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7편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연합뉴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연합뉴스 양수연 기자
“투표용지가 다 떨어져서 투표를 못하고 있다는데, 가서 확인해 보자.” 헐레벌떡 달려간 그곳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를 할 수 없게 된 데 항의하는 목소리로 한껏 달아오른 현장을 마주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전에도 앞으로도 내가 이런 현장을 취재하는 일은 없겠지.’ 매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날의 현장’이었습니다. 역사에 기록될 장면 속에 들어와 있다는 마음으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바삐 담아 보도했습니다.
온라인에 자신이 경험한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이 시대에는 뉴스 기사보다도 SNS가 세상을 접하는 창이라고들 합니다. 제 취재 역시 한 사람이 보고 들은 많은 것들을 모아 올려놓은 것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 이름 뒤에는 ‘기자’라는 신분이 붙습니다. 이 혼란스러운 사태의 진실을 반드시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실립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취재하며 이를 더욱 절감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사태가 앞으로 무엇이 될지 알지 못했기에, 눈앞에 펼쳐진 현장에 충실해야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기자의 양심을 걸고 현장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겠다는 우직한 진심 하나가 그날 취재를 이끈 원동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 함께 고생해서 받은 상입니다. 밤낮없이 현장을 지켰던 사건팀 동기들과 선배들, 망망대해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끌어 주신 캡과 바이스, 아낌없는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신 부장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최다 관중의 그림자, 야구장 폐기물 한국일보
최다 관중의 그림자, 야구장 폐기물
한국일보 김형준 기자
지난해까지만 해도 저 역시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관중석에서 음식을 먹고, 맥주를 마시고, 쓰레기를 버려왔습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야구장에 들어서면 배부터 고프니, 일회용기에 포장된 음식들을 들고 들어가곤 했죠. 야구를 좋아하는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봤을 법한 일입니다.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경험은 경기가 끝난 뒤 마주하게 되는 쓰레기 산이었습니다. 팬이자 기자로서 문제의식을 품고 있었으나 정치부에 있던 지난해까지는 제가 직접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3월 스포츠부로 자리를 옮긴 뒤 폐기물 문제부터 빠르게 들여다 봤습니다. 우선 각 구장에서 배출되는 폐기물 현황부터 파악해야 했는데, 공개된 자료가 없었습니다. 의원실을 통해 자료를 구해 보니, KBO와 각 구단이 정부와 일회용품 감축을 위한 ‘자발적 협약’을 맺은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폐기물이 줄기는커녕 폭증했습니다. 일회성 보도로 끝나선 안 된다는 생각에 야구팀이 함께 나서 연속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앞면에 나갈 수 있는 스포츠 기사’를 적극적으로 발제하라며 멍석을 깔아주신 강철원 편집국장, 취재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강주형 스포츠부장 및 스포츠부 선후배들께 깊은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무엇보다 아내가 해외출장을 간 틈을 타, 일본 도쿄돔을 여행 삼아 다녀온 점이 취재 과정에서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보도 역시 풍성해질 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도쿄에서 수행해야 할 심부름을 잔뜩 안겨 주긴 했지만, 그래도 혼자 야구 보러 일본 가겠다는 남편을 이해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천안 지적장애 중학생 집단폭행 사건 대전MBC
천안 지적장애 중학생 집단폭행 사건
대전MBC 김성국 기자
“다시는 우리 아들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취재는 한 중학생 아버지의 절박한 제보에서 시작됐습니다. 지적장애가 있는 중3 아들이 중학생 7명에게 2시간가량 집단폭행을 당했고, 가해 학생들이 달팽이를 먹이고 옷을 벗겨 불법 촬영까지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피해 학생의 진술을 토대로 아버지와 함께 주차장과 코인노래방, 건물 옥상, 공원 등 폭행 장소를 찾아다녔습니다. 여러 차례 CCTV 제공을 거절당했지만, 건물주와 관계기관을 설득한 끝에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을 확보했습니다. 영상을 확인하던 피해 학생의 아버지는 “아이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한 아이의 삶과 일상을 무너뜨린 사건이 솜방망이 처분으로 끝나지 않도록 끝까지 추적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보도 이후 충남교육청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열어 가해 학생 7명 전원에게 중학생에게 내릴 수 있는 사실상 최고 수위의 처분인 강제전학을 결정했습니다. 경찰도 추가 혐의를 수사해 촉법소년이 아닌 학생 4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이 가운데 2명은 이례적으로 구속됐습니다. 촉법소년 3명에게도 긴급동행영장이 발부돼 소년분류심사원에 인치되는 등 사법 절차가 엄중히 진행됐습니다. 힘든 기억을 꺼내며 용기내 준 피해 학생과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사회를 움직이는 뉴스는 결국 취재원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다시금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소중히 귀담아듣고 집요하게 취재해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작은 위로가 되겠습니다.
