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4편
대법원 한진중공업 통상임금 ‘엉터리 판결’ 서울…
대법원 한진중공업 통상임금 ‘엉터리 판결’
서울경제신문 윤경환 기자
일반인들에게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일종의 ‘성역’이다. 1·2심과 달리 항소·상고 절차도 없는 데다 판결문 열람도 제한돼 있어 설사 결론에 잘못이 있다 해도 이를 되돌릴 방법은 거의 없다. 수조원의 자금 흐름부터 사람의 생사까지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지 우리는 전혀 모른다. 1년 남짓 대법원을 출입한 기자 역시 늘 높은 벽을 마주하는 기분으로 취재를 한다. 그저 법률의 대가인 대법관의 권위에 기대 결론을 신뢰해야만 하는 구조다. 지금의 법원은 이를 ‘사법 신뢰’라고 부른다.
지난 5월 초. 5월3일 오후 12시로 엠바고가 걸린 채 배포된 대법원의 한진중공업 통상임금 판결문을 수차례 읽어 내리면서 이를 어떻게 보도해야 할지 고민부터 들었다. 단순 오탈자 몇 개였다면 어느 정도 수용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 눈에 띈 숱한 오류들은 단순 오기가 아니었다. 판결의 결론까지 흔들 만한 황당한 실수들의 연속이었다.
의심은 한진중공업의 연도별 재무제표들을 일일이 대조하면서 확신으로 굳어졌다. 해당 판결은 언론 관심이 높았던 데다 상고심에서만 3년 가까이 심리한 사건이다. 이런 판결문에도 각종 거짓 수치와 무성의한 논리가 가득한데 다른 대법원 판결문이라고 온전할까 싶었다. 한진중공업 판결문은 본지 지적으로 간신히 대법관 직권 경정을 거쳤다. 그러나 이름 없는 약자들과 관련됐고, 알려지지 않은 사건일수록 아직도 대법원 성벽 안에서 무성의·엉터리 결론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번 보도가 대법원의 권위주의적·폐쇄주의적 판결 관행에 작은 경종을 울렸길 바란다. 최근 유독 자주 언급되는 ‘사법 신뢰’는 사법부 스스로 민주사회의 감시를 적극 받아들여야만 바로 세워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끝으로 보고하는 사람조차 믿기 어려웠던 판결 오류 사실을 기사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법조팀장과 데스크 전체에게 감사를 표한다.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한겨레신문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한겨레신문 권지담 기자
지난 가을부터 올해 여름까지, ‘대한민국 요양보고서’가 완성되기까지 8개월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총 8회의 ‘대한민국 요양보고서’를 기획하고 보도하면서 2008년에 시작된 ‘장기요양보험 제도’가 11년째 멈춰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인의 수가 늘면서 장기요양 기관의 수는 2만개 이상 늘었지만, 돌봄 서비스의 질은 그대로였습니다.
직접 뛰어든 노인 돌봄 현장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요양보호사들은 식사와 휴식 공간이 제공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노인들을 돌봤고, 요양보호사들의 낮은 처우는 노인의 돌봄권을 보장하기 어려웠습니다. 요양원은 노인과 요양보호사의 존엄권을 지킬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요양보호사의 가혹한 노동에 어르신 인권도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한 이유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양기관들은 부정 수급과 보조금 착복 등으로 돈을 가로챘습니다. 지난해 한 해만 836곳에서 94억 원을 착복했다는 내용의 현지 조사 결과도 드러났습니다. 요양보호사들이 최저 시급을 받고 고된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동안 우리가 낸 장기요양보험은 줄줄 새고 있었습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현장 취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간접 체험이나 인터뷰로는 볼 수 없었던 민낯을 볼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한겨레에서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24시팀(사건팀)에 소속된 제가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이 기획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24시 팀장과 팀원들의 배려 덕분입니다. 그렇기에 이 기획은 24시팀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돌봄도 물과 공기만큼 우리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돌봄을 깔보다가는 언젠가 돌봄 결핍의 위기가 오고 나서야 모두 후회할지 모른다.” 미국 데보라 스톤의 말처럼 ‘대한민국 요양보고서’가 ‘노인 돌봄’의 문제를 우리 삶의 중요한 의제로 꺼내는 역할을 했기를 바랍니다.
지옥고 아래 쪽방 한국일보
지옥고 아래 쪽방
한국일보 이혜미 기자
‘신 계급사회’를 다룬 영화 ‘기생충’이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그 배경에는 극단적인 양극화가 전 세계 보편 현상이라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영화가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로 통칭한 주거빈곤 중 ‘지하’에 주목했다면, 현실에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최저 빈곤이 도심에 있습니다. 바로 ‘쪽방’입니다.
