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6편
실손보험 대해부 매일경제신문
실손보험 대해부
매일경제신문 유준호 기자
“실손의료보험이 의료 시스템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실손보험 비급여 보험금을 악용해 돈벌이를 하는 상황이 확산되면서 대학교수나 전공의 등이 황금을 좇아 개원가의 인기과로 빠져나가고 있고 3차병원에서 고급인력이 줄고 있습니다.” 실손보험 대해부 시리즈를 준비하던 우리에게, 한 의사의 용감한 고백은 기사의 방향을 잡는 데 큰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가입자가 4000만명에 달해 국민보험이나 다름 없는 실손보험은 그동안 보험사기, 보험금 누수 같은 문제들을 양산해왔습니다. 그동안 나왔던 여러 기획들도 이 같은 보험금 누수에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우리는 ‘의료 대란’ 사태를 통해 필수의료의 부족에 실손보험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판단으로 취재를 시작했고 여러 의사들의 양심고백과 현장취재, 개원현황 같은 통계를 바탕으로 기사의 완성도를 높여갔습니다. 특히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의사들이 내부고발자라는 손가락질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용기있게 실태를 얘기해 준 것이 큰 힘이 됐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실손보험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분위기가 무르익은 만큼 획기적인 개편안이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실손보험 누수를 막아 전 국민의 보험료 부담을 줄이고, 환자를 위해 묵묵히 의료 활동을 수행하는 의사들에게도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기를 희망합니다.
이번 시리즈는 금융부 보험담당 임영신·유준호 기자와 과학기술부 의료담당 김지희 기자의 협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전체적 기획 방향을 잡아주신 김규식 금융부장, 기획을 선두에서 이끌어주신 이진우 편집국장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산 자들의 10년 한국일보
산 자들의 10년
한국일보 유대근 기자
두렵고 막막했습니다. 10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쓰기로 했을 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 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참사 조사 때 참여한 전문가나 유가족 등을 만나 여러 뒷얘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기사가 그렇지만 참사 10주기 기획물만큼은 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길 바랐습니다. 평범한 독자들이 세월호 이야기에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기사가 되길 바랐습니다. 기사를 읽고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깊고 중층적인 이야기가 있었구나’하는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취재 방식과 문체, 관점 등 모든 것을 달리해보고자 애썼습니다. 기사를 소설 작법으로 쓴 것도, 지역 곳곳에 숨어 사는 가해자들을 찾아 나선 것도, 그동안 언론 앞에 잘 서지 않던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유가족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참사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세월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사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고민해 볼거리를 던져준 유족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취재하는 과정에서 지난 10년간 세월호 참사를 집요하게 취재해온 업계 동료 기자들의 기사를 만났습니다. 그들의 보도 덕분에 저희가 조금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부단히 애써온 동료 기자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서울시 모아타운 ‘골목길 쪼개기’ 극성..자치구 25…
서울시 모아타운 ‘골목길 쪼개기’ 극성..자치구 25곳 전수 조사
MBC 이문현 기자
“서대문구 골목길이 130명에게 쪼개졌다.”
이 한 줄의 제보가 취재의 시작이었습니다. 입주권도 받을 수 없는 이 작은 지분을 매수인들은 대체 왜 산 것일까. 실체가 불분명했고 동네 공인중개사도 거래의 내막을 알지 못했습니다. 무모했지만, 방법은 하나였습니다. 골목길 등기부등본에 나온 소유자 130명을 찾아다니며 ‘어떤 이유로, 누구에게 구매했는지’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구는 모른 척 시치미를 뗐고, 누구는 거래를 부인했습니다. 또 때로는 부모가 자식 이름으로, 때로는 자식이 부모 이름으로 구매한 탓에 취재는 길어졌고, 우리는 지쳐갔습니다.
한 50명 정도 집을 방문했을 때, 윤곽이 나왔습니다. 그 내막에 기획부동산의 장난질이 있었고 그들은 3~4배, 심하면 10배 수익을 약속하며 매입한 금액의 4배 값으로 서민 투자자에게 땅을 팔아치웠습니다.
보도 후, 시원함 보다는 숙제를 덜 끝낸 기분이었습니다. 서울 전역의 모아타운 후보지는 총 85곳. 서대문구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섣부르게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방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료들과 팀을 꾸렸습니다. 국토부 실거래가 시스템과 사설 부동산 사이트를 통해 하나하나 지번을 확인해가며 ‘골목길 쪼개기’ 주소를 찾아냈고, 인터넷 등기소로 그 실체를 확인했습니다. 서울 25곳 자치구를 뒤지는데, 꼬박 한 달하고도 열흘이 더 걸렸습니다.
지난한 작업이었지만, 속은 후련했습니다.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준 김지성, 제은효, 이지은 기자에게 고맙고 축하한다는 말을 남깁니다.
