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3편
체육계 성폭력 SBS
체육계 성폭력
SBS 이슈취재팀 이경원 기자
지난해 말,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인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수차례 성폭력을 당했다는 제보를 받게 됐습니다. 저희는 첫 보도를 하기 전까지 심석희 선수 변호인 측과 열흘에 가까운 조율 과정을 거쳤습니다. 낙종 가능성이 있더라도, 2차 피해를 차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5차례가 넘는 회의를 통해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회람했고, 팩트 하나하나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다듬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먼저, 피해 당사자 인터뷰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당사자의 눈물 섞인 인터뷰는 단기적인 시청률 견인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성폭력 피해자가 동정의 대상으로 비쳐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 있는 맹점이 있다고 봤습니다. 저희는 심석희 선수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남들이 선뜻 하지 못한 걸 앞장서 해냈던 용기의 대상으로 소비되길 원했습니다. 이 때문에 심석희 선수 인터뷰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최초 보도는 심 선수가 아닌 심 선수 측 변호인 인터뷰로 갈음했습니다.
다음은 ‘성폭행’이란 표현을 최소화고 ‘성폭력’으로 표현을 통일하기로 했습니다. ‘성폭행’이라는 구체어보다 ‘성폭력’이라는 포괄어가 피해자의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사건의 구체적인 일시, 장소, 범행 수법도 배제했습니다. 이를 적시하는 건 피해자에게 고통의 순간을 상기시켜, 2차 피해로 직결된다고 봤습니다.
끝으로, 첫 보도부터 체육계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만일 이 사건이 심 선수 개인의 일화에 그친다면 유명인의 성폭력 스캔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겁니다. 스포츠에 몸담은 선수들, 나아가 메달에 집착하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보람을 느꼈던 건, 단순히 사건의 1보를 전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보도 이튿날 정부가 대국민 사과를 하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성폭력 관련 보도를 어떻게 할지 나름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실천했다는 점이 큰 성과였음을 깨닫습니다.
SBS는 이번 보도에서 만든 가이드라인을 사내 백서로 만들어 향후 성폭력 보도의 기준으로 삼는 것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예천군의회 해외연수 추태 안동MBC
예천군의회 해외연수 추태
안동MBC 보도팀 이정희 기자
예천군 의회 해외연수 추태 파문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3일 안동MBC 최초 보도 이후 예천군 의원들의 의정활동은 ‘사과와 거짓 해명’, ‘언론 피해 다니기’, 임시회에서의 ‘셀프 징계’ 정도다. 의정활동과는 거리가 먼, 주권자들을 무시하고, 고통스럽게 한 것이다. 이들은 1월 의정비 한 사람당 277만원, 모두 2440만원을 챙겨갔다. 예년 같으면 2월 중·하순쯤 임시회를 열어 집행부로부터 올해 업무 보고를 받지만, 얼굴을 못 내미는 처지를 알아서인지 이번에는 서면으로 한다. 군민에게 인정받지도 못하고 의회도 못 여는 ‘식물 의회’ 상태가 계속되고 있지만, 2월 역시 제명된 2명을 제외한 7명은 세비 1인당 277만 원을 받아갔다.
더 심각한 여파가 발생했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 후 7개월 만에 예천군 의회 의석수가 9석에서 7석으로 줄었고 이 비정상적인 상태가 차기 지방선거인 2022년까지 지속된다는 것이다. 최근 예천군선거관리위원회는 4.3 재보궐 선거를 하지 않기로 했다. 제명당한 군의원들이 불복 소송을 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권도식(무소속) 의원의 경우 여성 접대부 술집을 안내해 달라는 말만 했는데도 제명을 당했지만, 자유한국당 최교일 의원은 해외 출장에서 직접 여성 접대부 있는 술집을 갔다 와도 멀쩡하니 말이다.
