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재착수
단독취재, 단독기획
2. 출품 보도물 목록
번호 보도일시 보도 제목
1 1월7일20시30분 (단독)제2의 다랑쉬굴?...4.3피난 유물.뼈 무더기 확인
2 1월8일20시30분 그 곳에는 누가 있었나...‘어오름궤’이름 확인
3 1월9일20시30분 이례적 내부 토벌 작전?...탄두의 의미
4 1월10일20시30분 “궤에서 많이 죽었다”...큰빅데기 마을 위치 첫 확인
3. 보도제작경위
“여기 한번 와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에서 취재가 시작됐다. “특이한 굴이 발견됐는데, 4.3 피난처로 보인다”는 내용의 제보 전화였다. 취재진은 장비를 챙기고 곧바로 현장으로 갔다.
현장은 매우 독특한 형태를 보였다. 오름 능선 한쪽에 조그만 구멍 아래로 3, 4미터 가량 되는 수직 입구가 나타났다. 취재진은 그 밑으로 직접 내려갔고, 입구 안쪽으로 조그만 공간을 확인했다. 동굴 안쪽에서 처음 확인된 건, 깨진 항아리 파편들이었다. 현장에서는 깨진 항아리 뿐만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뼈들과 수많은 탄피, 탄두도 육안으로 확인됐다. 이는 이 곳에 4·3 피난민들이 거주했고, 내부에서 토벌 작전이 벌어졌다는 중요한 증거로 판단됐다. 내부는 별다른 훼손이 발생하지 않은 채 고스란히 그 현장이 보존된 상태였다. 현장을 동행한 전문가는 “제2의 다랑쉬굴”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 공간은 4·3 당시 누가 피난을 왔을까. 취재진은 인근 마을 주민들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했던 어르신들을 만나, 증언이 가능한 사람들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증언 조사와 함께 기존 채록 등도 취재했다. 하지만 70년이 넘는 세월 속에 이 곳을 기억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사망한 상태였다. 그나마 한 마을 어르신이 “어오름 인근에 ‘어오름궤’라고 불리는 지명이 있는데, 수직 입구와 내부에 넓은 공간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번에 확인된 현장과 일치하는 증언이었다. 이 어르신과 함께 현장을 동행해 이 곳이 지명과 일치하는 ‘어오름궤’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마을 주민들 역시 4·3 이후에 이 곳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현장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 현장이 지난 70여 년동안 외부 훼손 없이 그대로 보존됐다는 얘기다.
추가 증언 조사를 거쳐 이 곳에 누가 피신했는지, 이 현장에서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까지 처음으로 확인했다. 4·3 당시 큰 피해를 입어 지금은 사라진 마을이 된 중산간 큰빅데기 마을 주민들의 피난처였던 사실도 밝혀냈다. 취재진은 사라진 마을이었던 큰빅데기 마을을 과거 항공 촬영 사진 등을 이용해 확인하고, 관련 지명과 지역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큰빅데기 마을의 위치도 처음으로 확인해 보도했다. 이를 통해 이 곳에 대한 진상 조사와 함께 발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4.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1) 감춰진 4·3 피난처 첫 발굴
지난 1948년 11월 제주에서 4·3 초토화 작전이 시작됐다. 군경 토벌대는 중산간 마을 주민들을 해변 마을로 강제 이주시킨다. 이 과정에서 제주지역 중산간 마을 집 2만 호 이상을 비롯해 95% 이상이 불에 타 사라지게 된다. 당시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 한라산과 중산간 일대 오름, 굴, 궤 등으로 피난길에 오른 이유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동선과 피난처는 여전히 베일에 감춰져 있는 상황이다. 제주 4·3의 참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은 현재 ‘다랑쉬굴’이다. 지난 1948년 12월 다랑쉬굴에서 발생한 학살은 1992년 세상에 처음 공개됐다. 당시 희생자 뿐만 아니라, 내부 집기 등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 다랑쉬굴의 비극은 제주 4·3의 참상을 전하는 핵심 공간으로 불린다.
이번에 발견된 동굴 ‘어오름궤’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피난의 흔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타임캡슐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이 때문에 현장을 동행한 전문가 역시 제2의 다랑쉬로 평가할 정도다.
이번 보도로 이 공간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오랜 시간 속에서 그대로 방치돼 증언자들은 사라지고, 그 공간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추후에 이 공간이 확인되더라도 이 곳의 이름은 물론, 누가, 어디서, 어떻게 피난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해 수수께끼로 남을 뻔 했다.
