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재착수 및 보도제작경위
단독취재(○) 제보(○)
“세금 낭비나 비리는 그렇다 쳐도 사람 목숨이 달린 거잖아요.”
처음엔 그저 민원성 제보라고 생각했습니다. 입찰에 참여했다 떨어진 대부분의 업체가 그렇듯 ‘우는 소리겠거니’ ‘하소연을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제보자는 전화로는 설명이 어렵다며 만나자고 했고, 수 일이 걸려도 좋으니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광주도 아닌 부산에서 직접 방문하겠다고 했습니다. 당장 다른 취재 일정이 있었지만 제보자의 간절함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퇴근 후 만난 제보자는 ‘해경 VTS사업’의 문제점을 꼬집었습니다. 해경이 2백억 원 규모의 VTS 개선 사업을 진행하면서 입찰 과정에서 한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는데, 이 업체의 제품이 해경의 기준에 미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다이나믹 레인지, VHF 등 전문 용어들이 대부분이라 쉽지 않았지만, 물리적인 수치상 해당 업체 제품의 성능이 해경 기준보다 낮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피해를 볼 수 있지만 이런 잘못은 뿌리 뽑아야 합니다.”
제보자가 건넨 방대하게 쌓인 자료 앞에서 며칠을 씨름했습니다. 바다 위의 내비게이션인 VTS는 육상과 달리 카메라가 없어 레이더와 통신기술, 정보를 다루는 운영체제 기술 등이 중요합니다. 그만큼 전문적이기 때문에, 입찰에 참여하는 컨소시엄도 4~5곳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취재 과정에서의 실수로 제보자의 신원이나 내용이 노출될 가능성이 적지 않아, 신중에 신중을 기했습니다. 피해보다 공익을 더 우선시한 제보자의 진심이 더해져, 저희 취재팀도 책임감을 갖고 취재에 임했습니다.
취재를 더해갈수록 제보의 신빙성에 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2014년 4월 해경 VTS의 관제 소홀이 불러온 진도 앞바다에서의 참사가 생생한데, 해경은 전혀 바뀐 게 없었습니다.
문제가 된 건 해경이 진행하는 목포·군산 VTS 설치사업, 진도·완도 VTS 개선사업입니다. 한 컨소시엄이 조달청 입찰을 통해 두 사업 모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는데, 장비의 일부 성능이 해경 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먼저 레이더 안테나가 수집한 정보를 받는 수신기의 다이나믹 레인지가 기준인 125db 이상보다 낮은 120db 이상이었습니다. 또 무선 통신의 VHF 수신감도는 낮을수록 좋은데 업체 장비는 –107dBm으로 기준인 –116dBm보다 높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레이더 안테나의 경우 업체 제품은 안테나가 버틸 수 있는 풍속 기준이 제한된 수평적 바람에 국한됐으나, 해경은 우리나라의 지형을 고려해 혹독한 상황에서도 작동 가능하도록 조건을 정한 것에 대해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전문 분야이다 보니 공부와 취재를 동시에 해야 했기에 더 꼼꼼히 살펴봤습니다. 또 해경과 조달청은 입찰 관련 자료나 사업 진행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책임을 미루다가, 취재 과정에서 확인된 자료와 내용을 보여준 뒤에야 문제를 인정했습니다. 중간, 중간 외부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사실상 어려운 분야였기에 취재 과정에서 사실 확인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됐고 어려움도 컸습니다.
해경과 조달청 모두 해당 장비가 기준 미달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해경은 자사 기준에 문제가 없지만 조달청이 기준 미달 장비를 선정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조달청은 자신들이 입찰을 맡긴 하지만 평가엔 권한이 없단 입장이었습니다. 장비는 잘못됐는데 서로가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며 책임을 미루는 상황에서 우선협상대상 업체와 평가에 참여한 특정 심사위원들의 유착 정황까지 드러났습니다. 유독 두 명의 심사위원이 두 사업에 모두 참여해 다른 심사위원들과 달리 해당 업체에 4점 정도 높은 점수를 준 겁니다. 두 심사위원의 점수를 빼면 1, 2위가 바뀔 정도로 큰 점수였고 해당 심사위원들은 1위 업체에게 학회 후원을 받거나 같은 대학원을 다니는 등 유착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조달청은 해당 심사위원의 유착 정황도, 해당 업체가 이미 다른 위원들에게 향응을 제공했다가 입건됐던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달청의 대답은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달청이 평가를 맡긴 전문평가위원들의 명단이 모두 공개돼 얼마든지 업체의 사전 접촉이 가능하단 내용도 확인했습니다. 또 업체가 부정당 거래를 시도했다 적발돼도 가처분신청을 통해 입찰 참여가 가능한 현실 등 수백억 규모의 국가기관 조달과정의 허술함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2.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VTS로 통칭되는 해상교통 관제시스템과 장비들의 용어가 생소하고 내용이 복잡한 만큼 문제가 되는 내용들을 최대한 쉽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첫 리포트는 DID를 활용해 기자가 직접 문제 업체의 장비와 해경 기준을 비교해가며 설명했습니다. 해상안전에서 가장 중요한 VTS가 어떤 것이고 왜 중요한지에 대한 내용도 간결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세월호 당시 왜 문제가 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자극적이지 않도록 보도하고자 했습니다.
