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재착수
① 단독취재( ), ② 단독기획( ● ), ③ 보도자료 심층기획( ), ④ 제보( ), ⑤ 기타( )
2. 보도제작경위 -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십시오.
지난해 10월 25일, 양산시청 기자실로 손석주 씨가 찾아왔다. 음식점 배달부로 일하는 그는 기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이날 휴가를 썼다고 했다. 마침 그날 자리에 있던 사람은 국제신문 기자 한 명이었다. 이 우연한 첫 만남에서 그는 50여 년 전 자신이 당한 일을 증언했다. 11살 무렵이던 1973년 부산 서구(현 사하구) 장림동에 있던 ‘재생원’에 강제로 끌려가 1년 가까이 가혹행위와 강제노역에 시달렸는데, 세상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라 마음이 답답했다고 했다.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이 전부가 아니다. 영화숙과 재생원의 피해도 분명히 있었던 일이라는 걸 알리고 사과를 받고 싶을 뿐”이라는 그의 호소를 모른는 체할 수 없었다.
취재는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증언 이외 객관적 자료가 필요했지만, 관련 기록이 매우 부족했다. 영화숙·재생원이란 시설이 장림동에 있었다는 것, 원생 다수가 ‘소년의집’으로 옮겨갔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사실이 전무했다. 소년의집을 운영하는 마리아수녀회는 오래전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취지로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문의해봐도, 피해 신고자가 단 1명에 불과해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었다. 단서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다행히 위원회로부터 부산의 민간 사회복지 체계를 연구한 서울대 김일환 박사를 소개받으면서 기초적인 사실 관계를 취재할 수 있었다. 그는 부산시의 형제복지원 사건 실태조사(2020년) 때 함께 발견된 영화숙·재생원 관련 기록과 옛 문헌 등을 기반으로 시설의 실체에 관한 윤곽을 그린 뒤 논문으로 발표했다. 김 박사의 연구와 손 씨의 증언을 토대로 영화숙·재생원에서의 실태를 처음 보도했다.
첫 보도가 나간 당일, 유수권(가명)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문을 보고 깜짝 놀라 당장 수화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 또한 영화숙의 생존피해자이며, 나와 똑같은 일은 당한 동생 손 씨에게 꼭 밥을 한 끼 사주고 싶으니 만나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실제 시설이 있었던 장소를 안내해줬다. 이곳이 과거 늪을 쓰레기로 매립한 땅이었다는 사실, 영양실조·질병·구타 등으로 원생이 숨지면 야산이나 늪에 아이를 묻어야 했던 과거도 함께 털어놨다. 가끔 이곳 야산에 올라 자신이 묻어준 형·동생을 위해 막걸리를 뿌려주고 온다고도 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로 생각해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는데, 신문에 자신이 당한 피해가 소개돼 기쁘면서도 서글프다고 했다. 향후 만나게 된 생존피해자 대부분은 유 씨와 마찬가지로 “보도를 보고 놀라 전화했다”고 자신의 연락 계기를 설명했다.
이때부터 단순히 피해 사실을 보도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부산에 자리한 언론으로서, 영화숙·재생원이라는 지역사회의 흑역사를 파헤쳐 그 실상을 시민에게 알려야만 했다. 구체적 운영 실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당시의 흔적 등을 알아내야 했다. 궁극적으로는 진상규명에 이르는 토대를 닦아야 했다. 지금도 트라우마로 신음하는 이들을 위한 유일한 길이었다.
피해생존자들이 증언한 영화숙·재생원은 형제복지원에서의 참상과 너무나 닮아있었다. 아니, 형제복지원이 영화숙과 재생원을 반복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았다. 이곳은 형제복지원이 부산시의 공식 부랑인 시설로 지정(1975년)되기 이전, 부산시 최초(1968년)의 공식 부랑인 수용 시설이었다. 원생 대부분은 연고와 상관없이 강제로 붙잡혀왔다. ‘부랑인 소탕령’으로 불리는 ‘내무부 훈령 제410호’가 만들어진 1975년 이전부터 이런 일이 자행됐다. 수용인들은 빈대가 들끓는 비위생적인 공간에 수십 명이 칼잠을 자야 했다. 이들의 생활 공간은 ‘소대’로 불렸다. 소대에는 원생 중에서 지명된 ‘소대장’ 등 중간관리자가 있었다. 소대장들은 폭력으로 원생들을 관리했다. 식사는 꽁보리밥이나 옥수수가 전부였다. 굶어서, 앓아서, 맞아서 죽는 아이가 부지기수였고, 그들의 주검은 야산 등에 버려졌다. 원장은 부산시의 보조금과 외부단체의 후원금 등을 착복해 자산을 쌓았다. 원장이 형성한 자산은 2세에게 전수됐다. 영화숙·재생원 생존피해자 중 다수는 후일 형제복지원에 재차 수용됐는데, 그중에는 영화숙에서의 ‘경험’을 살려 형제복지원 소대장으로 활동한 이도 있었다(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그를 ‘종일이 형’이라 불렀다. 현재는 고인).
