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재착수 및 보도제작경위
① 단독취재( ), ② 단독기획( √ ), ③ 보도자료 심층기획( ), ④ 제보( ), ⑤ 기타( ) 중 선택 후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십시오.
경향신문은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지난해 11월부터 기획취재를 구상했습니다. 100년 전 역사를 단순히 재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이 일궈낸 지난 100년 동안의 역사를 아우르며 현재적 의미를 강조하자는 것이 기획취재의 큰 방향이었습니다. 이에 ‘다 같이 만든 세상(다·만·세) 100년’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1~2월 11회에 걸쳐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경향신문은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된 3·1운동의 참가자들 중 그 동안 주목받지 못한 평범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여성·학생·기생·철물점 주인 등 이른바 민초들이 주인공이었습니다. 역사를 이념의 시각이 아닌 있는 그대로 보자는 취지 아래 지금까지 외면 받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 또한 재조명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념의 벽을 넘어 결국 좌우통합의 독립운동 거점으로 거듭났음을 강조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었습니다.
3·1운동을 기점으로 한 지난 100년 동안의 역사가 현재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가치를 ‘평화’로 봤습니다. ‘독립이 돼야 평화가 온다’는 것이 3·1운동의 외침이었지만 분단으로 평화는 가까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와중에도 한 세대 한 세대를 이어 온 평범한 ‘삼대’와 영국의 한 마을 ‘뉴몰든’에서 공동체를 이뤄 어울리는 남북 사람들을 만나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되새기며 마지막 회에는 직접 ‘2019 기해평화선언서’를 작성했습니다.
2.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경향신문은 기획취재를 진행하며 역사학자와 문화예술인, 정부관계자 등 수십 명의 전문가들을 만나고 이들과 전화 통화해 자문을 구했습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여러 역사적 사실을 꼼꼼히 확인하고 검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과 북이 공동 작업한 사전 형태의 ‘남북역사용어공동연구’(이하 공동연구)를 단독으로 입수해 처음 공개했습니다. 남북 역사학자들로 구성된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역사용어 정리를 남북 역사연구 교류의 출발점으로 보고 고대부터 1919년 3·1운동 때까지의 주요 인물·사건 등 789개 용어를 서술했습니다. 총 3권으로 구성된 공동연구는 2011년 최종 완성됐지만 정치적인 상황 등의 이유로 공개되지 않아왔습니다.
공동연구 집필에 참여한 고려대 한국사학과 정태헌 교수는 기고를 통해 남북의 역사서술 차이가 5%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며 공동연구를 “역사인식의 남북연합”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 3·1운동(3·1인민봉기)을 두고도 남북은 각각 “일제강점기 최대 항일독립운동” “전민족적 반일봉기”라고 인식을 같이했습니다. 현재 남북이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상황에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공존을 추구할 수 있다는 시사점을 던졌습니다. 공동연구를 단독 입수하는 과정에서 언론윤리를 준수했습니다.
1919년 3월 만세시위에 참여한 평범한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기사에 담았습니다. 이를 위해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 자료집’에 수록된 일제의 3·1운동 참여자 신문조서 2000여건을 분석했습니다. 언론이 3·1운동 당시의 방대한 신문조서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것은 사실상 처음입니다. 일제의 신문에 굴하지 않고 독립의지를 표명한 여학생들의 발언을 통해 역사의 주체로 등장한 여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일제에 붙잡힌 21살 대학생 양주흡이 1919년 1~4월까지 쓴 일기에는 3·1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의 내면이 담겨있었습니다. 붙잡힌 학생들이 살았던 하숙집의 현재 주소를 확인해 낙원동·종로5가 등 서울 중심부에서 학생들의 3·1운동 참여가 많았음을 공간적으로 구현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역사에서 현재적 의미를 살리기 위해 해외와 국내 여러 곳을 르포 취재했습니다. 지난해 12월17~21일 중국 타이항산 일대를 찾아 조선의용대의 역사를 현지 취재했습니다. 조선의용대는 1940년대 중국 내륙에서 일본군에 맞선 유일한 독립군부대였지만, 공산당과 관련됐다는 이유 등으로 그 역사가 조명받지 못했습니다. 