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재착수 및 보도제작경위
① 단독취재( 0 ), ② 단독기획( 0 ), ③ 보도자료 심층기획( ), ④ 제보( ), ⑤ 기타( )
제주 4.3 사건의 비극 속에는 수장학살이 있다. 70여 년 전 재판절차도 없이 불법으로 주민들을 바다에 던져 학살하거나 총살한 시신을 바다에 버린 사건이다. 제주CBS는 4.3 수장학살의 비극을 조명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들을 추적했다.
‘제주 4.3 사건 당시 행방불명돼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기자 생활을 하며 늘 품고 있던 의문이자, 그들의 비극적 발자취를 추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제주 4.3 사건 희생자는 정부가 인정한 숫자만 1만 4442명(2019년 11월 현재)이고 실제 희생된 규모는 3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행방불명자는 유골조차 찾지 못해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에 3800여 기의 표석만 세워져 있을 뿐이다. 그나마 유해 발굴 사업 진행으로 제주공항 암매장지 등에서 유골이 발굴되기도 했다.
문제는 70여 년 전 제주 앞바다에 던져져 무참하게 희생된 수장학살 피해자들이다. 한꺼번에 수십 명에서 많게는 500명까지 수장됐다는 당시 군인과 목격자 등의 증언은 존재한다. 또 1948년 11월 20대 청년의 시신이 제주시 사라봉 해안에서 떠올라 4.3 수장사건의 실상을 알리기도 했다. 다만 어떤 기록이나 흔적도 남기지 않을 목적으로 한밤중에 배에 태우고 나가 수장하거나 바닷가에서 집단으로 총살했기 때문에 수장학살 희생자들의 시신은 대부분 찾지 못했다.
제주 바다에 수장돼 70년 동안 돌아오지 못하는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제주 4.3 사건의 비극을 한마디로 표현한 대명제일 것이다.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차디찬 바다를 아직도 떠도는지, 아니면 누군가가 시신이라도 수습해 줬는지, 그래서 어딘가에 묻혀 있는지 등등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발자취를 추적하고 싶었던 이유다. 제주CBS가 일본 대마도까지 찾아가 현장 탐사 겸 취재를 하기로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해류 특성상 제주에서 수장된 시신이 대마도까지 흘러갔을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제주에서 실종된 낚시객이나 해녀의 시신이 대마도에서 발견되는 일이 잦았다. 4.3 시신이 대마도까지 흘러가 그곳의 주민들이 수습해 줬다면 분명히 다수의 매장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제주CBS가 대마도 취재를 결정했지만 속된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같은 작업이었다. 무작정 대마도를 찾아 동서남북 해안마을을 샅샅이 뒤져보기로 결심했다. 전혀 약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민들을 만나 증언을 듣고 매장지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기초취재 과정에서 대마도 일부 절에 한국인 유골이 안치돼 있고 일본인이 공양탑을 세워 위령제도 열어준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대마도에 한국인 매장지가 실제로 있는지, 있다면 매장지가 몇 군데나 되는지가 불명확하고 주민들의 증언도 확보된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자칫 아무것도 건질 수 없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그럼에도 제주CBS는 지난 10월 15일부터 19일까지 5일간 대마도에서 현장 취재를 벌였다.
대마도 현지 취재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대마도 동서남북 해안마을을 돌고 사전 약속도 없이 주민들을 만나는 과정이 4박 5일 동안 이어졌다. 한마디로 발품을 파는 작업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화장터와 매장지를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대마도 서쪽해안은 물론 남쪽과 동쪽해안에서도 한국인 매장지를 확인한 것이다. 또 70여 년 전 당시의 매장지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노인을 만날 수 있었고 부모세대로부터 들어 알고 있는 마을 주민들의 증언도 대거 확보했다. 그들을 만나며 그동안 몰랐던 매장지와 화장터를 찾아냈다는 보람도 있었지만 ‘제주4.3 사건 당시 수장학살 피해자가 이렇게도 많았나’ 하는 슬픔이 대마도 현지 취재과정에서 가시질 않았다.
