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8편
법에 가려진 사람들 서울신문
법에 가려진 사람들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이태권 기자
‘3만5320명’. 지난해 벌금형을 선고받고 돈이 없어 노역장에 유치된 사람들의 숫자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벌금형도 감옥에 가는 징역형만큼이나 무거운 처벌이었습니다. 약식명령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사법 절차를 들여다보기로 한 것은 그래서였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사법적 약자로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이들을 외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자녀와 생계를 걱정하는 한부모 가장, 제도 사각권에서 기초수급도 못 받고 폐지를 줍는 노인은 소액의 벌금에도 지명수배로 불안에 떨었습니다. 지난 3개월간의 취재는 이런 모습들을 객관적이되 구체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고민한 시간이었습니다.
보도가 나가고 많은 독자들은 후원 문의를 해왔습니다. 검찰에서도 취재원들을 돕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습니다. 경찰청장은 ‘회복적 사법’ 실현을 위해 취약계층에 대한 조력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번 보도가 조금씩이나마 사법기관과 제도를 바꿀 마중물이 되길 바랍니다. 기사가 나오기까지 취재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어려운 취재에도 함께 분투한 팀원들이 없었다면 ‘법에 가려진 사람들’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난 같은 팀의 조용철 선배에게도 깊은 슬픔과 감사를 표합니다. 마지막까지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선배가 그곳에서 편히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 팩트체크 SBS
코로나19 팩트체크
SBS 이슈취재팀 이경원 기자
바이러스만 퍼진 게 아니었습니다. 감염병은 수많은 거짓 소문도 실어 날랐습니다. ‘인포데믹’이 창궐했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감염 방역과 함께 정보 방역도 병행돼야 함을 열공했습니다. 물론 이건 언론의 역할입니다.
팩트체크 저널리즘은 정보 방역의 최전선입니다. 보도 목적은 무조건 공익성이어야 합니다. 최초 보도가 아니라도 자존심 상할 필요도 없습니다. 공공기관 혹은 언론의 교정 노력에도 유언비어가 여전히 유통된다면 우리도 동참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방역에 여념이 없는 질본을 방해해서도 안 됐습니다. 좀 수고스럽더라도 지역 지자체, 지역 소방본부 등을 일일이 취재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특히 이번 바이러스는 신종입니다. 전문가 한두 명의 이야기로 갈음해선 안 됐습니다. 감염의학, 수의학, 예방의학, 바이러스학 전문가들의 의견을 두루 들은 뒤, 그 교집합만을 골라내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한 명이라도 조금 다른 의견을 내면 방송을 접어야 하는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신종이라는 미지의 영역에서는 겸손해야 한다는 게 팩트체크 저널리즘이라고 됐습니다.
SBS 8뉴스 ‘사실은’ 코너의 목표는 이랬습니다. 공익성, 정확성, 겸손함… 사실 별것 아닌 원칙들이 모여 정보 방역이라는 묵직한 사회적 과제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새로운 감염병을 어떻게 취재할 것인가, 또 어떻게 팩트체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런 고민들, 기자협회 회원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루보사태' 김영모가 돌아왔다 KBS광주
'루보사태' 김영모가 돌아왔다
KBS광주 보도국 김효신 기자
한 중견 언론사 대표가 코스닥 등록사 STC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직후였다. 해당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 회사의 임원이 취재진을 찾았다. 그는 자신이 몸담은 회사가 STC의 주가를 조작했다고 고백했다. 우리나라 주가조작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된 ‘루보사태’의 주범이자, 다단계 업체 JU그룹의 부회장인 ‘김·영·모’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기가 막혔다. 김영모는 ‘루보사태’로 8년 형을 받고 지난 2015년 만기출소했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는 여전히 ‘거물’로 대접받았다. 그는 액면가 500원 짜리 자신의 회사 주식을 JU다단계 회원들을 활용해 40배인 2만원에 팔아치웠다. 이 돈은 다시 ‘주가조작’에 투입됐다. 다단계 회원들은 이번엔 전국에서 주식을 사고 팔며 STC의 주가를 한달 만에 4배까지 끌어올린다. 김영모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국내, 해외를 가리지 않고 가서 만났다. 이렇게 확인한 피해자가 전국에 2800여명, 피해액은 800억원이 넘었다.