결국 ‘군대식 통제’로 대표되는 부산 민간사회복지의 특유함은 영화숙·재생원에서 비롯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부산 집단수용시설 인권유린의 기원이 바로 영화숙·재생원이었다. 부산시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한다면, 그 첫 대상자는 바로 이곳 피해자들이어야 했다. 문제는 역시나 기록이었다. 형제복지원과 달리 시일이 상당히 흐른 데다 검찰 수사 등 자료 확보 작업이 이뤄진 바 없었다. 증언을 뒷받침할 기록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했지만, 고령의 피해자들이 이런 일에 몰두하기란 쉽지 않았다. 진상규명 작업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 법했다.
국제신문이 확보한 ‘영화숙 최후의 아동 19인 명단’은 진상규명 작업이 필요한 이유를 증명하며 위와 같은 의문을 지웠다. 국가기록원 캐비닛 속에 잠들어 있던 수용인 명단을 발굴한 것이다. 영화숙·재생원에 한 해 최대 1200명을 수용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전체 규모의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어딘가에 그 피해 사실을 증명할 기록이 빛을 볼 날을 기다리고 있단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 문서의 확보를 계기로 피해생존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참상을 증명할 자료의 존재를 확신, 협의회를 꾸리는 등 본격적인 진상규명 작업에 나서게 됐다.
3.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① 기사에 등장하는 익명취재원의 상당성여하
이번 기획보도의 주요 취재원 중 익명으로 등장한 이는 ‘유수권’으로 가명 처리한 생존피해자와 영화숙·재생원 이순영 원장의 두 아들로 총 3명이다. 처음 유 씨는 가족이나 지인이 자신을 알아볼 것을 우려해 부득이 가명을 사용했다. 이 원장의 두 아들에 대해선 영화숙·재생원에서 벌어진 인권유린의 직접 가해자는 아니라고 판단해 익명을 붙였다. 그 외 사하구민으로서 당대 자신이 목격한 실태를 증언한 시민 2명은 이름 공개를 꺼려해 가명으로 인용했다.
② 제보자와의 특별한 이해관계여하 - 해당 없음
③ 직접취재(바이라인), 현장취재(데이트라인)여하 - 직접 취재
④ 기타 특이사항 여하 - 해당 없음
4.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이번 기획 시리즈는 국제신문의 단독 보도로 시작됐다. 선행 보도는 없었다. 생존피해자들은 지난해 1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모여 직권조사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참석자 대부분이 영화숙·재생원 피해자들로, 본지 기획보도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당시 회견에 참석할 것을 합심했다. 이들의 ‘첫 행동’은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됐다.
연합뉴스 ‘장애인단체 "진실화해위, 전국 집단수용시설 직권조사해야"’(https://www.yna.co.kr/view/AKR20221117086000004?input=1195m)
뉴스클레임 ‘“또 다른 ‘형제복지원’… 직권조사 시행해야”‘(https://www.newsclaim.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13017)
미디어오늘 ‘형제복지원 밝힌 진실화해위, 수용시설 직권조사 필요하다’(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7005)
비마이너 ‘시설 수용 피해생존자들, 진실화해위에 집단 진정 냈다’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4229)
시아뉴스 ‘영화숙·재생원 피해자協 결성…부산시·정치권 진상규명 촉구’ (https://www.sia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335)
5. 사회에 끼친 영향
보도 이후 부산시는 시가 보관 중인 영화숙·재생원 관련 자료를 확인하는 등 진상규명을 위한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 자체조사 이전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시 보관 자료는 총 3종으로, 임의로 분류된 문서철 형태로 관리 중이다. 개별 문서 형태로 남아 있을 자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었는데, 이번 조사를 통해 추가적인 기록 발굴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개인으로만 존재하던 피해자들은 ‘부산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 협의회’를 꾸리면서 연대체로 거듭났다. 이들은 지금까지 50여 년 전의 기억을 홀로 삭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보도 이후 자신과 마찬가지의 피해를 당한 이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사에 나온 동생에게 밥 한 끼 사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시작된 이들의 모임은 이제 부산 집단수용시설 전반의 피해 규명으로 역할을 확장했다. 올해 1월 4일에는 협의회 차원의 기자회견을 여는 등 본격적인 진상규명 첫 행보에 돌입했다. ‘없었던 일’과 다름 없는 취급을 받던 이 사건은 보도를 계기로 ‘분명히 있었던 일’이 된 것이다.
