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6편
아스팔트에 꽂힌 1m짜리 포탄 한겨레신문
아스팔트에 꽂힌 1m짜리 포탄
한겨레신문 박종식 기자
“한겨레 기자시죠?”
“네, 그런데요”
“해경에서 찾고 있던데요. 연평도에 한겨레 기자분만 들어오셨다고 하던데”
“아 그렇군요”
그때 비로소 알았다. 연평도 포격 현장에 기자는 나와 취재기자, 한겨레21 선배만이 들어 와 있다는 걸.
6시간이 걸려 도착한 연평도는 꺼지지 않고 남은 잔불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부두에서 마을로 향하는 소방차와 앰뷸런스의 행렬 사이로 매캐한 냄새가 새어 들어 왔다. 차량 행렬은 초등학교 운동장에 멈춰 섰다.
카메라를 둘러 메고 새벽 어둠 속으로 숨었다. 타는 냄새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군데 군데 무장을 한 군인이 서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그들 앞을 지났다. 초조한 마음에 걸음은 빨라졌다. 포탄에 뜯어져 나간 아스팔트 더미가 발에 걸렸다.
불을 쫓아 간 민가에는 의용소방대원들과 군인들이 꺼지지 않은 불길을 잡고 있었다. 물에 젖은 어린 병사들이 자욱한 연기 속에서 밭은 기침을 뱉었다. 그들은 사진기를 든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조금이라도 빨리 불길을 잡는 것이었다.
불길이 잡힌 민가는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고 있었다. 포탄 파편에 깨진 유리창 너머로 절이다 만 배추포기 더미가 보였다. 큰길 가 식당 앞에는 먹다만 자장면과 짬뽕이 차갑게 식어있었다.
불타버린 민가 앞을 빠른 걸음의 젊은이가 지나갔다. 그를 쫓았다. 사내는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지하벙커로 향했다. 지하벙커에는 주민들이 스티로폼에 올라 앉아 군용모포로 몸을 감은 채 날이 밝아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 벙커를 밝히는 촛불이 흔들렸다.
“6시에 연평도 떠나는 배가 들어올 거에요. 지금 면사무소로 가야 되요”
젊은 사내의 말에 주민들은 굳은 진 몸을 일으켜 지하벙커를 빠져나왔다. 초로의 주민들은 차가운 지하벙커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다. “지금 나가면 우리가 어딜 가겠어”
하지만 장정들은 주저앉은 노인들을 면사무소로 이끌었다. 면사무소에 모인 주민들은 승용차에, 봉고에, 트럭에 몸을 싣고 부두로 향했다. 써치라이트를 켠 행정선이 들어왔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먼저 배에 태워졌다.
새벽녘, 붉게 물든 연기를 뚫고 연평도 주민을 태운 행정선이 뭍으로 향했다. 행정선 3대가 오갔고, 날이 밝았다. 회사로 보고를 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봤지만 불통이었다.
연평도 주민들을 떠나보낸 부둣가에는 사진기를 든 낯모를 사내가 서있었다. 옹진군청 소속 직원이라고 했다. 담배를 한 대 빌려 피웠다. 그는 해경이 우리를 찾고 있음을 알려줬다. 담배를 끄고 검은 연기가 감싸고 있는 연평도를 바라봤다.
“조심하셔 할 거에요”
“뭐, 별 일 있겠습니까”
그리고 별 일은 없었다. 해경이 기자를 신경 쓸 만큼 연평도는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연평도는 전쟁터였다.
대구 도시고속도로 교통지옥 문제 매일신문
대구 도시고속도로 교통지옥 문제
매일신문 경제부 임상준 기자
뚜껑을 열어 보니 사기였다. 8년간의 공사, 3천650억원이란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교통지옥을 불렀다. 대구시와 한국도로공사는 중부내륙고속도로(옛 구마고속도로) 지선 서대구IC-옥포 구간을 확장하고 남대구 IC 입체화 공사가 마무리면 이 일대 만성 교통 정체가 해소되는 등 대구 교통 환경을 크게 개선된다고 홍보 해왔다. 그러나 결과는 정 반대였다. “오늘도 도시고속도로 교통상황은 어렵습니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역 출근길 교통방송에는 도시고속도로 교통지옥을 알리는 코멘트가 등장할 정도였다. 고속도로가 확장개통 되면서 그간 함께 이용했던 고속도로와 도시고속도로가 분리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천억원을 투입한 공사인데… 이미 엎질러진 물 앞에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회의가 취재진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7월 초 ‘도시고속도로 교통지옥’이란 첫 보도 이후 시민들의 반향이 줄을 이었다. 인터넷 게시판에 격려의 글 등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더욱 악착같이 매달릴 수 있는 동력이었다. 단순한 불만 기사에 그치지 않고 2000년대 초 고속도로 확장공사 계획 단계부터 검토해 나갔다.
