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재착수
① 단독취재(√ ), ② 단독기획(√ ), ③ 보도자료 심층기획( ), ④ 제보( ), ⑤ 기타( )
2. 보도제작경위 -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십시오.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국내에서는 성토가 쏟아집니다. 이러한 반응은 두 가지 인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피해자 증언이 있는데 일본이 이를 무시한다. 둘째는 일본이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은폐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몇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일제강점기 10대였던 피해자들의 산술적 나이는 최소 86세. 증언에만 의존한다면 피해자들이 모두 사망하고 난 뒤 일본과 사실관계를 어떻게 따질 것인가. 일본이 가해증거를 은폐하고 있다면 한국은 확보한 증언, 증거를 잘 활용하고 있을까. 궁극적으로 한국 정부는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을까. 이상의 궁금증으로 두 달여에 걸친 추적보도가 시작됐습니다.
지난 6월 말, 취재를 시작하며 주목한 것은 2015년 12월 31일 문을 닫은 ‘국무총리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 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였습니다. 위원회는 국가 차원에서 일제강점기 피해에 관한 증언, 증거를 확보한 거의 유일한 사례였습니다. 뿔뿔이 흩어진 당시 조사관들을 수소문해 만났습니다. 이들은 위원회가 활동했던 11년 동안의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주로 어떤 문제가 있었고, 왜 문제가 발생했으며,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참고자료1] 취재 말미 이들은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우리가 모은 자료들 중 강제동원 피해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공탁금 명부'와 '후생연금보험 명부'의 행방이 묘연하다. 이를 좀 찾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공탁금 명부는 국가기록원에 있었습니다. 이관받은 지 6년이 넘도록 DB화나 연구 조사 없이 그야말로 비공개로 '보관'만 하고 있었습니다. 후생연금보험 명부는 부산에 있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문서보관소에서 확인됐습니다. 역시 아무런 연구 조사 없이 비공개로 '보관'만 하고 있었습니다.[참고자료2]
7월 초, 이상의 사실들을 모아 단독 보도를 했습니다. 정부를 필두로 일제강점기 피해에 분노하지만 이를 규명하고 해결하려는 실질적 노력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기사가 나가고 이틀 뒤 일본의 '군함도' 왜곡 문제가 터졌습니다. 유네스코는 일본이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한국인 강제노역 역사를 제대로 알리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국내 여론은 다시 분노로 들끓었습니다. 일본이 군함도를 근대문화유산으로만 둔갑시키고, 강제동원 흔적은 지워버렸다는 비판이었습니다.
다시, 처음 취재를 시작할 때 의문으로 돌아갔습니다. 한쪽에서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분노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따질 증거를 방치하는 상황. 국민 대다수가 모르는 사이 반복되고 있는 이러한 실태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추천 보도 <우리 손으로 파괴하는 일제 강제동원 증거> 취재를 곧바로 시작했습니다.
인천시 부평구에 있는 미군기지 '캠프마켓’의 역사는 위원회 조사관과의 대화 중 처음 듣게 됐습니다. 이곳이 일제강점기와 관련됐다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는 광복 직후 미군기지가 자리 잡으며 70여년 동안 출입이 제한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캠프마켓은 사실, 일본 육군이 딱 8개만 운영했던 무기생산시설 '조병창'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미군은 일제가 사용했던 건물과 각종 시설을 그대로 이용했습니다. 다시 말해, 조병창 유적은 지금도 파괴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70여년을 버텨 온 조병창 유적은 미군기지가 한국으로 반환되며 위기를 맞았습니다. 취재를 시작하는 시점에는 미군이 일부 반환한 부지에 있던 일명 1780호 건물(조병창 부속 병원 건물로 추정)의 철거가 이미 결정된 시점이었습니다.
