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7편
횡령수단으로 쓰인 외국인학교 코리아타임스
‘횡령수단으로 쓰인 외국인학교’
코리아타임스 강신후 기자
“기자들은 다 그렇게 사세요?” 취재를 갔던 한 외국인 학교 과장의 경멸하는 눈빛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또 다른 외국인 학교를 갔을 때는 4-5명의 안전요원들에게 둘러싸였다가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경찰서에 가서 따지자”고 소리치며 벗어났던 적도 있다.
이뿐이 아니다. 작년 6월 강성종의원이 횡령을 했다는 외국인학교 취재로 만난 강의원에게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라며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말을 했을 뿐인데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비리에 연루된 외국인학교 관계자들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관리감독을 해야 하는 공무원들의 반응은 한 술 더 떴다. “문제는 있는 것 같은데 회계장부를 못 읽겠다,” “섣불리 감사를 나갔다가 결정적인 것을 못 건져 과잉조사를 했다는 비난을 받으면 책임지실래요?”라는 신경질적인 말들...... 그러면서 몇 달 후 다른 매체가 본지 기사를 받아쓰면 “0000에는 잘 나와 있던데 그 때 좀 말씀해주시지......”라는 어이없는 변명까지 늘어놓기도 했다.
이처럼 문제가 있는 외국인 학교 관계자들의 냉담한 반응, 교육당국자들의 비상식적이고 납득할 수 없는 답변들과 싸워 나가야 했기에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길고도 고달픈 시간들을 견디어 내야만 했다. 누군가는 영어매체의 한계가 아쉽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전달 언어가 영어든 한글이든 진실은 하나이고,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영자지 기자이기 때문에 더욱 더 절실히 경험하고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외국인학교의 비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 관련자들이 구속되기도 했고, 버티고 보자던 공무원들은 “기자님 덕분에 외국인학교 제도가 많이 개선됐다”는 말과 함께 미안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앞으로도 코리아타임스의 보도로 부정부패가 척결되고 사회가 변화되는 데에 다소 많은 시간이 걸리고 속도가 더딜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진실은 결국 드러난다는 경험들을 수차례 했다. 그러기에 진실보다 때론 거짓이 난무하는 뉴미디어시대에 이 세상을 조망할 수 있고, 진실을 퍼 담을 수 있는 나만의 ‘잔’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을 것 같다.
끝으로 15년 만에 이뤄진 현역국회의원의 구속이 검찰의 수사가 아닌 언론보도로 비리가 밝혀져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정해주시고 알려주신 기자협회에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한다.
도심속 멸종위기종을 찾아서 대전일보
도심속 멸종위기종을 찾아서
대전일보 장길문 기자
멸종위기종 2급이자 천연 기념물 제330호인 수리부엉이가 얼마 전 대전 뿌리공원 인근에서 상처를 입고 발견돼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회복 속도가 빨라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하천과 산을 중심으로 우리 주변 곳곳에 멸종위기종과 천연 기념물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그런데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도심 속 멸종위기종을 찾아서’ 릴레이 보도는 이렇게 시작됐고 올 여름을 고스란히 바쳐야 했다.
첫 보도로 지난 7월15일 자 대전일보에 공개한 ‘수리부엉이의 비상’은 독자들로 하여금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야행성인 수리부엉이의 대낮 촬영을 위해 7일간의 잠복기간 동안 더위와 모기떼의 공격, 무엇보다 시간과의 싸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수리부엉이는 얼마 후 인근 다리 밑 옹벽 철조망에 걸린 채 발견했다. 오른쪽 다리에 이물질이 박혀 있었고, 수술 끝에 이물질 제거에 성공하긴 했다. 시민에 의해 발견되길 천만다행이지 그렇질 않았더라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고, 사라질 위기에 있는 수리부엉이를 더욱 보기 어려웠을 지도 모를 일이다.
취재에 나선 뒤 우리 주변에는 수리부엉이를 비롯한 조류와 포유류, 어류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군의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문산 자락 은사시나무 옹이엔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328호,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가 둥지를 틀고 있었고,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소쩍새(천연기념물 324호)의 새끼 사랑이 포착되기도 했다.
특히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한국 토종 남생이(천연기념물 453호)의 짝짓기 장면을 촬영하는데 성공, 학계의 깊은 관심을 받았다. 가까이 가면 금방 몸을 숨겨버리는 습성 때문에 한 곳에서 4시간 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고 기다려야만 했다. 또 수달(천연기념물 330호,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 가족과, 멸종위기 1급 어종인 감돌고기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물고기는 금강 수계 등에서만 확인되는 희귀어종으로, 수질의 깨끗함과 생태계 안정을 알리는 바로미터다. 물고기의 특성상 방수장비를 동원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 외에도 까치에게 공격당하는 황조롱이(천연기념물 323-8호)와 화려한 색사을 자랑하는 원앙(327호), 붉은배새매(323-2호) 등 90일간 총 10종을 취재하는데 성공했다.