예천군의회 보궐선거 미시행 결정에 시민단체와 경북에서는 여전히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민주주의와 국민 참정권을 박탈한 처사라며 반발했지만 소용없게 됐다. 예천군민은 전국적인 망신으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당한 것도 모자라 3년 이상 자신들을 대신할 군의원 2명의 자리를 비워두게 됐고 그만큼의 권리를 박탈당하게 된 셈이다.
이번 취재에서 2가지 정도 주목할 대목이 있었다. 하나는 한국언론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피해 가이드는 폭행 당사자인 박종철 군의원의 거짓말을 그대로 받아서 ‘진실 공방’이라고 기사를 쏟아낸 언론에 상당히 분노했다. 오죽했으면 시민단체가 예천군 의원 사퇴 촉구 집회에서 ‘지역 언론을 비판하는 문구’ 피켓을 들고나왔으랴. 또 하나의 대목은 가이드가 나의 취재요청에 응한 이유다. 그는 취재요청을 제3자를 통해 전해 듣고 자신의 연락처를 전달하기 전 몇 시간 동안 나에 대해 뒷조사를 했고, ‘이정희 기자는 끝까지 추적할 사람이다’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고백했다. 지역에서 온갖 싫은 소리를 들어가며 나름의 소명 의식으로 고군분투해온 데 대한 보상, 위로 같았다. 해결 안 되는 복잡하고 어렵고 민감한 제보가 적지 않게 들어온 편이었지만, 이 보도 이후 지역 권력과 적폐에 대한 묵직한 제보가 마구 밀려든다. 24년 차에 맞은, 즐거운 비명이다.
성직자의 이름으로... 아동 성범죄 목사 추적 JTBC
성직자의 이름으로... 아동 성범죄 목사 추적
JTBC 사회3부 이호진 기자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면,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
영화 ‘스포트라이트’ 대사입니다. ‘미국만의 일 일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취재팀은 국내 기독교 아동 성폭력에 주목하기로 했습니다. 국내에서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들이 목회하고 있는지, 취재진은 전수조사에 착수했습니다. 3주에 걸쳐 2005년부터 2018년 10월까지 국내에서 아동 청소년 성범죄로 처벌받은 목사 79명을 확인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처벌받은 승려는 17명, 신부는 1명이었습니다. 목사 성범죄를 택한 이유입니다.
이후 석 달 동안 취재팀은 전국 교회를 돌며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목회 활동을 하는 목사들을 찾아냈습니다. 국내 첫 시도였습니다.
“당신은 머릿속에서 다른 사람을 간음해본 적 없냐”, “당신들은 성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
교회를 다녔던 아동·청소년들에게 성폭력을 저지르고 출소한 현직 목사들의 말입니다. 한 번 처벌받은 이들을 다시 취재하는 게 맞을까 했던 취재팀의 고민은 사라졌습니다. 목사 대부분은 반성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피해자와 가족들을 비난했습니다. 자신들은 ‘돈을 노린 부모’에게, ‘교단 권력 다툼’에 당한 희생양이었습니다.
취재팀은 이들을 찾기 위해 석 달 간 전국을 돌았습니다. 서울부터 부산, 울릉도까지. 대부분 교회를 옮겼고, 행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교회와 교단, 지인들을 찾아 수소문했습니다. 취재팀은 눈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아동을 성추행한 목사가 여전히 어린이들을 보살피고 있었고, 청소년을 감금하고 성추행한 목사가 당당하게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기독교 아동 성폭력 실태를 드러냈습니다. 취재 당시만 해도 교단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왜 우리에게 그러냐고 하던 교단의 태도는 보도 이후 바뀌었습니다. 교단 중 가장 규모가 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을 비롯한 대형 교단들은 취재팀으로부터 넘겨받은 명단을 보고 해당 목사들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기독교대한성결교단의 경우 지방회를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착수하겠다고 했고 예장 백석대신은 문제의 목사들을 모두 제명 처리하는 등 대부분 교단이 재발 방지를 막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밝혀왔습니다. 기독교 교인 수는 2015년 통계청 기준 967만5761명으로 국내 종교 중 가장 큰 종교입니다. 이번 보도가 특정 종교의 문제로 국한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