대구시와 한국도로공사 정보공개를 통해 시시비비를 따져나갔다. 대구시와 도로공사의 잘못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정확한 교통예측 없이 공사를 강행한 것이다. 그러나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 전에 해결책 마련이 급선무였다. 대구의 문제고, 대구시민의 문제고, 대구 경제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특종은 아니었다. 하지만 속보를 써가는 도중 특종이 돼 버렸다.
연이어 대구시와 한국도로공사의 안일한 행정이 지면에 오르자 서로 떠넘기기에 급급했던 두 기관은 그제야 해결책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움직였다. 급기야 재선 시장인 대구시장이 시민들 앞에 머리를 숙였다. 국토부 장관도 대구를 찾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취재진은 더욱 바빠졌다. 횟감처럼 펄떡거리는 현장과 기사 발굴을 해야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6개월여의 사투(?). 드디어 문이 열렸다. 긴급예산 200억원을 투입, 도시고속도로를 넓히고 단군 이례 전례가 없다던 고속도로를 뒤로 물리고 그 만큼 도시고속도를 확장한다는 안이 발표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중앙 정부를 상대로 협상 능력을 키운 지방정부(대구시)의 소중한 경험이었다. 교통국장을 비롯 과장, 계장 등 대구시 공무원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서울 출장길에 올랐다. 한 공무원은 “도시고속도로 문제로 45번이나 서울에 출장을 갔다. 공무원 생활동안 이렇게 잦은 출장과 한 사안에 매달려 끙끙 앓은 적이 없었다”며 “매일신문사 때문에 곤욕을 치렀지만 6개월간 중앙 정부를 상대하고 관계 기관과 맞대는 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끝난 싸움은 아니다. 도시고속도로 확장과 요금소 설치, 고속도로 차로가 축소되고 도시고속도로 공사가 마무리 될 때까지 펜촉은 거두지 않을 것이다.
동해안 최북단어장 갯녹음 최초 보도 강원민방
동해안 최북단어장 갯녹음 최초 보도
GTB강원민방 보도국 조기현 기자
우리나라 최고의 해양 자원인 동해안을 끼고 있는 강원도. 하지만 정작 강원도에서 생활하는 기자가 바다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자책이 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쉽게 접근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이제야 바다 생태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됐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사실 갯녹음은 이미 30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발생했고, 조수간만의 차이가 있는 서해안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바다에 확산돼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재팀이 갯녹음이라는 아이템에 주목한 이유는 청정해역인 동해안 최북단 저도어장과 삼선녀어장에까지 갯녹음이 확산됐다는 사실 때문이다.
흔히 바다의 에이즈라 불리는 갯녹음은 발생과 동시에 동해안 최북단 바다 생태를 무차별 파괴시켰다. 갯바위에 석회질 덩어리가 붙으면서 해조류가 사라지고, 해조류를 먹고 사는 수산 동물들도 급격히 자취를 감췄다. 갯녹음이 심화되면서 먼바다에서 알을 낳기 위해 연안저층으로 돌아오는 물고기들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앞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해녀와 머구리들은 해산물이 잡히지 않아 생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아직까지 갯녹음 발생에 대한 정확한 원인조차 밝혀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 사이 우리의 해양 자원은 무서운 속도로 사막화되고 있다.
다행히 정부는 취재팀의 동해안 최북단 갯녹음 피해 보도 이후 정부 공동 조사단을 구성해 정밀 조사에 착수했고, 동해안 최북단 어장 갯녹음 현상을 올해 연구 사업으로 책정해 원인 규명과 복원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취재팀의 활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의 갯녹음 연구의 발전을 위해 취재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그 첫걸음으로 갯녹음의 원인과 유형, 올바른 복원 방법을 찾기 위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착수했다. 취재팀의 노력이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많은 어민들을 웃게 만들었으면 한다. 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 해양 자원의 소중함을 느끼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달이 넘도록 전국의 바다를 돌아다니며 갯녹음 취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GTB 보도국 선배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佛은행에 현대상선 1.2조 예금? 출처 관심 이데일리
佛은행에 현대상선 1.2조 예금? 출처 관심
이데일리 마켓뉴스부 오상용 기자
이데일리 오상용 기자
현대건설 매각은 해를 넘겨서도 미궁 속을 헤매고 있다. 현대건설 매각을 진행한 주주협의회(현대건설 채권단)와 인수후보군인 현대그룹, 현대차그룹 모두 평행선만 달리다 자율적 해결방안을 찾는데 실패했다. 결국 현대건설의 운명은 사법부의 판단에 의해 결정이 날 예정이다.
