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5편
권경애 변호사 재판 불출석에 학폭 소송 패소 한겨…
권경애 변호사 재판 불출석에 학폭 소송 패소
한겨레신문 곽진산 기자
유족에게 법원은 그저 승리를 위한 결투장이 아니었습니다. 혹여나 지더라도 따져보지 못한 진실이 있을까. 억울하게 풀지 못한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을까. 그러나 그 모든 기록을 판결문이란 공개적인 문서에 적으려고 했던 유족의 8년간 노력은 담당 변호사가 재판에 무려 3번이나 나가지 않아 물거품이 됐습니다. 안타깝게도 다시 되돌릴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것이 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법 앞의 평등한 정의’란 말도 대리인의 불성실 앞에선 그저 공허한 문구에 불과했습니다.
변호사는 왜 세 번이나 주어진 기회를 저버렸을까요. 보도에선 이 질문의 대답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담당 변호사인 권경애씨가 취재가 시작된 이후 입을 닫았습니다. 그가 왜 재판에 나가지 않았는지는 본인만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서 그의 닫힌 입이 열릴지 모르겠습니다. 유족의 지난한 싸움이 또 시작된 셈입니다. 이 재판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 다음 질문을 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자식의 억울한 죽음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모두가 8년이란 긴 시간을 써야만 하는 건지, 변호사가 재판에 불출석하면 허망하게 끝나는 재판 결과를 법이란 이름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건지 말입니다. 이 질문의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보도에서 알린 것은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란 겨자씨만큼의 사실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 많은 시민이 분노하고 공감해주었습니다. 시민들의 관심이 아니었다면 이 보도도 그 의미를 잃었을 것입니다. 또 여러 언론사가 이 소식을 아낌없이 보도해준 덕분에 더 많은 사람에게 이 소식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돈봉투 전당대회 녹취파일 JTBC
돈봉투 전당대회 녹취파일
JTBC 오승렬 기자
관련자들은 ‘돈 봉투’를 ‘거마비’라고 불렀습니다. 영호남 지역구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올라왔던 걸까요. 아니면 글자 그대로 말이라도 빌려 타고 왔던 걸까요. 뭐든 적절치 않은 금액입니다. 그런가 하면 원외 본부장들은 의원님들보다 한참이나 얇은 봉투를 받아갔습니다. 여의도의 금배지는 기름값도, 택시비도 6배쯤 올려버리는 걸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마케팅은 네이밍이 반이라고 합니다. ‘돈 봉투’를 ‘거마비’라고 부르면서 의원님들의 부담은 크게 줄었던 것 같습니다. 20명은 ‘부주의한 소수’나 ‘일탈’로 볼 수 없는 수입니다. 무려 20명의 현역 국회의원들이 주저 없이 봉투를 받아 간 데에는 뛰어난 네이밍이 큰 몫을 했을 겁니다. 혹시 “고생 많아 보이네. 뇌물 좀 만들어뒀으니 갈 때 챙겨가”라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거마비보다는 정확한 표현이니 더 올바른 반응이 나오진 않았을까요.
“3김시대 말고는 그런 거 없다.” 취재 당시 관련자로부터 들은 답변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3김시대를 30년쯤 훌쩍 넘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아주 비상식적인 현실입니다. 이 사태는 비참한 윤리의식과 부정부패 외에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너무 투박하고 촌스러워서 오히려 신선하기까지 한 부정부패였습니다.
‘고무신 선거’가 60년대의 일입니다. ‘옛날엔 우리 수준이 이랬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우리가 이 과거를 비웃을 수 있었던 건, 스스로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저런 웃기는 짓 하지 말자고 우리는 그 오랜 기간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치열하게 싸웠고, 대학가에서 싸웠고, 직장에서 싸웠고, 삶의 여기저기서 각자의 방식으로 싸워 왔습니다. 그간 부유해진 생활수준과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우리는 그때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열심히 하다 뒤돌아보면 그래도 우리가 조금씩 더 나아져 있을 거라 믿습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주가조작 JTBC
대한민국을 뒤흔든 주가조작
JTBC 이호진 기자
처음 제보를 들었을 때는 이런 대규모 경제범죄가 수년 간 누구에게도 적발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1조가 넘는 거래 규모에 온갖 사회 지도층, 연예인들이 연관돼 있고, 이들이 다단계 방식으로 또 다시 다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직원 100여명을 고용해 실제 기업들을 사들이거나 세워서 배분하는 수수료 정산방식까지.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기엔 믿기 어려웠습니다.
