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6편
글자에 갇힌 아이들 EBS
해외카지노 도박 회장님의 5억짜리 황제노역
EBS 이윤녕 기자
“윤녕아, 난독증이라는 거 혹시 알아?”
올해 초 겨울, 선배가 건넨 말 한 마디로 시작된 기획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난독증이라는 게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냥 글을 잘 못 읽는 증상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첫 회의가 끝나고 난독증에 대해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인터넷과 책을 뒤지며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증상이나 치료법 등 의학정보를 실은 기사들은 간간히 있었지만 난독증을 둘러싼 제반의 문제를 다룬 기사는 찾을 수가 없었고 해외 사이트들까지 뒤지면서 나는 이 문제가 우리나라에서도 반드시 이슈화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날부터 당장 국내에 몇 안 되는 전문가들의 연락처를 받아 하루에도 수 십 통씩 전화를 돌리고 자문을 구했다. 그리고 며칠간의 끈질긴 취재 끝에 나는 한 장의 기획안을 작성했다.
무려 20편에 가까운, 말 그대로 대 기획이었다. 난독증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난독증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숨어있는 아이들을 찾아내 적절한 교육과 지원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루 이틀에 걸친 몇 편의 방송으로는 제대로 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거라 생각했다. 또, 값비싼 난독증 민간 치료기관의 실태와 학부모 피해 사례, 국내에서는 한 번도 소개된 적이 없는 선진국의 사례까지 소개하기 위해서는 이번 기획의 규모가 좀 더 커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간 취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1편부터 20편에 걸친 기획안을 줄줄 써내려갔다. 그리고 선배와의 논의 끝에 ‘제대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취재와 섭외는 그야말로 난항이었다. 국내에선 적절한 자문을 구할 전문가들이 한정되어 있었고 민간 치료기관에서 수 천 만원의 피해를 본 사례자를 찾아 카메라 앞에 세우기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난독증 실태조사와 관련한 취재 때는 서로 자기 소관이 아니라는 교육부와 핑퐁게임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오기가 생겼다. 실제로 내가 취재를 하면서 만난 난독증 아이와 학부모들의 고통은 상상 그 이상이었고, 온라인 카페를 통해 겨우 정보만 공유하고 있는 학부모들도 수 천 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나는 이 문제를 반드시 이슈화 시켜 뭔가 정부 차원의 대책을 강구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선진 사례를 취재하기 위해 미국을 찾았을 때는 뉴저지 주의 온갖 언론사들이 역으로 우리를 취재하기 위해 현장을 찾아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당시 뉴저지 주에서도 ‘난독증 지원법’이 사회적인 이슈였고 멀리 한국의 방송국에서 이를 취재하러 왔다는 것이 제법 뉴스거리가 된 모양이었다. 덕분에 우리의 취재 목적과 내용을 미국 현지 언론들과 공유하며 더욱 큰 이슈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총 21편의 기획보도. 난독증이라는 하나로 이렇게 많은 기사를 써낼 수 있었던 건 어찌 보면 그만큼 쓰고 싶은 이야기, 아니 그 동안 누구도 쓰지 않았지만 써야만 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오랜 기간 열정과 정성을 다해 취재한 결과물이 전파를 타고서 곳곳에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나는 누구보다 큰 보람을 느꼈다. 방송이 나가고 교육부에서는 난독증 지원 교육에 대한 필요성에 공감해 논의가 시작되었고, 방송을 본 수 많은 학부모들은 증상을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전문 기관을 스스로 찾기도 했으며, 교육계에 20년 이상을 몸담은 분들도 방송을 통해 난독증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며 공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 사회의 난독증 문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적절한 지원과 교육이 이뤄지는 한, 이 아이들은 누구보다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 아이들이 학습부진아로 치부돼 공부를 포기하느냐, 아니면 재능을 살려 유능한 영화감독, 과학자, 예술가 등으로 자라날 수 있느냐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끝으로 기나긴 취재를 함께 한 민진기 선배, 이동현 기자, 그리고 이번 기획을 함께 한 영상취재팀, 편집팀 이하 우리 EBS교육뉴스팀 모두를 비롯해 취재에 큰 도움을 주신 좋은교사운동본부의 김중훈 선생님, 한국난독증본부의 신영화 본부장님, 그리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학부모님 등 모든 관계자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청와대 행정관은 비리 ‘면책특권’ 세계일보