생태 사진이 그렇듯 만나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험난했다. 기자의 무지로 인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시민들의 제보가 큰 역할을 했다. 이번 시리즈를 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지만 가장 큰 수확은 자연에 대한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자연은 우리가 다가가야하는 것이지 가만히 있으면서 기다리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지금까지 우리는 자연에게 받기만 했지 돌려주는데는 참으로 인색했던 것이다.
이렇듯 대전이 ‘천연기념물의 보고’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도 일부 시민들이 불법적으로 포획하거나 어획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멸종을 자초하는 무지의 소치이자 생태계 파괴 행위와 다름 아니다.
희귀종을 쉽사리 볼 수 있다는 것은 물길이 제대로 뚫리고,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다는 반가운 징표다. 삶의 여유를 주고 어린 학생들에 대한 교육적 효과는 덤이다. 멸종 위기종을 지키기 위한 관계 당국의 철저한 단속과 보호책 마련이 시급하고,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도 중요한 문제다.
제주를 세계지질공원으로- 6년의 기록 한라일보
제주를 세계지질공원으로 / 6년의 기록
한라일보 강시영 기자
제주도가 올해 10월초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을 받았다.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2007년 세계자연유산에 이어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3관왕을 달성한 것이다.
세계지질공원은 흔히 세계유산의 대안으로 자주 거론된다. 유네스코 프로그램인 세계유산(World Heritage)과 생물권보전지역(인간과 생물권계획:MAB:Man and Biosphere)이 '보호'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지질공원(Geo-Park)은 지질적 특성이 있는 지역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활용'을 통한 관광과 지역경제를 증진하는 것에 중점을 둔 세계적인 네트워크다. 2000년 유럽지질공원에 이어 2004년에 태동했다.
취재진이 세계지질공원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이 프로그램이 태동한 2004년의 일이다. 그해 9월, 화산섬 제주와 한반도 최대규모의 마르형 분화구이자 5만년 기후변화의 퇴적층을 갖고 있는 서귀포 '하논'분화구와의 비교탐사를 위해 독일 중서부의 세계지질공원 '불칸 아이펠'을 탐사보도하면서 부터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지질공원과 지질관광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때였다. 취재진은 불칸아이펠에서 유럽을 중심으로 국제적 트렌드로 부각한 세계지질공원과 이 프로그램의 3대 목표인 보존과 교육, 지속가능한 지질관광의 실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자연유산이 자연과 보존을 중시하고 있는데 비해 세계지질공원은 그 안에 살고 있는'사람'을 중시하고 있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취재진은 제주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기폭제로 세계자연유산과 더불어 세계지질공원에 주목했다. 이들 두개의 유네스코 프로그램은 태동 시기와 목표, 취지는 다르지만 서로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두개 모두 보호를 중시하지만, 활용 측면에서는 보완적이기 때문이다.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선도해 온 한라일보가 세계지질공원과 지질관광에도 지속적으로 주목해 온 이유다.
취재진은 2004년부터 해외 화산투어 현장을 단독취재한 것을 시작으로 연중기획 '지오투어시대 열린다/제주를 세계지질공원으로' 등 100여회에 걸쳐 집중점검했으며, 정부 주도의 국가지질공원 법제화, 타시도의 추진실태, 후속과제도 함께 제시했다. 현재 정부는 연내 제정을 목표로 국가지질공원 법제화를 추진중이며, 국내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지질공원 인증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제주도가 세계지질공원이라는 국제적인 브랜드를 확보한 의미는 매우 크다. 제주도는 1960년대 이후 한국의 대표적 관광지로서, 관광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콘텐츠와 프로그램 개발이 요구돼 왔다.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등재가 제주자원환경의 보전에 크게 기여해 왔으나, 보존과 활용의 문제가 늘 제주사회의 주요 이슈였다. 제주가 이룩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은 제주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긴 호흡으로 장기간 연재와 후속보도를 가능케 해준 편집국 동료와 선후배, 그리고 연재를 줄곧 자문해준 전문가들에게 영광을 돌린다.