조선의용대를 30년 가까이 연구한 현지 학자는 인터뷰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봐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1948년 분단 이후 생겨난 이념의 잣대로 1945년 이전의 독립운동 역사를 평가하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1월 수차례 서대문형무소 여(女)옥사 현장을 취재한 것도 이러한 취지였습니다. 1935년 여옥사에서 재회한 수감자 박진홍·이효정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이들의 독립운동 공적은 사회주의자란 이유로 오랜 기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월북을 선택한 박진홍, 남쪽에 남았지만 숱한 고초를 겪은 이효정의 불운했던 삶을 통해 아직도 독립운동사를 가리고 있는 이념의 장막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남북의 공존과 평화의 가능성을 취재하기 위해 지난 1~2월 1주일 가량 영국 런던 남서쪽에 위치한 마을 ‘뉴몰든’을 찾았습니다. 뉴몰든의 한인타운은 남한에 넘어왔다가 다시 영국으로 이주한 700여명의 탈북민들이 남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곳입니다. 서로 다르지만 차이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뉴몰든의 남북 사람들을 통해 공존과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남북의 과제와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지난 역사를 살아온 지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여러 사람들을 심층 인터뷰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일궈 온 지난 100년의 역사를 보통 사람들의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이를 위해 36년생 강금선씨, 65년생 은종복씨, 97년생 은형근씨로 이어지는 삼대의 인생사를 이틀 간 10시간에 걸쳐 인터뷰했습니다. 그밖에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주도한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3·1 혁명”을 주창하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중국 현지에서 조선의용대를 연구한 상룽성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장 등을 인터뷰했습니다.
경향신문은 3·1운동 때부터 평범한 사람들이 나서 만든 지난 100년의 역사가 조망하는 가치를 ‘평화’로 봤습니다. 이에 ‘대한독립이 돼야 평화가 온다’고 한 1919년 3월 기미독립선언서를 본 따 마지막 회에 ‘2019 기해평화선언서’를 직접 작성했습니다. 민족대표들이 머리를 맞대 기미독립선언서 문구를 최종 완성한 것처럼, 기획팀 취재기자 4명이 2주 가까이 끊임없이 선언서 내용을 논의했습니다. 전문가 6명의 자문 내용을 바탕으로 문구를 가다듬어 선언서 최종본을 만들었습니다.
경향신문은 기획취재 내용을 지면에 게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온라인 인터랙티브 콘텐츠(첨부파일 참고)로 구현해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냈습니다. 질문별로 선택한 내용에 따라 자신이 어떤 독립운동가와 유사한지를 보여준 ‘나는 어떤 독립운동가였을까’ 콘텐츠, 법정에 세우고 싶은 친일파를 고르도록 한 ‘내가 잡고 싶은 친일파는’ 콘텐츠 모두 온라인 상에서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특히 ‘나는 어떤 독립운동가였을까’ 콘텐츠는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와 SNS에서 수천여회 공유됐고, 경향신문 역대 인터랙티브 콘텐츠 중 가장 높은 21만여회(3월7일 기준) 조회 수를 기록했습니다. 해당 콘텐츠가 화제가 되고 있다는 기사가 지난 1월23일자 기자협회보에 실렸습니다.
온라인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사내 뉴콘텐츠팀, 모바일팀 등과 수 주 간 협업한 결과물이었습니다. 기획팀이 독립운동가 32명 및 친일파 48명(친일인명사전 발췌)을 추려내 각 인물의 삶을 서술하면 뉴콘텐츠팀과 모바일팀이 이를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만들어 온라인에 구현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수차례 내부 회의를 거쳤습니다. 그 밖에 ‘그대는 어째서 독립만세를 불렀는가’라는 3·1운동 신문조서 아카이브를 온라인상에 만들었습니다.
지면에는 편집부 및 디자인팀과 협업해 기사 내용을 디자인 그래픽으로 과감히 시각화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기획 1회 차인 1월1일자 1면에는 프롤로그와 함께 1919년 3·1운동부터 2019년까지 지난 100년 간 주요 사건들을 행렬도 형식의 큰 일러스트로 구현했습니다. 3·1운동을 계기로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등장했음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3·1운동을 가운데 두고 13명의 독립운동가를 방사형으로 배치한 뒤 서로의 연결관계를 나타낸 대형 그래픽을 1월15일자 4면에 실었습니다.
