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6편
서해 불법조업 중국어선-일렬로 묶은 채 단속저항 …
서해 불법조업 중국어선-일렬로 묶은 채 단속저항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철 기자
지난 2006년부터 해양경찰의 무허가 불법 조업 중국어선 단속 현장을 경비함에 승선하여 10여 차례 취재 중 중국어선들의 단속 중 발생하는 여러 상황들을 목격했다.
2010년 12월 들어 무허가 어선들이 집단으로 불법조업을 일삼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2월 20일 해경의 중국어선 집중 단속기간을 맞아 서해지방해경청의 1천5백t급 이상의 대형 함정 9척과 헬기까지 동원한 전방위 단속 계획을 입수했다. 20일 전남 목포항에서 출동하는 3천t급 경비함인 3009함에 승선하여 취재중 21일 새벽 5시께 홍도 서방 26마일 해상에서 50여 척의 무허가 중국어선들이 집단 조업 중이라는 결과를 전해 듣고 근거리로 이동, 8시쯤에 헬기로 상황을 확인했다.
3009 함장과 헬기 기장의 무선 교신 내용을 옆에서 들어보니 50여 척의 중국어선이 전부 무허가 어선이라 불법조업 현장을 잘 주시하고 강한 저항과 집단행동이 예상된다는 긴박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해상에는 여기저기에서 그물을 내리고 조업하던 50여 척의 중국어선들이 해경헬기의 저공비행과 멀리서 다가오는 경비함의 모습을 확인한 후 황급히 조업을 멈추고 그물을 올리고 갑자기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이동하는 모습이 공중에서 확연히 목격되었다.
선회하는 헬기 아래 여기저기 흩어진 중국어선들이 점차 속력을 올리며 한 군데로 모이며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먼저 대열을 이루며 이동한 20여 척은 저만치 도주하고 후미의 12척이 대형 운반선을 중심으로 하나둘씩 대열을 이루더니 해상에서 이웃 어선들과 결박하는 상황과 선원들이 쇠파이프와 흉기로 무장하고 어선 가장자리에서 고속단정에 탑승한 해경의 단속을 막기 위해 대치하는 상황, 경비함의 물대포로 진압하는 긴박한 순간들을 현장 상공을 선회하는 해경헬기에서 2대의 카메라로 광각, 망원렌즈 등의 장비로 포착하였다.
2시간이 넘는 동안에 해상에서 벌어지는 중국어선의 불법행위와 해경에 흉기로 무장하고 단속에 대항하는 다양한 상황과 해양경찰의 우리 측 EEZ 해상에서 중국어선들의 불법행위 단속에 집단으로 저항하는 상황을 항공 촬영에 성공하였다.
이후 보도된 사진 10여 장이 AFP 통신사에도 제공되어 중국의 집단 불법조업에 대해 국제적인 관심과 위법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한 장의 사진이 보여주는 보도사진의 역할과 사명감에 대해 현장을 취재한 사진기자의 자세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제주의 또 다른 기억 유배문화, 그것의 산업적 가치 …
제주의 또 다른 기억 유배문화, 그것의 산업적 가치
제민일보 장공남 기자
고교시절에 올랐던 한라산 정상을 20여년만에 다시 올랐던 것은 지난 2010년 11월이었다. 조선조 제주에 온 유배인들이 한라산 정상에 남긴 흔적을 확인하기 위한 등반이었다.
서울에서 멀리 추방해 일생토록 귀환하지 못하도록 하는 형벌이 유배형이다. 제주에 온 유배인들은 어떤 사람이었고 제주에서 무엇을 남겼을까? 제주주민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 같은 물음에서 취재는 시작됐다.
일부 유배인은 자손을 낳고 제주입도조가 됐다. 제주사람이 아니었으나 그들의 자손은 제주사람이 되어 제주의 성씨를 다채롭게 했다. 제주출신 또는 제주사람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제주에 거주하는 유배인 후손의 수는 적지 않다. 제주출신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현재 제주에 살고 있는 사람은 제주사람이 될 수 있다. 역사는 이것을 스스로 말하고 있다.
