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재착수 및 보도제작경위 ① 단독취재(O)
화재·재난 현장의 소방관 목숨을 담보로 미인증 고압 밸브가 결합돼 소방당국에 납품된 공기호흡기의 규격 및 검사 방법을 개선할 방안을 이끌어내고, 이해 관계가 얽힌 업체와 기관을 사정기관의 수사선상에 올린 '소방관용 공기호흡기 미인증 밸브 결합 납품 비리' 보도는 지난 2월 26일부터 40여일간 이어진 경인일보 단독보도입니다.
지난 2월 회사 선배로부터 A4 용지 1장과 연락처를 넘겨받았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공익 제보자는 "소방관용 공기호흡기를 독점 생산·납품해온 (주)산청이 법령을 어기고 인증 받지 않은 타업체로부터 고압가스밸브를 납품 받아 결합하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그는 박근혜정부 당시 담뱃세 인상에 따라 2015년 신설된 소방안전교부세의 거대한 지원 속에 공기호흡기 관납시장을 독점한 산청이 자체 생산 공정을 간소화하면서 본래 소방산업기술원과 한국가스안전공사로부터 받은 제품 검사와 다른 고압가스밸브를 결합해 있다는 뚜렷한 정황까지 설명했습니다.
곧장 가까운 소방서를 찾아갔습니다. 실린더(산소통)에 'SANCHEONG'이라고 쓰인 공기호흡기를 등에 짊어지고 화재 현장 일선을 누비는 현장 소방관들은 의아해 했습니다. 무지 큰 회사이고 소방 조직에 기여한 공로도 커 섣불리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년 경력의 베테랑 소방관이 한 마디 했습니다. "한 10년 전 쯤 일 거야. 호흡기 마스크에 자꾸 얼음이 껴서 숨이 안 쉬어진 적이 있었어." 심장이 뛰었습니다. 누구보다 좋은 장비를 들거나 메고 있었으면 하는 재난 최일선의 소방관들이 단 하나의 업체가 만드는 공기호흡기를 사용하다 불편을 겪고 있었다는 생생한 증언이었습니다.
과거 타매체 보도를 살펴보니 공기호흡기 실린더에서 하얀 가루가 나온 적이 있어 국정감사에서도 큰 화제가 됐었다는 것까지 알게 됐습니다. 고압가스안전관리법과 소방청 고시 공기호흡기 형식승인 및 제품검사의 기술기준 등 관련 법령을 공부하고 전문가들의 고견을 여쭙고 기본 개념을 정리한 뒤 자료를 한 다발 차에 싣고 용인 처인구 산청 본사로 달려갔습니다.
수차례 방문·유선 취재 요청에도 산청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방산업체라는 이유로 출입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경비원의 얼굴만 보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사 고객 주차장에서 한국가스안전공사 차량을 발견했고,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사건기자의 '촉'으로 인지했습니다.
2014년 하반기부터 미인증 고압가스밸브가 결합돼 소방관들의 등에 지워졌습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산출해보니 2015~2018년 전국 18개 시·도소방본부와 중앙소방학교, 중앙구조본부 등 소방당국에 납품된 공기호흡기의 수만 족히 22만 4천여대(추가 취재를 통해 확인된 세트 1만2천300여개, 실린더 5만200여개, 22만 4천여대는 공기호흡기를 구성하는 면체, 등지게, 실린더 개별 수의 합)로 집계됐습니다.
그때부터 사이렌 소리가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혹여 300bar(통상 기압은 1기압으로 1bar로 표기. 300bar는 대기압의 300배)로 채워져 있는 소방관들의 숨 주머니가 미인증 밸브 탓에 터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긴 것입니다. 관계당국은 공기호흡기가 터져 인명 사고가 났다는 보고는 현재까지 없었다는 '무사안일주의'를 내세우며 한편으로는 진상 규명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소방관들의 안전과 직결된 한시가 급한 문제였기 때문에 편집국 회의 끝에 첫 보도 후 일어난 사안에 대해 지속 추가 보도하기로 했습니다.
경인일보는 지난 2월 26일 <전국 소방관 산소통에 '미인증 밸브' 결합·납품>이라는 단독보도를 시작으로 3월 11일까지 보름여 소방관용 공기호흡기 독점 업체의 미인증 밸브 의혹, K5 방독면 개발사업에 자사 기존 특허 끼워넣기와 판박이인 공기호흡기 표준 규격에 끼워 넣기 등을 연속보도했습니다.
지속적인 보도가 이뤄지자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산청과 산청에 미인증 밸브를 납품한 부산 소재 업체를 수사기관에 업무방해와 고압가스안전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고 관할 지자체에 행정처분을 의뢰했습니다.
소방청과 소방산업기술원 등 관련 공공기관은 소방청 고시 '공기호흡기의 형식승인 및 제품검사의 기술기준'과 시험세칙 개정안을 검토하는 등 제도 정비에 나서는 한편 제조업체 등 이해 관계자 소집 회의를 개최해 후속대책을 논의했습니다.