JIBS는 7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공간을 처음 보도해 참상을 알려 4·3의 비극과 인권의 가치를 다시 일깨웠다.
2) ‘어오름궤’ 지명 및 피해 상황 확인
현재 제주 4·3 진상조사의 한계는 오랜 세월 속에서 주요 증언자가 사라지고, 증언자가 어느 곳에 숨었다고 진술을 하더라도 예전 지명이나 공간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진상조사가 자료 조사 수준에 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어오름궤 같은 공간에서는 4·3 유해가 묻혀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동안 현장 위치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다보니 발굴 대상지를 선정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번 보도는 단순히 이 현장에서 피난의 흔적이 발견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 곳의 정확한 명칭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이 현장을 알고 있는 증언자가 오랜 세월 속에 대부분 사망한 상태인 만큼, 이번 지명과 위치 확인을 통해 과거 증언 채록 등을 연계하면 이 일대 중산간 마을에서 벌어졌던 토벌 작전 등 새로운 진상 조사의 기틀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3) 화전 마을터 첫 위치 발굴
현재까지 확보된 증언 등을 종합 취재한 결과, 이 어오름궤에는 중산간 화전마을인 큰빅데기 마을 주민들 상당수가 피난한 곳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큰빅데기 마을을 확인한 적은 한번도 없는 실정이다. 4·3 당시 마을 전체가 토벌대에 의해 불에 타 사라졌지만 마을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제주 4·3 진상조사나 잃어버린 마을 조사 등 기존 연구와 조사 대상에서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전문가 자문과 과거 항공 사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어오름궤로 피난을 갔던 큰빅데기 마을 위치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 마을은 현재 대나무 등 각종 나무들로 뒤덮혀 있었지만, 당시 돌담 등 마을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됐다. 이 마을 위치와 관련 증언이 중요한건 아직 제대로 조사되지 않은 조그만 화전마을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마을 주민들의 어오름궤 피난으로 이어지는 만큼, 4·3 당시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으로 평가되고 있다.
5.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그동안 제주에서 4·3과 관련한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다양한 보도가 이뤄진 바 있지만, 그동안 4·3 피난과 토벌의 공간이 남아 있는 곳을 발굴해 보도한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지난 1990년대 알려진 ‘다랑쉬굴’ 정도 뿐일 정도다.
때문에 많은 언론사에서 보도 이후, JIBS 뿐만 아니라 4·3 평화재단 등으로 현장 문의가 이뤄졌지만, 이 현장의 중요성을 감안해 다른 언론사에는 공개하지 않았다.
6. 사회에 끼친 영향
제주특별자치도와 4·3 평화재단은 JIBS 보도 이후, 곧바로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보도로 확인된 유물 등의 규모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보도 이후 관계당국은 동굴의 규모부터 내부 상황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였다. 특히 이 곳에서 다량의 유물이 확인되고, 내부에서 유해가 있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현장을 통제한 상황이다. 이와함께 현재 추가 발굴 조사를 위한 예산과 일정 수립을 검토하고 있다. 또 앞으로 밝혀져야 할 내용이 많은 만큼, 보도된 증언자에 대한 추가 증언 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JIBS가 그동안 4·3 진상조사의 한계점이었던 한라산과 중산간 현장 조사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역설한 만큼, 지역별 조사 계획도 수립중인 상황이다.
7.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이번 보도는 그동안 마을주민 조차 전설처럼 전해지며 확인하지 못했던 4·3 피난처를 처음으로 보도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이 현장에서 4·3 관련 유물 뿐만 아니라, 유해가 묻혀 있을 가능성까지 제기하면서 추가 발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 증언을 통해 정확한 지명과 이 곳에 피난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산간 화전 마을의 위치까지 최초로 발굴했다. 이 부분은 그동안 진상조사에서도 제대로 연구되지 못한 상태다.
특히 이번 보도는 그동안 해안가 중심에 국한됐던 진상 조사의 한계를 한라산과 중산간 일대로 확장시켜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한라산과 중산간 일대는 여전히 제주 4·3 연구의 ‘그림자’ 영역이지만, 이 공간은 4·3의 비극과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유일하게 남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번 보도를 시작으로 이 공간에 대한 4·3 추가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가시적 성과다.
