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6편
90도 허리굽힌 두 '왕의 남자들' 연합뉴스
90도 허리굽힌 두 '왕의 남자들'
연합뉴스 성연재
흔히들 한장의 사진이 백마디 말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한다.
실재로는 그런 사진은 그리 많지 않다. 나도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지만 백마디 말보다 더 나은 사진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모자란 사진으로 상을 받게 되어 더욱 잘하라는 채찍이라고 생각하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보도사진이지만 작품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명작이냐 졸작이냐를 따지기 앞서 이것이 하나의 진정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것도 작품이지만 리얼한 세상사 가운데서 처절함이 묻어난 보도사진도 충분히 작품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퓰리처 사진전에서 감동을 받는 작품들도 바로 그렇게 처절한 세상의 단면을 보여준 보도사진들이다.
그래서 사진기자들은 매번 `출품'을 하는 느낌으로 기자상에 자신들의 사진을 내밀어보는 것이다.
매일 취재하는 대상들이 `작품'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고 취재현장에 들어서는 것이다.
사진기자들은 역사의 기록자이자 예술가가 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소위 `왕의 남자'로 통하는 한나라당 이재오 전 원내대표의 귀환은 이명박 대통령 후반기의 복잡한 정치 관계에서 하나의 사건이었다.
은평을 보궐선거에 당선된 직후 그의 움직임을 캐치하는 것은 기자가 해야할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움직임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선거 운동때부터 늘 혼자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움직이지 않겠냐는 국회 1진인 김병만부장의 말에 정보를 좀 모아보기로 했다.
그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일요일인 전날 밤 10시께. 다음날인 오전 일찍 여의도에 있는 서울시 당협위 조찬 자리에 온다는 것이다.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지 않은 어쩌면 소소한 자리였다는 생각이지만 암튼 나홀로 유세를 벌였던 이재오 의원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일요일 밤에 아무도 알지 못한 그의 행보를 알아낸 것은 오로지 `혹시 당선 직후 이재오가 움직이지나 않을까'하는 감각 때문이었다. 지금은 차관으로 발탁된 김해진 특보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내일 일정이 있는지 물었던 것이 이런 행운을 건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당협위에 나타난 순간 이재오 의원은 정두언 의원과 거의 90도 가깝게 인사를 했다.
실제로는 정두언의원이 먼저 90로 인사를 했으며 아주 약간 주춤거리던 이재오의원은 더 머리를 숙여버린 것이다.
이 순간을 지켜보던 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순간적으로 한명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장면을 포착하기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두사람 동시에 아주 짧은 순간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로서 자칫 셔터찬스가 잘못 맞춰지면 똑 같은 위치에 있지 않게 보이기 쉽다.
특히 스트로보(카메라 후레쉬)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스런 실내광으로 이같은 장면을 촬영, 딱딱하기 그지없는 정치 사진을 평소 보기드문 부드럽게 표현한 점이 힘이 들었다.
이 보도가 나간 뒤 정치적인 판단 때문인지 이후 이같은 90도 인사는 이재오 의원(현 특임장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동아.중앙 등에서도 1면에 게재하는 등 대부분의 신문에서 이 사진을 실었고 그후 이 의원은 누구나 보아도 특히 상대편이라 생각되면 무조건 90도에 가까운 인사를 했다.
큰 특종은 아니지만 정치인들의 소소한 움직임을 다룬 사진이 1면을 차지하기란 극히 힘든 상황에서 중앙 동아 국민 등 주요 일간지의 1면을 장식한 점 또한 의미가 있는 일이다.
정치라면 다소 딱딱하고 지겹다는 선입관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장면을 모두가 파안대소할 수 있는 위트 넘치는 작품으로 승화시켰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대 특종도 좋지만 나는 어쩌면 앞으로도 약간은 해학적이며 인간적인 맛이 나는 사진들을 찍고 싶다.