대마도 현지 취재의 결과물은 7차례에 걸친 CBS 노컷뉴스와 라디오 리포트로 보도됐다. 또 보도의 가치를 인정받아 특별히 2편으로 압축한 리포트가 CBS 라디오를 통해 전국 전파를 탔다. 우선 제주 4.3 수장학살 시기와 전개과정을 담은 <생(生)의 기억조차 말살…제주 4·3 수장 학살의 비극-2019년 11월 25일자>을 시작으로, 70여 년 전 대마도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종합한 <"손발 철사로 묶여…" 대마도로 흘러간 제주 4·3 희생자-2019년 11월 26일자>가 보도됐다.
특히 3,4,5편에는 대마도 현지에서 제주CBS가 단독으로 확인한 매장지와 화장터, 주민들의 증언이 집중적으로 담겼다. <'시신 태우는 곳' 대마도에 남은 4·3 수장 희생자 흔적-2019년 11월 27일자>에는 미나토 마을 주민들이 ‘시신태우는곳’으로 부르는 ‘히토야케바’와 사리에 마을의 매장지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다테이와 매장지를 확인하는 등 주로 대마도 북서쪽 해안의 매장지와 화장터 기록이 담겨 있다. <4·3 수장 시신 흘러간 대마도, 지금은 제주 쓰레기가…-2019년 11월 28일자>에는 대마도 동쪽 해안마을에 있는 매장지를 확인한 내용이 담겨 있다.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사실상의 섬들을 직접 찾아 매장지 주변에서 제주비료 포대와 한라산 소주병 등 제주에서 흘러온 쓰레기들을 짧은 시간에 발견할 수 있었다. <대마도에 떠오른 시신…"밀항한 제주인과 닮아"-2019년 11월 29일자>는 대마도 남쪽 해안마을인 마가리 마을에서 제주CBS가 처음으로 찾아낸 시신 매장지와 화장터 기록을 담았다. 마을 주민들은 ‘70여 년 전 수습한 시신이 제주에서 밀항한 숯쟁이들과 담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매장지와 화장터에 도로가 깔려 안타까움을 더했다.
제주CBS는 현장 취재 결과물들을 토대로 정부와 국회, 제주도가 이제는 4.3 수장학살의 진실찾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대마도 주민들은 70여 년 전 타국의 시신들을 직접 수습해 공양탑을 세우고 위령제까지 지내주고 있다는 내용의 <바다에 버려진 제주 4·3, 대마도가 품다-2019년 12월 2일자>를 보도했고 <어둠 속 '제주 4·3 수장 학살'…일본인이 세운 위령탑만-2019년 12월 3일자>을 통해서는 수장학살의 진상규명을 외면하는 정부와 국회, 제주도를 비판하며 대마도에 우리가 세운 위령탑하나 없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2.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대마도 현지 취재과정에서 매장지와 화장터를 다수 발견하고 주민들의 증언까지 확보한 건 발품을 판 결과물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기자 사회의 영원한 격언이 딱 들어맞았다. 사실 처음 대마도 현지를 찾을 때만 해도 불안감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기획 아이템과 취재 일정이 확정됐는데 아무런 소득이 없다면 기자가 많지 않은 로컬 특성상 엄청난 타격이기 때문이다. 첫날부터 소위 ‘무대뽀(?)’로 북서쪽 해안을 찾았다가 마침 그곳에 있던 노인을 우연히 만났다. 그런데 그로부터 시신태우는곳이라는 의미의 히토야케바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그를 통해 마을 주민들의 증언들을 다수 확보했다.