모든 기사의 바이라인에는 직접 취재에 참여해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3.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선행보도나 타보도에 대한 표절은 전혀 없었습니다. 표절 관련 항의를 받은 적도 없습니다.
4. 사회에 끼친 영향
경향신문이 최초로 ‘남북역사용어공동연구’를 3차례에 걸쳐 연속 보도하자 정치권에서는 역사를 바탕으로 남북 교류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역사와정의특별위원회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 기념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남북 공동 독립운동 역사 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당·정·청 정책토론회를 열고 ‘남북 공동 독립운동사 아카이브 구축’ 및 ‘남북 역사용어 통일 방안’ 등을 논의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강창일 역사와정의특위 위원장은 “실질적인 한반도 평화가 무르익어 가는 시점에, 독립운동의 역사 역시 남북의 공동 연구를 통해 또 다른 평화의 축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남과 북의 독립운동 공동 역사 연구의 큰 방향은 공존이라는 틀에서 추진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남북 공통의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평화와 공존을 모색하자는 경향신문의 기획 취지와 부합하는 논의였습니다.
경향신문이 3·1운동에 참여한 보통사람들을 조명하고 이를 ‘한민족의 대전환을 가져온 3·1혁명’으로 불러야한다는 의제를 제시하자 이에 대한 정치권의 호응도 잇따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관련 기획보도가 나가고 1주일 뒤인 지난 1월22일 민주당의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특위’ 출범식에서 “한반도 모든 곳에서 국민이 만세 운동을 벌였기에 3·1운동을 혁명이라고 명명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학자들에게 연구를 부탁해서 내년부터 공식 명칭을 어떻게 쓸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도 "동학난이 동학혁명으로 진화했듯이 (3·1운동) 101주년부터는 3·1혁명으로 명명돼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경향신문은 3·1운동 참여를 거절하거나, 수락했어도 나중에 변절했던 친일파들, ‘조선귀족’에 올라 적극적인 친일을 일삼은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발굴했습니다. ‘내가 잡고 싶은 친일파는’이라는 온라인상 인터랙티브 콘텐츠까지 어우러져 우리 사회에 친일파와 친일잔재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습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에서 “친일잔재 청산은 너무나 오래 미뤄둔 숙제”라며 “잘못된 과거를 성찰해야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는 “친일하면 3대가 떵떵거린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 것을 바로잡는 것이 해방된 조국의 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경향신문 기획은 3·1운동에 참여했지만 조명 받지 못한 여성·학생·농민·기생·주부·간호사·철물점 주인 등과 같을 보통 사람들을 주체로 부각시키는 흐름을 주도했습니다. 지난 1월에는 이름 모를 평범한 사람들이 3·1운동을 기획하고 전달하며 실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다룬 <만세열전>(저자: 조한성)이라는 단행본이 출판돼 출판계와 대중들로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수원박물관 등 전국 각지에서 열린 3·1운동 학술대회에서도 여성 등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를 조명하는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습니다.
경향신문이 온라인상에 구현한 ‘나는 어떤 독립운동가였을까’ 및 ‘내가 잡고 싶은 친일파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일반 시민들과 전문가들에게 큰 호응을 받기도 했습니다. ‘나는 어떤 독립운동가였을까’ 콘텐츠에 참여한 시민들은 페이스북 등에 “이렇게 간접적으로 독립운동사를 알려주니 좋다” “처음 들어본 독립운동가들을 알 수 있게 됐다” “생각하게 하는 바가 많은 질문으로 가득차서 스스로 창피했다”는 등의 반응을 올렸습니다. 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페이스북에 “다들 하시니 (해봤다)”며 자신은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가 두 차례 나왔다는 글을 게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3·1운동이 계기가 돼 독립운동에 뛰어든 이들의 행적을 방사형으로 구현한 인포그래픽 기사의 경우 “사람들의 삶을 혁명적으로 개조시킨 3·1혁명. 경향신문의 기획이 눈부시네요”(한인섭 서울대 교수·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5.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언론윤리강령기준을 준수했습니다. 여러 명의 전문가들에게 교차로 기사 관련 내용을 검증받았고, 르포기사의 경우 현장을 방문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기록했습니다. 전체 기획의 구성과 기사 방향 등을 두고 수십 차례 내부 회의를 거쳤습니다. 기사 말미에 주요 참고문헌들을 적어 출처를 명확히 했습니다.