기준 미달 논란이 된 장비들은 레이더 안테나와 레이더 수신기, VHF장비 등으로 모두 VTS 중에서도 필수 장비에 해당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제보자 역시 수치상 기준 미달인 제품이 선정된 것 자체도 문제지만 이런 저가의 장비들을 사용하는 것은 업체 배불리기며 해상안전이란 해경의 사업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점을 걱정했습니다. 해경은 대형 해상 사고를 막기 위해 VTS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홍보하면서 자신들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제품을 제안한 업체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던 겁니다.
해경은 취재가 시작되자 문제를 의식해 기준 미달로 최종 판단될 경우 조달청에 협상 불가를 통보하겠다고 알렸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조달청에 제시한 기준엔 문제가 없는데 조달청이 기준 미달인 제품을 선정해놓고 협상이 불가한 이유는 수요처인 해경이 밝혀야 한다는 제도상의 문제를 토로했습니다.
이에 대해 조달청은 우리는 수요처의 요청을 받아 입찰을 진행할 뿐 기준 미달인 제품이 선정된 것은 전문평가위원들의 평가 과정에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기준 미달인 제품이라도 평가위원들이 높은 점수를 주면 자신들은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이었습니다.
문제를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취재가 시작되기 전까지 협상을 이어가던 해경도 문제지만 전반적인 공공기관 물품구매 입찰을 담당하는 조달청의 입찰 과정에도 허술한 점이 많았습니다. 조달청 입장대로라면 조달청은 입찰 공고만 내는 곳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평가 과정에도 관여할 수 없는데, 평가가 잘못돼도 수요처에 책임을 미루면 그만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문제가 드러나도 수사 기관이 아니라 이렇다 할 처벌 권한도 없었습니다.
이런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해당 업체는 이미 평가위원에 대한 향응 제공으로 입건됐음에도 업체 명을 바꿔가며 사업을 이어갔고 조달청은 이런 정황을 알면서도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용기를 낸 제보가 아니었다면 성능 미달 VTS 장비가 곳곳에 설치되고 평가위원 한두명에 의해 입찰 결과가 뒤바뀌는 전문평가위원 제도도 그대로 진행됐을 것입니다. 조달청이 약속한 전문평가위원 제도 개선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취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kbc는 해당 내용을 모두 7번(리포트 6번·단신 1번)의 기사와 1번의 기자출연 방식으로 보도했습니다.
<해경 VTS 사업 기준미달 제품선정 논란 연속보도>
12/10 리포트 <해경 VTS사업 기준미달 제품 선정의혹 + 업체-평가위원 유착 정황>
12/11 리포트 <해경-조달청 책임 미뤄..사업은 진행>
12/12 리포트 <심사위원 명단이 떡하니..심사제도 '허술'>
12/13 단신 <조달청, "전문평가위원 등 입찰 평가제도 개선" 해명>
12/16 기자출연 <해경 VTS 기준미달 장비 선정 논란(7분 26초)>
12/17 리포트 <해경 VTS사업 보류..기준 미달 재검토>
12/18 리포트 <안전 위한 VTS개선 사업..‘유착의혹’에 재검토_전국 네트워크>
3.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그동안 국정감사를 통해 조달청 입찰 과정의 문제에 대해 지적한 보도들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월호 사고와 연관된 VTS 입찰 사업 뿐 아니라 업체와 평가위원의 유착 정황, 조달청 심사제도의 허술함을 전반적으로 다룬 보도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특정 사업의 입찰과정에 참여한 제보자를 통한 자료들과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사업 진행상황을 바탕으로 보도한 만큼 타 매체의 후속 보도는 없었습니다.
보도 이후 서해지방해경청 뿐 아니라 타 해경청 관할 VTS에서도 제대로 된 장비를 사용하지 않아 문제가 많다는 제보가 이어졌습니다.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논란이 됐던 장비 가운데 레이더 안테나의 문제점을 추가로 지적할 수 있었고 결국 조달청과 해경의 입장 발표를 이끌어냈습니다.
