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와 세월호 7시간」
JTBC 사회2부 이호진 기자
“저희는 그날 서울에도 없었는데.”
두 달여 전 처음 김영재 원장의 부인 박채윤 씨와 접촉했을 때 박 씨가 보낸 문자 메시지입니다. 청와대를 출입했느냐는 질문에 나온 답입니다. 세월호 참사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왜 저런 대답을 했을까. 대통령 비선 의료진을 취재하며 품고 있던 의문이었습니다.
취재는 강남의 한 성형외과가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은 것 같다는 제보에서 시작됐습니다. 처음 본 김영재 의원은 강남의 수많은 성형외과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최순실씨 국정개입 사건이 그러했듯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심으로 취재에 뛰어들었습니다.
취재팀은 병원 계단에 버려진 대형 쓰레기봉투를 발견하고 찢긴 내용물을 하나하나 맞춰보고 분석했습니다. 대기업 오너 일가와 연예인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와 함께 ‘정유연’ ‘최 회장님’ ‘최 외 1인’이라는 단어를 찾아냈습니다. 각종 특혜들이 최순실 씨의 단골병원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는 단서가 처음 확보된 겁니다.
같은 건물 화장품업체와 의료기기 업체들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김 씨 부인과 처남이 운영자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회사의 행적을 추적했습니다. 뚜렷한 실적도 없던 업체가 대통령 해외 순방을 수시로 따라다닌 것이 확인됐고 유명 면세점에도 입점한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일반의 출신 김영재 씨가, 성형외과가 없는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에 외래의사로 위촉된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취재는 결국 처음 품었던 의문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김영재 측은 묻지도 않았던 세월호 참사 당일 알리바이를 꺼냈을까. 실마리는 청와대 출입 사진기자단이 촬영한 사진에서 나왔습니다. 한국일보 보도 이후 취재팀은 시술 시간을 더 구체적으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부터 촬영한 사진 수백 장을 다운받아 성형외과 전문의 6명과 분석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닷새 뒤인 2014년 4월 21일, 왼쪽 하관에 또렷한 시술 흔적이 확인됐습니다.
취재팀은 두 달 전 대통령 비선 의료진 김영재 의원을 처음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이제 특검 수사에서 그간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었다는 점이 차례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세월호 7시간이 밝혀질 때까지 취재는 계속될 겁니다.
회차 심사평
제316회 전체 총평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의 진상과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요구 역시 국민적 차원에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번 316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현장기자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땀을 흘린 기사들이 다수 출품됐다.
취재보도 1, 2 보도 부문에서 수상작으로 뽑힌 6편 모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기사였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다룬 한국일보의 ‘세월호 선언 등 9473명, 문화계 블랙리스트 확인’, SBS의 ‘문체부 블랙리스트·관리지침 실물 공개’, 한겨레의 ‘블랙리스트 청와대 정무수석실 작성 전달 추적’ 기사는 예심과 본심 과정에서 세 편 모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땀흘린 기자정신을 잘 드러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한국일보는 박근혜 정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그간의 의혹을 실물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하면서 사건의 전체적인 규모를 전했고, 이를 이어받아 SBS가 그 리스트의 내용을 생생하게 파헤쳤으며, 한겨레가 작성 주체 특정 등을 규명함으로써 블랙리스트 생산 구조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3사 협업’ 보도가 된 셈이다. JTBC의 ‘김영재와 세월호 7시간’ 보도는, 김영재 원장의 ‘세월호 7시간’ 동안 행적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최순실씨와의 관계를 통해 현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았음을 부인하는 가운데, 김영재 원장 부인의 발언에서 취재 단초를 잡고 쓰레기통을 뒤져서 이를 반박하는 증거를 찾아내고 이후 심층취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함으로써 ‘발로 뛰는 기자정신’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점이 평가됐다. 동아일보의 ‘정호성 녹취파일과 유출 기밀문건 추적’은 이 녹취록이 이미 검찰과 ‘박영수 특검’팀이 입수한 상태라는 점에서 결국 공개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기는 했지만, 단편적이고 부정확한 녹취록이 SNS 등을 통해 유통 되는 상황에서 ‘정확한 전문’을 통해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도록 기여했다는 점에서 수상작으로 뽑혔다.
한겨레의 ‘세월호 및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속보도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올림머리’ 관련 단독보도, 황교안 총리의 세월호 관련 외압 및 인사보복 단독보도, 우병우 민정수석의 해경 상황실 압수수색 방해 외압 및 인사 농단 보도, 감사원 세월호 참사 발표에 대한 청와대의 수정 개입 보도 등 여러 개의 다른 단독 보도를 통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명징하게 드러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에서는 한국일보의 ‘세월호 수색 한창때 朴은 미용시술 흔적’보도와 경향신문의 ‘밥상 위의 세계’가 선정됐다. 한국일보 보도는 박근혜 대통령의 미용시술 여부를 밝히기 위해 취임 전 사진 1천여 장과 취임 후 촬영된 수만 장의 사진을 비교분석했다는 ‘창의적 발상’과 ‘노력’ 이 인정돼, 높은 평가를 받았다. 경향신문 보도는 ‘밥상 위의 불평등’ 문제와 조류인플루엔자(AI)의 주 원인인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사전에 정확하게 지적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지역취재보도 부문 수상작인 부산일보의 ’군기해이 軍 폭발사고, 줄줄 새는 국민 세금 막았다‘는 언론의 접근이 어려운 군 내부 취재를 통해 세금 낭비 상황과 함께 지자체가 국방 예산 일부를 부담하고 있음을 드러냈다는 점, 군 부대의 허술한 폭약 관리 실태, 해당 사단장의 소극적인 사건 대응을 보도함으로써 언론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 언론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한국 사회 발전에 장애물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무기력한 상황을 겪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하면서 다시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언론 본연의 존재감을 인정받고 있다. 제 317회 기자상 심사 때도 이같은 ‘인정’을 넓힐 수 있는 보도들이 앞다퉈 출품되기를 기대해본다.
(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