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5편
이동호 고등군사법원장 수뢰 의혹 세계일보
이동호 고등군사법원장 수뢰 의혹
세계일보 사회부 김청윤 기자
취재를 시작할 때부터 군 대대장이, 경찰서장이, 그리고 군 법무관 서열 1위이자 군 최고 사법기관장이었던 이동호 고등군사법원장이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 시작은 “대표님이 월급을 빼앗아간다”는 근로자 한 명의 고충을 듣고 쓴 이었다. 지면에도 배정받지 못하고 온라인으로만 출고한 작은 기사다.
그럼에도 기사에는 힘이 있다. 누군가는 밤늦게 울면서 전화를 했고, 누군가는 만나자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항의했으며, 누군가는 법적 대응을 운운했다. 이 사이에 흑막은 점차 걷혀갔다. 경남 사천에 위치한 이 식품기업이 세금계산서를 위변조해 방위사업청 군납사업을 따 냈다는 것도 확인해 국민에게 알릴 수 있었다.
두 번째 기사를 쓰면서 사건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서 있는 취재원을 만날 수 있었다. 극도로 불안해하던 취재원들과 함께하며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대표가 빼앗아 간 월급의 종착지는 이 법원장이었다. 뇌물이 회삿돈이라는 게 드러나지 않도록 개인 계좌에서 급여 일부를 돌려받은 것이다. 차명 계좌내역과 텔레그램 내용 등 확실한 정보도 얻었다. 그리고 언론이 할 수 없는 일은 검찰에 맡겼다.
이 법원장은 국방부에서 파면 조치를 받은 것에 이어 검찰이 구속기소했고, 연루된 경찰서장 역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있는 뇌물 공여 업체 대표가 어디까지 검은손을 뻗쳤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가 정관계 인사들과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을 생각이다.
취재를 하면서 많은 도움이 있었다. 후배의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흔쾌히 특별팀을 구성해 취재를 함께해주신 조현일, 박현준 선배께 누구보다 큰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풍족하지 않은 인력 상황에도 팀 구성을 허락해주신 편집국장과 부장들께도 감사드린다. 직접적이진 않지만, 응원을 아끼지 않은 편집국 선후배와 출입처 동료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경향신문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경향신문 뉴콘텐츠팀 황경상 기자
출근길, 없던 습관이 생겼다. 집 앞에서 공사 중인 건물을 잠시 올려다본다. 4층 높이에 난간도 없이 뻥 뚫린 공간 사이로 비계발판이 보인다. 실수로 발을 헛디디기라도 한다면? 갖은 상상이 든다. 상·하수관 정비 공사 현장을 지나친다. 2m가 넘는 깊이로 땅을 파냈는데 양쪽 굴착면이 거의 수직이다. 아무 덧댐도 없이 드러난 흙의 속살 사이로 사람이 들어가 작업을 한다. 무너진 흙더미 사이로 매몰된 사고들을 기록한 조사 보고서들이 스쳐 갔다.
끊이지 않는 노동자 사망 사건을 단 건이 아니라 한 번에 모아서 보여주자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덤볐다. 지난 1년 9개월 동안 벌어진 노동자들의 사망 사건을 조사한 1305건의 재해조사보고서를 읽고, 사건 개요와 원인을 입력하는데 5명이서 한 달 반이 걸렸다. 그에 담긴 죽음의 깊이를 들여다보는 일은 그보다 더 괴로웠다.
가장 충격을 준 건 100m 높이에서 추락하거나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 아니었다. 겨우 몇십cm 높이의 사다리에 올라 작업하다가 넘어져 사망한 사건이 부지기수라는 사실이 무서웠다. 아니나 다를까, 퇴근길에 목격한 어느 노동자는 A형 사다리를 가로등에 걸친 채 올라가 두 손으로 작업 중이다. 추락 방지 장치 같은 건 없다. 보고서에서 수없이 마주했던 장면과 똑같다.
