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5편
엄마·아빠, 저는 왜 같이 죽어야하나요 국민일…
“엄마·아빠, 저는 왜 같이 죽어야하나요”
국민일보 이슈&탐사팀 임주언 기자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이 말을 실감하게 한 취재였습니다. 그동안 가족 동반자살로 불렸던 사건의 초점은 ‘어른의 사정’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밀린 고지서나 극단적 선택의 이유를 담은 유서, 주변 사람에게 남긴 한마디는 부모가 절벽 끝에 선 배경을 짐작케 했습니다. 하지만 함께 세상을 떠나야 했던 아이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계획 끝에 죽음을 선택한 부모와 달리 아이는 갑자기 생을 마감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팀은 비극의 희생양이 된 아이들의 목소리를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판결문과 언론보도 등 기존 문서를 뜯어보는 게 첫번째였습니다. 최근 3년간 선고된 살해 후 자살 미수 사건 판결문들에는 피해자인 아이들의 마지막 장면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주스와 함께 먹인 독극물, 죽음이 동반된 줄 모르고 떠난 가족여행, 죽음 직전 깨어난 아이의 ‘살려 달라’는 애원. 모두 동반자살이 아닌 극단적 선택 전 살인임을 보여주는 증거들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경찰, 당시 재판부 등을 통해 들은 아이의 일상은 더 가슴 아팠습니다. 네일아트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엄마, 나 유치원 안가?” 하고 묻곤 했던 아이들은 모두 엄마나 아빠의 손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죽음을 기록하는 건 괴로웠습니다. 아이의 죽음과 부모의 자살을 어느 선까지 표현해야 할지 결정하는 회의만 몇 번이 반복됐습니다. 죽음이 자극적으로 읽히지 않도록 기사를 쓰고 읽고 고치는 작업을 거듭했습니다. 그렇게 사건을 헤집고 통계를 새로 쓰며 22편의 기사를 완성했지만 아쉬움이 적지 않습니다. 벽에 부딪혀 팀이 풀지 못한 죽음이 훨씬 많습니다. 시리즈가 끝난 뒤인 11월에도 ‘일가족 사망’을 제목으로 한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살해 후 자살은 이미 개별 사건이 아닙니다. 한국사회의 곪은 부분을 드러내는 사회 현상으로 보고 접근해야 합니다. 이런 취지에 공감해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신 유가족, 경찰, 재판부, 현장 상담사, 관계기관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응원해주신 회사와 독자 여러분께도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죽음 부른 통증 주사 KBS
죽음 부른 통증 주사
KBS 탐사보도부 이승철 기자
‘나와 내 가족이 맞는 주사는 안전할까’, ‘왜 다나의원 같은 사고가 반복될까’ 취재의 출발은 이 단순하고도 근본적인 물음에서 시작됐다.
두 가지 문제의식을 공통적으로 가진 두 기자가 만난 건 지난 3월이었다. 이미 우한울 선배는 지난해 11월부터 주사제와 경구제 부작용으로 환자가 숨지는 ‘약화사고’ 취재에 착수한 상태였다. 나는 신생아 4명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숨졌지만, 의료진에 무죄를 선고한 이대목동병원 1심 판결에 의문을 가진 채 올해 3월 합류했다.
의료분야의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취재는 더뎠다. 영점(零點)을 잡기 위한 논의는 지난했다. 이 과정에서 취재진은 약화사고와 감염사고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민·형사 사건 판결문은 물론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감정서를 분석했다. 그 결과 영점은 ‘약화사고’에서 ‘감염사고’로 다시 ‘환자안전’으로 마침내 ‘통증주사’로 바뀌고 좁혀졌다.
이처럼 굴곡 많았던 취재와 제작 과정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많은 양심 있는 의료인들의 도움 덕분이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윤일규 의원과 감염내과 전문의인 이재갑 교수, 재활의학과 전문의인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 등이 도움을 주셨다.
이렇게 모은 구슬이 보배가 됐다. 사내 기자 대다수가 걱정했던 토요일 프라임 타임에 의료분야를 다룬 난해한 다큐멘터리를 들고 두려움과 걱정 속에 타사 메인뉴스와 맞붙었다. 다음날 아침에 성적표를 받았을 때는 정말 전율을 느꼈다.