결혼 앞둔 새내기 소방관 죽음...이면엔 갑질, 조직은…
결혼 앞둔 새내기 소방관 죽음...이면엔 갑질, 조직은 은폐 급급
뉴시스 광주전남취재본부 이현행 기자
취재 후기를 말씀드리기에 앞서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며, 유가족분들께도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이번 취재는 일선 경찰서의 ‘광주소방본부 조직문화 개선 촉구 집회’ 신고서 한 장에서 시작됐습니다. 소방공무원들이 직접 조직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야만 했던 이유를 파헤치기 위해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취재진은 끈질긴 추적 끝에 7개월 전 단순 변사로 묻힐 뻔한 20대 여성 소방공무원의 비극적인 사망 사건을 최초 보도했습니다.
실상은 회식 강요와 사적 심부름 등 차마 말 못 할 직장 내 괴롭힘이 빚어낸 비극이었습니다. 사망 석 달 전 접수된 익명 제보 시스템 ‘레드휘슬’조차 조직적으로 묵살됐던 실태를 단독 보도하며 소방 당국의 무책임한 은폐 행태를 공론화했습니다.
이후 국무조정실의 특별점검으로 이어졌고, 보도된 의혹 대부분이 사실로 확인돼 관련자 17명에 대한 중징계 요구라는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 최근에는 전남광주통합소방본부가 비위 관계자 15명에 대해 파면과 중징계 등의 처분을 내렸고, 소방청 역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며 무관용 원칙과 함께 특별감찰, 익명 제보 시스템 개편 등 전면적인 조직문화 혁신안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보도는 한 개인의 불행을 바로잡는 것을 넘어, 폐쇄적인 소방 조직 내부의 오랜 악습을 끊어내는 마중물이 됐습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우리 사회가 조금 더 건강하고 바르게 바뀔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히든: 검은 돈의 혈관 대포통장 동아일보
히든: 검은 돈의 혈관 대포통장
동아일보 황성호 기자
“사기꾼이 합의하자고 먼저 나타나지 않는 이상 피해금은 잃어버린 돈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대포통장을 이용한 주식투자 사기 사건 피해자 김모 씨를 만나기 위해 3월 서울 관악구 한 빌라를 찾았을 때 집주인인 70대 노인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그는 김 씨의 장인이었다. 정확히는 전(前) 장인이었다. 김 씨는 수년 전 사업에 실패한 뒤 이혼했지만 집을 구하지 못해 주소지만 노인의 집에 올려놨다. 노인도 김 씨를 보지 못한 지 10년은 됐다고 했다. 경찰로 일하다 은퇴한 노인 역시 수년 전 수천만 원을 잃은 사기 피해자였다. 그가 사기 사건 피해에 대해 냉소적으로 말한 까닭이었다.