단지 그 노동자들의 부주의가 문제일까? 죽으려고 출근하는 사람은 없다. 시간에 쫓기고 비용에 목이 타는데 안전을 챙길 여유 따위는 없어서다. 그렇게 작업하면 안 된다고, 네가 다치면 나도 엄청난 벌금을 맞고 옥살이까지 해야 한다는 각오 정도는 있어야 작업 환경이 바뀐다. 이 죽음을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라 부르는 이유다.
하루 3명의 노동자가 죽는 세상에서 책상머리에 앉아 일할 수 있는 처지가 못내 불편했다. 1692명의 죽음을 기록하고 알렸다는 사실로 많은 격려를 받았지만, 고인들의 죽음이 늘 마음 한구석을 짓눌렀다. 이번 보도가 조금이나마 변화의 물꼬를 텄으면 한다. 끝으로 이번 작업에서 큰 활약을 했지만, 회원이 아니어서 함께 수상하지 못한 김유진·이아름 두 사람의 노고와 아이디어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구본영 천안시장 결국 낙마 충청타임즈
구본영 천안시장 결국 낙마
충청타임즈 충남 천안 이재경 주재기자
현직 자치단체장과의 ‘싸움’은 외롭고 고단했다. 첫 기사의 제목은 <대가성 정치자금? 체육계 술렁…>. 천안시장이 자신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인물을 천안시체육회 정규직으로 부정 채용했다는 내용의 보도였다. 후속 취재를 통해 그가 부친과 배우자 이름으로 불법 쪼개기 후원금을 냈다는 사실과 또 다른 채용 비리 의혹도 보도했다. 시청 감사관과 경찰서 정보과장이 채용 비리 소문을 덮으려 한 사실도 지면에 옮겼다. 파장은 컸다. 시민단체와 정당들이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시의회에서 조사 특위 구성안을 발의하며 천안시장을 압박했다.
보도를 부인하던 천안시장은 언론중재위와 고소 절차를 아예 생략하고 뜻밖의 강수(?)를 뒀다. 기자와 신문사를 상대로 사상 초유의 ‘행정행위’로 언론탄압에 나섰다. 충청타임즈에 시장 직인이 찍힌 공문을 보내 ‘신문 구독 중단’, ‘취재 협조 거부’, ‘보도자료 제공 중지’, ‘광고 중단’ 등 4개 조치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이 공문은 시청 공무원 2000여명이 공유하는 내부 전산망에 게시돼 이행을 강제했고 현재까지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천안시장은 정작 기자와 충청타임즈에 대해서는 2년여간 자신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단 한 차례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하지 못했다. 무고죄를 의식했을까. 충청타임즈는 언론탄압이 시작되자 한국기자협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기자협회는 진상조사단을 꾸리고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개입을 외면, 고발은커녕 성명조차 내지 못했다. 협회는 왜 존재하는가.
현재 이 언론탄압 사건은 2018년 7월 본 기자와 지역 경실련의 고발(직권남용 및 업무방해 혐의/피고발인: 당시 천안시장, 홍보담당관, 시청공무원노조위원장 등)로 대검찰청에서 재항고 심리가, 고등법원에서 재정 신청에 대한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첫 보도 후 2년 5개월 1일 만에 시장직을 박탈당한 구본영 전 천안시장. 하지만, 충청타임즈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신문 구독과 광고를 무기 삼아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비열하고 무지막지한 공권력의 언론탄압 행위. 반드시 법정에서 시비가 가려져야 한다.
슈퍼타워 KBS부산
슈퍼타워
KBS부산 시사제작부 장성길 기자
<슈퍼타워> 2부가 방영된 지난달 3일, 공교롭게도 101층, 국내에서 2번째로 높은 엘시티에 입주가 시작됐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던 해운대 미포, 엘시티 입주민들은 호사스런 바다 조망을 누리게 됐지만 이제 이곳을 찾는 시민들은 더 이상 하늘도, 바다도 볼 수 없다.
정책으로 규제해야 할 공공은 토건 마피아와 유착했다. 개발업자의 전방위적 로비는 전문가의 입을 막았다. 대다수 언론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초고층이 4번째로 많은 나라다. 국내 초고층 건물 3곳 중 한 곳은 부산에 있다. 부산은 초고층 광풍 한가운데 서 있다. 더 늦기 전에 누군가는 고삐 풀린 질주에 제동을 걸어야 했다.