성범죄자 우범자, 우범지역 분석 보고서 부산일보
성범죄자 우범자, 우범지역 분석 보고서
부산일보 성화선 기자
성범죄는 왜 사회취약 계층이 사는 동네에서 많이 일어날까. '김길태 사건' 취재때부터 끊이지 않던 의문이었다. 형사들도 경험칙상 `취약계층 밀집지역=성범죄 다발지역'이라는데 공감했다. 하지만 어디에서 풀어야할 지 몰랐다. 고민하던 차에 한 형사의 입에서 단서를 얻었다. "우범자들이 꼭 어둡고 칙칙한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우리를 괴롭혀." 형사의 뻔한 푸념이고 현장에서 흘려보냈던 이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가설부터 세웠다. '우범자 밀집지=어둡고 칙칙한 동네=사회취약계층 밀집지=치안환경 열악=성범죄 빈발지역'이라는 고리를 만들었다. 그럴듯해 보였다. 문제는 검증 작업. 우범자 밀집지를 동별로 파악하는 것부터 막막했다. 경찰은 개인정보 등을 운운하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국회의원을 통해 자료를 받았다.
당시 내가 할 줄 아는 엑셀은 입력과 덧셈, 뺄셈 정도였다. 포털 사이트에서 엑셀 기본 사용방법을 찾아가면서 자료를 정리했다. 부산지방경찰청이 관리하는 1천여명의 성범죄 우범자 동별 거주지, 통계청의 동별 세대별 인구와 동별 기초생활수급자 비율 등이 엑셀과 GIS 작업을 거치자 가설은 사실로 드러났다. 올해 7개월 동안 부산에서 발생한 성범죄의 범죄자 거주지, 범죄 발생 동별 주소는 경찰로부터 받아 실제 성범죄 특성도 밝혀냈다.
생각지 못했던 논쟁이 일기도 했다. 특정 동네에 성범죄 우범자가 많고, 실제 성범죄가 많고, 기초생활수급자 비율까지 높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에 대한 논란이었다. 해당 동네 사람들에게는 '낙인' 효과만 가져올 뿐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대책 마련을 위한 기획 시리즈를 잇따라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단순히 특정 동네를 지목하는 수준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 그 동네 치안환경이 바뀔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에서 출발했다.
예상치 못했던 수확을 얻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부산지방경찰청이 성범죄 지도를 만들었다. 덕분에 실제 달아난 범인을 잡기도 했다. 내가 범인을 잡은 것 마냥 좋았다. 반면, 오늘도 경찰서로 출근했더니 강제성추행 사건 보고서가 보였다. 성폭행 사건이 기사 하나로 완전히 근절되리라고 바란 것은 아니지만 씁쓸했다. 하지만 한 명의 범인이라도 놓치지 않고, 한 명의 희생자라도 막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보람된 일이라며 스스로 위안을 해 본다.
자료 제출에 손사래치는 경찰서에서 일일이 데이터를 챙겨준 사회부 경찰 기자들에게 넘치는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악취나는 대구 정화조 업계 매일신문
매일신문 임상준 기자
아버지, 죄송합니다. 제게 뼈와 살을 주시고 30여 년간이나 사랑을 주셨는데 변변한 효도한번 못하고 급기야 제 성까지 버렸습니다. 더 이상 OO의 34대손 임기자가 아닌 변기자로 살겠습니다.
아버지가 저였더라도 그러셨을 겁니다. 1천만명의 젖줄인 낙동강을 망칠 순 없었습니다.
특히 대구시가 한해 2천억원의 환경 개선비를 낙동강에 쏟아 붓고 있는 상황에서 수질오염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대구 정화조 청소 업체의 비리를 알고서도 묵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기자 스스로 양심과 사명감을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뚜껑을 여는 순간 대구 정화조 업계의 구린내에 코가 썩을 지경이었습니다. 수거량 부풀리기와 허위 영수증 발급 등 온갖 비리가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제껏 어느 누구도 그 뚜껑을 들추지 않은 까닭입니다.
환경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분에는 부영양화를 일으키는 인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습니다. 수질 오염의 주범입니다. 그간 대구 정화조 업계가 규정양의 3분의 1밖에 변을 푸지 않았습니다. 넘친 오물이 그대로 낙동강으로 유입될 것을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한 할머니의 하소연이 긴 여정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똥차를 불렀는데 똥을 반도 안 푸고 그냥 갔다'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설이었고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여서 ‘시간 낭비가 아닐까’라는 염려가 앞섰습니다. 지역 언론 환경 상 충분한 인력과 예산으로 럭셔리(?) 취재를 하기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단추조차 제대로 끼워지지 않는다면 대구시는 영영 고담도시로 남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힘을 냈습니다.