6.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2022년 12월 30일 국제신문 독자권익위원회는 해당 보도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부산지역 시설 내 인권유린 실태를 조명한 데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이동현 위원은 “형제복지원에 묻혀서 드러나지 않았던 1960년대 부산 최대 부랑인시설 ‘영화숙·재생원’ 수용자들 피해 실태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국제신문 심층보도 이후 관련 증언이 이어졌다. 형제복지원과 판박이다. 평생 한 맺힌 이들의 목소리를 지면을 통해 들려준 기사에서 차갑지만 온기가 느껴졌다”고 평가했다.
또 김유진 위원은 “1960~1970년대 사회복지시설이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착취하면서 시설장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기능했고, 국가가 눈감아준 사회복지체계 전반의 문제였다는 점을 조명했다. 문서에 남은 타 시설 수용자 명단을 공개하고 생존자 인터뷰란을 마련하는 등 늦었지만 이번 기사를 통해서 좀 더 체계적인 진상규명을 할 수 있게 돼 다행이다”고 말했다.
국제신문은 언론윤리강령을 준수하며 해당 기획 기사를 보도했다.
7. 기타 고려사항
외부 지원이나 보도 당사자의 반론 신청, 언론중재위원회 피신청 등은 없었다.
취재후기
(388회) 부산 부랑인 집단수용시설 인권 유린의 기원 ‘영화…
부산 부랑인 집단수용시설 인권 유린의 기원 ‘영화숙·재생원’ 피해 실태 추적
국제신문 신심범 기자
초년병 시절 부산 사하구를 출입했던 기자는 늘 땟거리로 골머리를 앓았다. 아들 고생이 눈에 밟혔던 어머니가 어느 날은 ‘영화소’를 취재해 보라며 제보해왔다. 사하구 신평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어머니는 당시 살던 집 근처에 ‘영화소’라는 부랑아 시설이 있었다고 했다. 그곳 어린이들은 모두 강제로 끌려온 것으로, 얼굴이나 팔에 멍이 든 아이가 많아 맞기도 많이 맞았을 거라고 했다.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엄마, 말만 가지고 50년 전 일을 어떻게 취재하노?”
5년이 지나 손석주씨를 만났다. 그는 사하구 장림동 소재 부랑인 시설 ‘재생원’으로 억지로 끌려가 짐승 같은 삶을 강요당했다고 호소했다. 또 재생원 바로 옆에는 ‘영화소’가 자리했는데, 두 시설은 원장 한 사람이 운영하는 사실상의 동일 공간이라고 말했다. ‘말만 가지고 50년 전 일을 어떻게 취재하느냐’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비록 두 사람은 ‘영화숙’을 ‘영화소’로 착각할 정도로 유년 시절 기억에 의존하고 있었고, 그마저도 당시를 입증할 기록 자료는 없다시피 했지만 말이다. “분명히 있었던 일을, 있었던 일로 인정받고 싶다.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이 전부가 아니다”며 눈물 흘리는 손씨의 하소연을 지나칠 수 없었다.
불우하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인간 이하의 존재로 살아야 한 그들은 수시로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기자님, 앞으로도 우리의 이야기를 써주시고, 우리의 기록을 발굴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럴 때마다 기자는 ‘50년 전 일이라 취재가 쉽지 않습니다’며 거꾸로 하소연하고픈 충동을 느낀다. 그럼에도, 지연된 정의가 불발된 정의보다 낫다고 믿으며, 국제신문은 계속해서 영화숙·재생원 피해실태를 쫓고자 한다.