4. 사회에 끼친 영향
kbc의 연속보도 이후 해경은 해당 업체와 협상 불가를 조달청에 통보했고 조달청은 전문평가위원 제도의 개선을 약속했습니다.
해경은 조달청이 선정한 우선협상대상자가 제안한 장비 가운데 일부가 해경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최종 결론을 내리고 조달청에 협상 불가를 통보했습니다. 사업이 중단된 상황으로 해당 사업들은 재입찰 하거나 입찰 당시 2순위 업체와 협상을 하는 방법 등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해경 측은 문제가 된 부분을 포함해 VTS 장비 전체에 대한 재검토로 기준을 충족하는 장비를 구입할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조달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전문 평가위원 제도 개선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전문 평가위원 제도로 인해 평가위원 명단이 인터넷에 공개된 상황에서 업체와의 사전 유착 가능성을 지적한 것에 대해 공개제도 시행 이후 평가위원이 처벌 받은 사례는 없지만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사항을 발굴해 제도 운영에 내실을 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5.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kbc의 보도는 2백억 원 대 해경 VTS 사업에서 기준 미달 제품이 설치될 뻔한 것을 막았을 뿐 아니라 조달청의 허술한 입찰 과정과 전문평가위원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해경 VTS 사업은 참사를 막기 위한 해상 안전 확보라는 취지와 예산 규모로 볼 때 중요한 국가사업 임에도 해경과 조달청은 서로 책임을 미루기에 급급했습니다.
다행히 기준 미달 제품은 설치되지 않겠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전국의 VTS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장비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아직도 여러 분야에서 전문평가위원을 통한 입찰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kbc는 앞으로도 VTS 사업 진행과 조달청의 제도 개선 여부 등을 추가 취재를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6. 기타 고려사항
취재와 보도에 대해 이의제기, 반론신청, 언론중재위원회에서의 피신청사항 없습니다.
회차 심사평
제352회 전체 총평
한국기자협회 제352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에는 모두 40편이 출품됐다. 연말로 갈수록 취재보도보다 기획취재 쪽에 출품이 되는 경향이 있지만, 경쟁이 가장 치열한 취재보도 1부문에서 출품작이 불과 두 편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2020년에는 현장 취재기자들의 열정과 투혼이 활짝 피어나길 기대하는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많았다.
심사위원들은 길고 치열하며 진지한 논의 끝에 수상작으로 한국경제신문의 <라임펀드, 美 폰지 사기에 돈 다 날렸다>(경제보도 부문)와 kbc광주방송의 <200억대 해경 VTS 사업 기준 미달 제품 선정 논란>(지역 취재보도 부문) 두 편을 선정했다.
라임 펀드 관련 한국경제신문의 기사는 지난해부터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인 취재를 해온 결과 금감원 조사와 검찰 수사 의뢰까지 이끌어낸 점이 높이 평가받았다. 국내 헤지펀드 1위 업체가 수익률 부풀리기 등 편법적인 자산 운용을 해왔다는 점, 국제적인 금융 사기에 휘말려 소비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을 단독 보도한 한국경제의 이 기사는 금융 소비자 보호에 여전히 허술한 구석이 있음을 잘 짚고 있다. 이 기사를 통해 소비자들의 피해 규모가 더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kbc광주방송 작품은 200억대 VTS, 해상교통관제 시스템 장비 납품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한 수작이다. 세월호 참사가 주는 교훈에도 불구하고 기준 미달의 안전 장비가 납품되고, 심사 과정은 허술하며, 납품에 관련된 해경과 조달청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점을 이 기사는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이런 제도적 허점과 관행이 남아있다는 점을 지적한 이 기사를 보면서 분노를 느꼈다는 심사위원도 있었다. 취재의 출발은 제보이지만 이 제보를 토대로 꼼꼼한 취재가 돋보였고 기술적으로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취재진은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기사를 쓰고 전달 방식을 고민한 점도 높이 평가받았음을 밝힌다.
기획 취재 분야에서는 좋은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어 치열한 심사가 진행됐다. 기존의 청년 관련 기획물이 수도권 대학생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반성에서 출발함으로써 기획의 참신성이 돋보였던 한겨레의 청년 기획, 보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편집 방식으로 잡지의 장점을 살리면서 사법 농단의 실체를 잘 드러낸 시사인의 사법농단 기획, 지난해 서울에서 화장된 무연고 사망자 370명을 전수 조사하고 화장장에서 40일 동안 62명의 사망자의 최후를 지켜본 취재기자의 치열함이 돋보인 국민일보의 무연고 사망자 관련 기획이 호평을 받았지만, 아쉽게 최종 관문을 통과하지는 못했다. 새해 기자들의 땀과 열정이 어린 의미있는 출품작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한다.
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