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재착수
① 단독취재( ), ② 단독기획( O ), ③ 보도자료 심층기획( ), ④ 제보( ), ⑤ 기타( )
■ 발포 명령자, 누구?
5·18 44주년 특집 기획 <다시, 체로키 파일을 열다>와 다큐멘터리 <그가 죽었다>는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실패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조사위가 5·18의 최대 난제인 5월 21일 집단 발포의 명령자를 밝혀내지 못했다고 해서, 진상규명이 이대로 끝나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왜곡의 소지가 넘쳐나는 보고서들을 다시 뜯어 본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었습니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기로 했습니다. 44년 전 그날의 진실을 미국에서 추적해 보도한 배경입니다.
미국으로 향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1월이었습니다. 취재팀은 4년 전 올라온 한 유튜브 영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존스홉킨스 대학원이 주최한 토론으로 1980년에 활동했던 미국 전직 관료들이 5·18 당시의 기억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조회수는 400회뿐, 서둘러 프로젝트를 기획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영상에 등장한 미 국무부 전 한국과장 로버트 리치와, 미 군사정보국 전 서울지부장 제임스 영을 직접 만나서 묻기로 결심했습니다. 조사위가 접촉하지 않은 인물이라면 더욱 절실했습니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그 날의 발포 명령 책임자가 누구인지, 미국 정부는 알고 있냐고 말입니다.
2. 보도제작경위 -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십시오.
■ 비밀 문건 작성자 찾아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취재팀은 5·18의 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는 일명 ‘체로키 파일’ 문건을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워싱턴과 서울을 오간 비밀 전문으로, 미국이 당시 광주 상황을 낱낱이 보고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어 5·18 진상규명의 핵심이 되는 문건입니다. 3500페이지의 분량도 분량이지만, 내용을 해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국방*행정 용어, 축약된 코드, 군사 기밀 등급 등 전문가 자문을 통해 우리 말로 풀어냈습니다. 그제야 미국 정부가 당시 광주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 달간 인터뷰를 준비하던 중 정말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1980년 5월 26일 자, 계엄군이 상무충정작전을 펼치기 하루 전, 미국 국무부에서 생산된 체로키 파일을 들여다보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인민재판(Peoples Court)’ ‘처형(Execution)’ 등 광주 상황과 관련해 왜곡된 내용들을 곳곳에서 발견했습니다. 전두환 신군부가 진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거짓 정보를 흘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해당 문서를 통해 제기돼 왔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문서 상단에서 취재팀이 만나려는 인물의 이름이 보였습니다.
‘DRAFTED BY R.G.RICH (초안 작성 : 로버트 리치)’
취재팀이 만나려는 인물이 이 문건을 작성한 당사자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아낸 겁니다. 가슴이 뛰었습니다. 광주 시민들이 인민재판을 했다는 등의 거짓 정보를 누구에게 들었던 건지, 의혹으로만 제기돼왔던 것을 실제 작성자에게 직접 확인할 길이 생긴 겁니다.
더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정보공개법(FOIA)에 따라 문건의 중요한 부분이 여전히 가려져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취재팀이 인터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5·18의 진실은 무궁무진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① [단독] [다시, 체로키파일을 열다] - 체로키 파일 작성자 찾아냈다
https://kjmbc.co.kr/article/HDf5kxFNm2QeLoi_CTu
이후부터는 취재 방향을 어떻게 잡을지, 구성을 어떻게 짤지 차근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 밝혀달라’는 식으로 무작정 접근하는 방법은 피하기로 했습니다.
12·12 군사반란 이후 전두환과 글라이스틴 주한미대사의 만남에 대한 미국 국무부의 반응과 우려, 전두환이 중앙정보부장서리에 임명된 이후 미국 정부의 판단, 5월 21일 집단발포 이후 백악관에서 열린 정책 검토회의의 안건 등 시간의 흐름대로 질문을 짜임새 있게 정리했습니다.