지루한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수거량을 부풀리는 현장을 잡지 못한다면 기사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청소 차량이 오물처리장 저울 위에서 수거량 조작을 위해 핸들을 틀거나 바퀴를 빼는 현장 확보도 넘어야 할 산이었습니다. 8개 구․군청 정화조 청소 고지서부터 뒤졌습니다. 정화조는 1년에 한 번 또는 두 번 의무적으로 청소를 해야 하는 탓에 현장을 잡기 위해서 똥통을 직접 보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고지서가 발부된 가정집부터 훑었습니다.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정화조 청소가 언제. 어디서 이뤄질지 모르는 데다 정화조 업계, 구청 직원 등이 모두 한통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곧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취재에 착수하자 업계 전체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취재 시작 때부터 마칠 때까지 업체와 구청에다 질문만 해도 취재내용, 질문 사항, 저의 동선까지 그대로 노출됐습니다. 대구 정화조 업체들은 한 사무실을 쓰면서 뿌리 깊은 독과점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던 탓입니다. 업체는 물론 담당 공무원들까지도 나서서 비리를 서로 모른척하거나 알고도 눈감아 주고 있었습니다. 취재 내내 정화조 업체 업주들로부터 “기사는 언제 나가느냐? 빼주면 안되느냐?” 등 전화가 쇄도했고 선배기자들도 ‘무슨 취재를 하기에 대구가 떠들썩하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회유도 많았습니다. 유혹앞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세 편의 특종보도와 함께 5편의 후속보도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대구시의 대대적 감사로 업체 25곳이 적발됐고, 대구 정화조 청소 조례 제정, 비리 재발 방지와 자정노력, 공개입찰방식으로의 전환 등 무수한 열매가 달렸습니다. 제 240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과 함께…….
두드리지 않았다면 열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권성훈 특집팀 선배와 박병선 사회1부장, 이춘수 사회1부 팀장, 이상준 경찰팀 캡, '교육의 일환이니 똥통을 들여다 보라'는 지시에 후각을 잃은 황수영수습기자, 그리고 변상준기자로 불러주는 편집국 모든 동료 기자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
600년 전통 국새사기 사건 SBS
600년 전통 국새사기 사건
SBS 이한석 기자
2007년 12월 박명재 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은 4대 국새를 두고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국새는 국가 상징물이자 우리 발전된 산업기술의 상징입니다. 지금까지 사용하던 국새가 균열이 가해져서 새정부 출범에 맞춰 국운 융성 산업기술을 상징하는 최고수준의 국새 제작에 이르렀습니다. 제작과정을 영구히 촬영해 또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보존해 나갈 계획입니다.“
자부심과 자신감에 넘치는 얘기입니다. 자부심의 핵심은 전통적 방식의 국새제작 원천기술로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옥새문화권인 한,중,일 세 나라 중에서 전통기술의 제작기법이 전수된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이 600년 동안 전승된 옥새제작의 비기를 유일하게 전승한 사람이 옥새전각장 '민홍규' 씨라는 겁니다.
실체적 진실을 밝혀나가는 사회부 기자에게 ‘취재’는 도박입니다. 상대보다 좋은 패를 들고 있어도 심리전에서 밀리면 진실은 모함이 되고 명예훼손으로 취급받기도 합니다. 칩이 많아도 데일리 뉴스의 특성상 시간싸움에서 밀리면 이길 수 없습니다. 방대한 분량의 국새의혹 취재는 그런 난관을 등에 업고 시작했습니다.
당시 행정자치부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계승하기 위해 국새문화원 건립공사를 지원하겠다고 나섰고 모 유력 방송사는 1시간 분량의 민홍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국보 민홍규 띄우기에 나섰습니다. 시장의 우상은 그렇게 완성됐습니다.
민홍규씨가 주장하는 전통방식의 국새제작방식은 크게 세가집니다. 음양오행설에 따라 5개의 금속을 사용해 금합금을 만들고, 5종류의 흙을 이용해 오합토라는 거푸집을 사용해 대왕가마라는 5개의 전통가마에서 국새를 굽는 것입니다. 민홍규씨가 2005년 선보인 ‘옥새’라는 책에 음양오행의 이론을 토대로 ‘5,5,5’ 전통제조기법이 그럴싸하게 집대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국새판타지’의 사기극은 국새백서에 모두 담겨 있었습니다. 합금기술자는 이창수씨로 명기돼 있었고 전통방식이 아닌 현대방식으로 제조됐다는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 있습니다. 행정안전부가 발간한 ‘국새백서’를 토대로 보도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보도의 역풍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백서발간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오히려 오보의 모든 책임을 취재기자가 져야 한다고 협박했고 민씨측은 ‘민홍규 흠집내기’라며 폄훼하기도 했습니다. 국새판타지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고 이렇게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뻔 했습니다.
