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재착수
① 단독취재( ○ ), ② 단독기획( ), ③ 보도자료 심층기획( ), ④ 제보( ), ⑤ 기타( )
경남 합천 주민들을 처음 만난 것은 2021년 10월25일 이었습니다. 당시 광주광역시 5.18민주묘지를 찾은 25명의 합천 주민들은 ‘오월 영령’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민들은 당시 “합천에는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전두환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이 있다. 죄송스럽고 부끄럽다”며 사과했습니다.
합천은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의 고향입니다. 전국사회부 소속으로 광주를 담당하고 있던 기자는 광주를 처음으로 찾아온 합천 시민들의 하루를 취재해 보도했습니다. 합천에 ‘일해공원’ 이라는 공원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합천 시민들이 고향 출신 전두환씨를 대신해 오월 영령들에게 사과한지 한달이 지난 2021년 11월23일 전씨가 사망했습니다. 전씨 사망 이후, 그에 대한 뉴스도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3년이 흐른 지난 4월, 5.18민주화운동 44주년을 앞두고 ‘합천 시민’들의 소식을 다시 접했습니다. 5.18기념재단은 이들을 5.18전야제와 기념식에 초청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합천 주민들이 5.18공식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잊고 있었던 합천시민들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당시 만났던 생명의숲되찾기합천군민운동본부 고동의 간사에게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일해공원’ 문제가 어찌되었는지를 물었더니 고 간사는 “그렇지 않아도 광주에 가서 국민들에게 이 문제를 더 알릴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3년이 지났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상식 밖의 일이었습니다. 기자는 5.18 44주년에 맞춰 광주를 찾는 합천 주민들의 절박한 마음을 직접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일해공원’이 어떤 모습으로 합천에 버티고 있는 것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만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5월14일 오전 일찍 광주에서 합천으로 향했습니다. 일해공원 취재 이후 합천 전두환 생가도 직접 찾아갔습니다. 합천에서는 무관심 속에 ‘전두환 우상화’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2. 보도제작경위 -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십시오.
“전두환 출생 영원히 기념”
경남 합천읍을 흐르는 황강변에서 처음 마주한 ‘일해공원’ 표지석은 1t 화물 차만한 크기의 거대한 바위였습니다. 주민들이 많이 찾는 체육공원과 어린이놀이터, 3.1운동기념탑 등도 공원에 있었습니다.
전씨는 사망했지만 합천에서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남아있었습니다. 2008년12월 합천군은 표지석을 세우며 뒷면에 “전두환 대통령이 출생하신 자랑스런 고장임을 후세에 영원히 기념하고자 일해공원으로 명명한다”고 새겼습니다.
원래 이 공원은 ‘새천년(2000년대)’을 기념해 경남도 공모사업을 통해 건립됐습니다. 합천군은 2004년 이 공원을 완공하고 ‘새천년 생명의 숲’으로 불렀습니다. 합천군을 직접 찾아가 이름이 바뀐 경위를 취재했습니다. 군은 ‘주민 설문조사를 진행했다’고 강변했습니다. 하지만 군에서 제공한 자료를 살펴보니 우편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의 대상은 이장이나 관변단체 회장이었습니다.
합천군은 기자에게 “조만간 일해공원 명칭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공론화를 진행하기 위해 용역업체 선정을 마칠 것”이라고 했지만 적극적인 태도는 아니었습니다.
기자는 합천 읍내에서 일반 주민들도 만나 생각을 물었습니다. 한 시민은 “합천의 작은영화관에서도 영화 ‘서울의 봄’을 상영했는데 주민들이 영화를 많이 봤다”면서 “실제 주민들의 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일해공원 대신 원래 이름이었던 ‘생명의 숲’을 되찾는 일이 지역 내 갈등 속에 17년째 진전이 없자 주민들은 광주에서 이 문제를 알려, 국민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새롭게 군민운동본부 간사를 맡은 김형천씨는 “어떤 사람의 호를 공공시설에 사용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행적을 ‘기리는 것이다. 일해공원을 이대로 두면 ‘전두환 미화’의 씨앗이 될 게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또 “합천은 좁은 지역이다.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은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우상화의 싹’은 무관심을 먹고 자란다.
합천에는 ‘일해공원’ 말고도 전씨와 관련된 기념물이 곳곳에 남아있었습니다. 군청 앞마당의 커다란 향나무는 1980년 9월5일 제11대 대통령에 오른 전씨가 합천을 방문해 심었다는 표지석이 있었습니다.
합천까지 왔으니 전씨의 생가도 직접 찾아가보기로 했습니다. 읍내를 벗어나 20여분쯤 거리에 있는 전씨 생가는 말끔하게 정비돼 있었습니다. 이 생가는 1983년 합천군이 631㎡부지에 복원했습니다. 군은 매년 1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생가를 관리합니다.
