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241회)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 / 한겨레신문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
한겨레신문 임인택 기자
‘진실은 알기 어렵고, 알면 두려워진다’는 문장을 부여잡고 산다. 기획의 주제인 ‘장애인의 성’도 예외일 리 없었다. 장애인의 성(적 욕망과 권리)은 대개 부정되거나 금기시된다. 삶의 토대가 부정되거나 금기시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성적 소외의 진실은 끔찍하다. 듣고 만난 사실들을 기사에 차마 다 담지 못했다.
성이 주제가 되는 기획은 쉽지 않다고 공적서에 썼다. 은밀하여 취재가 고되고, 개인차가 심해 결과물은 보편적이기 어려우며, 소재의 특성상 진실을 가장한 선정주의에 머물 수 있다는 내외부의 우려와 지난하게 다퉈야 했다고 썼다.
광범위하고 심층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감춰진 현주소부터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 까닭이다. 장애 관련 단체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여러 장애인은 자신들을 시혜 대상으로 여기는 비장애계의 차별적 시선을 경계했고, 관음의 시선을 우려했다. 설문안이 장애인들의 성욕을 되레 자극한다면 경계하는 시선과도 자주 부딪혔다.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단체들이 있었고, 설문에 응하지 않겠다는 개인들이 많았다. 시작하자마자 당황했고 겁먹었다. 진실은 알기 어렵고, 알면 두려워진다.
장애계의 대응은 일면 수긍된다. 설문이 노골적인 탓도 있겠다. 하지만 장애계의 노골화할 수 없고, 노골화가 두렵다는 입장이 비장애의 부정과 금기로부터 어찌 구별되는지 한편 이해할 수 없던 게 사실이다. 최근의 섹스 경험(성행동)을 물었고, 성생활 만족도, 성욕 지수, 연애 욕구 지수를 물었다. 성적 피해, 성매매 경험 여부까지 세세히 물었다.
기획부터 기사화까지 넉 달이 걸렸다. 설문안을 설계하고, 공동기획을 할 수 있는 단체들을 설득하는데만 한 달이 걸렸다. 추석 연휴 여러 날 기사를 써야했다.
딱 그만큼의 노정을 거쳐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는 만들어졌다. 스스로도 발설해보지 않았을 내밀한 이야기를 톺았다. 성 권리 왜곡 실태를 보았고, 비장애인의 편견을 확인했다. 성의 자각이, 피해보지 않을 권리에서 행복해질 권리까지 확장되고 아우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성은 사랑, 결혼, 관계의 이면에 있었고, 성적 권리는 이동권, 주거권, 노동권을 이면에 뒀다. 50여명을 만나며 실사례로 짚을 수 있었다. 장애인의 성적 고충은 비장애의 무관심이나 관심 있는 이의 차별과 깊이 맞닿아 있어 사적일 수 없다. 사회적이다.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라는 호명은 물론, 이런 취지와 범주의 실태조사는 국내에서 이뤄진 바 없다. 국외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읽기조차 불편했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최선이라고 나는 받아들인다. 몰랐고 무관심했음을 가장 솔직하고 정확하게 수사한다. 왜 장애인의 성만 주목받아야 하는가. 이 당연한 질문조차 비장애계의 차별과 무관심을 인정하면서부터 타당한 질문이 되고, 답이 구해질 것이다. 성은 보편적 권리인가, 어디까지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보듬어야하는가, 란 질문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인권 감수성을 깨우쳐주었다”는 많은 독자들의 반응은 고맙다.
그럼에도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의 표본은 적고, 장애별로 또는 미혼, 기혼별도 더 세분화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고 공적서에 담았다. 20문항 정도의 설문으로 심층조사 분량이 상당한대도 지면 제약상 대부분을 담지 못했고, 국가의 소극적 연구지원 실태 등 취재 내용 또한 담지 못했다고 적었다. <한겨레21>의 기획이 계기가 되어, 더 정밀하고 폭넓은 조사는 이제 시민사회의 요구와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길 바라며, 한국기자협회의 엄정하고 세심한 평가가 더 큰 격려와 주문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이라고도 적었다.
그 격려를 받은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해당 문제를 비장애 사회에 제창하고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장애의 9할 이상이 후천적이라는 사실”만으로 무심한 비장애 사회를 훌닦기엔 바야흐로 2011년, 아니 2010년의 시대가 지나치게 세련되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