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성 녹취파일과 유출 기밀문건 추적」
동아일보 사회부 장관석 기자
최순실 씨는 너무 많은 일을 저질렀다. 쏟아지는 폭로와 의혹 속에서 우리도 어느 지점에서든 사건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몇 차례의 변곡점이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키를 쥐고 있는 건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라고 판단했다. 정 전 비서관은 ‘문고리 3인방’ 중에서도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인물이자 최 씨와 직접 접촉해온 인물인 만큼 취재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온갖 의혹 제기가 계속된 상황에서 정 전 비서관의 녹음파일은 사건의 핵심을 밝힐 결정적 증거였다.
팀원 전체가 백방으로 나섰다. 결국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에 최 씨의 국정 개입이 담긴 통화 녹음파일이 있다”고 처음으로 보도했다. 이후 정 전 비서관이 최 씨에게 넘긴 정부 조각 명단, 장차관 인선, 대통령 해외 순방일정 등 기밀문건 47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해외 순방 가면 놀러 가는 것으로 보이니 수석비서관 회의를 열라”는 최 씨의 구체적인 지시내용을 취재할 때는 우리 스스로도 ‘이정도 였나’ 탄식이 절로 났다.
최 씨와 4대 국정기조를 정하는 녹취록에서는 이번 정부의 사상적 빈곤함이 느껴졌다. 대통령의 핵심 참모인 정 비서관이 ‘비선실세’의 지시를 잘 이행하기 위해 통화 녹음까지 한 대목에서 국가 시스템 붕괴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이후 녹음파일의 핵심 내용과 전문을 입수했고 최대한 가공 없이 게재해 독자 스스로 판단하도록 했다. 장막 뒤에서 이뤄진 국정농단이 독자들에게 날것 그대로로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정호성 녹음파일’과 ‘유출 기밀 문건’은 국민이 권력을 위임한 적이 없는 최 씨가 국정에 개입한 정도를 가장 명징하고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핵심 증거다. 오염되거나 의도된 증거로 치부할 수 없는 이 강력한 물증은 비선실세 국정개입의 민낯을 온전히 품고 있다. 지금까지도 각종 의혹을 부인하는 최 씨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휴대전화 녹음파일은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언론의 기능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기자로서 느껴야했던 당혹스러움 앞에서도 “우리는 우리가 쓸 수 있는 기사를 쓰자”며 서로 다독이며 달려온 팀원들이 자랑스럽다. 깊은 애정으로 길을 열어주는 전성철 법조팀장께 감사드린다.
회차 심사평
제316회 전체 총평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의 진상과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요구 역시 국민적 차원에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번 316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현장기자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땀을 흘린 기사들이 다수 출품됐다.
취재보도 1, 2 보도 부문에서 수상작으로 뽑힌 6편 모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기사였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다룬 한국일보의 ‘세월호 선언 등 9473명, 문화계 블랙리스트 확인’, SBS의 ‘문체부 블랙리스트·관리지침 실물 공개’, 한겨레의 ‘블랙리스트 청와대 정무수석실 작성 전달 추적’ 기사는 예심과 본심 과정에서 세 편 모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땀흘린 기자정신을 잘 드러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한국일보는 박근혜 정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그간의 의혹을 실물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하면서 사건의 전체적인 규모를 전했고, 이를 이어받아 SBS가 그 리스트의 내용을 생생하게 파헤쳤으며, 한겨레가 작성 주체 특정 등을 규명함으로써 블랙리스트 생산 구조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3사 협업’ 보도가 된 셈이다. JTBC의 ‘김영재와 세월호 7시간’ 보도는, 김영재 원장의 ‘세월호 7시간’ 동안 행적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최순실씨와의 관계를 통해 현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았음을 부인하는 가운데, 김영재 원장 부인의 발언에서 취재 단초를 잡고 쓰레기통을 뒤져서 이를 반박하는 증거를 찾아내고 이후 심층취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함으로써 ‘발로 뛰는 기자정신’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점이 평가됐다. 동아일보의 ‘정호성 녹취파일과 유출 기밀문건 추적’은 이 녹취록이 이미 검찰과 ‘박영수 특검’팀이 입수한 상태라는 점에서 결국 공개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기는 했지만, 단편적이고 부정확한 녹취록이 SNS 등을 통해 유통 되는 상황에서 ‘정확한 전문’을 통해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도록 기여했다는 점에서 수상작으로 뽑혔다.
한겨레의 ‘세월호 및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속보도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올림머리’ 관련 단독보도, 황교안 총리의 세월호 관련 외압 및 인사보복 단독보도, 우병우 민정수석의 해경 상황실 압수수색 방해 외압 및 인사 농단 보도, 감사원 세월호 참사 발표에 대한 청와대의 수정 개입 보도 등 여러 개의 다른 단독 보도를 통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명징하게 드러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에서는 한국일보의 ‘세월호 수색 한창때 朴은 미용시술 흔적’보도와 경향신문의 ‘밥상 위의 세계’가 선정됐다. 한국일보 보도는 박근혜 대통령의 미용시술 여부를 밝히기 위해 취임 전 사진 1천여 장과 취임 후 촬영된 수만 장의 사진을 비교분석했다는 ‘창의적 발상’과 ‘노력’ 이 인정돼, 높은 평가를 받았다. 경향신문 보도는 ‘밥상 위의 불평등’ 문제와 조류인플루엔자(AI)의 주 원인인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사전에 정확하게 지적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지역취재보도 부문 수상작인 부산일보의 ’군기해이 軍 폭발사고, 줄줄 새는 국민 세금 막았다‘는 언론의 접근이 어려운 군 내부 취재를 통해 세금 낭비 상황과 함께 지자체가 국방 예산 일부를 부담하고 있음을 드러냈다는 점, 군 부대의 허술한 폭약 관리 실태, 해당 사단장의 소극적인 사건 대응을 보도함으로써 언론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 언론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한국 사회 발전에 장애물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무기력한 상황을 겪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하면서 다시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언론 본연의 존재감을 인정받고 있다. 제 317회 기자상 심사 때도 이같은 ‘인정’을 넓힐 수 있는 보도들이 앞다퉈 출품되기를 기대해본다.
(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