취재에 앞서 준비를 탄탄히 했다. 제주에 온 200여명의 유배인 중 주제별로 30여명을 추렸다. 이 과정에서 제주대 양진건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양진건 교수는 2대에 걸쳐 제주유배를 연구하고 있다. 연재가 진행되는 동안 2번이나 인터뷰에 응해 줬다. 또 앎이 부족한 기자의 수많은 질문에 일일이 답해줬다. 특히 출판 예정인 추사의 제주 유배생활을 다룬 책을 선뜻 내주기까지 했다.
기획기사는 2010년 6월 2일자 제민일보 20주년 창간호를 시작으로 12월 29일자까지 이어지며 모두 16차례 독자와 만났다.
선풍기를 가까이 하며 여름 더위를 견뎌 내자 가스히터를 틀어야 하는 겨울이 됐다. 현장 취재와 자료 취재를 겸했다. 주중에는 출입처 기사를 쓰고 토요일이면 어린 딸과 함께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역사의 현장을 찾았다. 싫다 않고 따라 다녀준 딸이 대견스럽다.
2000년 S사의 디카를 시작으로 5번이나 기종을 변경했다. 이 같은 디카에 욕망을 역사현장 촬영에까지 이어가려 했지만 장비나 결과물에서 전문 사진기자에 비해 역부족이었다는 점은 시인해야 겠다.
녹록치 않은 현실 속에 7개월 내내 술과 같이 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기사를 쓰는 날만은 예외였다.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긴 밤을 견뎌 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연재가 진행되자 가장 먼저 기사를 알아 본 사람은 제민일보 진성범 사장이었다. 현대적 감각으로 기사를 썼다며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제주도교육청, 추자중학교, 목포대 김경옥 교수도 도움을 줬다. 한라산 등반은 김영학씨가 동행했다.
연재가 진행될수록 참고도서와 논문은 계속 늘어갔다. 아내가 참고자료 구입에 흔쾌히 지출을 허락한 덕분에 참고자료의 확보는 순조로웠다.
유배인은 일기나 시를 남겼다. 기록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체감했다. 과거사의 교훈 중의 하나는 기록하라는 것이다.
‘도지사 독선·가짜학위 임명’개선시킨 동구권 음…
'도지사 독선·가짜학위 임명’개선시킨 동구권 음악학위 추적 보도
충청타임스 한인섭 기자
민선 단체장의 독선과 오만은 상식 이상이었다. 이번 보도는 기자가 “교육적 학위(석사·학사)가 아니다”는 답변을 받았던 시점 결판 났어야할 사안이었다. 단체장 독선과 아집은 결국 1년여만에 허상이 벗겨지고 말았다. 국내 불법교습과 현지 3주교육으로 발급됐다는 ‘가짜학위’역시 실체가 드러났다.
2009년 2월 충북도립오케스트라 창단과 지휘자 선정은 초미의 관심사 였다. ‘문화예술특별도’를 자처했던 민선4기 충북도가 추진한 첫 사업이 었기 때문이다. 두차례에 걸쳐 전국 공모를 했으나 도지사 색소폰 개인레슨 인연 음악인이 선정됐다. 응모 자격이었던 석사학위까지 가짜 의혹이 제기돼 ‘휘발성’을 지니게 됐다. 개방형 국장 인선 실패 후 불거진 탓에 충북도는 억지논리로 임명을 강행했다. 도지사 독선·전횡을 입증하려는 가짜학위 추적보도는 이렇게 시작돼 1년 10개월이 걸렸다.
이수증 해석, 대학 교과과정, 학위과정 설치 실태를 취재했다. 불가리아 정부(교육부)와 주한 불가리아 대사관, 외교부, 불가리아 주재 한국대사관, 소피아국립음악원에 공문을 보내 진위와 등급, 국내 교육과정 설치 적법성을 따졌다.‘외교라인’은 모두 “업무영역이 아니다”고 답변해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소피아국립음악원 국제협력부서는 “교육적 학위가 아니다”는 이메일 답변을 보냈다. 큰 성과였다.
임명을 철회할 것이라는 상식과 달리 충북도는 ‘공식 문서가 아니다’며 오기를 부렸다. 충북 문화계는 ‘문화예술특별도’추진과 맞물린 ‘이권’탓에 오히려 충북도 입장을 감쌌다. 충북예총이 그랬고, 민예총 마저 장단을 맞췄다.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으나 충북도는 마냥 버텼다.