①조병창 유적의 철거 결정 과정을 밝혔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조병창은 강제동원된 당시 조선인들이 만든 것으로 피해 증거입니다. 무엇보다 전후 일본은 전쟁 관련 흔적부터 파괴했기 때문에 총 8개의 조병창 중 남은 것은 딱 2개였습니다. 그나마 일본 사가미 조병창은 미군 기지로 사용중이고, 반환 계획도 없기 때문에 조병창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부평이 유일합니다.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기존 보도를 검토하니 '환경오염' 문제가 언급돼 있었습니다. 다만, 부평 조병창 부지의 환경오염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지역에서는 '다이옥신'과 같은 맹독성 물질로 오염됐다는 소문까지 떠돌았습니다. 결국, 일단 현장을 직접 가서 보기로 했습니다. 인근 카페의 협조를 얻어 1780호 건물이 보이는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다이옥신이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도는 땅. 그 위로 철거를 준비하는 인부들이 아무런 방호복도 없이 천천히 걸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맹독성 오염이 아니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오염인지, 환경조사를 해보긴 한 것인지조차 분명치 않았습니다. 수소문 끝에 지난해 말, 국방부가 환경공단에 조사 용역을 맡겼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국방부에 정확히 어떤 오염인지 문의했고, '단순 유류오염'이라는 사실 최종 확인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급하게 1780호 건물을 철거하는지 궁금했습니다. 70여년 동안 미군기지로 이용됐고, 2019년 반환된 이후 정확한 조사 한 번 해보지 못한 건물이었습니다. 다시, 국방부에 문의했습니다. "우리는 철거 결정을 하지 않았다. 인천시가 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인천시에 문의했습니다. "우리는 철거 결정을 하지 않았다. 국방부가 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1780호 건물의 철거가 결정됐다는 보도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어떤 권한으로 왜 철거를 결정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취재결과, 1780호 건물은 누구도 철거를 결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건물이 철거되는 전대미문의 현장이었습니다.
②국방부와 인천시의 책임회피가 가능했던 원인을 찾았습니다
다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일제강점기 피해의 흔적을 담고 있는 중요 건물의 철거였습니다. 관련 기관이 '핑퐁게임'을 한다면, 그 원인을 밝혀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국방부와 인천시의 입장을 처음부터 재검토했습니다. 각 기관은 서로 "왜 철거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대체 어디서 입장차이가 발생했는지 알기 위해 관계자들이 한 말을 일일이 대조해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한 작업 끝에 결과적으로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주한미군 특별법) 제12조'의 예외조항 해석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해당 조항은 국방부장관은 미군으로부터 반환된 토지에서 오염 등을 제거해야 하는데 ‘사업시행자가 지상물 또는 지하매설물의 계속 활용을 희망하는 경우에는 제거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방부는 "인천시가 건물 활용을 희망하지 않았고, 철거하라고 했기 때문에 결정을 인천시가 했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인천시는 "법에 건물을 계속 활용하기 희망하는 경우 제거하지 ‘아니할 수 있다’로 나오기 때문에 설사, 인천시가 철거 의사를 전달해도 최종결정은 국방부가 한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철거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도록 각자 법을 해석한 결과였습니다.
③빠른 건물철거의 내막과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1780호 건물을 조사 한 번 없이 빠르게 철거해야 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인천시 시민참여위원회의 회의록을 입수해 분석하고,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위원들을 통해 당시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환경문제 이면에 시간과 비용 문제가 있음을 밝혔습니다. 아울러 빠른 결정을 위해 시민참여위원회가 민주적 합의 과정을 생략했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또, 인천시와 국방부가 결정한 철거방식인 '굴착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해당 방식은 건물 철거 후 토양을 퍼낸 뒤 씻어내는 방식입니다. 즉, 건물을 보존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굴착방식으로 토지를 정화해 본 전문가를 수소문했습니다. 결국, 부산 하야리아 미군 부대 반환 사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환경정화 사업에 참여했던 전문가를 통해 "건물을 보존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는 것과 "이미 유럽에서는 굴착방식 대신 건물을 유지한 채 토지를 정화하는 방식을 이용한다"는 의견을 듣고 기사에 반영했습니다. 아울러 토지정화와 관련해 지중정화 방식, 최적의 기술을 찾을 때까지 가림막 설치 등의 대안이 있고, 전문가들과 추가 논의가 필요함을 지적했습니다.
④조병창의 가치를 일본군 극비문서를 통해 최초로 확인했습니다
조병창 철거 과정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여전히 중요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정말 조병창이 보존가치가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사실, 부평 조병창을 둘러싼 기존 설명들은 기억에 의존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조병창이 미군 기지로 이용되며 접근이 제한됐다는 것과 이에 따른 연구 부재로 그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실제로 지역 주민들조차 조병창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부평 일대에 산재한 '지하동굴'을 새우젓 토굴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76년 만에 최초로 부평 조병창에 관한 일본군 극비문서를 공개했습니다. 소문이 아닌 일본군 공식 문서를 통해 조병창의 조성, 확장, 쓰임새, 강제동원까지 모두 확인한 첫 사례입니다. 예를 들어, 새우젓 토굴은 일본이 전쟁 막바지 조병창의 무기생산시설을 지하화하기 위한 동굴이었다는 것과 이를 위해 조선인을 강제동원했다는 사실까지 확인했습니다. 아울러 일제가 부평으로 도쿄 제1조병창 생산시설을 이전하려 했다는 것 역시 문서로 밝혔습니다.