8. 기타 고려사항
JIBS 제주방송은 지난 수 년동안 한라산과 중산간 일대 피난처와 피난민들의 이동 동선에 주목해 집중적으로 취재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궤와 피난처 등이 확인됐고, 지난달에는 제주 4·3 당시 인명 피해 규모가 컸던 서귀포시 가시리 피난민들의 루트를 최초로 취재해 피난 현장을 발굴하기도 했다.
회차 심사평
제413회 전체 총평
제413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9개 부문에 60편이 출품됐다.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제주항공 참사와 에어부산 항공기 화재 등 기자들은 역사의 기록자로서 역할에 충실했다. 계엄·탄핵 관련 출품작의 비중은 22편으로 전체 출품작의 36.7%였다. 특히 사진보도 부문은 7편 중 5편이 관련 보도였다. 이번 달 수상작은 모두 6편이다.
취재보도1부문에서는 두 편의 수상작이 선정됐다. 먼저 중앙일보의 <명태균 황금폰 핵심 내용> 보도는 사인인 명태균씨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에게 행사한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실체를 밝혀냈다. 수개월간 끈질긴 추적 끝에 핵심 내용인 통화 녹취와 메시지 내용을 확인해 보도했다. ‘황금폰 녹취 확인’에 이은 후속 보도는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수사당국이 부실·축소 수사를 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심사위원회는 국민의 알 권리와 진실을 밝히는데 언론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함께 취재보도1부문의 수상작으로 선정된 JTBC의 <서부지법 폭동 당시 7층 판사실 등 내부 취재> 보도는 법원 내부에서 벌어진 시위대의 폭력적인 행동을 방송용 카메라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긴박하게 촬영했다. 폭동 행렬 속에서 위험을 감수한 취재로 투철한 기자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으로는 취재현장에서 기자의 안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철저한 영상분석과 후속 현장 취재가 돋보였고, 주요 선동자와 가담자의 체포 근거가 된 점에서 수상의 이유는 명확했다.
경제보도부문 수상작인 국민일보의 <‘택갈이의 유혹’···중국 자본의 역습> 보도는 트럼프 2기 출범으로 촉발된 관세전쟁과 맞물려 선제적인 문제 제기로 주목받았다. 중국기업이 전통 제조업뿐 아니라 첨단 산업에서도 한국을 우회 수출 통로로 삼는다는 사례를 산업군별로 발견해 공론화했다.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기업 내부 정보를 취재한 노력이 인정됐다. 당국과 산업계가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는지 후속 보도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수상작인 동아일보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 보도는 ‘철근 빼먹기’라는 해묵은 병폐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민간아파트 427곳 전수조사 결과 부실시공이 없다’는 국토교통부 자료에 의문을 품는 데서 기획이 시작됐다. 일상의 안전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지만, 단편적인 보도만으로는 개선되기 어렵다. 취재팀은 작정한 듯 문제의 뿌리부터 접근했다. 철근 검사 장비 사용법을 숙지하고 5개월간 21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기둥 주철근을 직접 탐사했다. 보도는 부실을 막는 최후의 보루인 감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현실에 다다랐다. 건설 관계자 인터뷰와 과학적인 검증을 뒷받침해 기획을 탄탄하게 만들었다. 취재팀의 열정과 팀워크의 결실이다.
지역 취재보도부문에서는 연합뉴스 부산취재본부의 <“배터리 휴대” 기내 방송은 ‘공허한 메아리’> 보도가 단연 돋보였다. 사건 초반에 추측성 보도가 이어지고, 당국조차 우왕좌왕할 수 있던 상황에서 중요 이슈를 잘 이끌어냈다. ‘기내 선반에서 타닥타닥 소리 후 연기 나고 불똥 떨어져’ 기사에 이어 승객 추가 진술을 통해 신빙성을 확보했다. 발로 뛴 취재로 사고 원인의 단초를 찾아냈다는데 의미가 크다. 이에 그치지 않고 기내 소화기를 사용하지 못한 점, 기내 배터리 관리 허점을 밝혀내며 경각심을 일깨웠다.
사진보도부문 수상작 한겨레 <추악한 몰락…헌정사 첫 현직 대통령 윤석열 체포> 보도는 윤석열 대통령이 공수처 포토라인을 피해 뒷문으로 들어가는 옆모습을 눈 깜짝할 사이에 포착했다. 당시 현장 풀 기자단 중 유일한 단독으로, 국내 통신사를 통해 전파됐다. 생방송 화면에 방영된 데 이어 AP, 로이터 등 외국 언론사에도 타전됐다. 찰나를 기록하기 위해 파인더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사진기자의 긴장감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