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재착수
② 단독기획(O)
지난 6월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가 부실하게 열릴 가능성이 크다는 내부 고발자의 제보를 받았습니다. 엑스포를 준비하는 공무원들이 보조금을 편취해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이고, 행사 계획도 부실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보자가 제공한 감사원 내부 문건과 행사 계획서는 제보 내용과 일치했습니다.
제보 내용만으로는 탐사보도를 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감사원 내부 문건을 단독 입수했지만, 보조금 편취 규모가 크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제보 내용은 함양이란 특정 지역에 한정돼 있었습니다.
단기 보도로 끝낼 수도 있었지만, 취재진은 관점을 바꿔봤습니다. 부실한 국제행사가 어떻게 막대한 세금을 받아 열릴 수 있는지 근본적인 원인에 주목한 겁니다. 간판만 화려할 뿐 지자체장들의 치적 쌓기나 지역 축제로 변질 된 국제행사는 비단 함양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국제행사 개최 구조를 살펴보니 그 뿌리에 기획재정부가 있었습니다. 10억 원이 넘는 국비가 들어가는 국제행사는 모두 기재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했고, 개최 후에는 기재부가 사후평가까지 맡고 있습니다. 국제행사에는 최소 10억 원에서, 많게는 수조 원의 세금이 투입되기 때문에 기재부가 직접 관리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동안 기재부의 국제행사 관리 문제를 주목한 언론사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부실한 국제행사를 개최하는 지자체에 관한 비판 기사는 간간이 있었지만, 기재부는 보지 못했습니다.
취재진은 기재부의 국제행사 관리 실태 전반을 점검하기로 했습니다. 제보자 도움 없이 사실상 원점에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2. 보도제작경위 -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십시오.
취재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기재부였습니다. 기재부는 국제행사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비공개했습니다. 어떤 행사를 심사했고, 심사 결과가 어땠는지 같은 기초 자료조차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취재진이 수차례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이마저도 기각했습니다. “정보를 하나씩 공개하기 시작하면 심사 업무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라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그동안 국제행사에 관리 실태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에는 기재부의 밀실 심사가 있었습니다.
취재진은 국회를 통해 국제행사에 대한 기초 자료부터 확보했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김영진 의원실을 통해 최근 5년간 기재부가 심사한 국제행사 목록을 입수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전국 지자체에 심사 자료(타당성 조사보고서), 사후평가 자료를 정보공개 청구했습니다. 심사에 활용하는 타당성 조사보고서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기재부의 의뢰를 받아 작성하는데 3~4개월에 걸쳐 경제성 평가, 정책적 평가를 하기에 행사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취재진은 각 지자체 담당 공무원을 설득해가면서 마침내 필요한 자료를 모두 모을 수 있었습니다. 수집된 자료는 나라살림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분석했습니다.
취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기재부 국제행사 심사에 참여한 전 현직 외부 심사위원 명단을 어렵게 입수했습니다. 국제행사심사위원장은 기재부 2차관, 내부 심사위원들은 전부 중앙부처 고위직 공무원인 상황에서 외부 심사위원들은 국제행사 심사 실태를 가장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설명한 유일한 증인이었습니다. 이들을 한명 한명 접촉해 기재부 국제행사 관리 실태를 묻고 들었습니다.
취재 결과 기재부가 국제행사 심사를 부실하게 해온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최근 5년간 기재부가 심사한 국제행사는 모두 35건으로 총사업비는 약 5조 5천억 원입니다. 이 중 승인된 행사는 32건, 승인율이 91.4%나 됐습니다. 승인율도 과도하게 높았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심사 과정이었습니다. 기재부 심사는 1회 대략 2시간 정도였는데 사후평가까지 포함해 최대 28개 안건을 몰아서 심사했습니다. 한 행사당 5분도 채 검토할 수 없는 여건인 겁니다. 심지어 서면 심사만으로 수백억 규모 행사를 통과시킨 사실이 취재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전직 외부심사위원 역시 “물리적으로 심사 시간이 부족하다”라고 털어놨습니다. 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이 현저히 부족한 행사가 이 중 9건이나 됐고, 지역 축제처럼 운영될 수 있다는 경고가 타당성 조사 보고서에 담겨 있는 행사도 있었지만 모두 기재부 승인을 통과했습니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부산시와 정부가 유치 중인 2030 부산 세계박람회 타당성 조사보고서도 입수했습니다. 총사업비는 4조 4천억 원이나 됐지만, 경제적 편익을 환산해보니 마이너스 9천3백억 원으로 나왔습니다. 부산시가 입장권 수입을 무려 1조 원으로 잡았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분석 결과에도 불구하고 기재부는 4조 원 규모의 행사를 다른 행사 안건과 함께 묶어 단시간 안에 심사한 뒤 승인을 내줬습니다. 부산세계박람회가 유치에 성공하더라도 지금까지도 3천6백억 원의 빚에 시달리는 2012 여수세계박람회의 전철을 밟을 수 있는 겁니다.