대마도 동쪽해안 마을에서도 현장의 답은 있었다. 원래는 특정 마을의 섬에 대한 얘기를 들을 생각으로 고후나코시라는 마을을 찾았다가 그곳에서도 70여 년 전 많은 시신이 떠내려 왔다는 주민들의 증언을 들은 것이다. 특히 고후나코시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한 어부는 ‘제주도의 방송국이 70여 년 전의 일을 기억하고 직접 시신의 행방을 찾으러 왔다’며 우리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표시하고는 그 마을 최고령 노인의 증언을 듣게 해주고 직접 자신의 배를 몰며 사실상 작은 섬들에 있는 매장지 위치도 일일이 알려줬다. 현장에 가지 않았다면 그 어부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그 어부를 만나지 못했다면 배를 타고 가야만 하는 사실상 섬에 있는 매장지도 가보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그곳에선 한라산 소주병과 제주비료 포대 등 제주에서만 버려지는 쓰레기들을, 매장지를 둘러본 지 2-3분만에 발견할 수 있었다. 제주 4.3 사건 당시 수장학살된 시신이 대마도 서쪽은 물론 동쪽 마을까지도 흘러 왔음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대마도 주변 바다를 잘 아는 어부와 해류 전문가인 대학교수로부터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마도 남동쪽 마을에서도 현장 발품을 판 덕분으로 매장지와 화장터를 찾아내고 주민 증언까지 확보했다. 70여 년 전 마가리 마을 해안가에 떠오른 시신들이 당시 대마도에 밀항했다가 산속에서 숯을 만들어 파는 제주인과 똑같았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또 시신을 한꺼번에 모아놓고 태웠다는 화장터와 시신을 묻어주고 소나무를 함께 심었다는 매장지도 처음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마가리 마을에 있는 매장지와 화장터는 도로가 깔려 지금은 어디에 유골이 묻혀 있는지 잘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빨리 관심을 가졌더라면 매장지를 보존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에 상심은 클 수 밖에 없었다.
3.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제주 4.3 수장학살 사건을 다루며 대마도까지 직접 현지 취재한 경우는 드물다. 지난 2000년 제주 4.3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 4.3 사건 전반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수장학살과 대마도의 연관관계를 다루는 경우는 있었지만 대마도에서 현장 탐사 수준으로 집중 취재하며 매장지와 화장터, 주민 증언을 확보한 언론 보도는 없었다. 또 이번 기획보도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얻어낸 제주CBS만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매체 반향은 없었다. 다만 포털과 라디오, 노컷뉴스, 유튜브, 페이스북을 통해 기사와 영상, 리포트로 공유되며 제주 4.3 수장학살의 비극을 알게 됐다는 반응과 일본 대마도 4.3 시신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컸다.
4. 사회에 끼친 영향
4.3 수장학살은 군경이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고 시신의 흔적도 없이 불법적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아무런 기록이 없다. 또 대마도까지 흘러간 시신은 정작 우리가 아닌 그곳 주민들이 거둬 위령하고 있을 뿐 우리 손으로 세운 위령비하나 없는 현실이다. 이번 기획보도는 대마도 현지 취재를 통해 이제 4.3 수장학살도 정부나 국회가 관심갖고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는 점, 또 대마도에 우리가 세운 위령비라도 만들어 돌아오지 못하는 4.3 영령들을 위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전국 라디오 뉴스와 노컷뉴스, 유튜브, 페이스북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기사와 영상, 리포트가 나가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는데 의미가 있다. 이번 기획보도의 주제 자체가 당장 제도개선을 해야 할 상황은 아니지만 현재 국회에 계류된 4.3 특별법이 추가 진상조사를 담고 있기 때문에 국회의 관심이 당장은 중요하다. 4.3 수장학살의 비극과 대마도까지 흘러간 4.3 시신들에 대해 국회의원과 제주도 관계자들도 관심을 표현하고 있는 점은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5.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살아 있는 기억조차 말살했다’는 4.3 수장학살의 비극, 이제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그들을 우리의 기억속에 되살려야 한다는 기획취지가 돋보인다. 특히 대마도 현지 취재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매장지와 화장터를 곳곳에서 찾아낸 것은 이번 기획의 최대 성과물이다. 오로지 현장에 답이 있다는 신념으로 대마도 곳곳을 누빈 기자들의 노력과 열정을 높이 평가한다. 대마도에 묻힌 제주 4.3 희생자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점, 정부와 국회, 제주도가 손 놓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점도 성과다.
더욱이 이번 기획은 최근 악화일로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에도 경종을 울린 것으로 평가한다. 최근 경제전쟁으로 불리면서 한일 정부 사이 갈등이 최고조이지만 70여 년 전 우리나라와 대마도 주민 간에는 사람의 도리, 인도(人道)가 있었음을 기사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죽어서 바다로 떠도는 타국의 시신을 거둬주고 공양탑을 세우는 것은 물론 위령제까지 지내준 그들을 볼 때 적어도 민간인 사이에는 싸우는 상대가 아닌 사람의 도리만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 대마도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잘 드러난 것이다. 한일 정부에 갈등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번 기획이 시의성 면에서도 탁월하다.