전씨 생가는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군 소유의 공공시설물로 관리되고 있었던 겁니다. 생가는 전씨에 대한 ‘맹목적 우상화’ 현장이었습니다. 한글과 영어로 된 생가 안내문만으로는 전씨가 12·12군사반란을 주도했고, 5.18을 유혈 진압한 책임자라는 사실을 아예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생가 마당에는 전씨를 ‘영웅’으로 추앙하는 더욱 충격적인 내용의 팻말이 있었습니다. 2곳에 설치된 팻말 내용은 “대한민국의 위기를 극복하신 영웅적인 전두환 대통령 존경합시다” 였습니다. 설치일자를 추정할 수 있는 내용도 있었는데 ‘2023. 3. 15 식수’ 라고 적혔습니다.
1년이 넘도록 전씨를 영웅으로 칭하며 존경하자는 내용의 팻말이 2개나 모든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마당에 버젓이 설치돼 있었던 것입니다. 합천군이 공공시설로 관리하고 있고 마당 잔디 등이 잘 정리된 것을 감안하면 군이 이를 몰랐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군청은 기자가 사진을 제시하자 그제야 “그동안 알지 못했다.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했습니다.
전씨는 재임기간 민주주의를 억압했고, 1995년 검찰 수사를 받고 구속 기소됐습니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반란수괴,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 뇌물 등 9개에 달하고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습니다.
전씨에 대한 법적·역사적 평가는 이미 확정됐지만 우상화의 씨앗은 ‘국민들의 무관심’을 틈타 자라고 있었던 겁니다.
5.18 44주년을 하루 앞둔 5월17일, 경향신문은 1면과 6면에 걸쳐 일해공원과 생가에 설치된 팻말 등 ‘전두환 우상화’가 진행되는 합천의 문제를 보도했습니다.
기자는 5월17일 5.18전야제에 처음 참석해 금남로를 행진한 합천 주민들도 현장에서 만나 취재했습니다. 5월18일 5.18기념식 직후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일해공원 명칭’ 관련 입장과, 5월22일 합천 현장 방문과 관련한 기사도 경향신문 온라인을 통해 지속해 보도했습니다.
3.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① 기사에 등장하는 익명취재원의 상당성여하
-기사에 등장하는 익명 취재원은 영화 ‘서울의 봄’과 관련해 말씀해 주신 합천군 주민인데 해당 주민이 익명을 요구했습니다.
② 제보자와의 특별한 이해관계여하
-제보자는 없으며 기자의 현장 취재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전씨 생가는 일해공원 취재이후 기자 혼자 독자적으로 진행했습니다.
③ 직접취재(바이라인), 현장취재(데이트라인)여하
-기자가 경남 합천을 직접 찾아 일해공원과 전씨 생가, 군청 등을 취재했습니다.
④ 기타 특이사항 여하
4.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선행보도 또는 타 보도에 관한 표절여부도 체크해 주시기 바랍니다)
합천 전두환 생가에 그를 영웅으로 칭송하는 내용의 팻말이 1년 넘게 설치돼 있었다는 사실은 기자의 현장 취재를 통해 처음 확인됐습니다. 전두환 생가 앞에 설치된 안내판 내용도 경향신문 보도가 있기 전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일해공원’ 문제의 경우 지난 수년간 경남도민일보 등 지역 언론에서 여러 차례 보도된 적이 있지만 전국적인 관심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5.18기념재단이 수년전 진행한 ‘지자체 전두환 흔적 지우기’ 대상이 되면서 일부 보도가 됐지만 반짝 관심에 그쳤고 역시 이슈화 되지 못했습니다.
경향신문 보도이후 연합뉴스와 뉴시스, 뉴스1 등 통신사를 비롯해 MBC, KBS, SBS, JTBC, 등 방송사와 서울신문, 헤럴드경제, 매일신문, 경남도민일보 등 중앙과 지역 언론 등이 ‘전두환 생가에 우상화 푯말’이 설치돼 있고 합천군이 이를 철거했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5.18전야제와 기념식에서 합천 주민들의 ‘일해공원’ 반대 활동이 조명되면서 후속 보도도 이어졌습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직접 합천을 찾았고, 일해공원이라고 쓰인 종이를 찢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내용 역시 연합뉴스, 뉴시스, KBS, MBC, JTBC, 중앙일보, 한국일보, 서울신문 등 전국의 주요 언론과 지역 언론들이 보도했습니다.
5. 사회에 끼친 영향
(후속적인 제도개선 등이 이루어진 사정이 있으면 이를 언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5.18 44주년을 하루 앞두고 보도된 경향신문의 보도는 그동안 무관심속에 전두환 ‘우상화의 싹’이 자라고 있는 현장과 이를 막아내려는 합천 시민들의 절박함을 생생하게 전달했습니다.
전두환 생가와 일해공원을 직접 취재, 이 문제가 단순히 작은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평가가 끝난 ‘독재자 우상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계하는 시각의 경향신문 기사는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합천군은 경향신문 취재이후 생가에 설치된 푯말을 제거했고 “앞으로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일해공원 명칭 변경 문제와 관련해서도 “공론화 진행 업체를 빠르게 선정·진행하겠다”는 입장도 밝혔습니다.