알펜시아리조트 입찰 담합 3년의 기록 KBS춘천
알펜시아리조트 입찰 담합 3년의 기록
KBS춘천 엄기숙 기자
처음부터 험하고 불편한 길이 예상되는 취재였습니다. 모두가 해피엔딩을 기대했던 ‘강원도 공유재산 매각’ 스토리에 ‘들러리 입찰이 있었다’는 막장 드라마같은 의혹을 던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입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의 1등 공신이자, 강원도 재정의 애물단지입니다. 1조6000억원이 조성에 들어간 탓에, 한해 수백억원의 세금을 이자로 내야 했습니다. 강원도민에게는 ‘애’‘증’의 대상입니다.
파장이 클 수밖에 없기에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확한 사전 취재에 매달리는 방법밖에는 없었습니다. 박상용 기자와 두 달 가까이 발품, 손품을 팔며 팩트를 확인했습니다. 취재팀이 움직이자, 입찰과 관련한 모든 입들이 굳게 닫혔습니다. ‘애물단지 팔았으면 됐지 뭐가 문제냐’는 방해와 공격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잘못된 과정을 정당화 할 수 없다고 취재진은 판단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4월, KBS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입찰 담합’이 맞다는 판단과 함께 51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첫 보도 이후 3년이 흐른 시점이었습니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집요하게 현장을 쫓은 취재팀. 그 과정을 신뢰해 준 데스크. 비판에 힘을 모아준 시민단체와 숨은 조력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취재였습니다. 불편한 길이라서 만날 수 있는 귀한 사람과 가치를 배웠습니다. 그 모든 분들께 수상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해외파견 교환학생 성적 조작 실태 G1방송
해외파견 교환학생 성적 조작 실태
G1방송 김이곤 기자
기획보도의 출발은 의심이었습니다. 해외파견 교환학생들이 AI 편집 프로그램으로 성적표를 위조해 학점을 인정받고, 1000만원에 달하는 교내외 장학금을 받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존에 목격했던 한국 사회의 다양한 성적 위조와 다른 형태였기 때문입니다. 교류대학이 많고, 해외 대학별로 성적표를 발급하는 방식이 다 다르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단순 성적 조작 사례를 전하는 데에서 멈추기보단, 왜 이런 성적 조작이 학생들 사이에서 계속 일어나는지, 구조적인 문제는 없는지 고민했습니다.
두 달여 이상 의심을 두고 취재한 결과, 교환학생 제도 법령이나 지침이 없어 관리 감독이 허술하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또 교환학생들이 성적표 위조를 통해 학점 인정과 장학금 수령, 취업 등 불공정한 스펙을 쌓아 올린 문제의 뿌리를 짚어냈습니다. 교환학생 성적 조작 문제는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전국 대학의 문제였습니다. 교환학생 제도는 정부가 아닌 대학 차원에서 활발히 이뤄지다 보니 대학도, 교육부도 관리 감독에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보도 후, 대학들이 잇따라 해외 대학에 요청해 원본 대조를 필수화하고 자체 점검을 강화했습니다. 교육부도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 논의를 시작했으며, 국회 교육위원회도 제정 발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어떻게, 얼마나 달라질지 계속 의심하고 지켜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막내인 제가 이번 기획보도 아이템을 발제했을 때, 응원해 주시고 조언해 주신 G1방송 보도국 모든 선배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4·3 폭발사고 보고서 ‘장난감의 비극’ KBS제주
4·3 폭발사고 보고서 ‘장난감의 비극’
KBS제주 안서연 기자
제주 기자라면 대부분 제주의 큰 아픔인 4·3을 공부하고 해마다 무얼 취재할지 고민합니다. 매년 4·3 특집을 하면서 수많은 과제와 직면하게 됐습니다.
이 가운데 이번에 주목한 건 4·3 당시 군경이 버리고 간 폭발물을 장난감인 줄 알고 갖고 놀다 희생된 아이들이었습니다. 끔찍한 사건이었지만, 직접적인 피해가 아니다 보니 이들은 그동안 피해 조사 대상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숨진 형제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건 국가가 아닌 유족 개인의 몫이었습니다. 이마저도 4·3특별법이 정한 4·3 기간을 지나 숨졌다는 이유로 희생자로 인정되지 못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찾은 유족과 목격자들은 70여 년이 흘렀지만,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살아남은 자들 역시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왔지만, 그 누구도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느 곳보다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아이들이 숨졌는데도 왜 이들은 숨죽여 있어야 했을까요. 폭발 사고 피해를 기록으로라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보도 이후, 국가 차원의 4·3 추가 진상조사 작업에 폭발 사고 피해 실태 조사가 포함됐습니다. 하마터면 역사에 묻힐 뻔한 억울한 희생을 어루만질 수 있게 된 겁니다. 얼마 전 누님을 폭발 사고로 잃은 70대 할아버지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는 말씀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꺼내놓아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희생자들을 기리는 일에도 힘을 보태주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제는 개인이 아닌, 국가가 아픈 역사를 보듬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