기재부의 국제행사 사후평가는 더 문제였습니다. 기재부는 국제행사가 끝나면 행사를 주최한 지자체로부터 정해진 양식에 따라 사후 결과를 보고받습니다. 만약 부실 운영이 적발되면 국고지원 배제 등 제재를 가할 권한도 기재부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자체들이 기재부에 제출한 사후 결과 보고서를 받아보니 내용이 엉망인 수준이었습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행사를 국내에서 열린 것으로 가정해 경제적 파급효과를 부풀리기도 했고, 2천억 원이 투입한 광주세계수영선수권 대회는 아예 사후 결과를 집계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지역의 결과 보고서도 살펴봤더니, 수지 분석 등 의무적인 보고 내용이 상당수 빠진 채 제출됐습니다. 하지만 기재부는 부실한 사후평가 보고를 받고도 솜방망이 제재에 그쳐왔습니다. 한 전직 외부 심사위원은 “사후평가는 요식행위”였다고 취재진에게 고백했습니다. 부실한 행사를 사후에라도 제재해야 추가적인 문제를 막을 수 있는데 이 기능이 마비돼 있던 겁니다.
기재부가 승인한 국제행사 현장도 직접 점검했습니다. 바로 취재의 시작점인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입니다. 개최일인 9월 10일을 포함해 여러 차례 행사 현장을 찾아 전시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국제산업박람회’라는 간판과 달리 실상은 ‘지역 축제’였습니다. 전시관에서 행사 주제와 무관한 제품을 판매했고 전시 내용도 현저히 부실했습니다. 국제행사임에도 영어로 된 설명조차 없었습니다. 대신 행사 기간 30일 동안 국내 유명 가수를 57명이나 초청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함양군 행사 운영과 관련한 중대한 문제점이 발견됐습니다. 함양군은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에 11개 나라 29개 기업이 참가했다고 밝혔습니다. 5개국 이상 참여라는 기재부 국제행사 기준을 준수한 것입니다. 하지만 참여하지 않은 해외 기업 제품이 버젓이 전시된 사실이 취재 결과 드러났습니다. 취재진이 주최 측이 제공한 해외 참가기업 명단을 토대로 일일이 해당 기업에 연락해 확인한 내용입니다. 이는 기재부 국제행사 기준을 어긴 중대한 의혹입니다.
3. 취재 및 보도 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방송 뉴스와 별개로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탐사취재물에 관심이 적은 젊은 세대에게 문제의식을 전하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여행 유튜버처럼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 현장 곳곳을 다니며 행사의 부실한 면모를 영상에 담았습니다. 기존 뉴스 보도와 다른 문법으로 온라인상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아울러 보도 과정에서 전직 국제행사 외부 심사위원 인터뷰는 익명과 함께 음성 대역을 사용했습니다. 전직 국제행사 외부심사 위원은 10여 명 남짓한 규모라 보도 과정에서 신분 노출 가능성이 커 부득이하게 음성 대역을 선택했습니다.
4.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기재부의 국제행사 관리 문제를 보도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KBS 보도 직후 감사원은 함양군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KBS가 먼저 보도했던 보조금 부당 집행을 포함해 함양군 공무원들이 산양삼 산업 육성을 위한 '6차 산업화지구 조성사업' 과정에서 벌인 다수의 문제 행위들이 발각됐습니다. 주요 매체들은 감사원의 함양군 감사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아울러 KBS 보도에 대한 경남도의회의 반응도 언론을 통해 보도됐습니다.
