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6편
1100억 혈세 투입 광주시내버스 준공영제 긴급진단…
1100억 혈세 투입 광주시내버스 준공영제 긴급진단
전남일보 김성수
기사를 쓰면서 언제나 아쉬운 점은 의혹은 있지만 실체를 규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수많은 제보가 쏟아지지만 실체를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
광주광역시가 지난 2006년12월부터 도입한 시내버스 준공영제 역시 많은 의혹을 가지고 있었다. 시내버스업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물론, 운영상의 허점, 취업 비리 등 지역 언론에서도 시민단체나 노동계의 멘트를 통해 의혹 기사를 제기했지만 실체, 즉 팩트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준공영제'라는 제도 아래서는 버스업체 뿐 아니라 내부 직원들 간의 강력한 카르텔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광주시에서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전기사의 임금은 물론, 사무직 지원들에 대한 월급, 차량 보수비, 보험금 등을 지원해주고 있다. 이 때문에 광주 시내버스 운전기사나 직원들은 사실상 공무원과 다름없는 신분이 된 것이다. 자신들의 치부를 외부에 공개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강력한 카르텔은 한 제보자에 의해 실체가 드러났다.
지난 1월4일자 '시내버스 영상기록장치 말썽'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고 한통의 제보가 들어왔다. 광주지역 한 버스 대표가 준공영제로 지급되는 보조금으로 개인직원을 허위로 채용해 임금을 지급했다, 또 친인척 직원에게는 특별상여금 등을 과다하게 지급하고 있다는 제보였다. 여기다 이같은 불법을 확인할 수 있는 회계장부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귀를 의심할 수 없었다. 의혹의 실체에 다가할 수 있는 제보였다. 곧바로 이 사실을 사회부 캡인 장우석 선배에게 이야기했고, 기사 방향 및 기획 기사 등을 논의했다.
그러나 기사가 출고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관련 업체와 퇴직금 등과 관련해 소송 중이던 제보자가 회계장부를 언론에 보도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면서 접촉을 피했기 때문이다.
수차례 전화 설득과 만남을 통해 제보자에게 신뢰를 줬고, 제보 받은 지 2주일만에야 실체적 접근에 필요한 회계장부를 입수할 수 있었다.
회계장부를 확보한 뒤에는 취재에 탄력이 붙었다.
단순 스트레이트로 몇 차례 지적하는 것보다 심층 기획으로 보도하는 것이 좋겠다는 데스크의 지시를 받고, 스트레이트 기사를 출고하면서 사건 캡과 취재 역할을 나눠 기획보도를 준비했다.
결국 2월9일 '광주 시내버스 '준공영제 이유있는 수백억 적자' '란 제목으로 1면 톱 보도에 이어 다음날 친인척들의 임금 과다인상, 상여금 과다 지급 등을 사회면 톱으로 이어 3차례에 걸쳐 준공영제의 문제점과 대안 등의 시리즈를 보도했다.
보도 이후 강운태 광주시장은 감사팀 및 담당부서에 준공영제에 대한 전면 감사를 지시했고, 시민단체와 진보정당에서도 성실 감사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시내버스는 수도권과 달리 지역사회에서는 대표적인 '서민교통 수단'이다. 매년 300억 원이 넘는 시민혈세를 투입하고 있는 시내버스가 투명하고 더 나은 준공영제로 거듭나 서민들에게 친근하고, 안전한 교통수단이 되길 바랄 뿐이다.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 법정관리 비위 파문 뉴시스…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 법정관리 비위 파문
뉴시스 광주.전남본부 맹대환 기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사법부가 신뢰를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사회 곳곳에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들불처럼 일어나지 않을까. 또 그 폐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약자들의 몫이 되지 않을까. 결국 정의라는 단어가 사장되고 편법과 힘의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지 않을까. 사법부가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얼마 전 신임법관 임용식에서 "지난날 법률이 정의를 말하기보다는 소수의 권력 유지의 도구로 이용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고 말했다. 이어 "법관이 청렴성과 공정성을 잃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됨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의심이라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외관이나 상황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대법원장의 말처럼 청렴성과 공정성은 법관에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덕목이다. 특히 사회가 사법부를 존경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 대법원장은 "국민들은 법관에게 성직자에 가까운 인품과 덕목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이 대법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자신이 재판을 맡은 법정관리 기업에 친형과 친구 등의 측근을 관리인이나 감사로 선임한 선재성 전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파산부 재판장)를 의식한 때문으로 알려졌다.