구슬을 잘 꿸 수 있었던 이유는 어느 때보다 강했던 팀워크 덕분이었다. 우한울 선배는 고비 때마다 길을 만들어내며 팀을 이끌었다. 안용습 선배는 어렵고 무거운 주제를 영상으로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박혜숙 작가는 출산을 앞두고도 녹화장을 누비며 프로그램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고, 김준석 PD는 프로그램 편집과 데일리뉴스 편집이 겹치는 어려움 속에도 영상을 한땀 한땀 수놓아 이번 작품을 완성했다.
돼지열병, 수백㎞ ‘원정 검사’ 이뤄진 배경 인천…
돼지열병, 수백㎞ ‘원정 검사’ 이뤄진 배경
인천일보 사회부 김현우 기자
치명적인 감염병이 확산되는 즈음, 전문가들이 외치는 단골멘트가 “골든타임을 확보하자”다. ‘신속한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사태의 상황은 어땠을까. 결론은 아쉬움이 많았다. 감염 확진 여부를 알려면 수백㎞ 멀리 검역본부로 ‘원정 검사’를 해야 했다.
검역본부 주소는 경북 김천시. 정부가 지자체에 ASF 검사 권한을 주지 않아서다. 관련 제도까지 검역본부만을 검사기관으로 명시했다. 이 문제가 연일 매스컴을 탔는데, 정부는 지자체의 시스템적 한계를 근거로 내밀었다. 전문성이 없는 일반인은 “그랬구나”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ASF를 취재할 때마다 찜찜한 기운이 가시질 않았다. 한 방역관을 붙잡고 자초지종을 들어봤다. 단순히 ‘방역체계의 미완성’으로 봤던 생각이 180도 전환된 시작점이었다. “경기도도 검사시설이 있고 검사도 할 수 있어요. 정부가 허가를 안 해줘서 못 쓰는 것이죠.”
취재에 돌입하자 경기도 동물위생시험소도 ASF 검사에 필요한 시설, ‘BL3(생물안전3등급연구시설)’ 2기가 있다는 사실이 파악됐다. 검역본부에서 쓰는 모델과 동일했다. 방역 당국에 묻자, 시설이 있다고 당장 검사가 가능한 건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인력 등도 갖춰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를 해결할 기회는 존재했다. 지난해 9월, 방역 당국이 ASF 유입 전 예방 차원에서 논의했고 ‘지자체 시험소 활용’ 관련 안건도 도출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기지역은 발병지수가 높은 지역이므로, 도 동물위생시험소에서 검사를 했다면 대응에 상당한 시간 확보가 가능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도 이후 법령 개정 등 지자체 검사 권한 이양작업이 진행됐다. 다행이지만 끝은 아니다. 새로운 감염병까지 미리 대처하는 자세는 우리 사회의 숙제다. 감염병과 싸우는 와중에도 취재를 도와준 방역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다. 이들은 모두에게 격려받아 마땅하다. ‘사람의 소리’를 최우선 가치로 여겨야 한다는 가르침 속에 기자가 나아가는 길을 비춰주는 정흥모 인천일보 경기본사 편집국장, 그리고 선·후배와 기쁨을 나누고 싶다.
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2 국제신문
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2
국제신문 기획탐사부 신심범 기자
“부마는 광주 진압의 예행연습장이었다.” 김선미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이 내게 해준 말이다. 수사적 표현인 줄로 알았다. 두 사건 모두 시민은 계엄군의 총칼에 위협받았다. 시기적으로 10·16이 5·18보다 7개월 먼저 일어났다. 부마에서 터져 나온 거대한 민주화 열망을 기억해 달라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의 말은 실체적 진실이었다. 군부에게 부산·마산의 일은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적 학살을 자행하게 한 직접적인 ‘교훈’으로 작용했다.