신군부와 미국 정부와의 관계를 살피되, 미국이 광주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했던 것이라면 그 책임을 묻는 것까지 같이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 핵심 진술 나왔다
그래서 ‘두 번 찾아가기’로 전략을 꾀했습니다. 첫날 인터뷰를 진행하면, 숙소로 다시 돌아와 꼬리 질문을 정리해 다음 날 다시 찾아가는 방식입니다. 고령이 된 전직 관료들이 점진적으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든 하나의 장치였습니다. 인터뷰 전략은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미국의 전직 관료 입에서 ‘실패’라는 단어가 나온 겁니다. 정확히는 민간 정부가 들어서 안정을 찾을 때까지 전두환을 억제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겁니다. 놀라웠습니다. 한미연합사 소속의 20사단 병력 이동을 승인해준 문제를 두고 5·18에 대한 미국의 책임 문제가 여전히 뜨거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취재팀은 이 답변에 힘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광주와 비슷한 비극을 겪은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좇았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군사정권의 무자비한 학살을 묵인한 사실을 공식으로 인정한 사례를 참고했습니다. 당시 미국이 생산한 비밀 문건을 추가로 공개하겠다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약속을 보도와 다큐멘터리에 담아낸 것은 체로키 파일처럼, 광주 상황에 대한 비밀 문건을 여전히 꼭꼭 숨기고 있는 미국 정부를 향해 취재팀이 던지는 메시지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한 아르헨티나 대사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5·18 국제포럼에서 취재진과 만났던 인연을 잊지 않았던 대사는 이번 기획 보도의 취지에 공감하고 흔쾌히 인터뷰를 승낙해줬습니다. 취재팀도 대사의 인터뷰를 통해 아르헨티나와 광주 역사의 공통점을 되짚고 나서야,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국제적인 관점을 재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 Up to ‘Chun(전두환)’
광주MBC 취재팀이 4년의 활동을 마친 조사위에 가장 크게 실망했던 점은, 발포 명령자를 밝힐 것처럼 자신만만했던 출범 당시 모습과는 달리, 결국 진상규명 ‘불능’ 딱지가 붙은 보고서를 내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전두환은 끝내 5·18 어떠한 사과도 없이 사망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집단 발포 명령자가 영구미제로 남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뜻밖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인지, 27일 진압 당시의 집단 발포인지를 취재진에게 되물은 겁니다. 놀라웠습니다. 아흔 살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44년 전 광주 상황을 기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던진 한마디,
“At the beginning, I’ve always assumed it was largely the local commander. But it could have been all the way up to Chun.(전두환)”
“첫 번째 집단발포 명령자는 현지 지휘관이었다고 주로 간주하고 있지만, 전두환(Chun)까지 올라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취재팀은 이 발언에 주목하기로 했습니다. 미국 행정부의 심장부인 국무부 전직 관료가 이런 판단을 내렸다는 건, 발포 명령에 대한 증언과 기록이 어딘가엔 분명히 남아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진상규명을 여기서 멈춰서는 안되는 이유도 함께 시사했습니다.
⑧ [다시, 체로키파일을 열다] - 발포명령자, 정말 진상규명 불가능한가
https://kjmbc.co.kr/article/h_hIvVew1Lu1mkIzcyo1T
■ 과감한 도전
제작 시간은 촉박했지만, 어느 때보다 영상미를 꼼꼼히 챙겼습니다. 한 인물당 클로즈업 각도를 세 가지로 다각화했고, 인터뷰이가 자신의 자서전을 소개하는 그림, 과거 사진을 보며 당시를 회상하는 모습, 심지어는 숙소로 돌아와 다음날 인터뷰를 준비하는 취재진의 모습까지, B컷 영상들을 풍부하게 확보했습니다. 시청자가 장편 다큐멘터리를 따라가는 데 지치지 않도록 시각적·청각적 구성에 더욱 힘을 줬습니다.
내레이션을 기자가 직접 진행한 것도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원고도 기자의 어투로 고쳤고, 취재 경위와 과정을 기자의 말로 가감 없이 드러냈습니다. 그만큼 광주MBC가 어떤 문제의식으로 본 취재를 시작하게 됐는지를 시청자에게 이해시키려 노력했고 여태 시도해보지 않은 방법들도 과감하게 추진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44주년 특집 다큐멘터리-<그가 죽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DrpVFgNNNg
3.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리포트와 다큐멘터리에서 익명 취재원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4.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타 매체의 선행보도는 없습니다. 광주MBC 취재팀이 만난 미국 전직 관료들은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차도 접촉하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취재 내용 특성상 광주MBC의 기획 보도와 다큐멘터리 취재물을 직접 인용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보도 이후 지역사회에서는 발포 명령과 관련해 진상규명을 이대로 멈춰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취재팀이 만난 인물들의 연락처나 메일 주소를 알려달라는 5·18 관계자의 요구도 이어졌습니다.
5. 사회에 끼친 영향
조사위가 4년 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넉 달 동안의 취재로 해냈다고 자부합니다. 조사위는 발포 명령의 핵심 증언이 나올 수 있는 미국의 전직 관료들을 접촉하려고 하지 않았고, 5·18과 관련된 핵심 비밀 문건들을 제대로 수집하지도 못했습니다. 취재팀이 이들을 찾아내고 발포 명령과 관련된 중요한 진술까지 확보할 수 있었던 건, 진상규명이 이대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 그리고 취재에 대한 자부심이었습니다.