법관이 지녀야 할 덕목을 강조함과 함께 대법원은 시스템 개선에도 나섰다. 파산부의 법정관리 문제점이 드러난 후 관리인과 감사 선정 및 관리 업무를 대법원이 직접 맡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제도 개선 과정을 보면서 왠지 씁쓸함이 느껴진다. 대법원은 지난 2월15일 뉴시스 첫 보도 후 6일 만에 지방법원 내 기업회생(법정관리) 관리위원회 설치를 추진하고 그 이전에 임시 감독기구를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방법원 내 임시 감독기구의 실효성에 문제점을 지적하자 전국 법원의 법정관리 실태 조사에 나섰다.
이후 대법원은 전국 파산부 재판장 회의를 열고 관리인과 감사를 직접 선정하기로 결정했다. 대법원이 제도개선책을 스스로 마련한 것이 아니라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어찌 보면 이번에 불거진 광주지법 파산부의 문제와도 닮은꼴이다. 내부적으로 문제점은 인식하되 가급적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법원의 제도적 문제와 법관 개인의 윤리의식 부재다. 여기에 독버섯처럼 스며든 '법조 관행'이 더해지면서 그 폐해가 더욱 견고해졌다. 관행은 법원 내부의 공정성과 투명성 보다는 효율성을 앞세워 자기모순을 합리화시키는 수단으로 힘을 발휘했다. 이 때문에 개선돼야할 관행이 오히려 내부의 자정의지를 꺾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선 부장판사 또한 이런 관행에 둘러싸여 시야가 흐려지지 않았을까.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법조계 또한 착잡한 심정이다. 특정 재판장이 전횡을 일삼는데도 지역의 법공동체가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법원, 검찰, 변호사회 등 '법조 삼륜(三輪)'이 상호 견제할 수 있는 건전한 법공동체가 마련돼야 하는 이유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국민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누구든지 억울한 일이 있으며 법원에 하소연 할 수 있다. 그래서 삼복더위 속에 한 줄기 소나기 같은 판결을 보면 국민들은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낸다.
국토대해부 - 과개발에 신음하는 한반도 아주경제
국토대해부 - 과개발에 신음하는 한반도
아주경제 건설부동산부 박성대
“우리는 무슨 특구고 기업도시고 이제는 모르겠어. 개발지구 지정이 오히려 마을에 화(禍)를 불렀어.”
과개발 기획안을 확정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4일 찾았던 전남 무주군 안성면과 무안군 현경면. 당시 인터뷰를 하던 주민들의 모습에는 씁쓸함과 함께 분노마저 느껴졌었다.
한 달 뒤에 찾은 전남 나주시 혁신도시 공사현장에서는 매서운 시베리아 바람이 어려운 취재과정을 말해주는 듯 했다. 나주역에서 현장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펼쳐지는 공사장을 보면서 “대한민국은 개발공화국이라는 말이 맞기는 하구나”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던 기억도 새롭다.
또 본격적인 현장 취재에 앞서 국토해양부와 지식경제부 등 각 부처, 국토연구원 자료 등을 토대로 각종 지역·지구·구역 지정 현황을 파악하고 지도에 하나둘 표시하던 기억도 떠오른다.
매서운 바람을 들에 짊어지고 전국을 떠돌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 와중에 “강원도 산골짜기로 취재에 나선 권 선배는 더 춥겠지, 울산으로 간 유 선배는 덜 추워서 좋겠네”라고 느꼈던 여유(?)도 새삼스럽다. 여유라기보다는 매서운 추위에 대한 고통 때문이었겠지만…….
