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재착수 및 보도제작경위
① 단독취재( ), ② 단독기획( ● ), ③ 보도자료 심층기획( ), ④ 제보( ), ⑤ 기타( ) 중 선택 후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십시오.
*지난 6월 <이달의 기자상>에 제출한 바 있지만 관련된 정부의 후속조치와 보도가 있었기에 한국기자협회 문의 후 ‘재 출품’ 합니다.
40년 전 인구 75만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은 2만 여명에 달합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숨졌지만 대부분의 계엄군 지휘관들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숨진 계엄군 23명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상관의 오발사고로 숨진 1명을 제외하고 22명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광주에서 전사’.
계엄군들은 정말로 ‘영웅적 행동’을 했을까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5·18민주화운동 관련 단체와 광주지역 시민들은 정부에 ‘계엄군을 전사자로 인정하는 건 광주시민들을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라며 이를 바로잡아 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그동안 미적대며 이들의 전사자 결정을 유지해 왔습니다. 경향신문은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이 ‘전쟁영웅’으로 기록된 경위를 취재해 보기로 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당시 계엄군의 여러 자료를 통해 ‘전사’로 묻힌 군인들의 사망경위가 조작됐음을 보여주는 문건을 확인했습니다.
광주를 짓밟고 대통령에 오른 전두환씨가 1980년 12월31일 직접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들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한 기록도 찾아냈습니다. ‘조작된 영웅’들의 실태는 지난 5월 3회 기획으로 보도했습니다.
(1)40년 전 조작된 계엄군 사망 기록
먼저 5·18계엄군 사망자가 서울현충원에 묻힌 경위를 취재했습니다. 사망한 계엄군 23명의 소속부대와 신원 등을 확인하는 작업이 먼저 필요했습니다. 2019년 1월 계엄군의 국가유공자 지정 문제를 지적한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실을 접촉했습니다. 지난 3월 송 의원실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고 ‘계엄군 사망경위’가 기록된 문건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의원실이 보내 준 자료에는 없었습니다. 사망자 명단도 익명이어서 정확한 신원을 파악하기 힘들었습니다.
직접 찾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5·18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연구자들은 1988년 국회 광주청문회 당시 제출된 상당량의 군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이 문건을 확보했습니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공개가 가능한 역대 대통령들의 5·18관련 기록도 모두 받았습니다.
한 달 여 간 문서더미를 뒤진 끝에 계엄군 23명의 사망관련 자료들을 발견했습니다. 먼저 군이 5·18직후 계엄군 사망자의 신원과 사망원인을 1장으로 기록해 둔 표가 발견됐습니다. 사망자의 가족들에게 통보한 전사통지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숨진 군인의 최초 사망관련 조사기록인 ‘사망확인조서’를 처음으로 확인했습니다. 이들에게 1980년 6월20일 주어졌던 무공훈장의 ‘공적서’ 사본도 나왔습니다.
사망한 계엄군 소속부대의 ‘작전일지’ 등도 찾아서 확인해 봤습니다. 해당부대와 상급부대 등의 기록에는 명백하게 ‘계엄군간 오인사격’으로 기록된 사망자 10명의 사망확인조서는 ‘폭도들과 교전중 전사’로 적혀있었습니다.
군 기록과, 각 개인별 사망확인조서, 훈장 공적서는 ‘군간 오인사격 사망자’가 어떻게 ‘영웅’으로 조작됐는지를 한눈에 보여줬습니다.
40년 동안 가족이 광주시민들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을 계엄군 가족들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40년 전 전사통지서를 바탕으로 전북 고창의 한 마을에서 계엄군 사망자의 동생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거동이 힘든 노모를 모시며 살고 있었습니다.
형의 죽음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동생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실명보도를 허락한 그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습니다. 계엄군 사망자 가족에 대한 인터뷰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습니다.
(2)전쟁영웅 예우 해주고 “자료가 없다”는 軍
당시 정부가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들에게 훈장 이외에도 ‘상이기장’과 ‘참모총장 표창’을 줬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1980년 7월24일자 국방부의 ‘상이기장 수여 발령’ 문건이 남아있었습니다.
