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240회) 악취나는 대구 정화조 업계 / 매일신문
매일신문 임상준 기자
아버지, 죄송합니다. 제게 뼈와 살을 주시고 30여 년간이나 사랑을 주셨는데 변변한 효도한번 못하고 급기야 제 성까지 버렸습니다. 더 이상 OO의 34대손 임기자가 아닌 변기자로 살겠습니다.
아버지가 저였더라도 그러셨을 겁니다. 1천만명의 젖줄인 낙동강을 망칠 순 없었습니다.
특히 대구시가 한해 2천억원의 환경 개선비를 낙동강에 쏟아 붓고 있는 상황에서 수질오염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대구 정화조 청소 업체의 비리를 알고서도 묵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기자 스스로 양심과 사명감을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뚜껑을 여는 순간 대구 정화조 업계의 구린내에 코가 썩을 지경이었습니다. 수거량 부풀리기와 허위 영수증 발급 등 온갖 비리가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제껏 어느 누구도 그 뚜껑을 들추지 않은 까닭입니다.
환경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분에는 부영양화를 일으키는 인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습니다. 수질 오염의 주범입니다. 그간 대구 정화조 업계가 규정양의 3분의 1밖에 변을 푸지 않았습니다. 넘친 오물이 그대로 낙동강으로 유입될 것을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한 할머니의 하소연이 긴 여정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똥차를 불렀는데 똥을 반도 안 푸고 그냥 갔다'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설이었고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여서 ‘시간 낭비가 아닐까’라는 염려가 앞섰습니다. 지역 언론 환경 상 충분한 인력과 예산으로 럭셔리(?) 취재를 하기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단추조차 제대로 끼워지지 않는다면 대구시는 영영 고담도시로 남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힘을 냈습니다.
지루한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수거량을 부풀리는 현장을 잡지 못한다면 기사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청소 차량이 오물처리장 저울 위에서 수거량 조작을 위해 핸들을 틀거나 바퀴를 빼는 현장 확보도 넘어야 할 산이었습니다. 8개 구․군청 정화조 청소 고지서부터 뒤졌습니다. 정화조는 1년에 한 번 또는 두 번 의무적으로 청소를 해야 하는 탓에 현장을 잡기 위해서 똥통을 직접 보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고지서가 발부된 가정집부터 훑었습니다.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정화조 청소가 언제. 어디서 이뤄질지 모르는 데다 정화조 업계, 구청 직원 등이 모두 한통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곧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취재에 착수하자 업계 전체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취재 시작 때부터 마칠 때까지 업체와 구청에다 질문만 해도 취재내용, 질문 사항, 저의 동선까지 그대로 노출됐습니다. 대구 정화조 업체들은 한 사무실을 쓰면서 뿌리 깊은 독과점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던 탓입니다. 업체는 물론 담당 공무원들까지도 나서서 비리를 서로 모른척하거나 알고도 눈감아 주고 있었습니다. 취재 내내 정화조 업체 업주들로부터 “기사는 언제 나가느냐? 빼주면 안되느냐?” 등 전화가 쇄도했고 선배기자들도 ‘무슨 취재를 하기에 대구가 떠들썩하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회유도 많았습니다. 유혹앞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세 편의 특종보도와 함께 5편의 후속보도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대구시의 대대적 감사로 업체 25곳이 적발됐고, 대구 정화조 청소 조례 제정, 비리 재발 방지와 자정노력, 공개입찰방식으로의 전환 등 무수한 열매가 달렸습니다. 제 240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과 함께…….
두드리지 않았다면 열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권성훈 특집팀 선배와 박병선 사회1부장, 이춘수 사회1부 팀장, 이상준 경찰팀 캡, '교육의 일환이니 똥통을 들여다 보라'는 지시에 후각을 잃은 황수영수습기자, 그리고 변상준기자로 불러주는 편집국 모든 동료 기자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
이 회차 수상작 2010년 8월
제240회(2010년 8월)에서 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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