부마항쟁진상규명위원회 도움으로 40년 전 군부가 남긴 문서 수천 장을 확보했다. 부마항쟁 진상이 담겨 있었다.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그가 사령관으로 있던 보안사는 “데모대 간담을 서늘하게 함으로써 군대만 보면 겁이 나서 데모 의지를 상실하도록 위력을 보여야” 한다고 썼다. 그들이 1979년 10월 부산 마산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데모 의지 상실’을 위해 부마에서 사용한 수단은 고스란히 광주에서 되풀이됐다. 1979년 정권은 편의대로 불리는 공수부대 사복 공작조를 투입해 시위 정보를 캐냈다. 수도경비사령부에서는 공격용 헬기인 UH-1H를 동원할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 광주에서 공수부대는 활개 쳤고, 헬기는 시민을 향해 실탄을 쏴댔다. 부마가 흘리지 않은 피는 광주가 대신 쏟아야 했다. 전남대 안종철 박사는 내게 “부산 사람은 광주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2’는 지난해 보도에 이어 올해 다시 준비한 기획이다.
부마의 진실은 너무나 긴 세월을 군부 캐비닛 속에 갇혀 있었다. 부마항쟁은 40년 만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대통령 입에서 부마의 진상 규명을 돕겠다는 약속이 나왔다. 부산·경남이 국가에 바랐던 조처 대부분이 이뤄졌다. 이제 우리 차례다. 내년은 5·18 40주년이다. 부마를 대신해 피 흘린 광주를 기억해야 한다. 10월16일 경남대에서 열린 부마항쟁 국가기념식에서 광주 오월소나무합창단은 부마를 위해 ‘우리의 소원은 자유·민주·통일’을 불렀다. 내년 5월 망월동에서 부산과 경남이 광주와 손잡고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길 기원한다. 이는 수사적 표현이자 실체적 표현이다.
장기요양기관… ‘폐업의 비밀’ KBS광주
장기요양기관… ‘폐업의 비밀’
KBS광주 탐사기획팀 곽선정 기자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60대 여성 노동자. 그녀는 요양보호사다. 어엿한 노동자지만, 취재를 위해 만난 그녀는 평범한 이웃 주민, 또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생계를 위해 늦은 나이에 요양보호사가 돼 노동권이니 뭐니 하는 것은 다른 세계 일이었다. 장기요양기관에 취업해 그저 묵묵히 일하고 주어진 임금을 받으면 된다는 소박한 마음이었다. 어느 날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장기근속수당 및 연차수당)이 사라졌다. 기관장에게 왜인지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근무처가 ‘새로운 기관’으로 바뀌었다는 알 수 없는 답변이었다. 분명 매일 같은 직원들과 시설에서 일하고 있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취재의 시작은 노동권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만난 한 요양보호사의 하소연 섞인 의문이었다. 저에게는 그 의문을 풀어줘야 할 책임이 생겼다. 일단 이런 문제가 이곳만의 문제인지 업계 전반적인 문제인지 확인해야 했다. 요양보호사들과 집단, 개별 인터뷰를 진행하며 여러 기관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 나머지는 왜 그래야만 했는지, 얼마나 이런 문제가 있었는지 입증하기 위해 퍼즐을 맞춰나가야 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 장기요양보험 공시 자료, 지자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연도별로 폐업과 신설이 반복되는 사례들을 하나하나 분석했다. 또 요양기관 컨설팅 업체와 관계자들을 어렵게 만나 속 얘기를 들었다. 한 기관에서 2~3년꼴로 신설과 폐업을 반복한 사실들이 자료 분석을 통해 드러나고, 일부 기관은 평가가 공고된 해에 폐업하고 다시 신설한 사실이 밝혀졌을 때는 모든 퍼즐 조각들이 맞춰진 것 같은 짜릿함을 느꼈다. 동시에 제도적 허점을 피해가며 수년 동안 직원들과 수급자에게 물질적인, 보이지 않은 피해를 입혔을 것을 생각하니 한숨도 나왔다. 보도 이후 관계기관은 다음 달부터 개정 시행되는 관련법 규칙안에 이 같은 문제를 보완할 장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알려왔다. 이번 보도로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관행처럼 이어졌고 용납돼왔던 편법 행위에 대해 공론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