6. 기타 고려사항
외부에서 지원을 받지 않았습니다. 기사에 대해 정식 반론보도 요청이나 정정보도 신청은 없었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 피신청사항도 없습니다.
회차 심사평
제342회 전체 총평
한국기자협회의 제342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 결과 7편의 작품이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이날 심사에서 토론과 수상 경합이 가장 치열했던 작품은 ‘클럽 버닝썬’ 사건으로 국민들에게 잘 알려진, 강남 유흥업계 추적 내용을 다룬 두 기사였다. MBC 인권사회팀의 <‘클럽 버닝썬’ 폭행, 마약, 성범죄, 경찰유착 등>과 일요시사의 <강남 유흥업계 실체 추적…버닝썬-아레나 강남커넥션>이 모두 호평을 받았고, 두 작품 모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전자는 자칫 흥미 위주로 흐를 수 있는 중요한 사회 현안을 선정적이지 않고, 안정감 있게 보도하면서 의제화하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영상을 확보함으로써 결정적 터닝포인트를 마련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1보에서 나아가 마약, 성매매, 몰카 파문 등으로 이어진 건 MBC의 공로였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반면 후자는 사건기사에서 1보의 중요성을 잘 보여줬고, MBC보다 한 달가량 먼저 보도하면서도 충실한 취재가 돋보였다는 반론도 만만찮았다. MBC가 지적한 내용들 일부는 이 보도에서 언급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버닝썬과 아레나가 결국 하나’라는 일요시사의 판단이 맞았다는 견해도 있었다.
SBS 시민사회부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청와대 개입 의혹 등>은 살아있는 현 정권의 인사문제를 본격 거론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과거 정권의 블랙리스트와 환경부의 블랙리스트 차이점을 잘 분석했고, 일회성 보도가 아니라 단계별로 접근을 했으며, 청와대의 민정라인이 아닌 인사수석실까지 블랙리스트에 관여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도 돋보였다. 그러나 박근혜 청와대가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정권 차원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관리하며 대상자를 차별했던 잘못된 관행 및 범법행위와 달리, 청와대의 공무원 임용 관행에 따른 체크리스트의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SBS 스포츠부와 사회부의 <사실로 드러난 ‘컬링 대부’ 김경두 일가 전횡>은 국민들의 깊은 사랑을 받았던 평창동계올림픽 컬링대표팀이 한 가족의 욕심에 의해 좌지우지 됐다는 단독보도를 통해서 국민들의 분노와 대표팀에 대한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작품으로 평가됐다. 소문만 전달한 것이 아니라 현장취재도 돋보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깔끔한 보도를 함으로써 팀킴의 기자회견을 이끌어낸 점도 좋은 점수를 받은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SBS 뉴미디어제작부의 <2019 국회 예산회의록 전수분석>도 국회에서 예산 획득 과정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수작이었다는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았다. 연말 예산이 확정되면 그 과정에 대한 보도물이 쏟아지는 가운데, 예결위원들의 터무니없는 대화를 시각화하고, 회의록 분석을 통해 어떻게 회의가 진행되는지 잘 보여줬다는 의견이 많았다. 매년 다뤄온 주제이며, 그렇다고 매번 상을 줄 것이냐는 지적도 있었으나, 이를 언론이 외면한다면 국회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점이 더 부각됐다.
지역 취재보도부문에 출품한 MBC충북의 <장관님, 의원님의 수상한 연구용역 집중 추적> 보도는 뉴스타파의 보도에 착안해 지역 국회의원들의 연구용역을 더 세밀하게 분석하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공을 들였다는 점에서 지역언론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전문보도부문에서는 KBS의 <3.1운동 100주년 특집 ‘3.1운동 만세지도’>가 호평과 함께 높은 점수를 받았다. 독립만세운동 100년이 지나도록 집대성한 지도가 없던 상태에서 KBS만이 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