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재착수
① 단독취재( ), ② 단독기획( ), ③ 보도자료 심층기획( ), ④ 제보(V), ⑤ 기타( )
지난 6월 1일, “광주에 폭탄 테러 시도가 있었다”는 충격적인 제목의 인터넷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깜짝 놀라 열어보니 정작 제보 내용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초등학생 자녀 같은 반 친구가 인도네시아 사람인데, 불법체류로 본국으로 추방될 위기라 담임선생님과 학부형들이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를 쓰기로 했다는 겁니다. 글 말미에는 ‘친구 부모는 몇 년 전에 테러를 막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른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건 장난 제보가 올라오고, 그 중엔 자극적인 제목으로 ‘낚시’하는 게시물도 많습니다. 이번 제보도 그런 장난인 것 같아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문득 ‘인도네시아’라는 국적 얘기가 눈에 밟혔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확산되고 있다는 예전 기사를 본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진행 중이던 다른 취재를 잠깐 미루고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제보자에게 연락해보니 자신도 아이에게 들은 이야기라고만 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조금 더 자세한 사정을 알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학교 측에도 연락해봤지만 역시 테러에 대한 사항은 잘 모른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불법체류 신분을 우려해서인지 주소나 연락처 등 신원이 노출될 수 있는 정보를 얻기도 어려웠습니다. 힘들게 설득해 당사자의 연락처를 얻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역신문 포함 최근 10년 기사를 찾아봐도 광주에 테러가 있었다거나, 테러 시도 용의자가 잡혔다는 보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책상에 앉아서만은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 직접 광주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 보도제작경위 -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십시오.
<‘푸트리’(가명)를 만나다>
무엇보다 당사자를 만나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 측을 다시 설득해 주소를 알아내거나, 이 가족을 아는 다른 사람이 있는지 수소문해보기로 했습니다. KTX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이주민이나 외국인 노동자 관련 광주 지역 시민단체들에 전화를 돌렸습니다. 그 중 한 곳에서 반가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OOO 얘기 같은데, 지금 우리 사무실에 와 있어요.”
‘테러를 막은’ ‘이주 노동자’라는 말에 젊은 남성일 거라 상상했지만, 광주 평동산단 인근의 이주민 지원 센터에서 처음 만난 ‘푸트리’씨는 40대 후반, 작은 체구의 여성이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2005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 땅을 밟은 뒤 “그대로 눌러앉은” 그녀는 이 지역 이주민들 사이에서 ‘큰언니’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조금은 서툰 한국어로 그녀는 지난 18년 간 자신이 겪은 일들, 자신이 한 일들을 두 시간에 걸쳐 차분히 기자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이슬람 신도 커뮤니티에서 ‘수상한 새 신도’에 대한 소문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국정원 요원과의 접선, 임신한 몸으로 펼친 5개월 간의 추적과 정보 수집, 그리고 그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일들까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법한 놀라운 사연이었습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취재할 때면 은연중에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만난 푸트리는 주관이 뚜렷하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통화와 메시지를 나눈 국정원 요원의 연락처를 줄 수 있는지, 두 사람이 나눈 텔레그램 대화 내용 등을 활동을 증빙하는 증거로 보도에 활용해도 될지 묻자 그녀는 “약속했기 때문에 안 된다”고 거절했습니다. 비밀엄수 서약을 했다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했지만, 강제추방을 앞두고도 신의를 지키려는 마음을 꺾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너무 빨리 잡아서...>