5. 사회에 끼친 영향
보도 직후 지역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경남도의회 농해양수산위원회는 KBS가 보도한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 부실 운영을 집중적으로 질타했습니다. 그러면서 내년 4월 개최 예정인 하동세계차엑스포 개최 연기에 대해 집행부에 원점에서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KBS 보도가 지역 의회의 감시 기능을 끌어낸 것입니다.
부산시도 부산세계박람회에 대한 새로운 사업 계획안에 KBS가 지적한 경제성 부족 문제를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1조 원 넘는 국비 투입 행사에 부실 운영 가능성을 낮출 계기를 보도를 통해 마련했습니다.
기재부는 사후평가 등 국제행사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KBS 보도를 계기로 그동안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기재부의 국제행사 현황이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언론과 사회가 국제행사 관리 문제를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기재부가 알게 된 만큼 향후 심사는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입니다.
6.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기재부에 대한 고발성 탐사보도는 모든 언론을 통틀어 찾아보기 힘듭니다. 기재부가 가진 권한에 비해 언론 감시는 현저히 부족합니다. 취재진은 기재부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장기간에 걸친 끈질긴 취재로 기재부 국제행사 부실 관리 문제를 고발했습니다. 특히 부실한 행사 개최부터 사전 심사, 사후평가까지 국제행사의 전 과정을 밀도 있게 취재했습니다.
KBS 보도를 통해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국제행사가 보완될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7. 기타 고려사항
심사자료 분석 과정에서 나라살림연구소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아울러 보도 직후 기재부는 KBS 보도에 대한 입장문을 냈습니다. 취재진은 기재부 입장문이 잘못된 내용에 근거해 작성됐다는 반박 기사(온라인)를 냈습니다. 반박 기사에 대해 기재부는 침묵했습니다. 반론 신청이나 언론중재위원회에의 피신청사항도 없습니다.
회차 심사평
제375회 전체 총평
제375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에서는 총 9개 부문 62편의 출품작 중 5건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이번 달에는 최종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인 작품이 다른 달에 비해 많지 않았다. 다만 일부 출품작은 신선한 접근 방식이나 좋은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취재보도1부문에서는 8편의 출품작 중 SBS의 <잇단 경찰 부실 대응 사건> 보도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과 신변보호 여성 피살 사건의 안타까운 내막을 전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경찰의 부실 대응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어 후속 대책까지 이끌어 낸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에서는 7편의 출품작 중 경향신문의 <절반의 한국> 보도가 최종 선정됐다. 그동안 여러 지역 언론이 끊임없이 보도해왔던 주제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참신하고 내용이 충실해서 좋았다는 평이 많았다. 사무직 일자리의 남방한계선, 강릉 지역 여고 졸업생 추적 보도 등을 통해 지방소멸이라는 익숙한 주제를 상투적으로 보이지 않게 다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총 13편이 출품돼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지역 취재보도부문에서는 별다른 이견 없이 강원도민일보의 <강원도교육청 예산 낭비 논란> 보도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예산이 헛되이 쓰이는 현장의 실사 보도는 증거를 찾기 쉽지 않은데, 공문을 통해 확인된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흔치 않은 보도라는 평을 받았다. 이런 예산 낭비가 강원도교육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 것이란 점에서 다른 언론의 후속 보도가 기다려진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역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에서는 광주일보의 <4년 전 그때처럼…학생노동자 올라탄 ‘꿈’사다리 흔들리지 않도록> 보도와 강원일보의 <감춰진 진실-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 보도 2편이 공동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광주일보의 보도는 지난해 10월 여수 특성화고 학생의 현장학습 사망사고가 발생한 이후 지속적으로 추적 보도를 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 강원일보의 <감춰진 진실> 보도는 그동안 납북귀환어부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는 있었으나, 대상자 및 가족들을 직접 만나고 총괄적인 데이터까지 조사해 담은 사실이 높은 점수를 얻었다.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 좋은 보도를 위해 헌신한 기자들의 열정이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으리라 믿는다. 새해에도 더 많은 활약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