이상의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기 위해 국내 유일의 조선군(한반도에 주둔한 일본군을 학계에서 지칭) 전문가, 강제동원 전문가 등과 함께 문서를 분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부평 조병창은 일제의 전쟁 책임회피와 일본 본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희생양이라는 사실을 제시했습니다.
일본군 극비문서는 학계에도 보고되지 않았고, 관련 논문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 공개했습니다.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에 해당 문서가 보관돼 있다는 것도 분명히 밝힘으로써 향후 전문가의 추가 연구 가능성도 높였습니다.
⑤기사 원칙
부평 조병창 기사는 7월 보도했던 기사의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국내에 방치된 일제 강제동원 증거를 보이고, 일제강점기 피해를 규명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사실상 부재한 상황을 지적한다는 큰 틀을 공유합니다. 다만, 매주 한 차례 보도하는 주간지 특성상 기사는 7월부터 8월에 걸쳐서 보도됐습니다. 8월 1일부터 2주에 걸쳐 보도한 조병창 기사는 원고지 130매가 넘는 분량으로 기획단계부터 조병창을 둘러싼 철거상황과 가치 부분을 나누어 썼습니다. 두 개의 기사이지만 조병창이라는 큰 주제를 이해하기 위한 상호보완적인 기사입니다. 기사는 다음과 같은 원칙에 입각해 작성했습니다.
㉠"광복절에 맞춰 내지 않는다, 불필요한 사연을 나열하지 않는다"
광복절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기사들이 있습니다. 대일항쟁기 피해자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일제가 얼마나 악랄한지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사연은 극적일수록 좋습니다.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형적인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증언이 아닌 객관적 증거, 사실만으로 강제동원 피해를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연역 추론을 통해 당시 조선, 조선인이 일제 전쟁범죄의 피해자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게 기사를 구성하고 싶었습니다. 이는 피해자가 생존해 있지 않은 시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기사를 작성하며 두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는 ‘8월 15일에 맞춰 쓰지 않는다’. 둘째는 ‘부족한 지면을 채우기 위해 불필요한 사연을 나열하지 않는다’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8월 15일에 맞춰 쓰면 조금 더 읽히지 않을까" 고민도 했습니다. 또, “대표적인 피해자를 소개시켜주겠다”는 제안도 받았습니다. ‘광복절에 슬픈 사연이 담긴 기사를 낸다면 더 많이 읽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거절했습니다. 이미 90대인 피해자에게 가슴 아픈 이야기를 반복하게 하고 싶지 않았고, 감정을 배제해도 일제의 범죄행위를 충분히 논증하고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를 감정적으로만 보며 피해사실을 부풀린다는 일각의 시각을 반박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사는 '8월 15일'에 출고하지도, '사연'을 담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일제 스스로 작성한 문서를 발굴해 강제동원 가해 '사실'만 담았습니다. 사실관계를 추적하는 기사임에도 포털사이트 등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딱딱한 사실관계를 다루면서도 '기사는 읽혀야 한다'는 기본을 충족시키기 위해 고민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참고 : https://news.v.daum.net/v/20210807090812447,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3090414)
㉡추가 취재한다.