일주일 뒤 민홍규씨의 ‘금도장 로비 의혹’ 보도가 나갔습니다. 일부는 금도장이 아닌 놋쇠도장이라고 발뺌했고 도장과 함께 찍은 사진까지 확보했지만 도장을 본 적도 민홍규를 알지 못한다고 전면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정관계 인사들의 저항은 그만큼 거셌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금도장 보도는 ‘국새파문’을 이슈화시키는 촉매제가 되면서 경찰수사로 이어지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국새의혹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면서 경찰은 전통방식의 제작기법은 실체가 없다. 민홍규씨의 로비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최종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금품을 받고 민홍규 띄우기에 앞장섰던 것도 드러났습니다. 민홍규씨를 국새제작단장으로 임명하는 과정에서 일부 정치인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검증과정이 부실했음을 인정하고 관련 공무원들을 중징계했습니다. 상처입은 4대 국새는 폐기하고 5대 국새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국가의 인감도장을 만드는 일입니다. 주변에서 가공된 명성만을 믿고 검증에 소홀했던 전통방식의 제작기술이라는 실체 없는 말장난에 놀아났던 당시 행정자치부 관계자들... 현대식 제조기법으로 만들어진 국새를 쉬쉬하며 대충 넘어가려고 했던 현재 행안부 관계자들...
민홍규가 1대 국새를 제작한 석불 정기호 선생의 제자가 과연 맞는지 석불의 아들 목불 선생에게 한 번이라도 확인을 해 봤다면... 가마에 구운 흙이 제대로 깨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한 번이라도 의심을 해 봤다면 웃지못할 코미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민홍규씨의 봉이 김선달식 코미디에 정부와 정치권, 문화계, 심지어 언론계가 놀아난 셈입니다. 황우석 사태 당시 검증시스템의 부재를 비판했지만 5년 뒤 대한민국 사회에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곳에 국가와 국민의 상대로 또 다른 대국민사기극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시장의 우상이 만든 판타지와의 힘겨운 싸움은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비리 검사·판사 8명 복권 광복절특사 명단 숨겼다 …
비리 검사·판사 8명 복권 광복절특사 명단 숨겼다
서울신문 강병철 기자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 독립성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고 정치인·기업인 등 ‘힘있는 지도층’에 대한 특혜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서울신문 2010년 8월 14일자 4면)
이렇게 기사를 쓰는 것만으로 올해도 그냥 지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먹히지도 않는 쓴소리를 잠깐 늘어 놨을 뿐, 취재팀의 8·15 특별사면 보도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특별사면의 문제점에 대한 날선 비판은 이제 내년 8월에나 다시 보겠거니 생각했지요.
그런데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터졌습니다.
“아는 사람인데 특사 확인 좀 해주라. 손00이라고.”
법무부는 특사 브리핑을 하면서 보도자료에다 72명을, 또 기자들의 요구에 추가로 기업인 6명의 이름을 공개했었습니다. 그 외에는 ‘비공개’가 원칙이었습니다. 손00, 회사 선배가 확인을 부탁한 그 이름은 명단 안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추가 공개는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일단은 법무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담당자는 선뜻 손 선생의 특별복권 사실을 확인해 주더군요.
이 이야기를 들은 취재팀 선배는 눈을 반짝였습니다. 그러면서 선배는 손모가 법조비리를 저지른 부장판사 출신이라는 사실과 함께, 이번 특사에 다른 법조인도 껴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곧장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어렵지 않게 애초 특별사면위원회가 공개토록 한 107명의 명단을 입수했고, 법무부가 이 중 29명 이름을 자의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29명의 면면은 참 화려했습니다. 전직 부장판사·검사 등 비리 법조인 8명에다가, 전직 교육감, 경찰간부, 공기업 사장, 군수 등 유명 인사들이 대거 몰래 특사 혜택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서글픈 건 법무부의 반응이었습니다. 명단 입수는 시시할 정도로 순조로웠습니다. 달랬더니 주기에 그냥 받았을 뿐. 법무부 담당자도 그게 문제가 될 거란 생각을 전혀 못한 거지요. 기사를 쓰던 날도 그랬습니다. 취지를 설명하고 해명을 요구했는데도 법무부 담당자들은 태평하더군요.