현대건설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던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간 감정의 골이 깊고 매각을 진행했던 채권단에 대한 불신도 깊어 사법부의 1차 결정이 내려져도 모두가 승복하기는 힘든 구도다. 향후 삼자간 물고 물리는 소송전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여 현대건설 매각이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분명 인수합병(M&A)은 기업의 핵심성장 전략이다. 참여 시장내 점유율을 단숨에 높이는 것은 물론, 성장성이 정체된 기업에 숨통을 열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M&A가 무리한 외부차입과 짝을 이뤘을 때 사회적으로 얼마나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이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사례를 통해 확인했다.
현대건설 매각 역시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간 치열한 인수경쟁으로 또 다른 ‘승자의 저주’ 사례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컸다. 현대건설 부실의 원인제공자였던 구(舊)사주들에게 회사경영권을 되판다는 비난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때 보다 현대건설 보유지분을 매각하는 채권단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러나 현대건설 매각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기자는 채권단의 주먹구구식 일처리와 무원칙, 채권 은행간 내분에 놀라고 좌절하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인수후보가 제출한 자금조달방안과 향후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의 재무에 미칠 영향을 채권단이 좀 더 꼼꼼히 따졌다면 이번 논란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채권단은 본입찰 마감 하루만에 서둘러 우선협상자를 선정, 발표하면서 대규모 매각차익을 현실화하는 데만 급급했다.
현대건설 매각을 둘러싼 이번 논란은 우리 금융시장에 많은 과제를 남겼다. M&A시장을 질식시키지 않으면서도 ‘승자의 저주’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낳았다. 일부 국회의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업 총수의 독단적인 M&A 판단을 견제할 수 있도록 상법 개정안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감독당국도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금융기관이 진행하는 출자회사 M&A에 대한 모범규준안 마련을 추진중이다.
복마전 같은 현대건설 M&A가 그나마 우리 사회에 남긴 위안거리다. 현대건설 매각에 제동을 걸었던 이데일리의 `佛은행에 현대상선 1.2조 예금? 출처 관심` 기사의 의미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 원충연 전 사무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 원충연 전 사무관의 ‘포켓수첩’ 단독보도
서울신문 사회부 김승훈 기자
‘원충연 포켓수첩’ 단독 보도(7매)
김승훈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
지난해 11월 23일, 정치권은 두 번 요동쳤다. ‘원충연 포켓수첩’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문이다. 그날 오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 점검1팀 원충연 전 사무관의 ‘포켓수첩’이 서울신문을 통해 공개됐다. 수첩은 MB정부 내 참여정부 인사들을 걸러내기 위한 ‘살생부’나 다름없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해 ‘친박’ 이혜훈 의원, 원희룡·공성진 의원 등 여권 인사 사찰 내용도 들어 있었다. 민주·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 수뇌부는 물론 YTN, MBC, KBS 등 방송사 노조의 동향을 파악한 내용도 적혀 있었다. 민간인(김종익 전 NS한마음 대표)에 맞춰졌던 초점이 정·관·재·언론계 사찰로 확대됐다.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국정조사와 특검 도입’을 거세게 요구했다. 이런 상황은 오후 2시 34분,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급반전했다. ‘국정조사’ 목소리는 쑥 들어갔다. ‘원충연 포켓수첩’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안보 정국’으로 직행했다.
‘원충연 포켓수첩’은 지원관실의 사찰 실체를 밝히는 서막에 불과하다. 40여명에 달하는 지원관실 직원들이 여러 인사의 사찰 내용을 원 전 사무관처럼 개인수첩에 적고, 그 내용을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실제 지원관실 직원 7명이 사용한 내·외부망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그 정황을 뒷받침할 결과물도 나왔다.
지원관실의 사찰 실체 규명은 민간인 불법 사찰을 파헤친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데서 비롯됐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김종익 전 대표) 사찰에 청와대 인사가 개입된 정황을 최초 보도했다. 정치권 안팎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른바 ‘BH하명’이 그것이다. 이어 청와대 인사가 개입한 더 결정적인 내용을 보도했다. 민간인 불법 사찰 결과를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보고한 정황을 기사화했다.
검찰은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 청와대 개입 정황을 곳곳에서 파악했으면서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점을 잇달아 지적했다. 이러한 연속보도 이후 검찰 수사의 문제점에서 지원관실 사찰 실체 규명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지원관실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총체적으로 꿰뚫고 싶었다. ‘원충연 포켓수첩’ 보도는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첫 번째 작품이다.