청와대 행정관은 비리 ‘면책특권’
세계일보 조현일 기자
“언론이 바로잡아야 해.”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됐다. 자료를 건네고 싶다고 했다. 어디 것이냐고 물었다. ‘BH(청와대)’란 답이 돌아왔다. 지난 3월이었다. 취재원 보호 대책이 관건이었고 지난한 설득을 거쳐 자료를 손에 쥐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내부 보고서였다. 권력의 은밀한 속살 일부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 셈이다. 감찰 보고서에는 대한민국 엘리트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처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품위 손상 등은 차라리 개인의 문제였다. 일상처럼 금품과 향응을 수수하고 이권에 개입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깊게 병든 우리 사회의 이면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취재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청와대는 직원들의 불법과 비위, 품위손상 행위를 적발하는 데에 열중할 뿐, 이들에 대한 처리는 ‘쉬쉬’ 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 직원들의 불법은 그 자체로 정권에 부담이 될 터였다. 이는 역대 다른 정권도 다르지 않았다. 결국, 시스템의 부재였다. 장차 고위직으로 진출할 그들인데, 우리 사회는 알 길이 없었다.
특권이었다. 관련 규정이 없다면 만들도록 하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도록 해야 했다. 청와대는 살아있는 권력의 정점이었다. 비판이 모호하거나 일시적이어서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을 것이 자명했다. 공직자 비위 사실 자체도 엄중하지만, 후속 조치는 얼마나 미흡한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청와대나 공직사회는 비위에 얼마나 둔감한지 등에 초점을 두고 4월2일부터 사흘간 연속보도했다. 이틀 간 침묵하던 청와대는 세 번째 보도가 난 직후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라는 설명과 함께 일사천리로 대응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부터 솔선수범하지 못해 매우 유감”이라고 밝혀, 이번 보도를 최종 확인하고 재발 방지를 주문했다.
이로써 청와대에 징계시스템이 마련됐다. 행정관들의 비위 사실이 적발되면 조사를 하고 본인의 자인서를 받은 뒤, 원복시킬 때 복귀 사유와 함께 이 자인서를 첨부하도록 했다. 소속기관에서 적절한 징계가 이뤄지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국회와 언론을 통해 청와대 파견 공직자의 징계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번에 적발 사실이 드러난 행정관들에 대한 ‘소급 처벌’도 진행 중이다. 권력의 핵심에 진출한 공직자가 최소한의 자기관리도 하지 못한 책임을 ‘뒤늦게’ 지는 것이다.
하지만 할 일은 끝나지 않았다.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관료사회에는 여전히 ‘재수없게 걸렸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문제 행정관들을 비호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심지어 한 부처 감사관실은 본인의 강력한 반박에 부딪혀 상당수 혐의를 누락하려는 모습도 감지됐다. 국회 A의원실과 함께 엄중 경고해 애초 통보된 내역대로 중앙징계위에 회부토록 했지만, 관료사회가 어떤 집단인지 잘 알려준 꼴이었다. 청와대의 자료 유출자 색출 노력도 전방위로 전개됐고, 억울한 피해를 입은 이들이 생겨났다. 색출을 촉구하는 칼럼을 낸 언론도 나왔다.
이런 현실에서 취재한 대로 보도할 수 있도록 보호해준 세계일보에 감사한다. 특히 취재원과 관련된 어떤 내용도 보고하지 말 것을 지시한 편집국장과 데스크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
한계 넘은 보따리상 농민신문
한계 넘은 보따리상
농민신문 성홍기 기자
사실 ‘한계 넘은 보따리상’ 기획보도 취재 아이템을 정하기 이전 ‘보따리상’에 대한 막연함이 있었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위기를 전후한 노숙자들의 일자리, 혹은 국내 노인들의 생계수단으로 법적 관용이 일정부문 통용되는 분야 정도로만 생각했다.
