어떤 상황과 고민에 처하더라도 현장에 있어야 한다. 현장을 떠난, 아예 가지도 않은 기자는 제아무리 아름다운 논리로 무장했더라도 그저 무책임한 관찰자일 뿐이다.
정헌 성기 상욱 지원 현우 혜영 그리고 태무야, 부덕한 아비는 느그들을 사랑한다. 징하게...
From. 7남매의 자랑스런 아비
혹자는 아프게 묻는다. “과연 내 아이가 피해자라도 이렇게 까발릴 것인가?” 답한다. “쉬쉬하며 가족만 감당하기엔 너무 가혹한 일이다. 묻어뒀다면 결국 사건의 책임은 부모가 짊어질 것이고, 아이의 상처는 평생 곪았을 것이다. 그게 바로 2차 피해다.”
이번 보도에서 상보다 더 값진 선물은 악몽을 딛고 되찾은 아이의 웃음(한국일보 6월 18일자 1면)과 아버지의 “(기사 잘 써줘서) 고맙다”는 말이었다.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진상규명과 배후세력 추…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진상규명과 배후세력 추적 보도」
경향신문 사회부 정환보 기자
지난 6월 21일 국회 정무위에서는 깜짝 놀랄 만한 폭로가 있었다. 대통령 풍자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로 조사자격이 없는 총리실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인 한 기업인과 회사를 사찰해 대표직 사임과 지분 이전을 성사시켰다는 내용이었다. 총리실의 하명(下命)을 받은 서울 동작경찰서는 당초 이 사건을 종결처리했지만 서장의 보완수사 지시로 수사관이 교체되고 결국 명예훼손 혐의(기소의견)로 검찰에 사건이 송치됐다. 결국 김씨는 혐의는 인정되지만 기소되지 않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언론이 국회에서의 폭로 내용을 들었지만 보도한 언론은 일부에 그쳤다. 후속보도도 전무한 상태였다. 그러나 비록 표지밖에 없었지만 총리실 공문과 경찰 내사종결 보고 등 민주당 의원들이 공개한 자료는 확실한 근거였다.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긴 한데, 정말 동영상 하나 때문에 그랬을까’ 등 호기심이 꼬리를 물었다.
바로 다음날부터 동작경찰서를 출입하고 있는 필자에게 취재지시가 떨어졌다. 하지만 2년여전 일이라 당시 사건 담당 경찰을 찾기도 어려웠고 얘기를 듣기는 더욱 어려웠다. 결국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씨를 만나는 것이 취재의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사회부 사건팀원들을 통해 어렵사리 김씨의 집주소를 구해 23일 새벽부터 찾아갔다. 이후 일주일 동안 6차례 만나 쫓아다니며 얘기를 들었다. 피해자라 쉽게 입을 열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공권력에 크게 상처를 입은 사람인 데다 앞으로 어떤 파장이 일지를 걱정하며 더욱 위축된 상태였다. 공권력에 대한 분노의 단어는 많았지만, 팩트는 쉽게 튀어나오지 않았다. 사건팀장인 캡과 동료들의 정보력을 총동원해 외곽에서도 사건의 얼개를 개략적으로 그리며 그를 계속 쫓아다녔다. 다행히 매일 만나다 보니 김씨의 경계심도 누그러졌고 기자에 대한 신뢰도 약간씩은 쌓였다. 결국 헌법소원을 통해 사건기록 일체를 보관하고 있는 김씨의 입을 통해 의문이 해소됐다.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근거도 없이 김씨를 전 정권의 핵심인 이광재 강원도지사의 후견인, 촛불집회 자금 후원자, 노사모 핵심 인사라며 멋대로 설정해놓고 털어댔던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팩트 확인을 위해 만날 수 있는 관련 등장인물은 모두 만났다. 경찰, 국민은행, NS한마음, 의원실 사람들을 만났고 이를 토대로 지원관실의 행태와 인적구성 등에 대한 실마리를 얻어 연속기사를 쓸 수 있었다.
파문이 커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어설픈 사람들이 권력을 남용하는 사례가 간혹 발생하고 있다. 정부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지적한 ‘어설픈 사람들’은 역대 모든 정부에서, 그것도 권력 핵심에 있었다. 차제에 실세들의 권력남용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