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재착수 및 보도제작경위
① 단독취재(V ), ③ 보도자료 심층기획(V)
출발은 한 국회의원이 낸 보도자료였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을 진압했던 계엄군이 심의절차도 없이 국가유공자가 됐다는 내용이었다. 5.18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둘 다 유공자라니, 모순이었다. 계엄군 중 유공자가 된 사람은 73명이나 됐다. 보도자료에는 계엄군 중에는 국가유공자로 지정돼 국립현충원에 안장돼있는 사람도 그중 5명이라고 적혀있었다. 5.18 당시 군 역시 지도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 피해자라는 시각도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국가유공자에 국립현충원 안장이라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그렇다면 어떤 인물들이 국립현충원에 안장이 돼있는 걸까? 그럴만한 인물들일까? 궁금했다. 보도자료는 거기에서 끝났지만 취재를 이어가야 한다는 직감이 왔다.
해당 의원실에 연락해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5.18 당시 진압군이 누군지, 명단이 있는지 요청했다. 국가보훈처에서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명단이 완벽하지는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개인정보 때문에 초성으로만 공개해, 의원실 차원에서 국립현충원 안장자 명단 등과 대조해 명단을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일단, 현재 만들어져있는 자료라도 줄 수 있는지, 중요한 인물이나 지휘부가 섞여있는지 물었다. 특별한 인물은 없는 것 같다는 답과 함께 다섯 명의 명단이 도착했다. 명단 안에 5.18의 최초 발포자의 이름이 보였다. 시민을 향해 첫 발포를 하고 부상자를 냈던 차 모 대위는 5.18을 취재해온 기자에게는 잊기 힘든 이름이었다. 최초 발포자가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사실이 처음 확인된 것이다. 이 발포는 집단 발포보다 하루 앞선 것이었지만, 5.18에서 처음으로 총기가 등장하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다. 또한 군 지휘부가 시민을 향해 처음으로 총을 들어 계엄군과 시민의 갈등을 격화시켰던, 책임을 크게 물어야 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차 대위는 현충원에 묻힐만 했나. 차 대위가 숨진 경위를 취재했다. 군끼리의 오인사격이었다. 차 대위가 소속됐던 부대와 다른 부대가 오인 충돌해 서로를 쏴서 사상자를 냈다. 더구나 받았던 훈장의 공적조서를 확인했더니 시민이 쏜 총에 희생된 것처럼 조작돼있기까지 했다. 시민을 쏜 사람이 시민에게 총을 맞아 죽은 것처럼 포장된 것이다. 죽음의 값이야 누구에게나 중하겠지만, 자국민을 향해 총을 쏜 군인이 순국선열을 기리는 국립현충원에 누워있다니,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껴졌다.
38 년 전, 차 대위의 최초 발포 당시 부상을 입은 건 광주의 한 남고생이었다. 5.18 당시 첫 총상환자였다. 군이 과격하게 시민을 진압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거리에 나와있던 학생이었다. 그는 대퇴부에 총알이 관통당해 대수술을 몇 번 거친 끝에 겨우 살아남았고, 80 킬로그램이었던 거구가 40 킬로그램이 된 채 병원에서 퇴원했다고 했다. 현재 광주에서 살고 있는 그를 수소문해 만나, 차 대위의 현충원 안장 소식을 알렸다. 그는 군 역시 당시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을 용서한다면서도, 자신의 삶을 거의 포기하게 했던 사람이 현충원에 있던 건 이상하다고, 정말 억울하다고 했다. 그의 몸에는 여전히 38 년 전 총알이 엉덩이를 뚫고 지나간 구멍이 남아있었다. 시민을 쏜 가해자도, 총에 맞은 시민도 유공자인 나라. 총알이 지나간 자리 앞에 그 모순이 극명해보였다.
2.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사실 이 주제는, 쭉 취재해왔던 주제였다. 첫 보도에 한참 앞선 지난해 11월, 국가보훈처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당시 요구했던 자료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압을 위해 투입된 군인 가운데 국가유공자 지정된 인원수와 명단, 국가유공자로 지정되게 된 근거 문서와 공적조서였다. 국가보훈처는 개인정보에 해당해 명단과 공적내용 등을 공개할 수 없다며 비공개 처분했다. 후속 보도를 위해서는 이 문서가 역시 필요했다. 최초 발포자가 국립 현충원에 안장됐다는 소식은 가해자가 국가유공자가 돼있는 모순을 분명하게 드러냈지만, 좀 더 나아간 취재를 위해서는 전상*공상 확인서나 보훈심사 문서들이 필요했다.