지난 3월 어느날 데스크가 보따리상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중국산 농산물을 수집·판매하겠다고 한다면서 이를 한 번 다뤄보자고 했을 때 뭔가에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자가 소비용이 아닌 보따리 농산물 수집과 유통은 엄연한 불법인데, 대놓고 수집해 판매하겠다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기획과 취재는 여기서 시작됐다. 먼저 보따리상 문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었던 터라 꼼꼼하고 주도면밀한 취재가 필요했다. 또 취재 스펙트럼이 넓은 만큼 할 일도 많았다. 사실 확인을 위해 관세청, 평택세관, 평택항, 평택시청, 검역당국 등 관계기관과 현장 수집상인 등 가야 할 곳과 만나야 할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취재가 진행되면서 드러나기 시작한 보따리상의 맨 얼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어렵게 허가를 얻어 내 들어간 평택항 출입국관리장(CIQ)에선 왜 세관이 그 곳의 외부공개를 꺼리고 사진촬영이 안된다고 버티었는가 하는 의문이 절로 풀렸다. 보따리 농산물이란 이름으로 쏟아져 나오는 수 백 여개의 흰 포대는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서도 믿겨지지가 않았다.
보따리 농산물이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백주에 불법으로 유통되는 현장보도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렇게 1년 동안 들여 온 참깨 한 품목만 해도 국내 전체 1년 참깨 생산량의 절반을 넘는다는 보도에 농가와 소비자들은 아연실색했다.
특히나 보따리상이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던 사회적 약자가 더 이상 아니라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냈다. 절반 이상은 이미 중국인 ‘다이공(帶工)’들이었고 30~40대 젊은 층도 많았다.
이들이 국내 수집상과 결탁해 고관세 중국산 농산물을 자가소비 휴대용 보따리 농산물로 가장해 들여와 국내에 불법으로 유통시키고 있는 구조였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세관과 사법당국의 눈 뜬 장님 행세였다.
관세청은 기획보도 이후 보따리상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했고, 국회에서도 정부 책임자들을 불러 불호령을 내렸지만 역시나 한 달 쯤 뒤인 5월13일 인천항을 찾았을 때 보따리상의 불법 수집행위는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보따리상의 불법 농산물 반입·유통 문제는 국내 농업보호는 물론 법질서와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위해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과제다. 다행히 국회와 정부에서 1인당 반입량 하향조정 등 후속 대책을 마련하겠다니 지켜 볼 것이다. 아울러 보따리상 기획보도는 일단 끝났지만 본지의 취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끝으로 한국기자협회가 ‘한계 넘은 보따리상’ 기획보도를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으로 선정한 것은 시상영역을 전문언론 분야로까지 넓혔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 싶고, 깊은 감사를 드린다. 특별취재팀장으로 머리를 맞댄 한형수 부장과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준 권남회 편집국장, 편집국 선후배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동아시아 핵발전 현장을 가다 한겨레신문
동아시아 핵발전 현장을 가다
한겨레 한겨레21부 김성환 기자
28+49+50+8+5=140
이 숫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연결고리를 쉽게 찾을 수 없을 이 숫자들은 한국·중국·일본·대만 그리고 북한에서 현재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원자로 숫자다. 동아시아의 핵발전 현황을 숫자를 통해 들여다보면 좀 더 놀랍다. 핵발전소가 얼마나 촘촘히 있는지를 나타내는 ‘원자로 1기당 국토면적(㎢)’은 한국이 세계 1위(4335.7㎢), 대만이 3위(5996.7㎢), 일본은 4위(7873.2㎢)다. 게다가 동아시아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20년 만에 일어난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겪은 지역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핵 집중 아시아’다.
