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8편
1022마리 산양. 그 겨울의 마지막 기록 YTN
1022마리 산양. 그 겨울의 마지막 기록
YTN 함형건 기자
언론과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로 알려졌던 천연기념물 산양의 떼죽음 소식. 전례를 찾기 어려운 ‘생태적 재앙’이라고 할 만 했습니다. 기자는 데이터를 입수해 산양 집단폐사를 둘러싼 여러 가능성을 분석해보았습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에 걸린 멧돼지를 막겠다는 목적으로 만든 차단 울타리가 생태계를 분절해 설악산 산양의 죽음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야생동물 행동권 개념을 적용해 데이터로 확인해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방송 리포트는 일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관련 정보를 한데 모은 디지털 특집 사이트를 만들고자 했지만 자료는 파편화되어 있었고 데이터 관리 실태는 허술했습니다. 결국 각 지역 울타리 지도의 이미지 도면 등을 수집해 손으로 보정해가면서 GIS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꼬박 1달 넘게 걸렸습니다. 여기에 더해 생태적 상상력을 담은 스토리텔링 방법을 고민한 끝에 산양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펼쳐냈습니다. 독자의 선택에 따라 설악산에 사는 산양에 관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전개되는 코너입니다. 소설적인 요소를 도입했지만, 학술 논문과 자료를 참고하고 전문가의 자문도 거쳤습니다. 울타리 존폐를 둘러싼 정책적 결정을 앞둔 올해, 더 현명한 해법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사이트 제작에는 의기투합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장아영 기자와 정혜련 디자이너, 김병욱 데이터 분석가의 노고와, 자신들의 일처럼 관심 가져주신 취재원들의 도움이 결정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러시아 파병 북한군 포로 2명 인터뷰 조선일보
러시아 파병 북한군 포로 2명 인터뷰
조선일보 정철환 기자
북한군 포로 2명의 인터뷰 기사가 나간 뒤 해외 여러 기관과 매체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 중 한 영국인 특파원으로부터 “한국 매체가 먼저 그들을 만날 것이라곤 전혀 예상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좋은 의미로 건넨 이야기였겠지만, 한국 언론을 바라보는 글로벌 매체들의 시각이 은연중 드러난 듯해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올해 초 북한군 포로가 생포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어떻게 하면 이들을 직접 취재할 수 있을지 서울의 데스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북한군 병사가 외국 땅에서 전투를 벌이다 붙잡힌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파병 사실 자체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흐름은 물론, 한반도와 글로벌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기도 하다.
북한군 파병에 대해 침묵하고, 심지어 부인하는 주장마저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그 ‘증거’를 직접 만나 확인하는 임무마저 외신에 넘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역만리 남의 전쟁터에 끌려온 북녘 동포 청년들의 사연을 외국어를 거치지 않은, 우리말 육성으로 직접 전할 수 있으면 했다. 많은 동료 기자들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인터뷰 성사까지 한 단계 한 단계 접근해 가는 과정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편집국과 신문사 차원의 전폭적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세계적 언론사들의 요청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첫 취재의 기회를 내 준 우크라이나군 당국에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낯선 기자의 예기치 않은 방문에도 선뜻 말문을 열어 준 두 청년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지구상 어디서든, 인간의 당연한 권리를 누리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두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
암장,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죽음 한겨레
장,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죽음
한겨레 이지혜 기자
이번 기획은 이주활동가들의 제보로 시작됐습니다. 이주노동자 가운데 ‘돌연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심지어 제대로 된 보상도 애도도 받지 못하고 속전속결 ‘처리’되는 죽음이 많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누구도 기록하지 않는 감춰진 죽음을 추적하는 일은 ‘어둠 속의 코끼리’를 더듬는 것 같았지만, 이 문제가 거대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했습니다.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교 교수님이 그려주신 ‘코끼리의 밑그림’을 들고서 이미 세상을 떠난 숱한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죽음을 취재했습니다. 위험하고 폭력적인 일터, 열악한 삶과 사회안전망의 부재, 은폐와 사기, 애도의 부재와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무신경 등 한국 사회가 밑바닥에 뭉개놓고 애써 외면해온 이주노동의 거대한 그림자가 타래처럼 끌려 나왔습니다. 이번 취재는 내내 긴 장례식을 치르는 것 같았습니다.