과(過)개발 취재는 예상처럼 쉽지는 않았다. 우선 포커스는 책임지는 사람 없이 쏟아내는 각종 개발 계획이 한반도를 파괴시키고 지역 간 갈등 등 각종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는 내용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지면을 통해 과개발을 어떻게 표현해야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한반도와 각 권역별 지도 위에 지정현황을 그래픽으로 표현하고 주요 지정현황을 표로 보여주기로 했다. 지구지정 현황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작업은 말 그대로 막노동이었다.
조사결과 중앙정부가 지정한 각종 지역·지구는 53개, 지정된 면적은 12만46㎢였다. 남한 면적(10만210㎢)의 1.2배, 실로 엄청난 규모였다. 종류도 헤아릴 수 없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대부분 유사한 것이었다.
강원도 고성군과 양양군 등 11곳은 무려 5개 지역·지구가 중복 지정돼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개발하자는 것인지 의아함마저 들었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해 종합적으로 정리된 자료도 없고 담당공무원들조차 헷갈리거나 제대로 파악을 하고 있지 못했다.
높으신(?) 분들이 내놓은 공약이 곳곳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지만 책임지는 사람 없이 그 짐이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기획은 과개발을 미리 예방하고 국토를 합리적으로 개발, 보존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국토(지역)개발을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종합조정실)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또 남발돼 있는 각종 개발계획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취소하거나 통합하는 등 사업(계획) 구조조정에 대한 방안도 제시하기도 했다.
보도가 나간 후 정부가 지역개발계획을 통합하는 내용을 담은 ‘지역개발의 종합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신발전지역종합발전계획, 특정지역개발계획 등 7종의 계획을 '지역개발종합계획'으로 통합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기획에서 제기했던 문제점과 개선안이 반영된 것이다. 하기야 기자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맛 때문이 아니던가. 이번 기획이 개발지상주의의 현실을 뒤돌아보고 지역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세금감시 잘해야 일류시민이다 중앙일보
세금감시 잘해야 일류시민이다
중앙일보 권근영 기자
“당신 돈 같으면 그렇게 썼겠나.” 중앙일보 탐사기획부가 준비한 2011 아젠다 ‘세금 감시 잘해야 일류 시민된다’ 시리즈 기사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한 지방의회 의원이 군청 공무원들을 꾸짖으며 했던 말이었습니다. 20억원을 들여 박물관을 지어놓고 보니 보유 유물수가 등록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해 5년째 개관도 못하고 유지비만 들이고 있는 경남 산청박물관 때문이었습니다.
이곳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탐사부는 130억원을 들여 조성했지만 부실한 프로그램으로 찾는 이가 거의 없는 강원도의 태백체험공원, 2000억원을 들여 공사중이지만 중앙과 지방이 서로 운영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국민안전체험테마파크 등의 현장을 짚었습니다. 이어 외딴 곳에 건물만 화려하게 지어놓고 단체장의 치적 홍보 도구로 쓰고 있는 홍보관의 문제점도 지적했습니다. 고발 뿐 아니라 가능성도 보여줬습니다.
세금 낭비에 책임이 있는 단체장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처음으로 승소한 전남 나주시의 사례를 단독 보도하는 등 시민들의 승리도 소개했습니다. 생생한 현장 르포를 위해 진세근 부장과 탐사부 기자 4명은 지난 1월부터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한파를 뚫고 산청ㆍ태백ㆍ여주ㆍ창원ㆍ부산ㆍ성남 등지로 흩어져 뛰고, 헤쳐 모여 기획회의를 반복했습니다.
지난해 지방선거, 올해는 재보궐,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 거의 매년 선거가 이어집니다. 후보자들은 표 얻기에 골몰합니다. 수백가지 공약에는 비용이 수반됩니다. 공무원들은 예산이라 부르고, 시민들은 세금이라 부르는 그것입니다.
올 정부예산(309조 1000억원) 기준으로 국민 1인당 담세액은 500만원에 육박합니다. 반면 10년간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예산을 심의한 일수는 평균 32일에 불과했습니다. 예산의 탄생에 애초부터 낭비 요소가 있었던 셈입니다. 선거 이후의 민주주의는 세금 감시라고도 합니다.