고교 축구 주말리그제 승부 조작 파문 뉴시스광주
고교 축구 주말리그제 승부 조작 파문
뉴시스 광주전남본부 류형근 기자
지난 9월12일 오전 하늘같은 회사 선배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고교 축구대회에서 승부조작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으니 확인취재를 지시하는 전화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망설였다. 쉽지 않은 취재가 될 것이라는 직감이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려와 달리 문제는 쉽게 풀렸다.
평소 친분이 있던 축구계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광양제철고와 포철공고 간의 경기가 다소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금호고 축구부를 찾았다. '광양제철고와 포철공고는 같은 재단이며 또 경기 종료 7분을 남겨놓고 5골이 터졌다', '경기 시작 시간도 10여 분 정도 고의 지연 시켰다'는 다소 충격적인 성토가 쏟아졌다.
광양제철고와 포철공고 감독에게 사실여부를 물었다. 또 대한축구연맹 홈페이지 게시판도 살폈다.
감독들은 승부조작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게시판에는 당시 경기장을 찾았던 관중들의 성난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의혹이 사실로 가닥쳐져 가는 순간 잠시 눈을 감았다.
어른들의 이기심이 한국 축구의 어린 주역들을 상처받게 할 수 있는 기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고 잘못된 관행을 바꾸는 것이 학생들의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판단을 세웠다.
노트북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진실은 하나둘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한국기자협회에 출품을 결정했다.
먼저 출품 요건인 중앙지, 지방일간지 등에 실린 고교축구 승부조작 기사를 스크랩했다.
그리고는 한 뭉치의 자료를 방안 책상에 올려놓았다.
모든 자료의 준비가 끝나고 출품하려는 순간, 기사 스크랩 뭉치가 보이지 않았다.
임신 3개월의 아내가 아파트 재활용품 창고에 내다버렸으니 아무리 찾아도 없을 수 밖에.
아내와 나는 재활용창고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우역곡절(?) 끝에 수상한 이 모든 영광을 뉴시스 광주.전남본부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다.
또 대한축구협회의 반응을 신속히 전달해 준 뉴시스 본사 체육부 박상경 기자에게도 고마움을 전달한다.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 한겨레신문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
한겨레신문 임인택 기자
‘진실은 알기 어렵고, 알면 두려워진다’는 문장을 부여잡고 산다. 기획의 주제인 ‘장애인의 성’도 예외일 리 없었다. 장애인의 성(적 욕망과 권리)은 대개 부정되거나 금기시된다. 삶의 토대가 부정되거나 금기시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성적 소외의 진실은 끔찍하다. 듣고 만난 사실들을 기사에 차마 다 담지 못했다.
성이 주제가 되는 기획은 쉽지 않다고 공적서에 썼다. 은밀하여 취재가 고되고, 개인차가 심해 결과물은 보편적이기 어려우며, 소재의 특성상 진실을 가장한 선정주의에 머물 수 있다는 내외부의 우려와 지난하게 다퉈야 했다고 썼다.
광범위하고 심층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감춰진 현주소부터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 까닭이다. 장애 관련 단체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여러 장애인은 자신들을 시혜 대상으로 여기는 비장애계의 차별적 시선을 경계했고, 관음의 시선을 우려했다. 설문안이 장애인들의 성욕을 되레 자극한다면 경계하는 시선과도 자주 부딪혔다.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단체들이 있었고, 설문에 응하지 않겠다는 개인들이 많았다. 시작하자마자 당황했고 겁먹었다. 진실은 알기 어렵고, 알면 두려워진다.
장애계의 대응은 일면 수긍된다. 설문이 노골적인 탓도 있겠다. 하지만 장애계의 노골화할 수 없고, 노골화가 두렵다는 입장이 비장애의 부정과 금기로부터 어찌 구별되는지 한편 이해할 수 없던 게 사실이다. 최근의 섹스 경험(성행동)을 물었고, 성생활 만족도, 성욕 지수, 연애 욕구 지수를 물었다. 성적 피해, 성매매 경험 여부까지 세세히 물었다.
기획부터 기사화까지 넉 달이 걸렸다. 설문안을 설계하고, 공동기획을 할 수 있는 단체들을 설득하는데만 한 달이 걸렸다. 추석 연휴 여러 날 기사를 써야했다.