이 기사로 이주노동자들이 사회문제의 피해자를 넘어서, 살아서는 자기만의 꿈을 꾸고 숨진 뒤엔 자기만의 애도를 받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조명하고 싶었습니다. 기사를 읽은 뒤 독자들이 이주노동자의 삶이 가진 역동성과 복잡성을 상상하게 되길 바랐습니다. 한겨레를 믿고 어렵고 복잡하고 아픈 이야기를 기꺼이 꺼내주신 이주노동자들 덕분에 거대한 코끼리의 그림자나마 꺼내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기획의 모든 기사, 모든 문장에 캡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좋은 데스킹이란 가장 정확하고 간절한 문장을 꺼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주옥같은 데스킹으로 애써주신 방준호 이슈팀장께 가장 큰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전광훈 유니버스 한국일보
전광훈 유니버스
한국일보 조소진 기자
‘한국일보 2025년 사회부 사건팀’이 받은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빈 말이 아닙니다. 올 겨울 윤석열 대통령이 있는 한남동 관저 앞을 번갈아가며 지켰던 사건팀 단톡방에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관련 취재 메모가 자주 올라왔습니다. 현장을 갔던 강지수, 전유진 기자가 전 목사의 발언이 수위를 넘고, 광화문온, 퍼스트모바일 등 주변에 포진해 있는 업체들이 이상하다는 점을 포착했습니다.
문지수, 최현빈, 김태연 기자는 2주 넘게 이들을 뒤따라 다니며 문제의식을 벼리고 또 벼렸습니다. 혹여나 놓친 게 있을까, 기획 마감으로 쩔쩔매는 팀원을 위해 공판 워딩과 타지까지 꼼꼼히 챙겨 준 이유진, 허유정, 김나연 기자가 아니었다면 ‘전광훈 유니버스’ 기획은 무사히 나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집회 현장에 가본 기자라면 저 헌금을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 같습니다. ‘애국’이라는 명목으로 걷힌 헌금이 사랑제일교회 최측근들의 배를 불리는데 쓰이는 현실. 국세청과 경찰 등 수사기관에 “문제가 없다는 거냐”고 수차례 물었고, 정부와 국회에 입법할 계획이 없냐고도 물었습니다. ‘정관 때문에 처벌하기가 어렵다’, ‘표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을 때, 고민은 더 깊어졌습니다.
믿고 지켜봐주신 강철원 사회부장, 윤태석 차장, 손현성 캡께 감사드립니다. 회사에서 마주치는 선배들마다 불쑥 기획안을 내밀며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나눠주신 선배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상소감을 쓰는 도중, 팀 후배들 전원이 경북 산불 현장으로 출발했습니다. 매 순간, 각자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2025년 사건팀 후배들에게 공을 돌립니다.
고통의 굴레 희귀질환 경기일보
고통의 굴레 희귀질환
경기일보 김경희 기자
“진짜 제대로 된 기획팀 한 번 만들어보자.” 첫 정치부 발령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평소 좋아하던 선배와 나눈 이 대화가 경기알파팀의 시작이었습니다. 경기알파팀은 많은 이들이 함께 완성한 팀입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파격적인 방식의 기획취재를 허락해주신 편집이사님부터 몇 주간 알파팀에 차출돼 부서업무를 할 수 없는 기자들을 이해해주신 데스크 분들, 알파팀의 시작을 함께 고민해준 선배와 일원이 됐을 때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닌 기자들의 열정이 알파팀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고통의 굴레 희귀질환’은 이렇게 출범한 경기알파팀의 첫 기사였습니다. 장기화하는 의료공백 사태 속에 가장 큰 두려움과 불편을 느끼고 있었음에도 주목받지 못하던 이들. 낯선 병에 대한 사회의 낮은 이해도는 언제나 편견이라는 비수가 돼 희귀질환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들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전국 광역자치단체 차원의 지원사업 예산 마련은 희귀질환자 지원 확대라는 희망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상은 밤낮,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열정을 쏟고도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던 오민주·이진 기자, 두 사람 열정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어쩌다 정치부에 모두 모인 첫 알파팀의 추가 기획취재를 지지하며 응원해주신 박정임 정치부국장과 최현호 차장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김건희·윤석열- 명태균 ‘공천 개입 의혹’ 통화 육…
김건희·윤석열- 명태균 ‘공천 개입 의혹’ 통화 육성 및 문자 메시지 공개 등 명태균 게이트
시사IN 전혜원 기자
지난해 9월부터 떠오른 ‘명태균 게이트’의 진상 규명은 상당 기간 지지부진했다. 지난해 10월31일 더불어민주당이 “김영선이를 좀 해 줘라”고 말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 육성을 공개한 뒤에도,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7일 “누구를 공천을 줘라 이런 얘기는 해본 적이 없다”라고 의혹을 부인했다. 명태균의 ‘(이른바) 황금폰’ 내용 일부가 보도되었으나 구체적 물증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시사IN>은 2022년 5월9일 명태균씨와 윤석열·김건희가 나눈, 편집되지 않은 통화 녹음파일을 입수해 보도했다. “공천관리위원장이 정진석 비서실장인 줄 알고 있었다”라던 윤석열 전 대통령은 그날 통화에서 “상현이한테 내가 한 번 더 얘기할게. 걔가 공관위원장이니까”라고 명확히 말했다. 김건희 여사도 “당선인이 지금 전화를 했는데(…) 그냥 밀라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명태균씨와 윤석열·김건희가 나눈 카카오톡·텔레그램 메시지, 검찰이 명태균씨를 상대로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 6건도 입수해 연속 보도했다.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대통령의 거짓말을 생생히 입증하는 ‘날 것’이었다. 말만 무성했던 의혹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물증이기도 했다.
