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4편
얼차려’ 훈련병, 가혹행위 사실확인 KBS
얼차려’ 훈련병, 가혹행위 사실확인
KBS 김덕훈 기자
먼저, 이 사건으로 순직한 故박 모 일병(추서 전 훈련병)의 명복을 빕니다.
누군가가 생명을 잃은 사건을 취재해 기자상을 받게 돼 면구한 마음입니다. 박 일병과 그 가족께 죄송하고, 한국기자협회와 동료 기자들께는 감사를 드립니다.
박 일병 사망 사실을 알게 된 건 지난 5월26일 일요일 저녁입니다. 당시 SNS에서 박 일병 사망과 관련한 소문이 돌자 육군은 선제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육군은 기자단에 “유가족분들이 언론보도를 희망하지 않는다”며 “보도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해 달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박 일병 유가족이 군인권센터의 조력을 받으며 박 일병 죽음의 사실관계를 스스로 알리는 상황과 비교하면 온도 차가 큽니다. 유가족이 초기 대응을 못한 것은 가해 중대장이 박 일병 사망 직전 모친과의 통화에서 가혹행위 사실을 숨겼기 때문입니다. 박 일병 사망 직후 순직 결정까지 해놓고서도 사건이 미칠 파장 관리에만 중점을 뒀던 육군 태도에도 아쉬움이 큽니다.
최근에도 51사단에서 병사가 또 숨졌습니다. 징병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이 같은 억울한 죽음은 종종 반복될 것입니다. 군에 바라는 것은 딱 두 가지입니다. 나라를 지키려 입대한 젊은이들이 어이없는 일로 죽지 않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만약 억울한 죽음이 발생했다면, 조속히 사실을 알리고 책임자를 잘못한 만큼 처분해 주십시오. 기자도 기자에게 맞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군을 감시하겠습니다.
윤석열 정부 예비비 사용내역, 조서 입수 한국일보
윤석열 정부 예비비 사용내역, 조서 입수
한국일보 조소진 기자
“이렇게까지 알려 달라고 하는 분 처음 봐서요. 그게 왜 궁금하세요?”
모든 취재가 그렇지만 우여곡절이 많았고, 쓰고 나서 아쉬웠습니다. 비슷한 실랑이를 한 50번 했고 여러 번 찾아가 사정했습니다.
몇 번이고 확인한 숫자, 어렵게 받아 꾸깃꾸깃해진 예비비 사용 내역과 조서이지만 기사엔 다 못 담았습니다. 생업이 걸린 분들의 당부가 아른거렸기 때문입니다.
예비비는 정부 ‘비상금’입니다. 급할 때 쓰라고 마련해 두는 비상금도 엄연한 정부 예산이지만, 이 사용이 적절했는지 따져보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선 사용 후 심의’ 구조인 데다가 1년이 지나서야 ‘국가 결산’이라는 명목으로 일부만 공개되기 때문입니다.
분명 이 정부도 예비비를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필요했을 것이고, 급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비비는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의 ‘재정 보완재’가 아닌, 정말 불요불급한 곳에 사용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정부는 “예비비 신청금액 및 논의과정은 행정부 내부 의사결정 과정으로 통상의 예산편성 요구, 논의내용 등과 같이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예비비에 대한 검증과 감시가 더 강화되면 좋겠습니다. 일시적인 정쟁 소재로 소비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후배를 이끌어주신 고찬유 부장, 이대혁 차장, 경제부 선배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용기 내주신 정부 관계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더 열심히 취재하겠습니다.
영웅들은 왜 돌아오지 못했나 경향신문
영웅들은 왜 돌아오지 못했나
경향신문 김현수 기자
“소방관이 죽으면 소방청이든 언론이든 일단 영웅부터 만들어요.”(순직 소방공무원 추모기념회 김종태 사무총장)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영웅들은 왜 돌아오지 못했나> 최초 기획 방향은 지난 1월 발생한 경북 문경공장 화재 50일을 맞아 순직 소방관들의 생전 모습과 영웅적인 면모를 담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취재를 하면 할수록 어쩌면 이들의 죽음이 ‘사고가 아닌 인재’일 수도 있겠다는 의문이 쌓여갔습니다.
기획 방향이 완전히 틀어진 건 소방청이 지난 3월 순직사고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부터였습니다. 발표 자료에는 일부 소방 대응의 문제점이 적혀있었지만, ‘부정확한 정보 전달과 방수 개시 등 현장 활동 정보 공유 미흡’이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했습니다. 소방청에 ‘조사 보고서’ 원본을 요청했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비공개 대상 정보”였습니다. 최근 10년간 화재진압 등 위험한 직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소방관은 40명이나 됩니다. 이들은 특진과 훈장을 추서 받고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됩니다. 숭고한 죽음에 대한 예우입니다. 하지만 소방청은 이들을 ‘영웅’으로 예우하면서도 죽음에 대한 객관적 사실은 감추고 있었습니다.
경향신문은 순직사고 조사에 참여한 위원들과 접촉해 보고서 조각들을 힘들게 모았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7건의 순직사고 보고서에는 우리가 알던 영웅은 없었습니다. 고장 난 시스템으로 인해 희생된 소방관들만 있었습니다. 보도 이후 소방청은 순직사고 예방을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해왔습니다. 고장 난 시스템에 의해 더는 우리의 영웅이 현장에서 쓰러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묻고 쓰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역주재 기자 특성상 장기간 취재로 인해 발생한 공백을 불평·불만 없이 메워주시며 끊임없이 격려해신 전국사회부 선후배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여고생 사망-합창단 연관 의혹 인천일보
여고생 사망-합창단 연관 의혹
인천일보 변성원 기자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몸담게 된 종교에 자유를 박탈당한 채 여고생의 찬란한 청춘은 꽃피우기도 전에 폭력과 억압 속에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열일곱, 세상을 등지기에는 너무 어리고 눈부신 시절이다. 여고생은 심각한 인권 침해와 불법 행위로 통제되는 방식에 익숙해진 신도들로부터 외면당한 채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
장기간 학대에 시달리다 숨진 여고생의 손목에는 결박된 흔적이 있었고 온몸에는 멍이 있었다.
교회는 처음부터 학대 행위가 없었다며 신도 범행은 물론 조직적 학대 의혹을 부인해왔으나, 많은 이들의 용기 덕분에 교회의 숨겨진 추악함을 파헤쳐 배후 인물인 합창단장과의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회 인근 주민의 목격담으로 시작된 후속 보도 이후 전 신도들의 증언이 잇따랐고 크고 작은 제보들이 모여 여고생이 죽음을 통해 고발한 교회의 실상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인천일보 취재진도 그들의 용기가 헛되지 않도록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평소에 다니지 않던 교회에 숨어들어 취재하는 등 교회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부단히 현장을 뛰어다녔다.
사건을 처음 접하고 느꼈던 안타까움과 분노는 취재 과정에서 여고생의 사망이 합창단까지 뿌리 깊게 연관된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가까운 미래에 언제든 비슷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점차 바뀌었다. 모두가 사건의 배후 인물로 지목한 합창단장에 다가가는 걸음걸음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추적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이자 다음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동력이기도 했다.
이제 곧 여고생 사망과 관련된 합창단장과 단원, 신도가 재판대에 선다. 이들의 죄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이뤄져 이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