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4편
화성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특정 채널A
화성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특정
최석호 채널A 정책사회부 기자
‘DNA가 일치한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조금 전 팩트라고 확인했는데, 믿기질 않았다. 그래서 또 확인했다. “부장, 이거 리포트 해야겠습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연인원 200만명의 경찰이 투입되고, 2만명이 수사 선상에 오른 사건.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의 화려함에 가려졌던 최악의 장기미제 사건. 흥분과 전율 속에 취재팀은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움직였다. 당시 어린아이였거나 태어나지도 않아서, 화성 사건이라면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만 알고 있는 기자들도 있었다.
9월18일 채널A 메인뉴스인 ‘뉴스A’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화성 사건 현장에서 검출된 DNA가 수형자 데이터베이스의 DNA와 일치한다는 리포트가 나갔다. 방송 직후,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화성 사건의 용의자가 특정됐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다음날 브리핑을 예고했다.
취재팀은 더욱 바빠졌다. 사건 현장인 화성, 경기남부경찰청이 있는 수원, 처제살인사건으로 이춘재가 검거됐던 청주, 이춘재가 수감 된 부산교도소에 이르기까지, 뿔뿔이 흩어져 취재했다. 경찰이 수십 년간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DNA 분석을 하게 된 배경부터, 경찰끼리 공조가 부실해 이춘재를 일찍 잡지 못했다는 점까지 후속 보도를 이어갔다.
이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취재를 거듭할수록 마음의 짐도 늘어간다. 경찰의 고문과 폭행 같은 암울한 시대상이 30년의 시차를 두고 양파 껍질 까지듯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1987’에서 봤던 것처럼.
취재팀 어린 기자들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유족들이다. 당시 경찰이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언론이 경찰의 부실 수사를 제대로 감시했더라면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을 텐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을 앞둔 미묘한 시기다. 어쩌면 경찰 역사상 가장 긴 반성문을 써야 할 최악의 사건을 경찰이 재수사하고 있다. 자신들의 과오가 낱낱이 드러나더라도 한 치의 의혹도 남김없이 철저히 수사하는지, 취재팀은 그걸 감시하는 새로운 숙제를 마주하고 있다.
2019 이주민 리포트 : 코리안드림의 배신 서울신…
2019 이주민 리포트 : 코리안드림의 배신
이하영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
지난해 말 한 미얀마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취재했던 적이 있다. 기사에는 사망한 이주노동자의 아버지가 ‘내 아들이 왜 죽었나’를 묻고자 한국을 찾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댓글 창엔 욕설뿐 아니라 날카로운 반응이 넘쳤다. 사람들은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말하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국내 이주민 혐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무차별적이라는 것을.
이주민 인권을 말하는 기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게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낀 부장과 팀장, 동료를 만났다. 한국으로 자식을 보냈다가 영영 되찾지 못한 가족들, 결혼이주여성으로 살며 정서적·물리적 학대를 겪고는 고향으로 돌아간 여성들, 그리고 영문모른 채 ‘아웃사이더’가 된 아이들까지. 사회부 사건팀·법조팀 5명의 기자가 이미 한국에 상처받은 그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읍소하며 수개월을 보냈다.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힘에 부쳤다. 버닝썬·헝가리 참사·조국 사태 등 쉴 새 없이 터져 나온 사건·사고 현장을 챙기며 없는 시간과 체력을 짜내야만 했다. 모든 취재에 함께한 팀워크가 있어 취재와 보도가 가능했다. 특히 기획 시작부터 끝까지 취재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준 유대근 캡이 없었다면 보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후배들의 열정에 기꺼이 힘을 실어 준 편집국장과 사회부 부장과 차장, 지면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 편집부, 애정을 담아 영상을 만들어 준 소셜미디어랩, 그리고 해외취재 등 팀원의 공백 속 애써 준 사건팀 동료 중 누구 하나라도 없었다면 전하지 못했을 이야기들이었다.
기사에 미처 담아내지 못했지만, 더 많은 이주민과 그 가족들이 취재팀을 믿고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다 못 전한 그들의 이야기는 마음속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여전히 묵직하게 남아 있다. ‘2019년 이주민 리포트’는 마쳤으나, 이주민 인권이 더는 ‘기삿거리’가 되지 않는 날까지 기자로서 책임은 끝나지 않았다. 보도 이후, 정치권과 부처에서 쏟아져 나온 반응이 실제 변화로 이어지는지 지켜보는 것부터 시작이다.