주간지는 마감 즉시 보도가 되지 않습니다. 즉, 기사 작성 완료시점과 출고시점에 간극이 존재하게 됩니다. 이를 잘 아는 일부 기관은 기사 마감날을 넘겨서 주요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지면기사는 평일에 마감했지만 주말 인터넷 출고까지 취재를 계속했습니다. 일부 기관은 지면 마감 시간때까지 알려주지 않았던 정보를 그제서야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면에 반영하지 못한 내용도 인터넷 기사에 보완했습니다. 이에 따라 지면과 인터넷 출고 기사에는 약간의 차이가 존재하게 됐습니다. 기사 출고 시점까지 더 새로운 사실, 조금 더 정제된 내용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참고자료3]
해당 보도 후에도 CBS 라디오 출연을 통해 조병창 철거 관련 새로운 동향을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3.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① 기사에 등장하는 익명취재원의 상당성여하
조병창 기사에서 익명취재원은 두 번 등장합니다. 모두 1780호 건물의 보존을 주장한 전문가들입니다. 보도 당시 철거가 결정된 과정의 문제점을 내부고발했고, 시민참여위원회 회의록 등의 증거를 제보했습니다. 1780호를 둘러싼 대립구도 상 철거를 결정한 쪽은 이들 제보자의 입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역사회 유력자, 공무원 등이었습니다. 지역 부동산 개발업자로부터의 피해도 염려되는 상황이었기에 두 명의 취재원을 보호한 것은 부득이한 결정이었습니다. 이외에 기사에 등장하는 다수 취재원은 모두 실명을 담았습니다.
② 제보자와의 특별한 이해관계여하
이해관계 없습니다
③ 직접취재(바이라인), 현장취재(데이트라인)여하
모두 바이라인 기자의 직접취재, 현장취재입니다. 기자가 직접 지하동굴에 들어간 체험담까지 기사에 담아 현장을 전달하려 했습니다.
④ 기타 특이사항 여하
없습니다
4.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선행보도는 지역 언론을 중심으로 "1780호 건물의 철거가 결정됐다"는 내용까지입니다. 철거 결정 과정, 이유, 절차 상 문제, 대안, 일본군 극비 문서 등 기사에 담긴 모든 내용은 새롭게 취재한 [단독]기사입니다. 조병창 보도 후 변화된 상황을 반영한 기사, 칼럼, 기고문 등이 현재까지도 나오고 있고, 지역사회 논의가 재시작된 만큼 지속적인 추가 보도도 기대됩니다.
주요 후속 보도만 살펴보면, SBS 8시 뉴스 <"우리 땅에 남은 강제징용 흔적인데"…철거 위기, 왜?>, 연합뉴스 <인천 일제 강제동원 흔적, 잇따른 보존 목소리에 철거 유보>, 한겨레 <시민참여위원장 사퇴로 이어진 일본 조병창 건물 철거 논란>, 국민일보 <일제침략·강제동원 상징 조병창 건물 철거반대..>, 국민일보 <일제침략·강제동원 상징 조병창 건물 철거반대..>, 연합뉴스 TV <전범기업의 마지막 흔적…삼릉 마을을 아시나요?> 등이 있습니다. 지역 언론으로는 인천투데이 <“인천시, 조병창 병원 건물 논란 책임회피 그만해야”>, 인천일보 <“조병창 철거 책임 회피로 혼란 가중”…시에 '쓴소리'>, 경인일보 <'캠프마켓 문화적 가치 공감' 토론회… '조병창 병원' 화두> 등이 있습니다. 타 매체 반향은 리스트로 정리했습니다.
5. 사회에 끼친 영향
①보도 후 8월 20일로 예정됐던 1780호 건물 철거계획이 전면 취소됐습니다. 철거계획 취소 후, 토론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습니다. 철거 사실과 조병창의 가치에 대해 잘 몰랐거나 알면서도 보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시민, 전문가 등을 주축으로 해당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재논의가 시작됐습니다.(타 매체 반향기사 참고)
②첫 보도 바로 뒷날인 8월 2일 문화재청이 1780호 건물을 답사하고, 보존을 권고하는 공문을 인천시, 국방부에 전달했습니다.[참고자료4]
③8월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인천시는 일제강제징용의 역사적 유물인 부평캠프마켓 내의 조병창병원을 철거하지 말고 역사적 유산으로 보존하여 주세요>라는 청원이 제기됐습니다. 아울러 기사를 접한 독자들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부평 조병창 보존을 요청하고 이러한 사실을 알려온 경우도 있습니다.[참고자료5]
④8월 23일 '일제 침략과 강제동원의 상징 조병창 병원건물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들'이라는 모임에서 <인천시장은 캠프마켓 1780 건물을 존치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참고자료6]
⑤인천시는 근대건축물에 대해 철거와 보존 논란을 발생하자 근대문화유산 실태를 파악하는 동시에 관리 체계를 마련할 전담 조직을 꾸리겠다고 밝혔습니다.
