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7편
한파에 지구대서 쫓겨난 할머니 MBN
한파에 지구대서 쫓겨난 할머니
MBN 박상호 기자
“경찰이 조금만, 아주 조금만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추위에 떨다 몸을 녹이러 찾아간 지구대에서 쫓겨난 할머니의 긴 한숨 속에 섞여 나온 말입니다. 억울하게 쫓겨나 한파에 내몰렸지만, 할머니가 원한 건 해당 경찰관의 처벌도 징계도 아닌 경찰의 작은 변화였습니다. 인권 경찰을 바라는 거창한 바람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할머니가 쫓겨난 날은 전국에 한파가 몰아쳐 따뜻한 남쪽 부산도 영하권 날씨였습니다. 만약 할머니가 그날 저체온증으로 불의의 사고라도 당했다면 어땠을까요? 할머니의 이전 행적을 역추적해도 지구대 경찰관들이 한 부적절한 행동은 알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취재진마저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사회적 약자인 할머니는 우리 사회에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갈까요? 항상 약자 편에 서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구대 CCTV를 확보하기까지 한 달하고도 보름이 걸렸지만, 취재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구대에서 쫓겨난 할머니의 모습이 공개되면서 그야말로 국민적 공분이 일었습니다. 대형사건 사고 못지않은 관심과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인권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주민들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자치경찰제가 시행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민 절반 이상은 제도를 모르거나 변화를 못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번 기사가 인권 경찰을 표방하는 경찰에 작지만 큰 울림이 되었길 마지막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전세사기 ‘빌라왕’(악성임대인) 배후 규명 및 추적…
전세사기 ‘빌라왕’(악성임대인) 배후 규명 및 추적
KBS 송수진 기자
KBS 전세 사기 특별취재팀의 ‘빌라왕(악성임대인)’ 보도는 ‘빌라왕 배후 조직’의 실체를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규명했습니다. 배후 조직 내부자 단독 인터뷰와 조직 총책인 신모씨의 SNS 대화록 입수를 통해 가능했는데, KBS 보도 뒤 신씨에 대한 경찰 수사가 시작됐고 신씨는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전세 사기 범정부 종합 대책에 KBS가 배후 조직의 핵심 수익원으로 지목한 ‘감정가 부풀리기(이른바, 업 감정)’ 방지 대책을 대거 포함 시켰습니다. 지난해 12월29일에 첫 보도가 나간 뒤 2월 초까지 관련 보도가 이어졌으니 한 달 하고도 보름 동안의 취재 기간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성과 같습니다. 공익을 위해 복무한다는 저널리즘의 제1원칙에도 충실하지 않았나 자평합니다.
이번 보도가 가능했던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는 신속한 특별취재팀 구성입니다. 탐사보도부가 주축이었는데 국토부 기자, 서울청 금융수사대 담당 기자가 합류해 취재에 속도가 더 붙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핵심 데이터가 이미 확보돼 있었단 점입니다. 악성 임대인 보유 주택 현황, 주택보증공사 악성 임대인 명단 등을 보도 시작 시점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2년 전, ‘세 모녀 사건’ 당시 확보해 뒀던 자료들이었습니다. 덕분에 현장 취재에 신속히 나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좋은 보도는 당장 1초 뒤가 마감인 듯 절박하게 내리는 신속한 판단과 1년 뒤에 또 이 취재를 할지 모른다는 장기적인 시선 끝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 또 하나 배웠습니다. 좋은 보도를 위해 더 애쓰겠습니다.
나사 빠진 軍수뇌 “용산(P-73) 뚫렸다” 실토. 北 무…
나사 빠진 軍수뇌 “용산(P-73) 뚫렸다” 실토. 北 무인기 용산침투 거듭 부인하더니, 뒤늦게 시인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판을 뒤집는 기사였다. 지난해 12월26일 북한 무인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하고, 1월5일 조간으로 기사가 나가기 전까지 열흘간 국방부와 군은 일관되게 ‘북 무인기는 용산 비행금지구역(P-73)을 침범하지 않았다’고 했다. ‘침투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군은 단칼에 부인했다. 너무 완강해 더는 다른 이야기를 감히 꺼낼 수 없는 상태였다. 군은 ‘그런 주장은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군의 발표는 틀린 것이었다. 이걸 알아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기존에 알려진 ‘사실’이 ‘실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부담스럽다. 특히 그것이 국가 안보와 관련된 것이었기에 더 조심스러웠다. 내가 착각해서 잘못 안 것은 아닐까, 취재 내용이 틀린 건 아닐까 걱정도 됐다. 집에 들어와 노트북 앞에 앉아 자정 무렵까지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해야 했다. 아내는 방문을 열고 들어와 뭔 일 있느냐고 물었다.