푸트리는 비자 연장 거절을 철회해달라는 행정심판에서 이미 패소한 상태로, 행정소송 1심 선고를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미 법원에 제출했던 자료는 보도해도 비밀 서약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고 설득해 받아왔지만, 방송에 활용할 수 있는 양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보도를 위해서는 푸트리의 말을 객관적으로 입증해 줄 제3의 증인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강제추방을 피하기 위해 꾸며내거나 과장한 이야기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국정원에 공식 질의를 해볼까 생각했지만, 공안 관련 개별 사건에 대해 응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대신 광주, 전남 지역 경찰서와 경찰청 외사계에 2018년 사건을 수사한 담당자가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은 한 경찰관은 국정원에서 지휘한 수사는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고 꺼려하면서도, 푸트리 씨의 증언이 사실과 부합함을 확인해 줬고, 익명을 전제로 취재진이 알지 못했던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푸트리 씨가 기대 이상으로 활약해 준 덕분인지 용의자가 예상보다 빨리 잡혔다는 겁니다. 구체적인 범행 계획이 세워지기도 전에 용의자가 잡히면서 테러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기가 애매해졌고, 법 제정 초기에 판례도 많지 않아 그냥 출입국관리법을 적용해 ‘위험 인물’로 추방조치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만일 폭발물 재료 수집 등 구체적 계획을 세운 상태에서 붙잡았다면 ‘테러방지법 위반 용의자 검거’로 대대적인 홍보가 이뤄졌을 것이고, 그랬다면 푸트리 씨도 좀 더 좋은 대우를 받았을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헌신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불법체류 관련 출입국 규정을 살펴보다 안타까운 대목을 추가로 발견했습니다. 지난 2021년 법무부가 발표한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입니다. 불법체류 신분이라도 국내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있는 자녀와 그 가족에 대해,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한시적으로 체류 허가를 부여한다는 겁니다. 푸트리 씨의 맏딸은 초등학교 3학년이지만, 푸트리 가족은 체류 신청을 거부당했습니다. 불법체류 상태가 아니라, (테러 검거 협조를 인정받아 받은) 1년 임시비자 신분이라는 이유였습니다.
푸트리가 한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이었는지, 어떤 보상을 받았어야 했는지 대해선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인’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람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면, 그건 명백히 잘못된 일입니다.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한 보도지만, ‘이주노동자의 안타까운 사연’으로만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헌신을 존중하지 않는 제도적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3.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푸트리(가명)’ 본인은 자신의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고 취재에 임했으나, 본국으로 강제 추방될 경우 보복을 당할 위험성이 높다는 취재진 판단에 따라 익명 처리 및 인도네시아의 흔한 여성 이름인 ‘푸트리’라는 가명을 선정해 본인 동의 후 보도에 사용하였습니다. 푸트리 씨의 미성년자 자녀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익명 처리했습니다.
취재 내용 중 ‘박OO' 등 국정원 요원의 신원 및 자세한 활동에 대한 사항은 국가정보원의 공공안전 활동을 저해하지 않기 위한 목적 및 푸트리 씨 개인의 요구를 고려하여 세부적인 사항을 방송에 노출시키지 않았습니다. 그 외 특이사항 없습니다.
4.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 같은 날 KBS는 ‘이웃들의 탄원’을 주제로 보도했습니다.
- 이후 이 사안에 대한 법무부 재검토 결과가 발표되면서, SBS,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연합뉴스, 뉴시스, MBN 등 32개 언론이 해당 사안을 보도했습니다.
- 시사인 874호(2023. 7. 4)에서 <IS 테러 막았지만 돌아온 건 강제추방?>으로 추종보도했습니다.
5. 사회에 끼친 영향
푸트리 씨는 보도 다음날 열린 체류기간 연장불허 취소 행정소송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 하지만 MBC 보도 이후 푸트리 씨의 비자를 연장해줘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보도 9일 만인 지난 6월 16일 법무부는 해당 사건을 재검토한 결과 체류 기간 연장을 허가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한 건에 대해 법무부가 자의적으로 결정을 철회하기로 한 것, 더욱이 이를 보도자료를 통해 공식 배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해당 결정에 대한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대한민국의 공공의 안전 등 국익에 대한 기여를 외국인의 체류자격 결정에 충분히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6.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해당 보도는 유튜브에서 43만 회(7월 7일 현재)의 조회수와 6000개 이상의 댓글을 기록하였습니다. 댓글 다수가 후속보도 요청에 대한 내용이었고, 시청자의견을 통해서도 후속보도 요청이 접수되었습니다, 본사 편집회의에서도 향후 재판 결과 및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이후 조치에 대해 지속적으로 살펴볼 것을 취재진에 지시했습니다. 취재진은 푸트리 씨 가족 및 지역 시민단체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이어가며 후속보도를 준비했고, 복수의 국회의원실과 인권법 단체가 조력 의사를 밝혀와 당사자와의 연결을 주선했습니다.