6.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언론윤리강령을 모두 준수했습니다
7. 기타 고려사항
외부 지원여부, 보도당사자의 반론신청, 언론중재위원회에의 피신청사항 모두 없습니다.
회차 심사평
제372회 전체 총평
제372회 이달의기자상 심사에서는 총 9개 부문 64편이 출품돼 이 가운데 8건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이번 372회 심사의 경우 취재보도 부문1(16편 출품), 2(3편 출품)와 기획보도 방송부문(9편 출품)에서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 또 지역언론사의 경우 전체 18편이 출품해 5편이 선정됐다. 이달의기자상 역사상 매우 드문 일로 꼽힐 듯하다.
모두 9편이 출품된 경제보도 부문에선 전자신문의 <머지포인트 ‘미등록 영업’ 논란···금감원 실태조사 직접 나섰다 外>가 선정됐다. 이 기사는 디지털금융이 확산하는 추세에서 모바일 상품권의 횡행과 위험성을 부각해 소비자 피해를 막고 금융당국의 대처 및 관련 제도의 개선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에는 모두 6편이 출품돼 이 가운데 경향신문의 <장애인도 소비자다>와 한국일보의 <혜린이의 비극, 그 후> 등 두 편이 선정됐다. <장애인도 소비자다>는 그동안 주로 복지 재활 대상으로 간주된 장애인을 소비의 주체로 인식해 문제점과 해법을 이끌어낸 참신한 기획이란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비대면시대에 더욱 불편해진 장애인 소비환경을 다양한 현장과 각도에서 조명해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이견이 없었다.
<혜린이의 비극, 그 후>는 ‘촉법소년’ 제도로 인해 가해자는 발 뻗고 자고 피해자는 전전긍긍하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한국일보 취재팀이 장기간 추적해 시리즈로 보도함으로써 평생 고통받는 피해자와 가족들 상처를 생생히 전달했다는 점이 주목됐다. 법원·검찰 및 교육당국의 안이한 사법 및 행정처리도 지적해 개선을 유도한 점도 호평을 받았다.
모두 10편이 출품된 지역 취재보도 부문에선 MBC충북의 <반쪽짜리 체육공원, 이상한 연구용역 실태>과 기호일보의 <황교익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 그리고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의 2편이 수상작으로 뽑혔다. <반쪽짜리 체육공원, 이상한 연구용역 실태>는 350억원 들이고도 유령공원으로 전락한 사례를 통해 지자체의 주먹구구식, 판벌리기식 낭비행정을 빈틈없이 다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숱한 국책 공사에 대한 다각적 검증은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언론들의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다.
기호일보의 <황교익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 그리고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는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로 꼽혔다. 이 기사는 단순 인사발령으로 넘길 수 있었던 경기도 산하 출자출연 기관장에 대한 인사를 파고 들어 부당성을 적극 조명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이재명 경기지사가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현장 출동소방관의 실종 및 재난사태에서 황 내정자가 진행하는 먹방에 출연하면서 경기도 재난사령탑 책무를 게을리한 사실을 파헤친 점은 금상첨화라는 평이었다.
모두 10편이 출품된 지역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의 경우 경기일보의 <76년만에 되찾은 웃음, 원폭피해자 2‧3세대 지원 이끌어내다>와 매일신문의 <‘구하라 시리즈’-빈곤 동네와 주거 빈곤 아동> 등 두 편이 선정됐다. 이 두 작품 모두 지역밀착형 탐사보도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되는데 이론이 없었다. 경기일보 ON팀의 <76년만에 되찾은 웃음···>은 경기도가 원폭피해자 지원 조례를 제정(2019년)해 놓고도 지원은커녕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은 점과 원폭피해자의 아픔 등을 생생하게 전했다. 매일신문의 <‘구하라 시리즈’>는 문제접근과 대안제시 방식이 돋보였다. 생생한 현장을 전문가 및 관계공무원들과 결합시켜 문제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함께 찾아나선 점은 탐사보도의 한 유형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지역 기획보도 방송부문에선 대전MBC의 <‘노래하라! 저항하라!’ 항일음악 6천곡 대발굴>가 뽑혔다. 이 작품은 그동안 언론의 무관심 속에 방치돼온 일제 치하 항일노래를 6천곡 이상 발굴해 자료화하는 방대한 작업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코로나19로 취재여건이 녹록치 않은 상황 속에서도 뛰어난 열정으로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땀을 아끼지 않는 기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