‘초고층은 누가 어떻게 왜 만드는 것인가?’ 이 질문에서부터 취재가 시작됐다. 지난 10년간 부산의 용도지역변경 현황에 따른 종상향과 용적률의 변화추이, 그리고 개발허가 자문과 심의위원회 회의록 등을 전수 조사하며 초고층의 특혜 의혹을 객관적으로 따졌다. 빅데이터 프로그램을 통해 초고층이 어떤 식으로 ‘탐욕의 상징’으로 변질됐는가도 조사했다.
‘초고층이 도시 개발의 바람직한 대안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미국, 중국, 뉴질랜드, 일본 4개국 10여개 도시를 돌면서 각 국가의 초고층 개발과 이를 둘러싼 갈등, 빛과 그늘을 들여다봤다.
초고층이 안전하지 않다고는 흔히들 말하지만, 객관적인 데이터는 전무했다. 화재, 바람, 에너지, 건강 등 네 분야에 걸쳐 마천루가 인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따져봤다. 연구소와 대학교의 협조를 받아 하나하나 실험을 통해 검증했고, 새로운 팩트들을 발굴했다. 건설업계와의 불편한 관계를 우려해 연구소에서 계획했던 실험을 갑자기 취소하는 등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지난 10개월여간 ‘초고층의 불편한 진실’을 끝까지 다룰 수 있도록 옆에서 힘이 됐던 보도국 선후배, 그리고 작가와 편집자 등 <슈퍼타워> 제작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미쉐린 별과 돈 그리고 브로커 KBS
미쉐린 별과 돈 그리고 브로커
KBS 뉴스제작3부 홍찬의 기자
우리에겐 잘 모르거나 나와 다른 것은 덮어놓고 배척하거나, 좋아 보이는 남의 것은 무조건 신봉하는 의식이 있다. 한 번 그 편견과 선입견의 프레임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발간 4년째를 맞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도 나에겐 그런 것처럼 보였다. 전 세계의 미식을 평가한다고 정평이 나 있는 미쉐린이지만 정작 120년 동안 베일에 가려진 평가 시스템은 한 번도 제대로 된 검증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이 취재가 미디어가 그동안 만들어 놓은 맹목적인 권위에 대해 의문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거대한 권위처럼 보여도 지레 굴복하거나 주눅들 필요는 없다. 미쉐린 가이드도 이윤을 추구하는 일개 민간 회사에 불과하고 하나의 맛 평가 기준을 제공해 줄 뿐이다. 의심해보고 실제로 검증하기 전까지는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믿는 것은 어리석을 수 있다.
미쉐린 가이드 취재는 전혀 생소한 분야인 데다 관련자들이 대부분 해외에 거주하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시작부터 부담이 꽤 컸다. 자료조사부터 인터뷰, 확인 작업까지 거의 대부분의 취재가 외국어로 진행돼야 하는 것도 또 다른 난관이고 도전이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스스로 의심해보고 곱씹어봐야 했다. 취재 논리와 팩트에 의문이 생기면 끊임없이 나 자신과 관련자들에게 질문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냥 지나쳤을지 모를 가치 있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곤 했다.
여러 사람의 믿음과 신뢰로 쌓아 올려진 과정이 더 가치 있다. 1년 전 실체가 없었던 아이템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봐 줬던 이수연 부장과 정신없이 바쁜 부서 상황에서도 배려를 아끼지 않은 구영희 부장은 끝까지 취재를 성원해주고 믿어줬다. 보도본부 수뇌부와 시사기획 창 팀도 상당히 큰 비용이 드는 해외 취재를 전폭적으로 믿고 지원해줬다. 영상취재부는 빡빡한 인력 운용의 어려움 속에서도 뛰어난 촬영기자 2명을 보름 동안의 해외 출장에 동행하도록 해줬고, 영상편집부는 9시뉴스 연속 보도를 위해 유능한 편집요원을 2주 동안 전담 배치해줬다. 밀알 같은 작은 결과물이지만 많은 이들의 믿음과 신뢰가 있어서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