2.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공기호흡기 독점 업체의 관납 비리 보도에 앞서 관련 진술과 근거 자료만으로도 첫 보도를 하기에 충분했지만,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를 위해서는 당사자인 산청의 공식적인 입장과 자료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산청은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취재에 응하지 않았고, 한 두마디 던져준 것은 "경쟁업체의 음해"라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 경쟁업체의 음해인지 알아야 했습니다. 경쟁업체들과 구매처인 시·도소방본부에 확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소방차 사이렌 소리만 들리면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빠지는 제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한 취재 작업이었습니다.
굳은 결심과 각오를 반복하며 파고들자 의외의 제보가 쏟아져나왔습니다. 미인증 밸브 결합 의혹 뿐 아니라 산청의 주도로 제정된 시험세칙에 들어있는 1개 조항 탓에 시·도 본부 구매 담당 소방공무원들이 안전·편의 기술이 적용된 공기호흡기 구성품을 구입해 일선 현장에 보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입을 굳게 닫은 취재처 대신 지주회사 격인 한글과 컴퓨터에 취재 창구를 확보했습니다. 이후 취재는 급물살을 탔습니다. 아울러 승인번호가 같은 구성품끼리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세칙 탓에 사이렌(위급상황을 알리는)과 전방표시장치(HUD), 급속충전기가 달린 차세대 공기호흡기 구성품을 구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점도 알게 됐습니다.
소방청 고시로 명시된 공기호흡기 규격에는 소방관용에 한해 부착돼있어야 한다는 장치였음에도 일선 소방 구매 담당자들은 세칙 탓에 구매를 하지 못하고 기존 독점 업체의 기존 공기호흡기 구성품을 구입해 보급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파악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전면적인 고발성 기사는 어쩔 수 없는 '장기판'에서 단순히 행위자였던 소방 구매 담당 공무원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더 깊숙이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5번의 고발성 보도와 IT 회사 한글과컴퓨터의 산청 인수에 대한 해설 기사에 사설까지 지면에 싣고 나자 관련 업체의 제보가 쏟아졌습니다. 공기호흡기 의혹에 대한 소방청의 후속조처로 고시 개정 예고 보도, 미인증 밸브 관련 경찰 수사 착수에 대한 보도를 했습니다. 이후엔 규격에 맞춰 안전·편의 장치를 다 장착한 공기호흡기를 만들었지만, 관계당국이 규제 완화로 독점 업체의 편의를 위한 '물타기'를 하고 있다는 경쟁업체의 제보까지 이어졌습니다.
현재 경찰은 한국가스안전공사의 고발장을 접수 받아 수사를 진행 중입니다. 토지 관할 지자체인 용인시와 부산 강서구는 주식회사 산청과 미인증 밸브 납품 업체에 대한 행정처분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소방청 고시 및 소방산업기술원의 제품 검사 세칙 개정까지는 6개월가량 소요될 전망입니다.
3.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공기호흡기는 소방관용과 다중이용업소 비치용으로 나뉘는데, 사용되는 공기호흡기는 대부분 소방관용이기 때문에 소방방재신문 등 전문지와 산업 분야를 다루는 경제지에서 (주)산청의 공기호흡기 관련 보도를 지난 2005년부터 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2016년 국정감사에서 도마 위에 올랐던 산청 납품 공기호흡기 실린더(미국 L사) 이물질 논란 등이 있었지만, 미인증 밸브 결합 관련 안전성 문제는 경인일보의 심층 취재로 현대 역사에 기록됐습니다.
이번 기사는 경인일보의 단독·연속보도였음에도 광주·전남 지방신문인 남도일보의 지역 소방재난본부의 미인증 밸브 산소통 사용 보도에 이어 소방방재신문의 '공기호흡기 표준화된 규격 적용 불가능한가' 관련 보도, 한국가스신문의 '직접 생산한 것처럼 속여 검사받다 들통'과 '[사설] 생산단계검사 미비점 보완해야' 등 전문지가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4. 사회에 끼친 영향
소방청은 몇차례 보도가 이어지자 취재에 협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다 고시 개정안을 만드는 등 다각도로 소방관용 공기호흡기의 규격 개선에 나서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현행 비치용도에 한해 제외 가능한 장치(전방표시장치, 급속충전장치, 사이렌, 공기호흡기)를 비치용도 이외(소방관용)에도 선택해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자는 안 등이 골자입니다.
취재 착수와 보도 과정에서 수십년간 업계를 선도·견인한 유일무이한 업체가 짜놓은 판을 소방당국은 그대로 차용할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을 직시하게 됐습니다.