이후 법무부가 비자 연장 허가를 발표하면서 해당 내용을 후속 보도로 전달했습니다.
7. 기타 고려사항
(외부 지원여부, 보도당사자의 반론신청, 언론중재위원회에의 피신청사항) 해당 사항 없습니다.
회차 심사평
제394회 전체 총평
제394회 이달의 기자상은 9개 부문에 총 62편이 출품됐다. 이 중 5개 부문에서 7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경제보도부문에서 수상한 한겨레신문의 <준공영제 삼킨 사모펀드> 보도는 버스 회사에 지원되는 보조금을 수익모델로 삼아 악용하는 구조를 포착해 폭로했다. 오래전부터 민간 자본이 각종 인프라 기반 시설에 지원되는 국가보조금을 악용하는 문제가 지적돼 왔지만 여전히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 기사로, 이달의 기자상 제정 취지에 맞는 보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버스 회사 직원들의 업무량이 폭증했다는 점까지 지적해 자본과 노동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잘 탐사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역시 경제보도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 KBS의 <GS건설 부실 설계·시공>은 ‘순살 아파트’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철근을 빼돌리는 건설사들의 고질적인 행태를 고발한 기사다. 보도 여파로 해당 업체의 주가에 영향을 미쳤을 정도로 파괴력을 발휘한 점이 호평받았다.
14편이 출품돼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에서는 한겨레신문의 <이주민 250만명 시대, 스포츠로 경계를 넘다> 보도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스포츠가 갖는 사회통합 기능을 짚은 좋은 기사라는 의견이 많았다. 한국에서 이주민 스포츠가 활성화하지 않는 이유부터 국가대표팀, 프로구단, 실업팀 수준에서도 이주민을 찾기 힘든 현실, 해외 사례, 안산 이주민 스포츠 활성화 사례까지 현실을 종합적으로 살피고 대안까지 내놨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12편이 경쟁을 벌인 기획보도 방송부문에서는 SBS의 <‘일당 5억’ 황제노역의 내막> 보도와 KBS의 <성착취물·지인 연락처 담보로…‘불법 추심’의 덫> 등 두 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황제노역의 내막> 보도는 오래전에 문제가 됐지만 지금은 잊히고 있는 사건을 다시 한번 세밀하게 들여다봤다는 점에서 호평받았다. 특히 심사위원들은 이 보도가 재벌가 오너의 추문을 떠나 사법 신뢰의 문제를 건드렸다는 점에 주목하며 향판이 지역 권력과 결합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기사라고 평가했다. <성착취물 지인·연락처 담보로…‘불법 추심’의 덫> 보도는 인터넷 계정을 통해 지인들을 알아내 협박하는 새로운 형태의 추심 실태를 폭로했다. 이 보도로 정부가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가는 등 문제 개선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보도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역보도 중에서는 지역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에 출품된 전남CBS의 <폐기물 ‘지하화’가 답인가>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폐기물 처리시설의 모범’으로 평가받는 하남 유니온파크의 지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실태를 다룬 이 기사는 겉만 포장된 사례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전에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아이템 발굴 노력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전문보도부문에서 수상한 <2022 국회의원 정치자금 공동취재>는 오마이뉴스와 뉴스타파, 경향신문이 공동으로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을 분석한 데이터저널리즘 기사였다. 우리나라 언론 지형에서 흔치 않은 3사의 공동 작업인 데다 각기 다른 성격의 세 매체가 온라인, 지면, 영상 등에서 개성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는 데 여러 심사위원의 의견이 일치했다. 분석 자료의 양이 방대하고 품이 많이 드는 빅데이터 분석 기사의 성격상 ‘연합 취재’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