딱 그만큼의 노정을 거쳐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는 만들어졌다. 스스로도 발설해보지 않았을 내밀한 이야기를 톺았다. 성 권리 왜곡 실태를 보았고, 비장애인의 편견을 확인했다. 성의 자각이, 피해보지 않을 권리에서 행복해질 권리까지 확장되고 아우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성은 사랑, 결혼, 관계의 이면에 있었고, 성적 권리는 이동권, 주거권, 노동권을 이면에 뒀다. 50여명을 만나며 실사례로 짚을 수 있었다. 장애인의 성적 고충은 비장애의 무관심이나 관심 있는 이의 차별과 깊이 맞닿아 있어 사적일 수 없다. 사회적이다.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라는 호명은 물론, 이런 취지와 범주의 실태조사는 국내에서 이뤄진 바 없다. 국외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읽기조차 불편했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최선이라고 나는 받아들인다. 몰랐고 무관심했음을 가장 솔직하고 정확하게 수사한다. 왜 장애인의 성만 주목받아야 하는가. 이 당연한 질문조차 비장애계의 차별과 무관심을 인정하면서부터 타당한 질문이 되고, 답이 구해질 것이다. 성은 보편적 권리인가, 어디까지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보듬어야하는가, 란 질문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인권 감수성을 깨우쳐주었다”는 많은 독자들의 반응은 고맙다.
그럼에도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의 표본은 적고, 장애별로 또는 미혼, 기혼별도 더 세분화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고 공적서에 담았다. 20문항 정도의 설문으로 심층조사 분량이 상당한대도 지면 제약상 대부분을 담지 못했고, 국가의 소극적 연구지원 실태 등 취재 내용 또한 담지 못했다고 적었다. <한겨레21>의 기획이 계기가 되어, 더 정밀하고 폭넓은 조사는 이제 시민사회의 요구와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길 바라며, 한국기자협회의 엄정하고 세심한 평가가 더 큰 격려와 주문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이라고도 적었다.
그 격려를 받은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해당 문제를 비장애 사회에 제창하고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장애의 9할 이상이 후천적이라는 사실”만으로 무심한 비장애 사회를 훌닦기엔 바야흐로 2011년, 아니 2010년의 시대가 지나치게 세련되어 보인다.
<유명환 장관 딸 특채> 특종 보도 SBS
<유명환 장관 딸 특채> 특종 보도
SBS 김지성 기자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채 논란 보도 이후 주변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그래, 출입처의 장관을, 나라의 정책을 바꾼 소감이 어떠냐?”
그럴 때마다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저도 파장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습니다. 우리 사회에 특별채용 비리가 이렇게 만연해 있다니 저도 놀랐습니다.”
물론, 외교부 당국자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저보다 더 몰랐을 것입니다.
취재에 들어가자 ‘적법한 절차를 거쳐 유명환 장관의 딸이 최고점을 받았다’, ‘자격을 갖췄는데도 장관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채용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역차별아니냐’, ‘장관의 딸은 취직도 하면 안 되느냐’는 식의 반론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논리에 밀리지 않았던 것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봐야 한다’는 ‘자기 최면’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적법한 채용이었다 하더라도 단 한명을 특별채용하는데, 현직 장관의 딸을 뽑았다면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렇게 시작해 취재를 거듭할수록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는 외교부의 주장은 허점을 드러냈습니다. 채용이 서류 심사와 면접만으로 이뤄져 심사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이 합격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고, 심사위원 5명 가운데 2명이 외교부 간부였던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나아가 외교부가 유명환 장관의 딸을 합격시키기 위해 1차 모집 응시자 전원을 의도적으로 탈락시켰다는 의혹도 불거졌습니다. 기사 요건을 ‘충분히’ 갖춘 셈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첫 보도가 나간 날은 태풍 곤파스가 10년 만에 수도권을 강타한 날이었습니다.
SBS 보도 이후 특채 논란은 다른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로까지 확산됐고, ‘앞으로 특별채용이 늘어나면 유명환 장관 딸의 사례처럼 고위층의 자녀만 특혜를 입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드세졌습니다. 곤파스의 위력을 금세 넘어섰습니다.
정부는 급기야 ‘고시를 줄이고 특별채용을 늘리겠다’는 행정고시 개편안을 백지화했습니다. 외교부도 새로운 수장을 맞이했고 채용 문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쇄신안을 발표했습니다.
SBS의 첫 보도가 단초가 됐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유명환 장관의 사퇴를, 이미 발표했던 정부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국민의 목소리였습니다. 청년 실업난 속에 ‘공정한 채용’을 원하는, ‘진정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국민의 함성이었습니다.