이때 앞서 보도자료를 냈던 국회의원실이 도움을 줬다. 기자가 찾던 문서들을 국가보훈처에서 제출받은 상태였던 것이다. 의원실에서 자료 일체를 제공 받아 단독 입수한 뒤, 전문가와 함께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계엄군의 전상 확인서 등이 다수 조작돼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80 년 당시 5월 24일에는 대규모 오인사격이 두 차례 일어났었는데, 이때 다친 사람들을 폭도의 기습으로 다쳤다고 왜곡하고 조작한 것이다. 특히 이중에는 계엄군이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를 할때 부하들에게 실탄을 나눠줬던 11공수부대 조 모 대령도 있었다. 오인사격 당시 오른팔을 잃은 것으로 꽤 알려져있는 이 인물의 ‘전상확인서’에는 “폭도의 기습으로 부상을 입었다”라고 조작돼 있었다. 그 역시 시민에게 총을 쐈던 인물이지만, 시민에게 총을 맞아 다쳤다고 포장된 것이다. 더구나 해당 부대는, 이 오인사격이 있고난 뒤 민간인들이 사는 마을에서 보복학살을 하고 민간인을 즉결처형하기도 했던 부대다. 이 부대의 지휘관이었던 그는, 군에서 국가보훈처에 제출한 이 서류가 인정되며 국가유공자가 됐다.
또 심사도 허술했다. 시민군이 무장하기 전 총상을 입고도 시민군에게 총을 맞았다고 주장해 국가유공자가 된 사례도 확인했다. 또 놀랍게도, 최근인 2010년대까지 ‘광주사태’나 ‘폭도’라는 용어가 공문서에 등장하는 등 국방부와 국가보훈처 모두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몰역사적 인식을 보이고 있는 흔적도 서류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 보도를 하고 있는 도중, 전두환 씨의 부인 이순자 씨는 자신의 남편이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황당한 망언을 했고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5공 비리인사이자 전 씨의 측근인 안현태 씨의 2011년 국립현충원 기습 안장부터 시작된 오래된 논란거리지만 계엄군 유공자와 같은 맥락에서, 이 시점에서 다시 짚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전두환 씨의 국립현충원 안장이 현행법상 가능하다는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다루었다.
3.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타매체의 선행보도가 없었던 단독보도다. 연합뉴스와 뉴시스 등 통신사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해당 기사를 받았다.
4. 사회에 끼친 영향
지역MBC 기사였지만 전국으로 방영된 두 건의 단독 기사는 큰 반향을 불러왔다.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가 유공자가 돼있는 모순은, 5.18 특별법으로 5.18 에 대한 사법적인 정의가 이뤄진 뒤에도 이에 파생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후속 입법조치가 미비해서 생긴 문제다. 5.18의 책임자를 군 부대내 조직에서 어느 선까지로 할 지, 어느 선까지를 책임이 있다고 인정해 국가유공자에서 배제할 지, 또 5.18 당시 다치거나 죽은 군인들을 전투 혹은 전투에 준하는 임무 수행 중 사상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등을 법률 개정을 통해 그 기준에 대해 고민하고 다듬어야 했지만, 20여년간 그대로 방치했다.
이 보도 이후, 이를 시정하기 위한 법 개정이 현재 추진되고 있다. 국방부와 국가보훈처가 동석한 가운데 법률 개정을 위한 공청회가 이달내로 열릴 예정이다.
5.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팩트가 많지 않았던 보도자료에서 출발한 의심으로, 38 년만에 처음으로 최초 발포자가 국립묘지에 안장돼있다는 사실을 단독으로 밝혀냈고, 이어진 후속 취재에서 단독 입수한 문건 일체를 전문을 분석해 보도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가유공자 서류가 조작돼있다는 사실 역시 이번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공식 확인했다.
지금껏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유공자로 인정되는 모순적 상황에 대한 지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발포 책임이 있는 지휘부가 국가유공자가 되어있는 현실을 보여준 보도는 없었다. 두 건의 단독 보도는 포털사이트 등에서도 많이 본 뉴스에 오르내리며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더불어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
언론윤리강령기준을 준수하였다.