납세의 의무를 진 시민들이 ‘납세자 주권’을 발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해서 중앙일보는 올 한 해를 관통할 아젠다 중 하나로 ‘세금감시’를 택했습니다. 탐사기획부가 연초부터 전국을 뛴 이유입니다.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사무실로, 이메일로, 제보와 격려가 쏟아졌습니다. 공동기획한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와 함께 세금낭비신고센터를 열고 제보를 접수해 후속보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경남 양산시의 ‘국내 최대 보행자 전용 다리’, 인천시의 ‘830억 들여 짓고 250억 들여 철거한다는 월미은하레일’ 등이 그 예입니다.
세금낭비와의 전쟁은 이제 시작입니다. 세금낭비신고센터로는 일반 시민 뿐 아니라 전ㆍ현직 공무원, 예술인, 공기업 퇴직 간부 등 여러 독자들의 제보가 접수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용기있는 내부고발, 분노, 반성, 격려 등에 힘입어 탐사부는 오늘도 세금 낭비 현장을 뛰고 있습니다. 한국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 수상 역시 더 매섭게 감시하라는 채찍질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만삭의 의사 부인 사망 사건 최초 및 연속 특종 보도…
만삭의 의사 부인 사망 사건 최초 및 연속 특종 보도
한국일보 사회부 남상욱 기자
“딸을 편안하게 보내고 싶습니다.”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의연한 사람은 없다. ‘타살’의 의구심도 가질 법하다. 만삭의 의사 부인 사망 사건을 처음 접하고 제보자를 만나며 든 생각을 솔직히 고백하면 이렇다. ‘그냥 그런 변사 사건일 것 같다. 어차피 경찰에서 수사를 할 테고, 결론을 내리면 그때 보도를 하면 되지.’ 취재가 막힐 때마다 그만한 핑계가 없었다.
기자의 안일과 불성실을 깨뜨린 건 피해자 아버지의 하소연이 아니라 의연함이었다. 만삭의 여성이 욕실에서 미끄러져 숨졌다는 것부터, 그래도 가족인데 자신의 사위를 범인으로 지목하면서도 그는 기자보다 더 엄격하게 팩트를 챙겼다. 한 번도 기자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진실이 알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늦은 밤, 경찰팀장(시경 캡)이 “그 사건 부검 결과가 나왔다, 타살 가능성 확인하라”는 전화를 했다. 실마리가 풀리고 2월6일 첫 기사를 작성했다. 기자의 영혼은 후련함 대신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기실 취재를 하는 내내 수없이 들었던 말이기도 했다. “남편이 범인이다”고 자신했던 경찰은 “감당할 수 있겠냐”고 했고, “억울하다”고 눈물을 흘리던 유족마저 같은 말로 걱정을 했다.
어쩌면 기자의 초고를 받아 본 시경 캡도 비슷한 심정이었을 터. 그러나 캡은 기자의 취재수첩에 가득한 사실(팩트)을 믿어줬던 것 같다. 부족하고 놓친 부분을 메우고 세밀하게 연결하라고 지시했을 뿐 한 번도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첫 날에도, 연일 계속된 2보, 3보, 4보에도. 덕분에 보름이 지나도록 수첩의 내용으로 지면을 채울 수 있었다.
캡 역시 이 사건을 취재하고 있었고, 몇몇 기사는 마감이 끝난 뒤 캡이 새로 확인한 팩트를 녹여 넣느라 자정이 임박한 시점에 다시 쓰기도 했다. ‘팩트로 가득 찬 기사는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덕분에 묻힐 뻔했던 진실이 세상의 햇빛을 보았습니다.” 사위의 구속이 결정된 뒤 기자에게 건넨 피해자 아버지의 말은 오히려 내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기자가 아니었다면 정말 묻혔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눈, 그리고 많은 기자를 통해 언젠가는 드러났을 것이다.
기자를 매개로 조금 빨리, 적당한 시기에 알려졌을 뿐이다. 다만 억울한 죽음이 비록 평범한 한 사람에게 국한된 것이라도 진실을 추구하는 게 언론의 사명이라면, 조금이나마 그 사명에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사건은 진행 중이다. 법원의 판단이 남았지만 미제로 남은 유사 사건(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의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란다. 피해자의 가족은 기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한다. 분에 넘치는 말이다.