물러설 수 없었다.
다음, 구글, 네이버 검색을 통해 소피아국립음악원 이수 음악인을 파악해 일일이 취재했다. 소피아국립음악원에 재학중인 유학생, 한인회도 취재했다. 국내 극소수인 정규 학·석·박사 과정 이수 음악인을 찾아냈다. 이들은 “절대 인정해선 안된다. 끝까지 추적해 달라”고 주문했다.
음악카페 가입을 통한 취재도 시도했다. 국내 최초로 동구권 가짜학위 장사에 관여했던 오스트리아 거주 음악인을 취재 할 수있었다. ‘가짜’라는 확신을 더욱 굳힐 수있었다.
가짜학위 논란 초기 무죄 판결을 받았던 러시아 학위에 대한 대법원 유죄판결은 결정적 단서로 작용했다. 대법원은 소피아음악원 학위와 ‘판박이’인 러시아 극동예술아카데미 석·박사학위 알선자와 취득자를 모두 유죄 판결했다. 시리즈‘설땅 잃은 동구권 유사학위’보도 후 충북도는 지휘자 재공모와 해촉 방침을 발표했다.
‘가짜’를 입증해 달라는 음악인들의 격려는 가장 큰 힘이었다. 언론의 지적과 명확한 근거를 묵살한 단체장의 오만은 취재를 중단할 수 없는 ‘동인’이었다.
고비고비 마다 도움을 준 불가리아 유학생 L씨와 L 교수, 취재에 응해준 전국 음악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돈주고 사들인 동구권 가짜학위가 학력란에서 사라지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낮은 세상과 공감하다 KBS
낮은 세상과 공감하다
KBS 최서희 기자
당신이 40여 년 동안 이어진 군사 독재 정권 치하에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군부는 민생을 외면하고 권력을 내주지 않으면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현실을 꼬집는 집회와 시위의 마당은 철저히 봉쇄돼있다. 당신과 동지들은 독재에 항거하며 민주화를 요구했다가 지독한 탄압을 받는다. 그래서 비슷한 아픔을 딛고 일어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 기대를 걸며 들어와 난민신청을 한다.
하지만 이 나라 법무부가 잘 받아주지 않는다. 돈 벌러 온 거 아니냐고 따진다. 난민 신청자 신분으로는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없으니 생계가 막막하다. 난민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법무부를 상대로 소송해야 되는데 법도 잘 모르고 소송이 6년도 넘게 걸린다고 한다. 법무부에 맞서 신분도 불확실하고 수임료도 없는 당신의 소송을 누가 지원하겠는가. 당신은 그저 이방인일 뿐인데.
그런데 이들을 변호하고 나서는 비영리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이 있다는 사실을 2년 전 판결문을 보고 우연히 알게 됐다. ‘공감’은 안정된 기득권의 삶으로 올라설 수 있는 사다리를 걷어차고 인권 사각의 사회적 약자들을 변호해온 젊은 변호사들이 모인 곳이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꺼리는, 소위 ‘돈 안되는’ 공익, 인권 소송을 끈질기게 맡다보니 이들이 승소한 다수의 사건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고 인권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크게 바꾸는데 기여한 승소 사건도 적지 않다. 지난해 탐사제작부에 와서야 이 변호사들과, 이들의 시선을 통해 본 ‘낮은 세상’을 프로그램에 담기로 했다.
‘공감’을 만든 박원순 변호사에게 도움을 구하고, ‘공감’ 1호 변호사인 염형국 변호사의 이 메일로 기획의도와 함께, 방송이 나가면 달라지는 대내외의 긍정적인 변화 5가지를 적어서 보냈다. ‘공감’은 앞서 ‘인간극장’의 섭외도 거절한 터라 답을 기다리는 며칠 내내 초조했다. 결과는 다행히 긍정.
처음 변호사들과 만났을 때는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서먹함을 깨기 위해 ‘공감’ 인턴, 기부자까지 함께 한 등산 모임에 사진기를 들고 따라갔다. 그 날 찍은 사진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전하고, 회식이 있으면 끝까지 남아 얘기를 나누며 마음을 터갔다.