조국혁신당등 정치권도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조국 조국혁신단 대표는 지난 5월22일 합천을 직접 방문해 “독재자 호를 군민이 이용하는 공원에 사용한 것은 상식과 멀다”며 정부가 나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합천 주민들과 5.18기념재단은 ‘일해공원’ 명칭변경을 촉구하는 ‘시민 청원’을 함께 하기로 하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6.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언론윤리강령기준의 준수여부까지 포함시켜 자체평가해주시기 바랍니다)
취재와 보도는 언론윤리강령을 준수했습니다. 경향신문 내부에서는 ‘작은 지역의 문제’로 넘길 수 있는 사안의 본질을 파악, 방치할 경우 ‘독재자 우상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기자의 현장 취재가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보도였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7. 기타 고려사항
① 외부 지원여부, 보도당사자의 반론신청, 언론중재위원회에의 피신청사항이 있으면 이를 언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보도는 경향신문 자체 취재로 진행됐고 반론신청이나 언론중재위원회 피신청 등은 없습니다.
회차 심사평
제405회 전체 총평
제405회 ‘이달의 기자상’심사에는 69편이 출품돼 4개 작품이 수상작으로 뽑혔다. 평소보다 출품작이 많았으나 수상작은 적은 편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 44주년을 맞아 기획보도 신문·통신, 지역 기획보도 신문·통신, 지역 기획보도 방송 부문으로 4편의 우수한 기사가 올라왔으나 아쉽게 수상작으로 선정되지는 못했다. 사회적 파장이 컸던 트로트가수 김호중씨의 음주 뺑소니를 다룬 기사를 놓고서도 심사위원들의 열띤 토론이 있었지만 수상작으로 선정되지는 못했다.
13편이 경쟁한 취재보도1부문에서는 KBS의 <‘얼차려’ 훈련병, 가혹행위 사실확인>이 최종 선택을 받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책임 규명의 목소리가 높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또다시 군부대에서 발생한 얼차려 사망 사건이라 사회적 파장이 더욱 컸다는 평가를 받았다. 군인권센터가 먼저 사망 사고를 발표하기는 했지만 완전군장에 1.5㎞ 구보, 팔굽혀펴기 등의 팩트를 확인해 얼차려가 규정에서 벗어난 것이었음을 보여주면서 사건 흐름을 주도했다는 평가다. 구조적 문제까지 짚었더라면 조금 더 완성도가 높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었으나 보안이 철저한 군을 대상으로 하는 어려운 취재였다는 점에서 수상작으로 뽑기에 손색이 없었다.
10편이 출품된 경제보도부문에서는 한국일보의 <윤석열 정부 예비비 사용내역, 조서 입수>가 이견 없이 일찌감치 수상작 목록에 올랐다. 국가 비상금이나 다름없어 꼭 필요한 곳에만 써야 할 예비비를 정부가 함부로 쓰는 실태를 제대로 짚어냈다는 점에 심사위원들은 이견이 없었다. 정부의 예비비 편법 사용 문제는 언론에서 그동안 지적한 문제이기는 하다. 특정 부서를 대상으로 한 개별적인 문제제기에서 그치지 않고 각 부처에서 사용내역에 대한 자료를 어렵게 구하고 종합적으로 분석한 기사라는 평이 많았다. 단발성이 아니라 후속 보도가 이어진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기사가 될 것이라는 논의가 있었음을 사족으로 덧붙인다.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에서는 경향신문의 <영웅들은 왜 돌아오지 못했나>가 영광을 안았다. 대형화재로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언론은 어김없이 소방시설 등 안전기준 미준수나 소방서와 지자체의 소방점검 부실, 화재에 취약한 필로티 구조나 건물 자재 사용 등에 주목한다. 화재 진압 도중 숨진 소방관에 대해서는 평소 소방관으로서 헌신적인 면모를 조명하고 희생정신을 기리는 기사가 뒤따른다. 경향신문 기사는 이런 도식적인 접근이 아니라 소방 현장에서 지휘관의 판단미숙과 현장지휘가 문제가 될수 있고 매뉴얼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피해자 이송 인원이 현장에 투입되는 등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짚고 있다. 얼마 전 어느 소방서장의 퇴임식에 참석한 한 심사위원이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소방관들에게 물었더니 거의 모두 공감하더라”고 전한 말이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주는 최고의 심사평이 될 듯싶다. 앞선 수상작과 마찬가지로 후속 기획물을 통해 기획을 더욱 심화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는 점을 전한다.
지역 부문은 우리 지역 언론계의 저력과 노력을 새삼 확인하는 기회라서 심사 때마다 심사위원들에게 신선함과 고민을 동시에 안겨준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은 숙의를 거듭한 끝에 인천일보가 지역 취재보도부문에 출품한 <여고생 사망-합창단 연관 의혹>을 선택했다. 종교집단은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아 성역처럼 돼 있는데 지역언론이 깊숙하게 파고 들어 실상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인천지역 언론이 타 지역인 대전까지 취재해서 17살 여고생의 죽음이 교회 합창단, 음악학교와 연관돼 있음을 보여준 것에 대한 좋은 평가도 있었다. 보도 이후 합창단장 구속으로 이어지는 등 사회에 미친 파장도 컸다.
이 밖에도 지역의 국책사업이나 난개발을 다룬 기획보도물이 호평을 받았으나 수상작에 들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