5·18직후인 1980년 6월29일 계엄군 33명에 육군참모총장 표창이 수여됐다는 내용이 부록으로 실린 1997년 재향군인회가 발간한 책자도 확인했습니다.
상이기장은 일반인들은 존재 자체를 잘 모르고 있지만 참전용사들에게는 ‘명예’를 위해 중요한 기장이었습니다. 상이기장은 그동안 6.25전쟁이나 베트남전쟁에 참전에 부상한 사람들에게 수여됐습니다. 2015년까지는 베트남전에 참여해 고엽제 피해를 입은 부상자들에게는 수여되지 않았을 정도로 심사가 까다롭습니다.
이런 상이기장이 광주 투입 계엄군 부상자 97명 모두에게 수여됐다는 것은 당시 신군부가 ‘5·18진압작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5·18유혈진압 한 달도 안 된 6월20일 신군부는 5·18진압공로로 69명에 훈장과 포장을 수여했습니다. 그리고 9일 뒤 또다시 육군참모총장 표창을 광주 투입 계엄군 33명에게 줬습니다.
훈격이 훨씬 높은 훈장 등은 이후 치탈됐지만 육군참모총장 표창은 그동안 수여 사실이 알려지지 않아 취소 등에 대한 아무런 논의가 없었습니다.
상이기장과 참모총장 표창 수여와 이후 처리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4월 국방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습니다. 육군본부는 “두 자료에 대한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정보부존재’ 통보를 해 왔습니다. 육군본부의 답변이후 국방부에 추가 질의를 했지만 국방부역시 “관련 자료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답변했습니다.
군의 태도는 1990년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도 군은 “군 위상” 등을 운운하며 5·18을 알리는 각종 홍보물의 문구 수정에까지 개입해 왔다는 사실을 옛 국군기무사령부 자료를 바탕으로 공개했습니다.
(3)전두환이 직접 준 5·18 훈장, 계엄군 지휘관 공개
취재 도중 1988년 국회 광주청문회 당시 국방부가 제출한 훈장 수여 문건을 확인했습니다. 이 문건은 1980년 3차례 수여된 각종 훈장에 관한 기록이었습니다.
해당 문건에 정리된 1980년 6월20일 수여된 훈장과 포장은 이미 알려진 내용이었습니다. 이때 계엄군에게 수여된 훈장은 5·18민주화운동특별법에 따라 2006년 치탈됐습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표창도 지난2018년 취소됐습니다.
하지만 1980년 12월31일 훈장 수여 기록은 그동안 조명 받지 못했습니다. 12월31일 훈장 수여 문건의 연번은 24∼45번까지 였습니다.
국방부 제출 문건에 적힌 훈장 수여자 22명의 명단을 1997년 재향군인회가 발간한 자료와 비교해 봤습니다. 22명 전체 명단이 일치했습니다. 두 문건이 같은 기록을 근거로 하고 있었던 겁니다. 재향군인회 자료에는 당시 훈장을 받은 52명 모두의 명단이 적혀있었습니다.
국방부 문건과 재향군인회 문건에 등장하는 훈장 수훈자 중에는 5·18당시 전투병과교육사령부와 20사단 지휘관, 공수부대 장교의 이름 8명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훈장을 수여한 사람은 5·18을 유혈진압하고 9월1일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한 전두환 대통령 이었습니다. 5·18학살의 책임자가 직접 계엄군들에게 훈장을 준 겁니다.
경향신문은 5·18당시 지휘관들의 신원도 공개했습니다. 5·18피해자들은 1994년 검찰에 5·18학살책임자로 대대장급 이상 지휘관 35명을 고발했습니다. 하지만 전두환, 노태우, 이희성, 정호용 등을 제외하고는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특히 광주에 직접 투입됐던 계엄군 지휘관들은 단 1명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처벌받지 않은 계엄군 지휘관들은 검찰 수사 당시 군의 주요 요직에 있었습니다. 검찰 수사에 불안감을 느낀 이들은 조직적으로 대응했다는 사실이 옛 군군기무사령부 자료를 통해 생생하게 확인됐습니다.