사기 사건 주범을 잡아야 피해금을 받아낼 수 있을 텐데 대부분 사기꾼들은 해외에 머물며 범죄를 저지른다. 취재팀이 대포통장에 주목한 이유다. 사기꾼들이 범죄수익금을 세탁하며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포통장을 필수 도구처럼 쓰기 때문이다. 해외에 있는 사기꾼들을 잡아야 한다는 기사를 쓰기 보다는 국내에서 현실적 대책을 이끌어낼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금융감독원 채권소멸 사실공고는 국내 대포통장 흐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데이터였다. 취재팀은 2021~2025년 12만여 개의 계좌를 분석해 기사 뼈대를 구성했다. 숫자에 가려진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어려웠다. 피해자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 자택 문 앞을 일주일간 지키기도 했다. 어렵게 들은 이야기들이 모여 시리즈가 완성됐다. 당국은 관련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기획으로 사기 피해가 조금이나마 줄어들었으면 한다. 취재를 적극 지원해 준 회사와 동료 기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도시기본계획의 허구 중부일보
도시기본계획의 허구
중부일보 강현수 기자
막상 출품하려니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행정기관이 도시·군기본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해 주민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기사를 쓰면서, 정작 그 삶의 현장은 비중 있게 다루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습니다. <도시기본계획의 허구> 기획보도를 위해 2016~2025년 사이 작성된 경기도 31개 시·군별 도시·군기본계획을 전수 분석하고, 문제점과 궁금증을 정리했습니다.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면서 그 밑그림은 왜 이렇게 엉성할까. 엉성한 밑그림은 어떻게 번지르르한 사업으로 포장됐나. 번지르르한 사업에는 얼마만큼의 재정이 투입됐으며, 이로 인해 어떤 기회비용을 날렸나. 무엇보다 도시·군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승인하고, 이행하는 이들은 왜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을까. 고민과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도시·군기본계획은 여전히 생소한 개념입니다. 제목만 들어도 아는 ‘특종’ 기사에 비하면 파급력과 변화를 체감하기까지 시간도 걸릴 것입니다. 주민이 모를지언정 주민의 관점에서 잘못된 제도·관행을 바로 잡으려 노력하고, 시·군청부터 국회, 정부 기관을 상대로 질문하는 일을 앞으로 더 잘해나가라는 의미에서 이번 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수상한 최민서 기자와 기획보도 ‘대장’ 역할을 맡겨 주신 정진욱 사회부장께 감사드립니다. 첫 기자상 수상을 격려해 주신 최윤정·김광범 대표이사, 엄득호 편집국장, 문완태 정치부장을 비롯한 데스크, 기사를 돋보이게 작업해 주신 편집부에도 감사드립니다. 응원하고 기사 챙겨봐 준 선후배·동료들과 보람을 나누고 싶습니다.
누에고치 소녀들 KBS대전
누에고치 소녀들
KBS대전 심각현 기자
이번 다큐는 우연히 접한 웹툰 한 편에서 시작됐습니다. 1932년 11월7일, 대전에서 일본 자본 군시제사(현 군제)를 상대로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고,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10대 소녀공들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 자본에 맞서 조선인 최초로 승리까지 거둔, 잊혀서는 안 될 지역의 소중한 역사였습니다.
몇 주간 관련 자료를 모았지만 제대로 된 사료가 없어 포기하려던 찰나, 1996년 대전시 역사편찬위원회가 발표한 학술논문 한 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연구자를 어렵게 만났지만, 그 논문 외에 이를 뒷받침할 증언도 기록도 국내엔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길은 늘 현장에 있었습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한 공장 터를 수없이 돌며 혹시나 살아 있을지 모를 소녀공 생존자와 후손을 찾았고, 모기업 군제가 있는 일본 교토의 문을 끈질기게 두드렸습니다.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던 옛 공장을 찾고, 일본 현지 연구자와도 만났습니다. 새로운 사실이 나올 때마다 국내 연구진과 교차 검증도 잊지 않았습니다. 흩어진 조각들이 하나로 모이며, 조선인 최초로 승리한 노동쟁의가 바로 군시제사 대전공장 파업이었고 그 중심에 소녀공들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잊힌 역사가 기억되는 역사로 바뀔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기록의 최전선에 선 언론인이 이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믿습니다. 제작에 함께해 준 친구들과 김형국 교수님, 유일한 생존자 이용우 할머니, 소녀공 출신 유일한 독립유공자 고 박재복 애국지사의 둘째 아들 이종재 선생님, 그리고 늘 힘이 돼준 나의 가족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