또한 취재팀은 이번 기획을 통해, 미국 정부가 5·18이 신군부의 정당한 진압이 아닌 시민들의 투쟁이었음을 인정하는 비밀 문건의 존재를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취재진은 FOIA 사이트에 접속해 미국 국무부를 상대로 정보 공개를 청구했으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두 번째 백악관 정책 검토회의에 대해서도 추가 정보를 입수하는 대로 보도할 계획입니다.
6.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언론 윤리강령 기준을 준수했습니다.
7. 기타 고려사항
방송문화진흥회의 2024 콘텐츠제작지원사업 지원을 받았습니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활동 기한 안에 해냈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 반론이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회차 심사평
제405회 전체 총평
제405회 ‘이달의 기자상’심사에는 69편이 출품돼 4개 작품이 수상작으로 뽑혔다. 평소보다 출품작이 많았으나 수상작은 적은 편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 44주년을 맞아 기획보도 신문·통신, 지역 기획보도 신문·통신, 지역 기획보도 방송 부문으로 4편의 우수한 기사가 올라왔으나 아쉽게 수상작으로 선정되지는 못했다. 사회적 파장이 컸던 트로트가수 김호중씨의 음주 뺑소니를 다룬 기사를 놓고서도 심사위원들의 열띤 토론이 있었지만 수상작으로 선정되지는 못했다.
13편이 경쟁한 취재보도1부문에서는 KBS의 <‘얼차려’ 훈련병, 가혹행위 사실확인>이 최종 선택을 받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책임 규명의 목소리가 높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또다시 군부대에서 발생한 얼차려 사망 사건이라 사회적 파장이 더욱 컸다는 평가를 받았다. 군인권센터가 먼저 사망 사고를 발표하기는 했지만 완전군장에 1.5㎞ 구보, 팔굽혀펴기 등의 팩트를 확인해 얼차려가 규정에서 벗어난 것이었음을 보여주면서 사건 흐름을 주도했다는 평가다. 구조적 문제까지 짚었더라면 조금 더 완성도가 높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었으나 보안이 철저한 군을 대상으로 하는 어려운 취재였다는 점에서 수상작으로 뽑기에 손색이 없었다.
10편이 출품된 경제보도부문에서는 한국일보의 <윤석열 정부 예비비 사용내역, 조서 입수>가 이견 없이 일찌감치 수상작 목록에 올랐다. 국가 비상금이나 다름없어 꼭 필요한 곳에만 써야 할 예비비를 정부가 함부로 쓰는 실태를 제대로 짚어냈다는 점에 심사위원들은 이견이 없었다. 정부의 예비비 편법 사용 문제는 언론에서 그동안 지적한 문제이기는 하다. 특정 부서를 대상으로 한 개별적인 문제제기에서 그치지 않고 각 부처에서 사용내역에 대한 자료를 어렵게 구하고 종합적으로 분석한 기사라는 평이 많았다. 단발성이 아니라 후속 보도가 이어진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기사가 될 것이라는 논의가 있었음을 사족으로 덧붙인다.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에서는 경향신문의 <영웅들은 왜 돌아오지 못했나>가 영광을 안았다. 대형화재로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언론은 어김없이 소방시설 등 안전기준 미준수나 소방서와 지자체의 소방점검 부실, 화재에 취약한 필로티 구조나 건물 자재 사용 등에 주목한다. 화재 진압 도중 숨진 소방관에 대해서는 평소 소방관으로서 헌신적인 면모를 조명하고 희생정신을 기리는 기사가 뒤따른다. 경향신문 기사는 이런 도식적인 접근이 아니라 소방 현장에서 지휘관의 판단미숙과 현장지휘가 문제가 될수 있고 매뉴얼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피해자 이송 인원이 현장에 투입되는 등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짚고 있다. 얼마 전 어느 소방서장의 퇴임식에 참석한 한 심사위원이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소방관들에게 물었더니 거의 모두 공감하더라”고 전한 말이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주는 최고의 심사평이 될 듯싶다. 앞선 수상작과 마찬가지로 후속 기획물을 통해 기획을 더욱 심화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는 점을 전한다.
지역 부문은 우리 지역 언론계의 저력과 노력을 새삼 확인하는 기회라서 심사 때마다 심사위원들에게 신선함과 고민을 동시에 안겨준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은 숙의를 거듭한 끝에 인천일보가 지역 취재보도부문에 출품한 <여고생 사망-합창단 연관 의혹>을 선택했다. 종교집단은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아 성역처럼 돼 있는데 지역언론이 깊숙하게 파고 들어 실상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인천지역 언론이 타 지역인 대전까지 취재해서 17살 여고생의 죽음이 교회 합창단, 음악학교와 연관돼 있음을 보여준 것에 대한 좋은 평가도 있었다. 보도 이후 합창단장 구속으로 이어지는 등 사회에 미친 파장도 컸다.
이 밖에도 지역의 국책사업이나 난개발을 다룬 기획보도물이 호평을 받았으나 수상작에 들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