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죄자 아지트로 전락한 검사실을 추적하다 >
취재의 시작은 집사변호사들의 접견 문제였습니다. 지난해 11월 돈 있고 힘 있는 수용자들이 변호사들을 통해 구치소 안에서도 불법과 일탈을 일삼는다는 내용의 기획 보도를 했습니다. 취재된 내용 중 가장 흥미로웠던 사례는 구치소 안에서 변호사를 통해 교도관을 매수해 담배를 들여온 죄로 수사를 받고 있는 한모 씨였습니다. '재주도 좋다' 싶어 한씨가 어떤 죄명으로 감방에 들어왔는지 확인해봤습니다. 한번 더 놀랐습니다. 출소하자마자 구치소 동료의 범죄수익 수십억원을 은닉해주고 또 한 번 피해자들을 속여 돈을 뜯어냈단 내용이었습니다. 그 구치소 동료는 1조원대 다단계 사기 사건의 주범이었던 김성훈 IDS홀딩스 회장이었습니다. 이들의 첫만남은 변호사 접견 대기실이었단 사실이 확인되어 지난해 11월 여기까지 보도를 했습니다.
'이거 감방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닌데?'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범죄수익 은닉은 '쩐주'가 구치소에 갇혀있는 상황에서 진행될 만한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법원에서 인정된 금액만 27억원, 실제로 홍콩에 숨겨둔 김 회장의 범죄수익 중 한 씨 법인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이는 돈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수십명 피해자들이 자살한 사건의 범죄수익입니다. 이런 예민한 돈이 대규모로 흐르는 과정엔 분명 두 사람이 긴밀하게 접촉하고 신뢰를 쌓아갈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라 판단됐습니다.
먼저 피해자 단체들을 접촉했습니다. 한때 IDS홀딩스 내부에서 중요 역할을 했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사전 취재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들을 통해 김 회장과 한 씨의 측근들을 파악해 하나하나 접촉했습니다. 특히 한 씨가 출소한 2017년 3월부터 범죄수익 은닉이 마무리된 8월 사이 두 사람 사이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을 집중 접촉했습니다. 몇번이고 집앞을 찾아가도 대꾸 한마디 안 해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행히 김 회장과 한씨를 도와 피해자들을 울렸던 과거를 반성하고 취재에 응해주는 몇몇이 전국 곳곳에 있었습니다.
한 씨가 출소 직후 차린 회사에서 일했던 직원은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이 직원은 한 씨가 출소 이후 김성훈 회장과 만난 곳이 다름 아닌 서울중앙지검 검사실이었다고 했습니다. 한 씨가 출소 전 김 회장에게 중앙지검의 김모 검사를 소개해줬고, 출소 뒤엔 사건 제보 명목으로 해당 검사실에 1주일에 3~4번 출정나갈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내용은 김 씨와 한 씨의 또다른 변호사들, 그리고 김 회장과 검사실에서 직접 만났던 측근들을 통해 살이 붙었고, 거듭 확인되었습니다. 김 회장이 검사실에서 한 씨를 만날 수 있었고, 자유롭게 전화를 썼고, 편하게 바깥 음식을 먹었고, 무엇보다 자신의 범죄수익을 관리하는 부하들도 만날 수 있었단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한 씨는 김 회장에게 안정적 검사실 출정을 약속하면서 신뢰를 쌓았고, 수십억원대 범죄수익 은닉 범죄를 공모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겁니다. 두 사람은 그 범행의 무대로 시시콜콜 녹음되고 기록되는 구치소 접견실 대신 중앙지검의 검사실을 ‘특별접견실’ 삼아 오갔다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예상과 달리 해당 검사는 대부분 사실관계는 인정했습니다. 다만, 검사실에서 두 사람이 만났어도 범죄 모의를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전화를 쓰든, 바깥 사람을 만나든 모두 수사에 도움이 되라고 허용한 일이었단 겁니다. 그러면서도 본인이나 같은 검사실 수사관들이 김 회장이 출정나와있는 시간 동안 모든 말과 행동을 완벽하게 감시할 순 없었다는 애매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이후 취재 과정에서 이 애매한 답변을 반박할 만한 중요한 녹취파일 10여개가 손에 들어왔습니다. 알고보니 해당 검사실의 김모 검사는 구치소 수감자들 사이에서 유명했습니다. 수사할 만한 사건을 제보하면, 여러번 검사실로 불러주고, 다양한 편의를 제공해준다고 소문이 난 사람이었습니다. 녹취파일 대부분은, 김 회장처럼 자주 김 검사 방을 드나들었던 횡령 사기 전과 4범 이모씨가 검사실 전화로 자기 사무실처럼 통화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구치소 바깥에 있는 자신의 수족에게 “지인의 투자금 수백억원 회수를 도와주라”고 지시하는 내용부터, 취재원 보호를 위해 보도하지 않은 다양한 대화가 담겨 있었습니다. 어떤 녹취파일엔 해당 검사실로 이씨 지인이 전화를 걸자 수사관이 "통화중이시니 좀 이따 전화드리라고 하겠다"며 비서처럼 답변하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사건 제보나 수사와는 무관한 사사로운 통화였고, 특정인의 증거인멸을 돕는 정황도 있었습니다.