새 생명을 가슴에 품은 채 억울한 죽음을 당한 그녀가 편히 눈감을 수 있다면, 기자가 오히려 가족과 기자를 믿어 준 고찬유 캡과 데스크 정진황 차장 그리고 동료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김정일 차남 김정철, 극비 싱가포르 외유 세계 최초 보…
김정일 차남 김정철, 극비 싱가포르 외유 세계 최초 보도
KBS 최문종
특별한 것은 없었다. 여느 콘서트장과 똑같은 풍경. 2011년 2월 14일, 싱가포르 인도어 스타디움 앞. 기대에 들뜬 에릭 클랩튼 팬들 속으로 우리는 섞여 들어갔다.
우리는 달랐다. 긴장 탓에 눈빛이 갈수록 날카로워졌다. 기대에 부풀어 있을 또 다른 에릭 클랩튼 열성팬, 김정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았다. 김정철이 콘서트 관람 일정을 취소할 수 있었다. 입구도 여러 곳이었다. 관람객은 넘쳐 났다. 무엇보다 김정철의 얼굴을 잘 몰랐다. 흐릿한 사진 몇 장이 전부였다. 국내에서도 모자라 해외에서까지 기약 없는 ‘뻗치기’라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눈이 번쩍 뜨였다. 무리 지어 나타난 그들. 정수리에서 스파크가 일었다. 북한 사람이 분명했다. 촬영을 시작했다. 인터뷰를 시도했다. “김정철 씨 맞으시죠?” 우리말로 물었는데, 영어가 돌아왔다. “NO!" 김정철이 누구냐는 반문이 아니라 부정이었다. 긍정이었다. 김정철 측 관계자들이 인터뷰와 촬영을 막으며 언성을 높였다. 싱가포르 경찰이 뛰쳐나왔고,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밤새 구상한 질문을 할 기회는 날아갔지만, 김정철의 모습은 카메라에 선명하게 잡혔다.
김정철이 외부 언론에 노출된 것은 지난 2006년 이후 5년 만이다. 취재는 사소한 단서에서 시작됐다. 에릭 클랩튼의 아시아 순회 콘서트 일정을 알게 됐다. 이는 곧 ‘김정철=에릭 클랩튼 팬’이라는 공식으로 이어졌다. 조심스럽게 취재를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100% 확신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회사는 해외 취재 결정을 내렸다.
모두가 북한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김정철의 싱가포르 외유가 남긴 시사점은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북한 최고위층 인사를 잠시나마 직접 대면했던, 그리고 잠시나마 북한의 보복이나 촬영본 탈취를 걱정하며 잠 못 이룬 추억을 갖게 됐다. 주민이 아사할 지경이라며 식량 지원을 요청하는 체제의 ‘왕자님’이 수행원 수십 명을 대동하고 해외에서 돈을 뿌리는 모습을 목격하는 행운(?)도 얻었다.
한 가지, 짚고 싶은 점이 있다. 이번 취재에서 우리는 일본의 한 방송국 취재진과 조우했다. 경쟁자였지만, 사실 경쟁이 되지 않았다. 그들의 놀라운 정보력은 차치하고라도, 외형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김정철 취재를 위해 싱가포르에 수십 명이 투입된 듯 했다. 그들은 에릭 클랩튼 티셔츠를 구입해 관람객으로 가장했다. 조를 나눠 요소요소를 지켰고, 망원렌즈도 동원했다. 우리 언론계가 꼭 한 번 새겨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김정철 특종’은 KBS 정치외교부의 협력 작품이다. 함께 수상한 송현정, 서지영 기자는 물론 이강덕 부장을 비롯해 뛰어난 취재력을 가진 선배, 동료들이 있어 가능했다. 김태현 촬영기자는 혼란 속에서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김정철을 정확히 잡아내는 놀라운 활약을 보였다. 음양으로 취재에 도움을 준 많은 분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