처벌받지 않은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했습니다. 경향신문은 5·18진압에 관여한 대대장급 이상 지휘관 모두의 이름과 군에 입직한 경로를 공개하기로 하고 ‘5·18계엄군 지휘 체계도’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아무런 반성 없이 장군으로 진급했거나 군에서 20년 이상 군에 복무했다는 이유만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현실을 두고만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① 기사에 등장하는 익명취재원의 상당성여하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상이기장’ 등의 예우를 설명해준 군 예비역 대령이 ‘익명’을 요구해 이 취재원만 익명으로 보도했습니다.
② 제보자와의 특별한 이해관계여하
제보자가 없습니다. 5·18연구자들에게 문건에 대한 의미와 해석을 질의했습니다.
③ 직접취재(바이라인), 현장취재(데이트라인)여하
모든 취재는 정보공개 신청과 현장취재를 기자가 직접 진행했습니다.
④ 기타 특이사항 여하
3.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선행보도 또는 타 보도에 관한 표절여부도 체크해 주시기 바랍니다)
5·18당시 사망한 계엄군이 ‘전사’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돼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이들 계엄군들이 어떠한 공적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국가유공자가 됐는지 명확한 내용과 경위가 확인된 적이 없습니다.
특히 최초의 사망확인조서가 공개된 적은 없었습니다. 조작된 사망확인조서가 드러나면서 ‘사망확인조서 조작→훈장 공적 기재→국가유공자 등록’ 으로 이어진 계엄군의 ‘영웅 만들기’의 실체가 확인됐습니다.
1980년 12월3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5·18계엄군 등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한 기록은 처음 알려진 문건입니다. 5월20일 국방부가 훈장 공적조서를 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주요 언론이 이를 보도했습니다.
연합뉴스 등 통신사의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JTBC는 뉴스룸에서 이를 다뤘고 YTN도 보도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지면에 반영했습니다. 한겨레신문과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세계일보, KBS, MBC, SBS 등도 온라인 주요 뉴스로 보도했습니다.
지난 12월22일 국방부는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를 개최해 5·18계엄군 전사자 22명의 사망구분을 ‘순직’으로 변경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국방부는 또 경향신문이 보도했던 조작된 사망확인조서등 개인별 사망 경위도 모두 바로잡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국방부 발포이후 연합뉴스, 한겨레신문, KBS, JTBC, MBC 등 주요언론이 이를 보도했습니다.
4. 사회에 끼친 영향
(후속적인 제도개선 등이 이루어진 사정이 있으면 이를 언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국방부 최현수 대변인은 지난해 5월21일 “1980년 12월31일 전두환이 직접 수여한 훈장의 공적서를 확인, 5·18연관성이 드러나면 치탈을 건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5·18계엄군 부상자에 수여된 상이기장에 대해서도 국방부는 “경향신문 보도 이후 관련 기록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취소’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육군참모총장 표창에 대해서는 “육군본부에서 검토할 사안”이라고 알려 왔습니다.
경향신문 취재 당시 “관련 기록이 없다”고 했던 국방부가 관련 기록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인한 겁니다.
국방부는 또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 계엄군 사망자의 ‘전사’를 ‘순직’으로 바꿀지 여부 등도 검토하겠다”고 경향신문에 답변했습니다.
국방부는 결국 지난해 12월22일 재심사를 통해 계엄군 전사자의 개인별 사망기록을 확인한 뒤 40년 만에 이들의 죽음을 바로 잡았습니다.
국방부는 재심사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국가기관에서 생산한 문서 13종을 토대로 개별 사망경위를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국방부가 확인했다는 문서는 사망확인조서, 전사망 확인증, 계엄군 전투상보, 상황일지, 보안사령부 속보철 등으로 대부분 경향신문이 이번 보도를 위해 확인했던 문건들이었습니다.