기획은 지난해 11월 쪽방에서 만난 한 주민이 “이 골목 쪽방 건물 여러 채가 모두 우리 집주인의 소유이며, 월세를 모아 인근에 빌딩도 세웠다”며 무심코 건넨 말에서 시작됐습니다. 얼핏 봐도 쪽방은 사람에게 세를 놓을 만한 공간이 안 되었습니다. 방문을 달아주지 않아 겨울철에 비닐로 냉기를 막았다는 이야기, 화장실이 없어 인근 공원으로 기어가 용변을 본다는 이야기는 귀를 의심하게 했습니다. 사람에게서 시작한 보도는, 현장에서 건진 증언과 사금을 캐듯 뒤진 문서에서 탄생했습니다. 서울시 내부자료의 전체 쪽방 주소지를 손에 쥐고 등기가 되어 있는 건물의 등기부 등본을 모두 떼봤지만, 글자로만 존재하는 270명 실소유주 이름은 아무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5개월간 쪽방촌을 들락거리고, 중간 관리인과 주민, 마을 통장, 쪽방 봉사자 등을 만나며 실소유주의 정보와 가족관계 등 관련한 증언을 데이터로 확인하는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드러난 ‘빈곤 비즈니스’의 면면은, 고장 나고 폭주하는 신자유주의 그 자체였습니다. 쪽방 주민들은 법에 명시된 ‘주거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난달 서울 내 전체 쪽방촌에 한국일보 보도를 편집한 인쇄물이 4000부 배포됐습니다. 주민들은 정책 변화를 요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습니다. 적어도 노숙의 경계에 놓인 이들에게 비인권적 공간을 임대하며 쌓은 부를, 가진 자들이 부끄럽게 여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준비 기간 내내 응원과 격려를 보태 주셨던 동료 선후배들과 기획을 아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쪽방 주민들이 조금 더 안전한 공간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내쫓기고 외면되고’… 12살이 기댈 곳은 없었다…
‘내쫓기고 외면되고’… 12살이 기댈 곳은 없었다
광주MBC 우종훈 기자
작은 시신이 물 위로 떠 올랐다. 시신에는 목이 졸린 흔적이 있었는데, 이는 엄마의 재혼한 남편이 낸 것이었다. 엄마는 딸의 숨이 넘어가는 현장에 있었다. 아이는 숨지기 보름 전 경찰에 의붓아빠로부터 성추행당했다고 신고했다. 이 요청은 친부에 의해 철회됐다. 여기까지가 취재를 시작하기 전 드러난 사실이었다.
취재진은 친부가 신변 보호를 철회했다는 데 의문이 들었다. 친부가 철회했다 해서 받아들인 경찰도 이해되지 않았다. 취재는 ‘왜 죽였나’, ‘어떻게 죽였나’보다 ‘왜 죽을 수밖에 없었나’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이었다.
취재 폭을 넓혀야 했다. 경찰과 아이, 유가족뿐만 아니라 검찰, 법원,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촉했다. 각 기관은 ‘수사 중인 사항’, ‘신상 정보를 알릴 수 없는 상황’이라며 취재 요청을 거부했다. 방법은 각 기관에서 모은 파편화 된 정보를 취합해 시간에 따라 배열하고, 어긋나는 부분은 재차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결국, 2016년 ‘친부에게 학대를 당했다’는 최초 신고부터 숨진 2019년 4월까지 아이의 행적이 꿰어졌다. 과거 경찰은 아이를 학대한 혐의로 입건된 친부를 검찰에 넘겼고, 법원은 그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다. 또 아이가 생전 의붓아빠와 친부에게 학대를 당했다며 다섯 차례나 신고했던 것, 아동보호기관을 전전하며 쫓겨나기도 했던 것, 법원과 검찰이 이들에게 솜방망이 처벌만 내렸다는 것이 확인됐다.
모두가 아이의 죽음을 슬퍼했다. 하지만 아이는 살아서 모두에게 외면받았다. 수상소감을 작성하는 이 날 의붓아빠와 친모에 대한 첫 재판이 진행됐다. 엄벌이 내려져야 한다. 또 거기서 그치면 안 된다. 아이의 외침을 듣지 못했던 경찰, 아동보호기관, 법원, 검찰 등 사회 안전망이 보완돼야 한다. 사건 중계가 아닌 아이 죽음이 던지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동기 남궁욱 기자, 이정현 선배와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묻고 답하며 취재했다. 만 1년이 다 돼가는 기자들의 미숙한 취재에 도움을 준 보도국 식구들에게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