명씨 측 법률대리인이 지난해 12월2일 “황금폰을 민주당에 제출할 수도 있다”라고 말한 다음 날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명태균 게이트가 이번 비상계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일찌감치 대통령 부부의 공천개입 정황을 파악한 검찰 수사는 왜 멈춰 있었는지 아직 밝혀야 할 내용이 많다. 앞으로도 좌고우면 않고 최전선을 취재하겠다.
707 단체대화방에 드러난 ‘의원 차단 지시’ 등 SB…
707 단체대화방에 드러난 ‘의원 차단 지시’ 등
SBS 김수영 기자
12·3 계엄 이후 SBS 외교안보팀은 김용현 전 국방장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직접 인터뷰를 통해 계엄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 주력했습니다.
계엄 실행에 역할을 했던 주요 군 지휘관의 진술로 하나 둘씩 진실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유독 주목되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국회로 달려가 창문을 깨고 들어간 김현태 707특임단장이었습니다.
자신의 책임이 크다, 부대원을 지켜달라며 눈물의 호소를 했던 김 단장은 돌연 말을 바꿨습니다.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았다던 김 단장은 자신은 국회 봉쇄 지시만 받았고, 의원을 막으라는 지시를 받은 적 없었다고 국회, 헌법재판소에서 잇따라 증언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해당 지시를 한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회유 의혹’까지 정치권에서 제기되면서 논란은 커졌습니다.
왜 말을 바꿨을까? 의문이 커질 때, 707특임단 내부 제보를 받았습니다. 계엄 당일과 그 다음날 새벽까지 707특임단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드러난 단체대화방이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김현태 단장이 직접 올린 ‘의원 차단’ 지시였습니다. 논란을 불러왔던 그의 증언을 반박할 수 있는 분명한 증거였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SBS 외교안보팀의 보도가 증거로 제시됐습니다. ‘이달의 기자상’이라는 귀한 상을 통해 그 가치를 더 인정받게 된 것 같습니다. 상을 주신 심사위원분들과 함께 노력해준 동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노상원 수첩 전문 MBC
노상원 수첩 전문
MBC 이재욱 기자
“노상원 수첩에 ‘국회 봉쇄’라는 표현이 있었고,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노조, 판사, 공무원 등을 ‘수거 대상’으로 적시했다. 이들에 대한 수용 및 처리 방법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등을 수사하는 경찰 특별수사단 관계자가 지난해 12월23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꺼낸 이야기입니다. 기자들이 해당 내용을 전혀 몰랐던 상황에서 불쑥 나온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수거 대상은 누구인지, 이들을 처리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 후속 질문에는 일절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사흘 뒤 노상원은 송치됐고 수첩도 함께 검찰로 넘어갔습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지만 취재가 제한되면서 이후 노상원 수첩에 관한 관심은 자연스레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송치 직전 브리핑에서 수첩 내용 일부를 알렸던 경찰의 의중을 두고두고 곱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첩을 봤을 법한 취재원들을 설득했습니다. 기어코 직접 찾아갔지만, 여러 차례 거절당했습니다. 그사이 검찰은 지난 1월10일 노상원을 기소했습니다. 공소장에 수첩 내용은 담기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취재원들에게서 기류 변화가 감지됐습니다. 노상원 수첩이 이대로 묻힐 수 있겠다는 우려 때문인 듯했습니다. 그 틈을 파고들었고 취재원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2월6일, 노상원의 첫 공판준비기일에서도 수첩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지렛대 삼아 취재원들을 강하게 설득했고 결국 노상원 수첩 전문을 취재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 보도가 조금이나마 의미가 있었다면 온전히 그분의 결단과 용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