이게 김모 검사 만의 문제가 아니란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6년간 검찰청에 가장 많이 나간 수용자들의 명단과 횟수가 정리된 법무부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최대 779회 드나든 수용자가 있었습니다. 1년 동안 279회 출정나간 수용자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 협조'라는 말만 붙이면 언제든 제한 없이 구속 수감자들을 검사실로 부를 수 있습니다. 1차 수사기관인 경찰은 100% 교정시설로 찾아가서 수사해야 하는 것과 대비되는 특권입니다. 논문을 뒤져 세계 주요 국가 사례를 찾아봐도 유례가 없었습니다. 교정학계 전문가들도 이같은 방식의 구속 수감자 수사 방식은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문제는 이런 관행이 전혀 법적 근거 없이 이뤄져왔단 겁니다. 교정본부를 검사들이 장악하던 시절 협조 차원에서 해오던 것들이 당연한 수사관행이 된 것이었습니다. 검사실로 부르면, 대부분 수사 기밀을 이유로 교도관도 퇴실시킨 채, 어떤 감시 장치도 없이 '수사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검사 마음대로 조성할 수 있는 현실입니다. 이 과정에서 표적 수사가 벌어지거나 사건이 왜곡된 전례도, 기밀 유출 등으로 현직 검사가 재판에 넘겨진 전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어떤 재발방지책도 세우지 않아왔다는 점이 취재되었습니다.
취재 초반부터 대검찰청의 입장을 여러차례 물었습니다. 대검의 입장은 "일 열심히 하려다가 한번 실수한 것을 과장하지 말라"던 식이었습니다. 이런 태도는 취재진이 관련 녹취파일들을 확보한 이후로 달라지긴 했습니다. 보도가 나가자, 대검찰청 지시로 서울중앙지검 감찰반은 관련 의혹에 대한 진상 파악에 착수했습니다. 보도 1주일 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찰 수사 관행 개혁안을 발표하는 생중계 발언에서 JTBC 보도 내용을 언급하며 "불필요한 수백 회의 구금자 소환 등 잘못된 수사관행도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며칠 뒤 국회 검찰개혁특위와 법무부의 당정협의회에서도 보도와 관련한 사실관계를 공유하며 개선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번 보도와 관련한 검찰 내부 감찰 현황과 제도 개선 작업을 후속취재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근거없이 누려온 '출정 제도'의 개혁이 제스처에 그치지 않도록 보도를 이어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사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검찰의 위험한 통념이, 애매모호한 '공익'의 이름으로 포장되는 일이 없도록 계속 감시할 예정입니다.
1. 취재착수 및 보도제작경위
① 단독취재( ), ② 단독기획(●), ③ 보도자료 심층기획( ), ④ 제보( ), ⑤ 기타( ) 중 선택 후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십시오.
2.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① 기사에 등장하는 익명취재원의 상당성여하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내보낸 관계자 인터뷰 내용들은 모두 크로스 체크를 마친 뒤 반영했습니다.
② 제보자와의 특별한 이해관계여하
특별한 이해관계는 없습니다.
③ 직접취재(바이라인), 현장취재(데이트라인)여하
④ 기타 특이사항 여하
3.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JTBC 연속 보도 내용 중 김성훈 IDS홀딩스 회장 관련 ‘범죄수익 은닉 의혹’ 일부 내용이 앞서 서울경제TV를 통해 보도된 바 있습니다. 이외의 내용은 선행보도된 바 없습니다. 같은 시기 취재가 진행되었는데, 서울경제TV가 일부 내용을 먼저 보도하면서 JTBC는 보도 시점을 늦추고 후속 보도로 보완해 제도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보도 이후 타 매체들에선 피해자 기자회견을 통해 언급된 JTBC 보도 내용을 추종보도했고, 법무부가 공식 제도 개선 의지를 밝히자 또한번 다수 매체에서 보도 내용을 언급하며 추종보도했습니다.