창간 20주년을 맞은 <한겨레21>은 그동안 숫자로만 그려오던 ‘핵 집중 아시아’의 실체에 주목했다. 핵발전소로 둘러싸인 동아시아의 현주소를 숫자가 아닌 현장을 통해 그려보기로 했다. 첨단 문명의 재앙과도 같은 핵발전소 사고를 겪었음에도 정작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는 동아시아를 ‘위험 공동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자는 시도였다.
그동안 국내 언론이 다루지 않았던 접근이었다는 점에서 취재 과정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중국 핵발전소의 취재를 위해 우리나라 원자력안전위원회를 통해 중국국가핵안전국(NNSA)에 공식 취재를 요청했다. 홍콩 중화전력공사(CLP)에도 공식 취재 요청을 했으나 보안 등을 이유로 거절 당했다. 예상대로 핵발전소에 대한 정보 접근이 어려웠지만, 중국 현지에서 만난 현지 주민, 익명의 중국 공무원, 그리고 홍콩 등의 핵발전 전문가와 해외 활동 중인 중국 환경운동가 등을 통해 중국 핵발전 현황에 최대한 접근하려 노력했다. 특히 한반도와 가까운 산둥반도 일대의 하이양·스다오완 핵발전소 건설 현장의 취재 경험은 ‘위험 공동체’로 얽혀 있는 동아시아에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줬다. 또 핵발전소 사고 3년을 맞은 일본 후쿠시마 현지에서는 재난 이후 일본 내부의 갈등에 주목했습니다. 핵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대만 사회의 대립을 통해 핵발전소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각을 되짚어봤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기획의 의미는 기획 보도를 단순히 지면에 그치지 않고, 처음부터 ‘인터랙티브 뉴스’로도 내보내기 위한 실험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기사는 꼭지 이름이 두 개다. ‘동아시아 핵발전 현장을 가다’, 그리고 ‘핵 아시아’. 기획을 진행하면서 “동아시아는 핵발전 밀집 지역이다”라는 오래된 진실을 나름 색다른 방식으로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었던 계기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도는 더 큰 고민을 남기긴 했지만, 빛나는 아이디어를 모으는 경험을 한 한겨레21부의 팀워크로 앞으로도 새로운 형식과 심층 보도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늘 맑다고 미세먼지 안심 마세요! 한국일보
하늘 맑다고 미세먼지 안심 마세요!
한국일보 박서강 기자
수상 소식에 날듯이 기뻤다. 인력 공백을 무릅쓰고 사진부 내 기획팀을 구성한지 6개월 만에 처음 누리는 영광이라 더욱 감격스럽다. 그래서 기대치가 높아지는 부담스러운 상황마저도 일단은 즐기기로 했다.
‘하늘 맑다고 미세먼지 안심하지 마세요’는 단연 발로 뛰어 만들어낸 기획물이다. 45일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주말 주중 가릴 것 없이 매일 남산을 오르내리며 데이터를 분석한 막내 김주영기자와 최흥수기자의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지면 레이아웃을 책임진 편집부 이직기자와 강준구기자 그리고 사진부원들의 든든한 후원과 응원에도 감사 드린다.
‘한번 해볼까?’로 가볍게 시작했다. 매년 3, 4, 5월은 황사와 함께 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높게 나타나는 시기이다. 그래서인지 서울의 봄 하늘은 왠지 항상 뿌옇고 탁하다. 올 봄 역시 최악의 황사와 미세먼지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3월 1일부터 시작해 매일 서울 하늘을 기록하기로 했다. 만약 45일 내내 뿌옇거나 누런 하늘만 찍힌다면 그 자체로 대기오염 문제에 대한 생생한 경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며칠이나 쾌청했고 또 며칠이 뿌옇게 오염되었는지를 있는 기록한 살아있는 데이터는 만들 수 있는 작업이었다.