취재팀은 제보를 받은 뒤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관련자들을 접촉해 파편적인 정보들을 모았습니다. ‘수수료 정산’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업체 명단을 받은 뒤 관련자 명의로 설립된 법인들을 새로 파악해 윤곽을 그렸습니다. 현장 취재로 골프, 드라마제작업체, 승마장 등이 제대로 된 영업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취재진은 주가조작 세력을 운영하는 라덕연 대표의 가족 명의로 운영되며 고객들의 카드를 모아 수수료를 정산하는 음식점에 손님으로 들어가 카드깡하는 모습을 포착하기도 했습니다. 또 라덕연 대표가 거액 투자자, 이른바 ‘큰손’들과 회의하는 모습도 확보했습니다. 취재팀은 확신을 얻었습니다. 문제는 보도 이후 금융당국·수사당국 조사 전 이들이 증거들을 은폐하고 해외로 도피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때문에 취재진은 금융위·검찰과 취재 내용을 공유하며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던 4월24일 갑작스레 관련 종목들이 폭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이들이 관리하던 종목들이었습니다. 취재팀은 보도를 시작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보도 시작 이후 취재팀은 며칠이 걸리든 반복해서 납득할만한 해명과 반론을 요구했고, 이를 바탕으로 기사를 쓰려 노력했습니다. 더 취재에 힘쓰겠습니다.
출처: 한국기자협회(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53787)
표류-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 동아일보
표류-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
동아일보 조건희 기자
아들의 심장이 점점 느리게 뛰는데 구급차는 멈춰 서 있습니다. 남편의 부러진 다리가 썩어 가는데 받아주는 병원이 없습니다.
지독한 악몽 같지만, 지난해 이준규군(14)의 어머니와 박종열씨(40)의 아내가 직접 겪은 일입니다. 지금도 누군가 겪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의 <표류-생사의 경계를 떠돌다> 시리즈는 이들처럼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떠돈 응급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히어로콘텐츠팀은 동아일보가 2020년 창간 100주년을 맞아 출범했습니다. 취재 기간과 주제, 형식에 제한을 두지 않고 ‘참신한 콘텐츠’를 독자에게 제공하는 게 목표입니다. 반면 ‘표류’는 의료 현장에서 매우 흔한, 독자에게는 ‘자주 본 이야기’입니다. 정부의 핵심 대책들도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언뜻 히어로콘텐츠와 ‘표류’는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취재팀은 오히려 그렇기에 이 주제를 다룰 가치가 있다고 봤습니다. 같은 대책이 반복되는 원인을 파고드는 건 심층 취재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많은 독자가 ‘나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실감하려면 ‘표류’의 현장을 생생하게, 참신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결과가 3건의 인터랙티브 기사와 5회의 지면 시리즈입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표류’ 환자 26명의 사례를 취재했습니다. 그중 두 분이 세상을 떠났고, 살아남은 이들 중 대다수도 ‘표류’의 시간이 몸과 마음에 남긴 상처로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큰 고통 속에서도 취재에 응해준 이유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취재팀은 그 바람이 이뤄질 때까지 후속 보도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떠난 분에게는 명복을, 생존자에게는 평안과 용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숱한 경고에도 방치된 안전...고 황예서 양 死因은 '행…
숱한 경고에도 방치된 안전...고 황예서 양 死因은 '행정실패'
국제신문 최혁규 기자
“아직도 변한 게 없네요.” 고(故) 황예서양 아버지는 지난 5월23일 영도구청장과 만난 후 기자에게 이같이 전했다. 4월28일 청동초 참변으로 딸을 잃고, 다음날인 29일 빈소에서 본 후 구청장과 두 번째 만남이었다.
첫 번째 만남은 유족의 화를 돋우었다. 사고 다음 날 예서의 빈소를 찾은 영도구청장은 사고 원인과 재발대책을 묻는 예서양 아버지의 애끊는 물음에 “어쩌다 보니 사고가 발생했다”며 책임을 부정했다. 동석한 국회의원과 “트레일러 문이 내리막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열려 있었더라면 사고가 없었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는 이야기에 갑자기 끼어들어 “차량은 경사로에서 수평을 맞출 수 있다”며 차라리 안 하느니만도 못한 대화를 이어갔다. 주저 끝에 이뤄진 두 번째 만남은 조금 달랐을까. 예서 아버지가 원한 건 단 하나였다. 구청의 미비한 행정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두 번째 만남에서도 사과다운 사과는 없었다. 영도구 관계자는 본인들은 사고 전에도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지난 28일 사고에서 영도구의 책임을 인정하는지” 물어보는 예서 아버지의 물음에 영도구 관계자는 “지금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포괄적인 책임’ 뿐”이라고 사무적으로 답했다. 사과하겠다고 찾아온 자리에서 ‘포괄적 책임’을 운운하며 사실상 면피에만 급급했던 셈이다.
예서 사고로 스쿨존에서 보행자 안전을 지키기 위한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예서 가족들에겐 무의미한 변화일지도 모른다. 가족들 곁엔 더 이상 예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제2의 예서가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행정이 내놓는 사고재발방지책을 환영하고 있다. 남은 건 단 하나다. 가족들 곁에 있어야 할 예서가 왜 없는 건지 원인을 밝히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그것만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딸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을 보지 못한 가족들을 위로하는 행정의 마지막 도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