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선언 등 9473명, 문화계 블랙리스트 확인」
한국일보 문화부 조태성 기자
수상작을 보니 대부분 국정농단 관련이네요. 그래선지 받아도 기쁘다기보다는 우울합니다. 어찌 보면 기자라는 직업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겠지요.
수상소감을 쓰려고 앉으니 시간은 쑥 과거로 되돌아갑니다.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졌던 것은 지난해였지만 소문은, 풍문은 2014년부터 돌았습니다. 지원하는 쪽에서는 힘들어 죽겠다는 푸념이, 지원받는 쪽에서는 대체 요즘 지원 선정되는 곳을 보면 아는 곳이 없느냐는 하소연이었습니다. 처음엔 투정, 푸념 아니겠냐 생각했었습니다. 그치지 않고 이어지던 이런저런 투정과 푸념이 지시하는 방향은 딱 하나였습니다.
“리스트가 있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취재를 해보니 정황과 진술은 넘쳐나지만, 똑 떨어지는 뭔가가 없었습니다. 소액다수 지원이다 보니 한꺼번에 취합해서 정리하더라도 맥락을 잡기가 애매했습니다. 더구나 지원사업은 담당자가 딱 정해져 있어 무슨 사업, 하면 바로 담당자가 노출되는 구조입니다. 모두가 알지만, 그 어느 누구도 대놓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반적인 뭔가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그걸 찾기 위해 제 나름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물이 9473명 리스트입니다.
지금 제가 제일 걱정스럽게 생각하는 건 지원사업 기관 직원들의 사기입니다. 이런 리스트로 한번 조직을 휘저어놓으면, 그 조직 내 반목과 알력은 무시 못 할 수준일 겁니다. 문화예술쪽은 참 좋은 게, 돈은 못 벌어도 제 좋은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만나면 무척이나 밝다는 점일 겁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돈이 아니라 가치에 대해 얘기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좋은 경험입니다.
그런데 블랙리스트 이후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못 믿는, 그런 상황이 제법 되는 것 같습니다. 관련 보도가 이어질 때마다, 그리고 아마 지금도 직원들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무슨 건에 대해 누가 어디까지 책임을 질 것이냐일 겁니다. 이 파문이 온전하게 정리된 뒤 이 모든 바람이 잦아든 뒤 그분들 모두가 웃음을 되찾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 그분들 눈이 더 빛나야, 더 좋은 작품을, 더 훌륭한 작가를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요. 블랙리스트가 다시는 없어야 할 이유엔 그런 점도 포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회차 심사평
제316회 전체 총평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의 진상과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요구 역시 국민적 차원에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번 316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현장기자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땀을 흘린 기사들이 다수 출품됐다.
취재보도 1, 2 보도 부문에서 수상작으로 뽑힌 6편 모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기사였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다룬 한국일보의 ‘세월호 선언 등 9473명, 문화계 블랙리스트 확인’, SBS의 ‘문체부 블랙리스트·관리지침 실물 공개’, 한겨레의 ‘블랙리스트 청와대 정무수석실 작성 전달 추적’ 기사는 예심과 본심 과정에서 세 편 모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땀흘린 기자정신을 잘 드러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한국일보는 박근혜 정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그간의 의혹을 실물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하면서 사건의 전체적인 규모를 전했고, 이를 이어받아 SBS가 그 리스트의 내용을 생생하게 파헤쳤으며, 한겨레가 작성 주체 특정 등을 규명함으로써 블랙리스트 생산 구조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3사 협업’ 보도가 된 셈이다. JTBC의 ‘김영재와 세월호 7시간’ 보도는, 김영재 원장의 ‘세월호 7시간’ 동안 행적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최순실씨와의 관계를 통해 현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았음을 부인하는 가운데, 김영재 원장 부인의 발언에서 취재 단초를 잡고 쓰레기통을 뒤져서 이를 반박하는 증거를 찾아내고 이후 심층취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함으로써 ‘발로 뛰는 기자정신’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점이 평가됐다. 동아일보의 ‘정호성 녹취파일과 유출 기밀문건 추적’은 이 녹취록이 이미 검찰과 ‘박영수 특검’팀이 입수한 상태라는 점에서 결국 공개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기는 했지만, 단편적이고 부정확한 녹취록이 SNS 등을 통해 유통 되는 상황에서 ‘정확한 전문’을 통해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도록 기여했다는 점에서 수상작으로 뽑혔다.
한겨레의 ‘세월호 및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속보도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올림머리’ 관련 단독보도, 황교안 총리의 세월호 관련 외압 및 인사보복 단독보도, 우병우 민정수석의 해경 상황실 압수수색 방해 외압 및 인사 농단 보도, 감사원 세월호 참사 발표에 대한 청와대의 수정 개입 보도 등 여러 개의 다른 단독 보도를 통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명징하게 드러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에서는 한국일보의 ‘세월호 수색 한창때 朴은 미용시술 흔적’보도와 경향신문의 ‘밥상 위의 세계’가 선정됐다. 한국일보 보도는 박근혜 대통령의 미용시술 여부를 밝히기 위해 취임 전 사진 1천여 장과 취임 후 촬영된 수만 장의 사진을 비교분석했다는 ‘창의적 발상’과 ‘노력’ 이 인정돼, 높은 평가를 받았다. 경향신문 보도는 ‘밥상 위의 불평등’ 문제와 조류인플루엔자(AI)의 주 원인인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사전에 정확하게 지적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지역취재보도 부문 수상작인 부산일보의 ’군기해이 軍 폭발사고, 줄줄 새는 국민 세금 막았다‘는 언론의 접근이 어려운 군 내부 취재를 통해 세금 낭비 상황과 함께 지자체가 국방 예산 일부를 부담하고 있음을 드러냈다는 점, 군 부대의 허술한 폭약 관리 실태, 해당 사단장의 소극적인 사건 대응을 보도함으로써 언론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 언론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한국 사회 발전에 장애물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무기력한 상황을 겪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하면서 다시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언론 본연의 존재감을 인정받고 있다. 제 317회 기자상 심사 때도 이같은 ‘인정’을 넓힐 수 있는 보도들이 앞다퉈 출품되기를 기대해본다.
(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