기사가 안 나갔으면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 심정을 이해한다. 그러나 기사가 나간 날 아침 국방부와 군은 여전히 북 무인기의 용산 비행금지구역(P-73) 침투 사실을 애매한 태도로 부인했다. ‘용산구(區)까지는 못 들어왔다’ ‘P-73에 살짝 스쳤을 뿐이다’는 식으로 설명하며 실책을 모면하려는, 군인답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기사를 써도 이랬는데 아예 안 썼으면 어땠을까? 다시 그날 밤으로 돌아가도 나의 선택은 ‘쓴다’다. 나의 기사가 우리 대한민국 군의 기강과 전투 대비태세의 나사를 바짝 조이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물어온 기사를 지면에 실어준 데스크 선배들께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삼성-TSMC 경쟁력 비교’ 시리즈 조선일보
‘삼성-TSMC 경쟁력 비교’ 시리즈
조선일보 박순찬 기자
반도체는 대중지에 쓰기 쉽지 않은 주제입니다. 일단 용어부터가 어려운데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품이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도 상대적으로 크지 않습니다.
그런 주제로 총 7회에 걸쳐 종합면에 ‘삼성-TSMC 경쟁력 비교’라는 시리즈를 연재했고, 이달의 기자상까지 받게 됐습니다. 반도체가 사람들의 밥상머리 주제로 내려왔음을 실감합니다.
이번 기획은 일종의 위기감에서 비롯됐습니다. 전 세계가 무섭게 뛰는데 ‘반도체는 당연히 한국이 1등 아냐?’ ‘대기업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란 한국 사회의 태평한 자부심이 아찔했습니다. 올해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반도체 1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되는 대만 TSMC와 경쟁력 차이를 냉정하게 보여주자는 기획을 구상하게 된 이유입니다.
삼성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서 초격차는커녕 여러 분야에서 뒤처져있음을 조목조목 짚으면서 ‘삼성이 망하는 것이냐’ ‘왜 한국 언론이 이렇게 TSMC를 띄워주느냐’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당장은 아프더라도 삼성의 현 상황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보도 이후 “모든 기사를 밑줄 쳐 가며 읽었다” “TSMC는 띄워주고 삼성은 지나치게 평가 절하했다” 등 다양한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반도체 공장 짓는데 한국은 8년, 경쟁국은 3년”이라는 본지 시리즈 1면 제목을 거론하며 정부의 과감한 개혁을 주문했습니다. 부족하지만 변화의 단초를 만드는 기획이었길 바랍니다. 주용중 편집국장, 조형래 부국장을 비롯한 편집국의 전폭적 지원이 큰 힘이 됐습니다. 꾸준한 후속 보도로 수상에 대한 감사의 뜻을 대신하겠습니다.
2023 공장을 떠나다 한겨레신문
2023 공장을 떠나다
한겨레신문 방준호 기자
애초 우리에게 주어졌던 질문, ‘한국의 불평등과 불안은 어디서 비롯했는가’는 너무 추상적이고 거대한 것이어서 종일, 매일 짓눌린 기분이었습니다. 어떻게든 가련한 기자들에게 손 내밀어 주고 싶어 하셨던 훌륭한 선생님들 덕분에 ‘일하는 평범한 사람의 가치를 배제해 온 성장의 궤적 때문’이라는 역시 어려운 답을 구해 놓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또 고민은 시작됐습니다. 이런 얘기를 기사로 쓸 수 있을까? 그렇게 취재의 꽤 긴 시간을 우리는 불행하게 고민하고 공부하는 데 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1987년 전설적인 노동 운동의 복판에 있던 공장에 입사해 정년을 맞게 된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왔고 그것이 일하는 사람을 어떤 존재로 만들었는지, 되짚고 후회하다가 애써 기운 차리며 청년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염려했던 2023년 공장의 청년들 또한 만났습니다. SF가 현실인 양 현란한 단어로 무장한 세상에서 기계의 보조자로 일하다 입은 두 손의 생채기를 내보였습니다. 우리는 평범하고, 평범해서 불행한 이야기만 잔뜩 나누고 말았습니다. 그런 기사로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무심하고 소심한 탓에 오랜 시간 밥 먹고 술 먹고 믹스 커피 나눠 마시며, 일하며 사는 일의 아픔, 고민, 초라함을 꺼내 보여줬던 취재원들에게 먼저 소식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먼저 알고 전화해 주었습니다. “내 꽃이라도 보내야 할낀데.” 문득 행복했습니다.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전하기 위해, 불행에 짓눌린 채 참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취재하고 기사 쓰는 일은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참 아이러니 했습니다.
