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240회) 600년 전통 국새사기 사건 / SBS
600년 전통 국새사기 사건
SBS 이한석 기자
2007년 12월 박명재 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은 4대 국새를 두고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국새는 국가 상징물이자 우리 발전된 산업기술의 상징입니다. 지금까지 사용하던 국새가 균열이 가해져서 새정부 출범에 맞춰 국운 융성 산업기술을 상징하는 최고수준의 국새 제작에 이르렀습니다. 제작과정을 영구히 촬영해 또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보존해 나갈 계획입니다.“
자부심과 자신감에 넘치는 얘기입니다. 자부심의 핵심은 전통적 방식의 국새제작 원천기술로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옥새문화권인 한,중,일 세 나라 중에서 전통기술의 제작기법이 전수된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이 600년 동안 전승된 옥새제작의 비기를 유일하게 전승한 사람이 옥새전각장 '민홍규' 씨라는 겁니다.
실체적 진실을 밝혀나가는 사회부 기자에게 ‘취재’는 도박입니다. 상대보다 좋은 패를 들고 있어도 심리전에서 밀리면 진실은 모함이 되고 명예훼손으로 취급받기도 합니다. 칩이 많아도 데일리 뉴스의 특성상 시간싸움에서 밀리면 이길 수 없습니다. 방대한 분량의 국새의혹 취재는 그런 난관을 등에 업고 시작했습니다.
당시 행정자치부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계승하기 위해 국새문화원 건립공사를 지원하겠다고 나섰고 모 유력 방송사는 1시간 분량의 민홍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국보 민홍규 띄우기에 나섰습니다. 시장의 우상은 그렇게 완성됐습니다.
민홍규씨가 주장하는 전통방식의 국새제작방식은 크게 세가집니다. 음양오행설에 따라 5개의 금속을 사용해 금합금을 만들고, 5종류의 흙을 이용해 오합토라는 거푸집을 사용해 대왕가마라는 5개의 전통가마에서 국새를 굽는 것입니다. 민홍규씨가 2005년 선보인 ‘옥새’라는 책에 음양오행의 이론을 토대로 ‘5,5,5’ 전통제조기법이 그럴싸하게 집대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국새판타지’의 사기극은 국새백서에 모두 담겨 있었습니다. 합금기술자는 이창수씨로 명기돼 있었고 전통방식이 아닌 현대방식으로 제조됐다는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 있습니다. 행정안전부가 발간한 ‘국새백서’를 토대로 보도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보도의 역풍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백서발간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오히려 오보의 모든 책임을 취재기자가 져야 한다고 협박했고 민씨측은 ‘민홍규 흠집내기’라며 폄훼하기도 했습니다. 국새판타지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고 이렇게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뻔 했습니다.
일주일 뒤 민홍규씨의 ‘금도장 로비 의혹’ 보도가 나갔습니다. 일부는 금도장이 아닌 놋쇠도장이라고 발뺌했고 도장과 함께 찍은 사진까지 확보했지만 도장을 본 적도 민홍규를 알지 못한다고 전면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정관계 인사들의 저항은 그만큼 거셌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금도장 보도는 ‘국새파문’을 이슈화시키는 촉매제가 되면서 경찰수사로 이어지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국새의혹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면서 경찰은 전통방식의 제작기법은 실체가 없다. 민홍규씨의 로비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최종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금품을 받고 민홍규 띄우기에 앞장섰던 것도 드러났습니다. 민홍규씨를 국새제작단장으로 임명하는 과정에서 일부 정치인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검증과정이 부실했음을 인정하고 관련 공무원들을 중징계했습니다. 상처입은 4대 국새는 폐기하고 5대 국새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국가의 인감도장을 만드는 일입니다. 주변에서 가공된 명성만을 믿고 검증에 소홀했던 전통방식의 제작기술이라는 실체 없는 말장난에 놀아났던 당시 행정자치부 관계자들... 현대식 제조기법으로 만들어진 국새를 쉬쉬하며 대충 넘어가려고 했던 현재 행안부 관계자들...
민홍규가 1대 국새를 제작한 석불 정기호 선생의 제자가 과연 맞는지 석불의 아들 목불 선생에게 한 번이라도 확인을 해 봤다면... 가마에 구운 흙이 제대로 깨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한 번이라도 의심을 해 봤다면 웃지못할 코미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민홍규씨의 봉이 김선달식 코미디에 정부와 정치권, 문화계, 심지어 언론계가 놀아난 셈입니다. 황우석 사태 당시 검증시스템의 부재를 비판했지만 5년 뒤 대한민국 사회에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곳에 국가와 국민의 상대로 또 다른 대국민사기극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시장의 우상이 만든 판타지와의 힘겨운 싸움은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이 회차 수상작 2010년 8월
제240회(2010년 8월)에서 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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