4. 사회에 끼친 영향
보도 이후, 기사에서 언급된 검사에 대해 대검찰청 지시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산하 감찰반에서 진상 파악에 나섰고 현재 관련자 소환 등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보도 1주일 뒤인 2월 11일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생중계 브리핑 모두발언에서 JTBC 보도를 언급하며 “불필요한 수백 회의 구금자 소환 등 잘못된 수사관행도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2월 14일 이어진 국회 검찰개혁특위 당정 협의회에서도 제도 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5.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언론윤리강령기준을 준수하며 취재하고 보도했습니다.
6. 기타 고려사항
외부 지원을 받은 사실, 또는 보도 당사자의 반론신청이나 언론중재위로부터 피신청을 당한 사실이 없습니다.
회차 심사평
제354회 전체 총평
제354회(2020년 2월) ‘이달의 기자상’에는 모두 51편이 출품돼 동아일보의 <법무부가 비공개한 ‘청와대의 선거 개입 의혹’ 사건 13인의 공소장 전문(全文) 입수> 등 8건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온 나라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라는 미증유의 충격과 공포에 빠진 가운데서도 현장을 누비고 자료를 뒤지며 언론의 사명에 충실하려고 애쓴 기자들의 흔적이 출품작마다 역력했다.
<법무부가…>는 취재보도 1·2부문에 출품된 15편 가운데 유일한 수상작으로 뽑혔다. 2018년 울산시장 선거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향해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려 있는 상황에서 법무부가 비공개하기로 한 검찰 공소장 전문을 입수해 공개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검찰의 공소장이 담고 있는 함의를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경제보도부문 수상작인 서울신문의 <2020 부동산 대해부-계급이 된 집>은 단발성 이슈에 매몰되기 쉬운 경제보도의 전범을 제시한 수작이라는 호평을 끌어냈다. 특히 서울 강남 3구의 초고가 아파트 등기부등본 약 8000건, 1급 이상 고위공직자 787명의 재산목록, 1999~2020년 사회간접자본 사업 예비타당성조사 370건을 분석해 ‘강남공화국’으로 대표되는 부동산 불평등이 계급화 현상을 부추긴다는 사실을 확인한 점이 돋보였다.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에서는 3편의 수상작이 나왔다. 한겨레신문 <노동자의 밥상>은 택배배달원, 급식조리원, 철도기관사, 빌딩 청소원, 이주노동자, IT 종사원, 광부 등 다양한 분야 노동자들의 식사 장면을 밀착 취재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가 어떻게 침해받고 있는가를 고발했다.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대안 제시가 미흡했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노동자 생활의 이면을 생생하게 보여준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의 미래상을 조망한 경향신문 <녹아내리는 노동, 내:일을 묻다>는 연재 직후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재택근무 확산, 소상공인 몰락, 일용직·플랫폼 노동자 생계 위협이 가속화하며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해법을 모색하는 최종회에 좀 더 다양한 시각을 담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법에 가려진 사람들>은 최근 기획·탐사보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서울신문의 역작으로 꼽힌다. 지난 5년간 장발장은행 벌금 대출자를 전수조사하고 이 가운데 대표적 사례를 심층 인터뷰함으로써 약자들에게 더 가혹한 사법 현실을 고발했다. 취재진의 일원으로 약자의 권익 옹호에 힘쓰다가 2월25일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조용철 기자의 명복을 빈다.
기획보도 방송부문 수상작 KBS의 <‘루보 사태’ 김영모가 돌아왔다>는 주가 조작으로 8년형을 받고 2015년 만기 출소한 김영모가 또다시 범행에 나섰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허위 공시를 확인하고자 중국 벤처기업 단지를 방문하는가 하면 김영모가 재수감된 수원구치소에서 ‘뻗치기’한 뒤 접견자를 추적해 증언을 듣는 등 끈질긴 취재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같은 부문의 또 다른 수상작 SBS의 <코로나19 팩트체크>는 잘못된 정보와 악성 루머가 창궐해 불안과 갈등을 부추기고 코로나19 예방과 치료에도 장애를 주는 시점에서 매우 적절한 기획이었다. 심층적인 정보를 전달하기보다 단편적이고 나열식이었던 점은 아쉽게 느껴졌지만 당연하면서도 절실한 언론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전문보도(온라인)부문에서는 SBS <2020 예산회의록 전수분석>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3년치 국회 예산회의록과 심사보고서 등을 비교 분석해 각종 불법, 불용, 불심사, 불논의 등의 부적절한 사례를 밝혀냄으로써 데이터 저널리즘의 모범 사례를 만들어냈다. SBS 취재진은 내년에도 보도를 이어가며 지속적으로 감시하겠다는 방침이어서 21대 국회에선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