6. 기타 고려사항
이번 기획에 대한 보도당사자의 반론신청이나 언론중재위원회의 피신청 사항은 없었다.
제주CBS 대마도가 품은 제주 4.3 수장학살
(추가) 사회에 끼친 영향
제주CBS 기획 보도가 나간 이후 제주도는 일본 대마도에 4.3 위령탑을 세우는 방안 등을 적극 검토하기로 하고 4.3 유족회와 협의절차에 착수했다. 제주도는 4.3 유족회 방향이 정해지면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제주도는 수장학살 희생자 유족들이 대마도에 우리가 세운 4.3 위령탑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인 만큼 유족회가 지원을 요청하면 위령탑 부지 확보나 크기, 조성 주체, 방법 등을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회차 심사평
제351회 전체 총평
351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전국에서 66건 작품이 응모해 열띤 경합을 벌였다. 취재보도 부문에는 세계일보 <이동호 고등군사법원장 수뢰 의혹>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작은 제보를 소홀히 다루지 않고 끈질기게 보완 취재를 이어간 기자의 집념을 높게 평가했다. 특히 고등군사법원이라는 매우 특수한 분야, 일반 기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을 취재하면서 결국 사법처리까지 이어지게 만든 것에 높은 점수를 줬다.
군사법 체계 최고 수장이 파면된 것은 창군 이래 최초라는 의미도 심사위원들은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최종 사실확인이 필요하더라도 언론의 취재내용을 수사기관에 제공하는 것이 옮은 것이냐에 대한 일부 의견도 나왔다. 취재원 보호 대의는 훼손할 수 없는 가치임에 심사위원 모두 공감했다.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에선 경향신문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에 대해 심사위원 대부분 높은 점수를 줬다. 이번 경향신문 보도는 산재 사망자를 전수 조사하고, 조사 보고서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통해 추상적 주제를 구체화 시켰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기사도 좋았지만 특히 1면에 사망자 명단을 싣는 파격적인 편집도 좋았다고 평가했다. 1000여 명에 이르는 사망자 명단을 마우스 클릭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 인터랙티브 역시 훌륭했다고 평가했다.
심사위원들은 근래 들어 가장 뛰어난 보도라는 것에 공감했고, ‘종이 신문이 죽지 않았구나’라는 것을 일깨운 보도라는 평가도 있었다. 김훈 작가의 ‘가장 무서운 기사’라는 평가에 심사위원들도 공감했다. 그러나 산재 사고는 언론이 일회성 집중 기획이 아닌 평상시에도 짚고 넘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기획보도 방송부문에서는 KBS <미쉐린 별과 돈 그리고 브로커>가 선정됐다. 이 보도는 120년 전통의 미쉐린 평가에 대한 언론의 과감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장기간에 걸친 해외 취재 등 입체 취재가 돋보였고, 많은 해외언론이 추종 보도를 했다는 점에서 해외 언론상을 받을 수 있는 수작으로 꼽은 심사위원도 있었다.
한편, 이 보도가 사회적 합의를 훼손한 점에서 수작임에 틀림이 없지만 민간단체에 불과한 미쉐린에 대해 공영방송이 너무 과도한 취재 투자를 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공영방송은 보다 공적 영역에 취재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는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취재보도 부문에서는 충청타임즈 <구본영 천안시장 결국 낙마> 기사가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지역언론이 무소불위의 민선시장 인사비리를 집요한 취재로 제어했다는 점에서 수작으로 꼽았다. 무엇보다 2년 7개월간 천안시의 ‘구독중단’ ‘광고중단’ ‘취재거부’ ‘보도자료 제공 중지’라는 이른바 4개 불이익을 극복하면서 이뤄낸 보도라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심사위원들은 이에 더해 동료 지역언론의 외면까지 극복하면서 진실을 밝혀낸 매체의 집념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역기획보도 방송부문에선 KBS부산의 <슈퍼타워>를 선정했다. 심사위원들은 부산 해운대라는 지역 문제를 다뤘지만 전국에 경종을 울리는 보도라는 것에 공감했다. 화재와 빌딩풍 등 초고층 재난에 대한 최초의 종합보고서라는 점에서 공들인 작품으로 꼽았다. 특히 직접 소방훈련을 시험해 보이는 등 솔루션 저널리즘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줬다.
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