가장 큰 고민은 인권 관련 소송들의 쟁점들이었다. 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의 사업장 변경 제한 문제, 조선‘적’ 재일동포의 국적 확인과 체류 문제 등 대중의 생활과 밀착한 주제들이 아닌 데다 복잡한 법적 쟁점도 시청자들이 잘 이해하도록 쉽게 풀어내야 했다. 여기에 쟁점에 대한 양측의 논리도 첨예했다. 주제 선정과 기사의 힘에 균형을 맞춰야 했다.
우선은 나부터 현안에 대해 가슴으로 ‘공감’할 필요가 있었다. 장애인 성폭행 피해 쟁점 토론회나 이주여성 인신매매 방지 관련법 세미나 등 ‘공감’ 변호사들이 주도하는 각종 토론회, 공청회의 방청석에 앉아 인권 교육을 받는다는 자세로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패널들의 주장을 경청했다. 또, 시청자들이 소수자, 약자의 인권 문제를 자신의 일처럼 공감하도록 선배들과 함께 제작기법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법과 인권이라는 다소 딱딱한 주제를 다뤘는데도 시청자들은 ‘공감’ 변호사들이 들려주는 낮은 세상 이야기에 마음을 열었고 격려의 글이 줄이었다.
‘대한민국에 당신들이 있어 행복하다’, ‘정의를 몸으로 실천하는 변호사다’, 등등..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며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해야한다’. 변호사법에 명시된 변호사의 사명이다. 어찌 보면 이 사명에 충실했을 뿐인 변호사들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유독 돋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의와 공정사회를 부르짖는 사회 지도층들이 출발선부터 다른 ‘낮은 세상’의 저임금 근로자, 이주여성, 노숙인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있을까.
이번에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준 대상은, 지난 7년 동안 ‘낮은 세상’에 임하며 흔들림 없이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을 변호하며 인권의 경계를 넓혀온 ‘공감’ 변호사들일 것이다.
얼음 녹은 북극 ‘자원 新대륙’을 잡아라 조선일보
얼음 녹은 북극 ‘자원 新대륙’을 잡아라
조선일보 정병선 기자
러시아 북극해 주변을 다녀온 것은 새로운 세계와의 교감이었다. 야말네네츠 자치구(Ямало-Ненецкий автономный округ)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서 북쪽으로 약 2500㎞ 떨어진 북극권 서시베리아에 위치해 있다. 서북단 땅끝마을로 인간이 살 수 있는 최후의 지역이다. ‘야말’은 네네츠 원주민어로 ‘세상의 끝-땅끝’ 을 의미한다. 북극권에 위치한 이곳은 보통 영하 40도 이상의 툰드라 지역이다.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순록을 따라 유목하는 원주민 세상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에너지 개발 현장으로 천지개벽한 곳이다. 러시아가 생산하는 석유 74%, 가스의 90%(세계가스 매장량의 3분1)가 매장돼 있는 자원보고(資源寶庫)요, ‘강한 러시아’를 지탱하는 수입원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곳은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러시아가 자원·영유권 확보전을 벌이는 ‘북극해 쟁탈전’의 전초기지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북극권과 북극해 주변의 엄청난 자원 매장량은 중동과 카스피해를 능가하는 또 하나의 에너지 공급창이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북극해는 영유권이 인정되지 않고 있어 북극해 연안국들은 ‘바다 따먹기’ 전쟁을 하고 있는 곳이다. 21세기 자원전쟁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다.
이번 취재는 ‘한국과 러시아 수교 20주년’을 맞은 특별기획 차원이었다. 기획의 단초는 지난 2006년 이곳을 한차례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는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가스수출을 중단하면서 이곳이 세계 뉴스의 중심이 됐던 때였다. 이곳에 가면 러시아의 에너지 저력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헬기를 타면 눈에 나타나는 유전과 가스전. 러시아에게 축복의 땅 그 자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환경과 원주민들의 생존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곳이다.