시장경제 체제에 어긋나는 승자 독식의 법칙으로 좌우되는 판도를 바꿔 소방관들이 사용하는 공기호흡기가 관련 기관의 보다 촘촘한 제품 검사 속에 이해 관계 업체들의 경쟁이 이뤄진다면 더 저렴한 값에 더 좋은 숨주머니, 소방관들의 기도 보호 장비를 구할 수 있겠다는 양의 되먹임을 이뤄내기 위한 여정이었습니다.
다소 아쉬운 점은 미국방화협회의 공기호흡기 규격 기준에 명시된 안전·편의 장치가 빠지게 됐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소방당국을 상대로 한 지속적인 취재를 통해 일선 소방관들이 최우선 순위에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내고 싶습니다.
5.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소방관용 공기호흡기 취재는 아주 어렵고 힘든 부분에 속한다고 판단됩니다. 이번 강원 고성 산불 당시에도 혹여 공기호흡기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하고 마음을 졸였습니다. 그만큼 소방관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 개인생명장비이기 때문입니다.
자료수집 자체가 쉽지 않아 보도하기까지 수차례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총 12편의 연속보도가 이뤄졌고, 업계에 만연한 관납 비리가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소방관용 공기호흡기 규격 및 제품 검사 프로세스 개선 검토를 이끌어내 현장 소방관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울림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실 취재 중간 중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둥 기자에 대한 회유와 협박으로 기사를 막으려는 시도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경인일보 기자들은 소방관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공정하게 보도하기로 결정했고,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인내심을 갖고 어려운 취재와 보도를 이어나간 것은 편집국 전체에 귀감이 됐습니다.
6. 기타 고려사항
지난 2월 26일 '전국 소방관 산소통에 '미인증 밸브' 결합·납품' 첫 보도 이후 지난 4월 5일 '소방관용 공기호흡기 관납비리 새판짜야' 보도까지 외부의 지원을 받거나, 반론보도 요청, 언론중재위원회의 피 신청사항이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회차 심사평
제343회 전체 총평
제343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에는 현장 기자들의 땀과 노력,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긴 총 10개 부문 66편의 작품이 출품됐다. 엄정한 심사를 거쳐 6편이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이번 달 심사에서는 취재보도2부문에서 JTBC, 한국일보, 서울신문 출품작 3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취재보도2부문 신설 후 최다 작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성과를 냈다.
JTBC의 ‘포항 지열발전소 지진 유발 가능성’은 지진을 유발한 원인을 최초로 보도했고, 2017년 11월15일 포항 지진 발생 이후 1년이 넘는 기간 꾸준히 여러 문제점을 짚었으며, 지난 3월 정부 조사연구단의 발표로 진실로 확인된 보도였다는 점에서 수상작 선정에 이견이 없었다. 지진 발생원인에 대한 초기 보도 이후 끈질기게 관련 내용을 보도하며 지진 발생원인과 지열발전소 사업 추진과정 전반의 문제점을 추적해 왔다는 점도 호평을 받았다. 지진 발생 직후 지열발전소 때문에 지진이 발생했을 수 있다고 지목한 관련 전문가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통해 문제를 본격 제기한 이후 후속 보도를 이어가며 관련 보도를 주도해왔다는 점에서 의제설정과 추적보도의 힘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국일보의 ‘인도네시아 임금체불 한인기업 파문’ 보도는 현지 특파원의 발품과 문제의식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해당 보도를 계기로 이 문제가 불거졌고, 결국 체불임금 지급이 합의됐다. 자칫 방치했을 경우 한국의 이미지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 긍정적인 방향에서 해결되도록 이끈 계기가 됐다.
서울신문의 ‘한국인 2명 스위스서 안락사’ 관련 보도는 금기시 되어 왔던 ‘죽음’의 문제를 수면 위로, 공론화의 장에 끌어 올린 의미가 주목받았다. 현지 르포, 인터뷰, 설문조사, 전문가 의견 등으로 기획을 탄탄히 구성했고, 보도의 반향도 컸다.
취재보도1부문에선 한겨레신문의 ‘김성태 국회의원 딸 등 KT 특혜 채용 의혹’ 보도가 수상했다. 아직 최종 수사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관련 의혹에 대해 끈질기고 다차원적으로 취재함으로써 저널리즘 정신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가 나왔다.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에선 자영업 현안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한겨레신문의 ‘자영업 약탈자들’ 보도가 선정됐다. 기자가 직접 위장취업해 자영업자에 기생해 번성해 가는 ‘창업컨설팅’의 실체를 파헤치는 등 현장 기자의 취재 노력이 특히 돋보였다.
지역 기획보도 방송부문에 출품된 부산MBC의 ‘‘1급 발암물질’ 소방관서…위기의 소방관’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발암물질에 소방대원들이 심각하게 노출될 수 있는 소방관서의 문제를 파헤치고, 소방차 디젤 배출가스가 많이 차는 차고지와 소방관서의 구조적 문제를 이슈화함으로써, 소방관의 건강권을 위협할 우려가 높은 소방관서에 대한 실질적 개선책을 이끈 수작으로 평가됐다.
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