사진과 함께 서울 시내 각 자치구의 시간대별 미세먼지 농도 데이터도 매일 수집했는데 약 보름 정도 되었을 때 애초의 예상이 빗나가고 있음을 알게 됐다. 서울 하늘이 거의 매일 부옇게 흐렸던데 반해 미세먼지의 농도는 그리 높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농도는 높은데 하늘이 맑은 경우도 있었다. 취재기간 내내 기다리던 최악의 황사는 오지 않았고 우리 팀은 미세먼지 농도와 시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취재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측정기관이 제공하는 미세먼지 농도 데이터의 신뢰도마저 의심스러워졌다. 같은 날 같은 시간대라도 지역에 따라 평균치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편차가 컸기 때문이다. 또, 미세먼지에 대한 국내 기준이 국제기준에 비해 2배나 더 관대하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하늘 맑다고 미세먼지 안심 마세요’를 통해 미세먼지 예보나 실시간 농도데이터조차 믿기 어려운 우리 환경정책의 현실을 지적하고 싶었다. 그러나 45일간의 숫자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보다 체계적이고 명료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해 아쉽다. 능력부족으로 인해 짧지 않은 취재 기간을 온라인용 콘텐츠 제작에 전혀 활용하지 못한 점 또한 두고두고 반성할 일이다.
시사현장 맥 ‘수 천억원 영산강 뱃길 무용지물’ …
시사현장 맥 ‘수 천억원 영산강 뱃길 무용지물’
KBS광주 보도국 김기중 기자
용두사미, 영산강 뱃길 복원이 그랬다. 장밋빛 전망을 펼쳐 보이며 대통령이 와서 첫 삽을 떴다. 수천억 원을 쏟아 부으며 강바닥을 파내고 배가 통과할 통선문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완공 뒤엔 말이 없었다. 대형 유람선을 띄우겠다는 당초 계획과 달리 배가 다닐 수 없을 것이라는 제보를 들었다. 진짜일까? 배를 타고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대형 유람선을 빌리기는 쉽지 않았다. 영산강 뱃길은 수심도 모르고 폐그물도 많아 위험하다며 선장들이 운항을 꺼렸다. 하지만, 배를 띄워보지 않으면 뱃길 복원을 검증할 방법이 없었다. 어렵게 유람선과 흘수(물에 잠기는 깊이)가 같은 낚시어선을 빌렸다.
과연 뱃길을 무사히 달릴 수 있을까. 긴장 속에 취재팀이 탄 낚시어선이 목포항을 출발했다. 복원된 뱃길은 유람선의 안전 운항을 담보하기 어려웠다. 낚시어선이 강바닥에 부딪친 것이다. 강의 가운데인데도 일부 구간의 수심은 1미터 남짓, 대형 유람선이었다면 좌초됐을 것이다. 탐사선의 상층부가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상판에 닿았다. 통선문을 통과하는데 30분에서 한 시간까지 걸렸다. 수질은 녹조가 끼어 낙제점이었고, 경관도 유람선을 띄우기엔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영산강 뱃길 복원을 추진했던 전라남도는 취재에 묵묵부답이었다. 담당 부서는 해체됐고, 도지사는 인터뷰를 거부했다. 도지사를 대신한다던 담당 국장은 방송 뒤에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혈세 수천억 원을 들인 뱃길 활용 계획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산을 끌어다 대규모 토목 사업을 벌인 도지사는 이제 곧 3선 임기가 끝난다. 4대강 사업에 맞춰 일단 짓고 보자는 욕심이 앞선 것으로 보인다. 도지사 공약이던 뱃길 복원 사업이 MB정부의 4대강 사업과 맞물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전라남도가 영산강 뱃길 활용 계획을 언제쯤 내놓을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전남의 새로운 관광 시대를 열 것처럼 홍보했던 영산강 뱃길은 이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시사현장 맥은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친 KBS 새노조 파업 때 잉태됐다. 기자와 PD가 하나가 돼 파업을 같이하면서 기자·PD 협업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유전자가 다른 기자와 PD가 한 방에서 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고, 그 첫 프로그램에서 성과를 냈다. KBS광주 시사현장 맥 제작진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올해 또 세 번 째 파업이 시작됐다. KBS가 ‘국민의 방송’이 되는 날까지 우리들의 싸움은 잠시 멈출 뿐 언제나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