보도가 대대적으로 나가자 그제서야 법무부는 심각성을 알게된 모양이었습니다. 곧 해명이 나왔고, 이어 대책을 내놨습니다. 후속 보도를 하겠다고 2008년 자료를 요구했습니다. 이번에는 긴장 가득한 모습으로 “한번 더 살펴보고 주겠다” 하더군요. ‘아, 이래서 기자가 필요하구나.’라고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이 일로 소중한 가르침 준 선배들은 물론 법무부에도 감사 말씀 전합니다. 쓴 지적을 달게 받아 주시고 기꺼이 잘못을 바로 잡은 점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내년에도 특사가 단행된다면 그때는 사면권자나 실무자나 모두 긴장하고 한번 더 살피는 모습 기대해 봅니다. 법원 판결이 어떨지 모르겠으나 혹시 처벌을 받게 된다면, 내년에는 스폰서 검사님들 이름도 다시 뵙지 않았으면 합니다. 내년을 기다려 봅니다.
신재민, 17차례 부동산 매매 경향신문
신재민, 17차례 부동산 매매
경향신문 박재현 기자
이명박 정부의 ‘8.8개각’은 인선 직후부터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그동안 여러 후보자들을 낙마시킨 부동산 투기와 위장전입 등의 문제 역시 어김없이 등장했다. 소통의 국정을 원하는 국민들의 기대수준과는 너무나 큰 인사였다.
이에 본지는 장관 후보자들의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특별취재팀을 구성해 각종 의혹 검증에 착수했다. 검증의 시작은 후보자들이 청문회를 위해 국회에 제출한 청문자료였다. 조그마한 사항부터 하나하나 확인해 나갔다. 이번에 수상의 영예는 누리지 못했지만 이인숙 기자가 보도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의 ‘신용카드·현금영수증 ‘0’… 김태호 ‘이상한 씀씀이’도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러던 중 8월20일 오후 늦게 민주당 서갑원 의원실로부터 한 장의 팩스를 받았다. 국토해양부에서 제출한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부동산 거래내역 자료였다. 이 자료는 일반인은 물론 언론의 접근은 원천적으로 차단된 자료로 결정적 단서였다. 그러나 이 자료의 내역을 보면 거래의 선후가 뒤바뀌어 있거나 판 기록은 있는데 이를 산 기록은 없었다. 1997년 이후의 거래내역만 구축됐을 뿐 아니라 실제 거래된 사항조차 빠져 있었다.
취재팀은 일단 거래내역을 일일이 따져보기로 했다. 거래내역 자료에 나온 물건의 부동산 등기부를 일일이 떼어 이를 구입한 시점과 판 시점의 ‘이빨’을 맞췄다. 취재과정에서 알게 된 매매 사항도 추가했다. 신 후보자측의 해명 등을 토대로 거래된 부동산의 구입의도 등도 파악했다.
그 결과 신 후보자는 1993년 이후 올해까지 본인 또는 부인 명의로 8건의 부동산을 사거나 파는 등 17차례 매매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1년에 한번꼴로 부동산 매매를 한 것이다. 눈에 띈 점은 신 후보자가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던 1999년부터 2006년 사이 아파트뿐 아니라 수익형 부동산인 토지, 오피스텔 등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는 것이다. 시세차익을 노린 부동산 투기라는 의혹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세밀한 보완 취재를 통해 얻어진 결과였다.
이번 보도는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부동산 투기만큼은 어떠한 형태로든 고위 공직자의 결격 사유가 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다시금 일깨워줬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솔직히 높은 공직에 나갈 기회가 주어진 언론계의 선배에게 이번 기사가 치명적인 칼날이 되었다는 점에서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 그지없다. 공익을 위해서는 남의 허울을 알려야 하는 모진 직업이 기자의 숙명이랄까. 그러나 신 후보자도 언론계의 선배로서 언론이면 해야할 본연의 일을 했다며 이해해 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