6. 기타 고려사항
반론신청은 없었으며 언론중재위원회 피신청사항도 없었다.
회차 심사평
제340회 전체 총평
2018년 마지막 ‘이달의 기자상’에는 모두 67편이 출품됐다. 전체 편수도 많았지만 길게는 1~2년 넘게 장기간 취재ㆍ보도했거나 아직도 진행 중인 사안이 적지 않아 심사하기가 퍽 까다로웠다. 열띤 논쟁을 동반한 엄정한 심사를 거쳐 총 6편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취재1 부문에서는 SBS <청와대 특별감찰반 활동 관련 연속 보도>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청와대 특감반 비위 의혹으로 불거진 사안을 끈질기게 취재해 감찰 활동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을 제기해 주목을 받았다. 심사 과정에서 의혹의 핵심이라 할 ‘민간인 사찰’ 여부 등 실체적 진실이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다는 등 반론이 적잖이 나왔다. 하지만 특정인의 폭로나 관련 문건에만 의존하지 않고 폭넓게 취재해 ‘합리적 의심’에 기반한 문제 제기를 했다는 의견이 우세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기획보도 신문ㆍ통신 부문 수상작으론 두 편이 선정됐다. 한겨레의 <청담뷰티공단 리포트>는 한류의 한 축으로 성장한 K뷰티 산업의 어두운 이면을 속속들이 조명한 수작이다. 일부 알려지긴 했으나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미용실 스태프의 열악한 현실을 ‘청담동’이란 상징적 공간을 중심으로 잘 풀어냈으며, 영상 등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해 주목도를 높였다.
<웹하드의 황제, 양진호>는 말 그대로 웹하드업계 황제로 군림해 온 양진호씨의 갑질 폭행부터 비자금 조성, 디지털 성폭력 카르텔까지 끈질기게 추적 보도한 문제작이다. 엄청난 충격을 던진 양씨의 폭행 동영상 첫 보도는 뉴스타파와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보도로 알려졌지만, 당초 제보를 받은 프레시안 등 3사의 공동취재물로 밝혀져 이례적으로 3사의 공동 수상(기자협회 비회원사인 뉴스타파와 셜록은 특별상)을 결정했다. 폭행 동영상 공개 등이 다소 자극적이긴 했으나 직장 갑질 문제를 이슈화하는 계기가 됐다. 다만 디지털 성범죄를 부추기는 웹하드계 구조적 문제는 더 깊게 다뤄지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기획보도 방송 부문 수상작인 MBC <“아직도 안 내셨나요?” 선거비용 미반환자들>은 무엇보다 소재의 참신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선거사범 재판 결과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당선무효 형이 확정된 이후 법대로 보전받은 선거비용을 반환했는지 여부는 그동안 사회적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수상작은 2004년 선거비용 보전 제도 시행 이후 처음으로 미반환 사례를 전수 조사해 공개하고 제도적인 허점까지 다뤘다. 공적 영역에서 언론의 감시망이 좀더 촘촘해져야 함을 일깨운 보도였다. 취재가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하나 미반환자들을 좀더 끈질기게 취재해 인터뷰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있다. 1회성 보도로 끝날 사안이 아닌 만큼 계속 추적 보도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지역 취재보도 부문에선 두 편의 수상작을 냈다. TJB 대전방송의 <‘엉터리 낙뢰보호기’ 실체 의혹>은 이미 여러 언론사를 거쳤다는 제보 내용을 흘려 듣지 않고 현장 확인, 모의 실험, 전문가 자문 등 치밀한 취재를 통해 밝혀낸 수작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지역방송사에서 일궈낸 성과라 더욱 값지다.
대구MBC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검은 비리 의혹>은 유력한 지역 언론까지 소유해 자칫 성역으로 치부할 수 있는 지역 천주교의 문제를 줄기차게 추적해 보도한 흔치 않은 작품이다. 발단이 된 대구시립희망원 사태를 처음 보도한 곳은 다른 신문사였지만 단발성 추종 보도에 그치지 않고 전방위 취재를 이어간 ‘끈기’, 그리고 소송 등 압박에 흔들리지 않고 집요하게 의혹을 파헤친 ‘용기’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2018년 더 팍팍해진 언론 환경에도 불구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서 짙은 피, 땀, 눈물을 쏟은 기자들의 노고를 기억하며, 2019년은 조금은 더 빛나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