김영모는 현재 수원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투자금 10억원을 갚지 못해 1심에서 2년형을 받았고, 1년 뒤면 출소한다. 김영모의 구속영장을 보면 검찰이 ‘유사수신’과 ‘주가조작’ 혐의를 확인하고도 ‘사기’혐의로만 기소했기 때문이다. 우리 금융감독시스템은 전국에서 주식을 사들이는 ‘다단계 피라미드식’ 신종 주가조작을 걸러내지 못했다. 김영모의 사업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이제 우리는, 사법 당국은 무엇을 할 것인가.
2020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SBS
2020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 안혜민 기자
국가 예산은 곧 세금이다. 시민이 허투루 벌어서 낸 돈이 아닌 만큼 이 돈을 쓰려면 심사도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 시민이 낸 세금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3년째 국회 예산 심사 회의록을 전수 분석했다. 2017년 4703, 2018년 5453, 그리고 올해 4795페이지. 3년 동안 1만4951페이지를 찬찬히 읽고 세밀하게 분석했다.
일부 나아진 면도 있었다. 2년 연속 지적했던 문제 사업은 올해 예산에는 편성되지 않았고 노골적으로 법률을 무시하는 발언도 회의록에서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올해 국회 신규사업 규모는 작년보다 8배 가까이 불어났다. 3년 연속 국회 신규 사업은 증가했고 법과 원칙을 어긴 사업들은 매년 늘었다. 회의록을 ‘패싱’ 하려는 의원들의 흔적도 확인됐다.
국회 예산심사 회의록은 말 그대로 국회의 심사 과정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보다 앞선 단계인 기획재정부 예산 편성 과정의 문제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단계의 심사를 분석했지만, 지면에 담지는 못했다. 국회 회의록처럼 따로 심사과정이 공개되지 않아 분석에 한계가 있었다. 아쉬운 점이다. 동료들 덕분에 큰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취재, 영상취재, 영상편집, 디자인, 개발, 인턴 등 동료 선후배들과 함께 한 결과라 더 뿌듯하다. 21대 국회의 첫 번째 예산 심사는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을 품고 예산 심사 감시를 이어가겠다.
녹아내리는 노동, 내:일을 묻다 경향신문
녹아내리는 노동, 내:일을 묻다
경향신문 정치부 손제민 기자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일상에서 ‘비접촉’ ‘비대면’이 강조되고 있다. 배달 노동자의 일이 폭증했으며 기업이 감염증 확산을 우려해 사무직 노동자들의 재택 근무를 권장한다. 학교는 온라인 개학을 했고, 종교 집회도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장례식의 상주가 조문객을 사절하는 일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며, 온라인 결혼식을 하는 신혼부부도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비접촉, 비대면 문화의 확산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이미 예비돼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그러한 기술 변화가 우리의 삶 속에 더 빨리, 현실감 있게 들어오고 있을 뿐이다. 특히 노동 현장은 생산직, 사무직, 서비스직 할 것 없이 주로 개별 기업의 이윤 극대화 동기에서 추동되는 인공지능(AI)·자동화와 디지털 플랫폼 기술의 적용으로 바닥에서부터 바뀌고 있다. 표준 고용관계 중심의 노동자보호와 사회복지 제도 안에 들어오지 않는 노동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신문기자 역시 그러한 기술 변화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녹아내리는 노동’에 주목하게 된 것도 노동자로서 나 자신의 일과 직결돼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현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해온 ‘4차 산업혁명’이 우리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불안정 노동자들에겐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궁금했다. 의도치 않았겠지만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없어지는 직업’이란 말로 화두를 던진 청와대 관계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노동자의 밥상 한겨레신문
노동자의 밥상
한겨레신문 사회부 김민제 기자
한겨레 노동자의 밥상 기획팀은 15번 밥상과 마주했다. ‘짬밥’이 담긴 식판, 콜라 한 병, ‘뜨라이뚜어’라는 생소한 이름의 생선요리까지. 메뉴는 다채로웠고 밥상 앞 이들의 삶도 제각각이었지만, 15개 끼니는 어딘가 닮아있었다.