저로서는 ‘국민이 기자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새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고시 준비생들의 ‘고맙다’는 메일이 숙연하게 다가왔습니다. 다시는 특별채용과 관련한 비리를 보도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갈지자 주행’ 해군 최신예 고속함 문제 단독보도…
‘갈지자 주행’ 해군 최신예 고속함 문제 단독보도
YTN 함형건 기자
"국방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의 국산무기 개발 성공률은 50%가 안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90%를 넘어 거의 100%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두어달 전 평소 알고 지내던 취재원 한 분이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되는 국내 명품무기 개발사업, 특히 복합무기 체계인 해군 무기에 문제점이 없는지 잘 살펴보라는 귀띔이었다. 마침 육군 K 계열 무기에 대한 각종 문제가 여기저기서 드러나기 시작한 때였다. 천안함 사건으로 그 중요성이 한껏 부각된 해군 무기 체계에는 유사한 결함이 없을까 하는 궁금증이 당연히 커졌다.
취재를 시작하고 얼마안가 그간 쌓였던 문제점들이 속속 감지됐다. NLL 최전방을 수호할 차기 고속함을 만드는 사업, 일명 '검독수리-A' 사업에서 중대한 결함이 발견됐다는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실전배치된 1번함인 윤영하함의 진동 문제가 여전한데다 국산 워터제트 추진기를 장착하기 시작한 2번함 한상국함부터는 문제가 더욱 커져 정상적인 고속주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의원실을 통해 국감자료로 요청해 입수한 방사청의 자료의 시험평가 결과는 믿기지 않는 내용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결함으로 배가 좌우로 궤도를 이탈한다는 것.
'갈지자 주행' 고속함이란 함축적인 제목을 달아 일주일간 모두 6개의 리포트를 제작해 방송했다.
뉴스가 처음 보도된 날은 문제가 된 한상국함이 조선사로부터 해군에 인도되기로 예정됐던 날이었다.
군 당국은 선박 인수를 보류하고 추진기 재설계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여러가지 석연치 않은 정황이 더 파악됐다.
조선사가 선박 인도를 강행하려한 사실과 방위사업청이 한상국함의 문제를 확인하기도 전에 후속함 건조를 줄줄이 계약한 사실도 드러났다.
직진주행 문제는 당연히 후속함들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었다. 기본도 원칙도 지키지 않은 무리한 선박 건조의 대가는 이렇게 컸다. 선도함의 성능을 철저히 평가해 검증된 기술을 기반으로 후속함을 건조해야한다는 군함 건조의 ABC를 무시해 더욱 복잡해진 문제였다.
뉴스가 나간 뒤 방위사업청이 결함 발생 사실을 인정하면서 타 매체들도 '갈지자 고속함' 이란 제목으로 많은 기사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군 안팎에서도 "속시원한 뉴스"였다는 반응이 들려왔다. 군함 건조시스템의 여러가지 문제점을 알면서도 군 조직의 특성상 말 한번 제대로 못하고 속만 끓여야 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뭔가 해냈구나' 하는 보람도 느꼈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다. 무엇보다 문제의 핵심 원인이 무엇인지, 보다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심도있는 취재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고속함 사례를 비롯해 최근 불거진 국산 명품무기 결함의 배경에는 몇가지 공통적인 문제점들이 발견된다.허술한 검증 시스템, 이를 방조하는 군 조직문화, 그리고 문제가 발생해도 숨기려고만 하는 과도한 비밀주의가 그것이다. 특히 진실 규명과 군사기밀 보호의 필요성 사이에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국방부 출입기자의 숙명일지도 모르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기밀사항도 많았다. 고속함의 시험평가 일지처럼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제한적으로라도 공개해야 할 사항도 당국은 대외비로 묶어놓고 있다. 사업 하나에 수조원씩의 혈세가 투입되는 대형방위사업들인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까지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그만큼 언론의 역할도 막중한 것 같다.
보도가 나오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도움을 주신 고마운 분들이 많았다. 제보자의 도움이 결정적이었고 복수의 취재원이 핵심적인 지원을 해주셨다. 옆에서 믿고 항상 격려해준 선후배 동료들의 힘도 컸다. 무엇보다 국방 분야보도의 중요성을 인정해 이달의 기자상이란 큰 영예를 안겨준 기자협회에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갈지자 고속함' 보도가 수차례 나가면서 한편으론 차기고속함 이름의 주인공인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의 명예에 누가 된 건 아닌가 마음 한켠이 무겁기도 했다. 그래도 이번 보도가 이 땅 이 바다를 지키는 우리의 무기, 우리의 군함 건조시스템이 보다 신뢰할 수 있는 모습으로 거듭나는 조그만 계기가 될 것이라고 위안을 삼아본다. 군 당국과 방산업계의 그같은 환골탈태만이 '검독수리' 차기고속함이 명실상부한 NLL의 수호신으로 부활하는 길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