회차 심사평
제388회 전체 총평
제388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총 11개 부문에 68편이 출품됐으며 이 중 5개 부문에서 6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6편 중 3편이 지역 기획보도 부문에서 나와 지역 기자들의 밀도 있는 취재력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취재보도 1부문에는 11편의 작품이 출품됐다. 이 가운데 SBS의 <신종 병역비리>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SBS 보도는 검찰의 짧은 언론 공지 문자를 놓치지 않고 집중 취재한 기자들의 감각이 돋보였다. 병역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민감하고 엄중한 사안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병역비리가 이 보도를 통해 다시 이슈가 되면서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신체 일부 훼손을 통해 병역 면탈을 받던 과거 패턴과 달리 이번 사건은 간질이라고도 불리는 ‘뇌전증’을 이용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는 병역 비리를 법조계와 행정사 업계 등 다방면으로 취재해 신종 범죄 수법과 규모를 밝혀낸 집요함에 심사위원들은 높은 점수를 줬다. 또한 신종 병역비리 병명과 수사 상황을 밝힌 데 그치지 않고 병무청의 병역 판정 절차 보완 등 구조적 방지책 마련을 촉구해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취재보도 2부문에서는 한국일보의 <탄소도시, 서울>이 수상작으로 뽑혔다. 기후 위기 대응이 선언적인 구호에 그치고 있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수작이라는 데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기존에도 여러 언론이 탄소중립이나 기후변화와 관련한 내용을 보도했으나 지표나 해외 사례, 보고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해외 취재도 정부 기관이나 시민단체를 단기간 방문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일보의 보도는 기자가 해외 도시 3곳을 한 달 보름간 생활하며 직접 탄소중립 시설을 이용하면서 겪은 감정을 기사화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탄소중립 실현의 필요성에 공감하거나 관심을 갖게 됐다는 점이 높은 점수로 이어졌다. 서울시가 취재진이 보도한 해외 탄소중립 정책이나 환경사업을 참고하거나 일부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생산적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에서는 국민일보의 <혐오발전소, 댓글창>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뉴스 댓글 1억2000만 개라는 방대한 빅데이터를 분석해 우리 사회의 ‘혐오’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잘 활용되면 건전한 여론을 수렴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를 악용하여 서로 비판하고 싸움을 조장하는 공간이 되고 있는 댓글들의 혐오 표현을 체계적이고 입체적으로 분석해 독자들의 이해도를 높여 주목받았다. 특히 건전한 여론 수렴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지역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에서는 국제신문의 <부산 부랑인 집단수용시설 인권 유린의 기원 ‘영화숙·재생원’ 피해 실태 추적> 보도와 부산일보의 <新문화지리지 2022 부산의 재발견>이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았다. 국제신문 기사는 형제복지원에 묻혀서 드러나지 않았던 1960년대 부산 최대 부랑인시설 ‘영화숙·재생원’ 수용자들 피해 실태 사실을 단독 보도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오래전 일이라 자료를 구하기 힘들었을 텐데 포기하지 않고 국가기록원 캐비닛 속에 잠들어 있던 ‘영화숙 최후의 아동 19인 명단’을 발굴해낸 취재진의 기자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부산일보의 보도는 상대적으로 소외됐지만 한국 문화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지역의 살아있는 문화’ 현장을 적극적으로 발굴했고 숨어있는 지역 예술인들을 집중 취재한 점에서 주목받았다. 단편적인 보도에서 알 수 없었던 지역 문화 분야별 변화상과 당면 현실, 향후 과제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문화전문가들이 해야 할 역할인데 기자들이 훌륭하게 해냈다. 다양한 부서가 벽을 허물고 특별취재팀을 꾸려 장기간 취재해 기사의 완성도를 높인 점도 수상 배경이다.
지역 기획보도 방송부문에서는 MBC강원영동의 <여음(餘音) 아직, 남겨진 소리>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역사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역사저술가로서의 지역 언론 역할을 충실히 한 작품이라는 데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전문 소리꾼이 아닌 지역 어르신의 소리를 담아내는 접근 방식이 신선하면서도 의미가 있었다. 성우의 내레이션 없이 어르신들의 소리와 현장음을 보도한 점도 창의적이었으며 영상미도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역 어르신들의 아리랑을 담기 위해 1년 동안 정선 곳곳을 누비며 지역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기자의 소명 의식이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