정부·여당 고위 관계자들은 “정권 교체 뒤 정부 내 전(前) 정권 인사들과 반정부 성향의 인사들에 대한 사찰은 역대 정권에서도 이뤄졌는데, 왜 현 정권만 문제를 삼느냐”고 항변한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호남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경상도 인사를 때려잡고, 경상도 인사가 정권을 잡으면 호남 사람들을 숙청하고…. 이런 구태를 ‘위대한 유산’으로 계속 물려주려 하는가”라고. 이제 ‘공정 사회’를 화두로 내건 청와대가 나설 때다.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결단을 내려야 한다. 권력이 꺼려하는 진실이 언론을 통해 계속 보도되기 전에 권력 핵심부(청와대)가 나서 진실을 먼저 밝히려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믿기지 않는 구타 사건 MBC
믿기지 않는 구타 사건
MBC 보도제작2부 김재용 기자
‘돈을 주면 폭력을 휘둘러도 괜찮다?’
구타 자체의 폭력성과 비윤리성도 그렇지만 <믿기지 않는 구타사건> 1,2편을 취재하면서 뇌리에서 끝까지 떠나지 않았던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이런 믿을 수 없는 자신감이 그들에게 생겨난 것일까?’
이 문제는 비록 수학문제처럼 똑떨어지는 것이 아니었지만 이번 사건을 취재하는데 중요한 암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일종의 폭력적 구조가 실제로 해당 기업 내에서 존재해왔다면 그건 유홍준 씨(탱크로리 화물기사)에 대한 구타 외에도 다른 폭력이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더불어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한 자본과 노동의 관계’, ‘금권주의’, ‘초법적 특권의식’ 등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시켜줄 가능성도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자 침소봉대일까요? 그러나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수많은 노동자들과 약자들이 고통 받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다름 아닌 ‘자본과 노동관계의 비대칭성’ 그리고 ‘노동자에 대한 유무형의 폭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비록 미완의 취재물로 끝난다하더라도 이런 고민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처음에 이번 사건을 접했을 때는 이번 사건이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 줄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취재 초기엔 앞서 언급한 문제의식을 갖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파업 문제 등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노동문제까지 포괄하는 취재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취재 며칠 만에 바뀌었습니다. 확인할수록 이번 건은 이번에 보도한 <시사매거진 2580> 1,2편으로도 전부 포괄하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내용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한 부분은 많은 전현직 직원들이 증언한 해당 재벌 2세 기업인의 다음과 같은 평소 발언이었습니다.
"직원들은 머슴이다. 머슴들은 잘 먹여야한다"
이는 아주 오래전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국회 청문회에 나와 “머슴(당시엔 전문 경인인을 지칭)이 뭘 알겠노?”라고 했던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증언을 들었을 때 처음엔 헛웃음부터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냥 웃어넘길 부분이 아닙니다. 개인과 개인의 자유로운 계약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발언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기업주가 이런 기초를 몰랐을까요? 그러나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결론은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우리사회가 외형은 자본주의로 바뀌었지만, 인식은 아직도 봉건적인 그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증거라는 겁니다.
‘노동자=머슴?’. 백번 양보해 그가 큰 진정성을 담고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하더라도 이런 사고의 틀 속에서 ‘사람을 야구 방망이로 패고도 돈 좀 쥐어주면 된다’는 천박하고도 초법적인 발상이 자라났을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에 한 임원이 해명을 한다며 전화를 걸어와 ‘파이트 머니(fight money)’라고 운운한 것은 이런 인식들이 근저에는 깔려있었음을 반증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발상이 여전히 놀라울 따름입니다만 우리 주변의 또 어느 곳에서 ‘금력을 통해서라면 폭력도 가능하다’라는 인식이 통하고 있는지 깊게 따져봐야 할 일입니다.
결국 이번 사건은 재벌 2세 기업인의 일탈행위 그 자체도 문제였지만, 비록 일부라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자본이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꼭 건강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수많은 노동현안이 단순히 ‘밥그릇 다툼이나 정치적 패권 싸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과 노동의 바람직한 관계설정의 문제임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취재하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경찰보다 오히려 저에게 가혹한(?) 검증 아닌 검증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화물기사 유홍준님. 그리고 해당 기업의 전현직 임직원들은 ‘보도 이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믿기 어려운 공포심을 갖고 있었음에도 결국 취재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다행히 보도 이후 경찰이 신속한 수사를 벌였고 이제는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사회, 공정한 사회로 가는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방송에는 공개할 수 없었지만 취재과정에서 만났던 평범한 노동자 유홍준씨의 고3생 딸의 눈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이런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 모르는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이 조금은 사라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