이번 취재는 자원개발과 석유·가스의 에너지 전략화 문제가 1차 관심사였지만 툰드라에서 사는 네네츠 원주민들의 실상도 구체적으로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했다. 헬기로 이들을 추적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유목민들은 러시아 북극해 주변에서 순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원주민들로 4만5000명에 이른다. 이들은 북극권에서 도시가 개발되면서 북극해로 내몰리고 있다. 생존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다행히 지난 2006년 국내 언론사상 처음으로 현지 취재에 나서 원주민들의 삶을 국내에 알린 것은 뜻깊었다. 그날 이후 언젠가 확실한 취재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것이 4년만에 기회가 온 것이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야말네네츠의 기온은 영하 47도였다. 평생 경험한 적 없는 최고의 혹한(酷寒)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린지 정확히 2분이 지나자 귀와 손발이 굳어갔고, 숨이 턱 막혔다. 사실 영하 47도면 웬만한 문명의 도구는 작동불가다. 만년필과 볼펜 등 필기구는 서너글자를 쓰다보면 기능이 마비된다. 오직 연필만이 원시세상에서 필기도구로써 역할을 할 뿐이다. 이런 곳에서 문명과 원시가 공존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러시아내 취재거리는 정말 다양하고 신비한 것이 많다. 체첸공화국 내전지역에서부터 야말과 캄챠트카 등 원시의 자연까지. 또 러시아는 유럽에 남은 마지막 비즈니스 현장이라고들 한다. 그런데도 한국의 언론은 러시아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러시아를 잘 모른다. 러시아를 알고 접근해야만이 하는데도 말이다. 1990년대 북방외교를 지향하던 당시 15명에 이르던 모스크바 특파원은 현재 고작 2명만 남았다. 한 때 중국보다 우리에게 더 관심있었던 러시아를 이대로 둬도 될 것인가? 반문해 본다. 지금 러시아를 다시 보지 않고 제대로 보지 않고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언론인의 사명감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본다. 러시아를 바라보는 시각은 결코 에너지가 전부가 되선 안된다. 21세기 변화무쌍한 동북아 정세와 한반도 통일을 대비해서라도 러시아 전문가 양성은 절실하다. 러시아를 제대로 이해 못한다면 언론 역시 러시아에 매번 당하는 우리나라 대(對)러시아 외교정책의 시행착오를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수상이 한국기자협회를 통해 러시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건설현장 식당운영권 - ’함바게이트‘ 최초 및 연…
‘건설현장 식당운영권 - ’함바게이트‘ 최초 및 연속보도’
KBS 보도국 사회2부 이철호
법원 판결은 물론 검찰 수사도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취재 후기를 쓰는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른바 ‘함바 게이트’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느낀 몇 가지만을 이야기 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통화하고, 서류더미를 뒤졌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미심쩍은 부분이 포착된 인물들에게 유상봉 씨와의 관계를 물어보면 그들의 답변은 한결같이 세가지로 요약됐습니다.
‘누구인지도 모른다’, ‘만난적은 있다’, ‘알고 지냈지만 금품 수수는 없다’
하지만 대답의 상당수는 거짓이었습니다.
근엄한척, 도도한척하는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위선을 까발릴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보람이었습니다.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는 시대에 그래도 언론의 존재 의의가 있다는 자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비리일 뿐”이라며 꼬리를 잘랐던 어느 기업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고위 임원을 위해 법무팀과 홍보팀을 동원하는 모습은 참 이율배반적이었습니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점에서 당연히 사법부는 브로커 유상봉 씨를 처벌할 것입니다. 하지만 유 씨도 피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유상봉의 방식’이 통하는 곳입니다. 그런 사회에서 유 씨는 자신이 얻어낸 것 이상으로 많이 금품을 뜯긴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유상봉 씨의 한 측근은 검찰 조사를 받은 몇몇 인물에 대해 “별로 해주는 것도 없이 끊임없이 금품을 요구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전현직 고위직들에게 유 씨의 돈은 받아도 뒷 탈 없는돈 이었던 것입니다.
최초 보도 이후 벌 써 두 달이 다 되어갑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취재를 한 후배 최형원 기자의 도움이 컸습니다. 또 아쉽게 함께 수상하지 못했지만 기자생활 첫 수습 기간 3주 내내 동부지검 앞에서 뻗치기를 하며 많은 도움을 준 후배 최진영 기자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