기획팀이 만난 밥상은 일터와 분리되지 않았다. 광업노동자 김대광은 탄광 휴게실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도시락을 식탁에 놓으면 쥐떼가 달려드니 천장에 매달았다가 먹었다. 식탁이라 부를 게 없기도 했다. 철도기관사 유흥문은 평평한 기관실 기기를 밥상 삼았다. 넉넉한 시간은 사치였다. ‘쿠팡맨’ 조찬호는 밥 대신 콜라를 마신 뒤 택배를 들고 뛰었다.
무엇보다 가장 닮아있던 것은 밥상이 가진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비싼 반찬 하나 없이 때론 길 위에서 해치우는 밥이었지만 이들은 그 힘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고 세상에 윤을 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일해야 세상이 돌아간다”고 말하는 청소노동자 김순남(가명)처럼 말이다.
밥상에 담긴 귀한 이야기를 기사로 쓸 수 있었던 것은 기획팀이 함께 움직인 덕분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를 지탱하는 일꾼의 밥, 노동, 삶을 기록하자’는 엄지원 캡의 제안에 이재훈 사건팀장과 팀원 전체, 사진부 김명진, 박종식 선배가 뛰어들었다. 취재원은 자기 삶을 기꺼이 보여줬고 독자는 공감을 아끼지 않았다. 기획을 이끈 선후배, 밥심으로 일하며 세상을 빛내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20 부동산 대해부 - 계급이 된 집 서울신문
2020 부동산 대해부 - 계급이 된 집
서울신문 경제부 김동현 기자
2019년의 주요 화두 중 하나가 아파트 값이었다. 법적으로 공동주택으로 불리는 하나의 주거형태에 불과하지만 한국에선 생활공간의 의미를 넘어 사회·경제 계층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됐다.
서울신문 경제부는 <2020 부동산 대해부-계급이 된 집>을 기획하면서 △누가 수십억원짜리 집을 어떻게 사고 있나 △왜 강남 집값은 비싼가 △고위관료들의 강남 거주 비율은 얼마나 되나 등 3가지에 대해 질문을 해보고 답을 구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약 8000여통의 주택등기부등본을 떼서 598개 아파트 매수자 연령과 성별, 대출 금액, 거주지 등을 파악했다. 또 ‘왜 강남 아파트 가격은 비싼 것인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지난 20년간 이뤄진 도로·철도 관련 예비타당성 조사 370건을 전수 조사해 지역별로 분류했다. 또 서울시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지역별 혐오시설 배치 비율과 선호시설 배치 비율, 전봇대 지중화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주거 환경을 분석했다.
이번 기획에서 서울신문 경제부가 독자들에게 전하려고 한 것은 정부의 강력한 규제에도 계속되는 강남 불패의 근본 원인이 어쩌면 ‘불균형한 도시 정책’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부동산등기 수천통을 떼는 무모한 취재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안미현 편집국장과 기획의 완성도를 높여준 김경두 부장, 그리고 자료 정리를 위해 휴일과 야근을 마다하지 않은 팀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공소장 입수 보도 동아…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공소장 입수 보도
동아일보 사회부 장관석 기자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에 청와대가 개입한 혐의로 검찰이 기소한 사건입니다. 주요 국면마다 현격한 견해차를 보인 이 사건 공소사실을 보도하고 검증하는 건 언론의 정당한 책무입니다.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던 사건의 사실 관계를 살펴 새로운 팩트는 보도하고, 반대로 검찰이 무리한 표적 수사를 벌인 건 아닌지 따져보는 공적 담론의 장을 이끌 수도 있습니다. 사법부 최종 판단과 별개로, 지금 이 순간의 공동체 핵심 현안에 국민이 접근하고 나름의 견해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언론이 발굴하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법무부는 1월29일 사건이 기소된 이후 결국 공소장을 비공개 결정했습니다. 수사 중 피의사실 보도가 아니라 이미 기소돼 법정에서 낭독될 공소사실을 ‘보편적 형사 피고인의 인권’을 내세워 이 사건부터 변경된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전례가 없었습니다. 저희는 국민 앞에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해 활발한 담론이 일어나는 게 올바르다고 판단하고 취재했습니다.
보도 대상의 인격권과 국민의 알권리는 긴장과 대립의 관계입니다. 인격권은 분명히 두텁게 보장되어야 할 가치이지만, 알권리를 원천 봉쇄하는 방패로만 기능해서도 안 됩니다. “조금 늦게 알아도 될 권리”라는 말은 적어도 이 사건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