‘무단침입’ 서슴지 않는 한국전력 수상한 단속 광…
‘무단침입’ 서슴지 않는 한국전력 수상한 단속
광주MBC 임지은 기자
전남 구례군 산골마을 한 농민의 제보가 취재의 시작이었습니다. 지난해 11월 한국전력이 불시에 찾아와 5년 동안 사용했던 ‘저온 창고’에 농사용 전기 위약사항이 발견됐다며 위약금을 청구한 겁니다. 처음엔 단순 의혹 제기로만 그칠 수 있었습니다. 유사 사례를 찾으려 일주일 동안 마을 일대를 돌아다니고 제도의 허점을 지적하기 위해 450페이지에 달하는 약관을 전부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단속의 과정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묻지마 단속’, ‘무단침입’, ‘고무줄 위약금’ 등은 모두 규정에 위반되는 사항이었습니다. 광주MBC 취재팀은 사실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아, 한국전력이 기준도 없이 무분별하게 단속했음을 명백히 증명했습니다.
이번 취재는 부정한 농사용 전기 단속을 애초에 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농수산물 가격을 안정화하고 영세농어민을 지원한다’는 농사용 전기 도입의 본래 취지를 중심에 두고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보도 이후 정치권과 농민단체의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지난달 27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한전은 각계 의견을 수렴해 약관을 조속히 개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불합리한 기준이 있다는 점도 깔끔히 인정했습니다. 취재팀은 한전의 제도 개선 약속이 농촌의 현실에 잘 적용될 수 있을지 앞으로도 지켜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막내 기자를 믿어주고 현장에서 취재하고 싶은 건 마음껏 다 할 수 있게 해준 우종훈 선배와 왕복 3시간 걸리는 거리를 매주 오가며 현장을 영상으로 생생히 담아준 김상배 선배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또 이 상은 취재가 자칫 움츠러들지 않도록 뒤에서 힘써주신 보도국, 데스크 선배들과 함께 받는다고 생각하겠습니다.
난방비 더 써도 더 추운 ‘단열 빈곤층’ 서울신문
난방비 더 써도 더 추운 ‘단열 빈곤층’
서울신문 홍윤기 기자
지난 1월25일. 서울의 체감온도는 영하 25도, 역대급 한파였습니다. 이날은 난방비 폭탄 고지서 배달이 미리 예견된 날이기도 했습니다.
추위와 난방비 폭탄의 여파를 함께 보여줄 수 있는 스케치 사진을 취재하고자 했습니다. 쪽방촌에서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고 지내는 한 노인의 사진과 반팔 티셔츠를 입고 생활하는 아파트 주민의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두 이미지의 ‘격차’를 표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파트와 쪽방촌의 모습을 비교하는 사진을 기획했습니다. 온도를 색으로 나타내는 열화상 카메라가 격차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를 활용해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취재 당일 오전 일찍 상암동 하늘공원에서 한 아파트 단지를 촬영했습니다. 바깥 기온이 영하 20도 가까이 떨어졌음에도 아파트의 거실창 온도는 영상 9~12도였습니다. 같은 시간대의 온도를 비교하기 위해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전경이 보이는 언덕으로 빠르게 이동해 쪽방촌을 촬영했습니다. 쪽방촌의 창문 온도는 영하 10~16도였습니다. 약 20도. 두 거주지의 온도차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습니다.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아파트는 새빨갛게, 쪽방촌은 새파랗게 물들었습니다.
본 사진이 보도된 이후 ‘난방비’ 문제는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에 대한 이슈로 흘러갔습니다. 그날 오후 정부는 급하게 ‘취악계층 난방비’ 지원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열화상 카메라 사진 속 빨강과 파랑의 대비는 에너지 취약계층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취재를 이끌어주신 부장과 많은 격려해 주신 서울신문 멀티미디어부 선배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푸른색의 쪽방촌에도 따듯한 겨울이 오는 날까지 주시하고 또 주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