국방부는 또 사망확인조서에 적힌 ‘폭도들과 교전 중 사망’ 등의 기록에서 광주시민을 지칭했던 ‘폭도’ 라는 단어를 모두 삭제하기로 했습니다.
5.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언론윤리강령기준의 준수여부까지 포함시켜 자체평가해주시기 바랍니다)
해당보도는 지난해 2분기 경향신문 사내 ‘특종상’에 선정됐습니다.
언론윤리강령기준을 위반하지 않았습니다.
6. 기타 고려사항
(외부 지원여부, 보도당사자의 반론신청, 언론중재위원회에의 피신청사항이 있으면 이를 언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관련보도로 외부 지원이나 반론신청, 언론중재위 피신청된 적이 없습니다.
회차 심사평
제364회 전체 총평
이번 제364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9개 부문에서 모두 67편이 출품됐다. 이 중 21편이 두차례에 걸친 심사를 통과, 마지막 심사를 통해 9편이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취재보도 1부문에선 JTBC <은수미 캠프 성남시 채용비리 의혹>, MBC <재산 914억… 전봉민 의원과 ‘아빠 찬스’>, 한국일보 <방배동 모자의 비극>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성남시 의혹> 보도는 공채영역에 대한 채용비리 의혹을 두 달간 꼼꼼한 취재로 집중적으로 파헤쳐 심층보도 기사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광범위한 취재원에 대한 추적보도를 통해 낙하산 인사 등 일선 지자체의 고질적 병폐인 인사문제에 대한 투명성, 공정성 확보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도 의미가 컸다는 평이다. <아빠 찬스> 보도는 끈질긴 취재를 통해 뇌물제공으로 취재를 무마시키려는 부조리를 고발함으로써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점이 적극 어필됐다는 평이다. 정치인들의 재산형성과정에 대한 공정, 정의 이슈를 재차 공론화시킨 점도 호평을 이끌어냈다. <모자 비극> 보도는 소외계층의 그늘을 입체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제도적 맹점을 짚어내 비판과 대안 제시라는 언론 본연 기능을 성실히 수행했다는 점이 심사위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유사 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앞으로 사회적 안전망 확충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정부와 정치권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제보도부문에선 연합인포맥스의 <한진그룹, 아시아나항공 인수 추진… ‘시너지 기대’ 등> 보도가 수상작으로 뽑혔다.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항공업계 재편 과정을 비롯해 향후 시너지효과까지 폭넓고 입체적으로 다루는 한편 충실하고 다양한 후속보도가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에선 국민일보의 <극단으로 안내하는 알고리즘 해설서-상식이 2개인 나라 시리즈>와 서울신문 <당신이 잠든 사이, 달빛노동 리포트> 보도가 함께 수상했다. <알고리즘> 보도는 다양한 사회 분열과 갈등현상을 알고리즘을 통해 구체적으로 진단하고, 알고리즘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더 깊게 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폭과 깊이를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기획보도 특성을 반영한 수작으로 평가됐다. <달빛노동>은 야간노동자 등 사각지대에서 고강도 노동에 내몰리는 노동자들의 애환을 집중 조명해 따뜻한 사회적 시선을 유도한 점이 심사위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기획보도 방송부문 수상작인 KBS광주의 <농산물 가격의 비밀… 누가 돈을 버나?> 보도는 직접 경매과정에 참여한 참신한 기획과 깊이 있는 심층보도를 통해 선진유통체제 전환의 시급성을 일깨워 제도개선을 촉구했다는 점이 주목을 끌었다.
지역 취재보도부문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은 JTBC 부산총국 <소방관들의 눈물 ‘부조리 보고서’> 보도는 각종 재난 현장 최일선에서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있는 소방행정 일각의 적나라한 부조리를 고발, 소방관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 개선과 소방행정에 대한 전반적 개혁을 촉구했다는 점이 긍정 평가를 받았다.
지역 기획보도 방송부문 수상작인 JIBS제주방송 <제주 지하수의 경고 균형이 무너진다> 보도는 지하수 문제를 현장감 있게 심층 보도해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정책적 대안 마련을 적극 유도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