여성단체의 탈을 쓴 성매매 카르텔... ‘여청단’ 중…
여성단체의 탈을 쓴 성매매 카르텔... ‘여청단’
정성욱 중부일보 사회부 기자
지난해 5월 익명의 제보 문건을 받았습니다. ‘여성청소년성매매근절단(여청단)’의 실체를 고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여성단체를 표방하는 이들은 대중 앞에선 성매매 업소의 불법행위를 신고하고, 뒤에선 불법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상납금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상납하는 업소를 성매매알선 사이트에 유입시키며 온라인으로도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경찰과 주변에 알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쪽 세계가 원래 지저분하다”는 말뿐이었습니다. 개인이 불법업소를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 사례는 있었지만, 여청단처럼 지자체에 시민단체로 등록해 공익성을 갖추고, 미투 운동과 성매매근절 집회를 열며 대중들의 눈을 속이는 치밀함까지 보인 조직은 없었습니다.
편견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여성단체의 탈을 쓰고 ‘성매매 카르텔’을 형성한 신종 범죄가 단순한 ‘유흥가 뒷얘기’로 비쳐선 안됐습니다. 6개월간 동료 기자와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거리를 뒤지며 정보를 모았습니다. 수사기관을 불신하는 취재원과 소문의 진위를 의심하는 수사당국 사이를 조율하고 지원했습니다. 결국, 경찰은 성매매 카르텔의 핵심인 여청단 전 대표를 각종 불법을 저지른 혐의로 구속했습니다. 여청단의 비호를 받으며 경기남부지역 최대 규모로 성매매 오피스텔을 운영하던 일당이 붙잡혔습니다. 여청단이 국내 최대 성매매알선 사이트인 ‘밤의 전쟁’에 성매매 업주들을 가입시키고 운영자로부터 수수료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취재가 계속되자 위협과 협박도 있었습니다. 그럴수록 취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하고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여청단과의 유착 의혹을 끊어낸 수사당국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어머니처럼 살펴주신 최윤정 사장과 중부일보 동료에게 감사드립니다. 취재에 전념할 수 있게 버팀목이 돼주고 힘을 실어준 천의현 부장,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끝으로 길고 고된 취재를 함께해온 신경민 기자와 영광을 나눕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퇴사해 수상은 같이 못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나아갔던 그에게 공을 돌립니다. 제가 아는 가장 용기 있고 정의로운 기자였습니다.
대한민국 음주살인 보고서 (온라인 부문) SBS
대한민국 음주살인 보고서 (온라인 부문)
심영구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 기자
“음주운전=살인” 데이터로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음주운전 사고는 실수가 아니라 살인행위가 되기도 한다.” 故 윤창호 씨 사망에 대해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입니다. 이후 고인 이름을 붙인 법이 두 개나 만들어졌습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윤창호법’ 시행 뒤 음주운전 적발도, 사고도 크게 줄었습니다.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취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간 음주운전 기사는 많이 나왔기에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보고 싶었습니다. 먼저 ‘살인’이라고 부를 만한 ‘음주운전 사망사고’가 얼마나 되는지 찾아봤습니다. 술 마시고 사고 낸 가해 운전자는 무사하거나 부상에 그쳤는데 피해자만 사망한 사고를 ‘음주살인’으로 규정해 데이터를 살폈습니다. 전국 경찰서별 음주운전 단속 건수를 최초 입수해 공개했고 음주운전 사망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을 읍면동 단위로 파악해 지역적 특성이 있는지를 분석했습니다. 음주운전 당사자들에게 왜 반복해서 술 마시고 운전을 했는지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대한민국 음주운전 사고 지도’를 만들어 음주운전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를 독자들이 직접 찾아볼 수 있는 반응형 콘텐츠를 제공했습니다.
최근 12년간 ‘음주살인’ 희생자는 윤창호 씨를 포함해 3899명이나 됐습니다. 음주운전 적발과 사고가 경찰 발표처럼 감소세인 건 사실이었지만 경찰 단속이 집중되면 줄었다가 다시 회복되는 추세는 매년 되풀이됐습니다. 상습 음주운전자 적발 비율은 해마다 증가했습니다. ‘음주살인’ 희생자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데이터 분석과 현장 취재, 방송뉴스와 인터넷 기사를 적절히 조합한 하이브리드 보도를 높게 평가해주신 덕분에 영광스럽게 큰 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부작침의 이번 보도가 음주운전을 가볍게 보는 인식 수준, ‘윤창호법’은 시행됐지만, 양형기준이 바뀌지 않아 처벌 수위는 그대로인 현실 개선에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동안 희생된 ‘음주살인’ 피해자들의 명복을 또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