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재착수
① 단독취재( ), ② 단독기획( 0 ), ③ 보도자료 심층기획( ), ④ 제보( ), ⑤ 기타( )
사북항쟁은 광부들에 의한 노동운동으로 시작돼 국가 폭력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사북항쟁이 일어난 지 20년이 지나, 2000년대 들어서야 사회적으로 조금씩 조명받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20년 동안 국가 권력에 억눌렸던 광부와 가족들은 전혀 목소리를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국가 권력을 두려워하는 지역사회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20년이 흐르는 사이, 사북항쟁은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됐지만, 정부의 사과와 구제 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해마다 기념식이 열리면, 광부와 가족들은 ‘왜 같은 시기에 일어난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이나 제주 4.3사건, 부마항쟁과 같이 평가해주지 않냐’며 여전히 소리치지만, 정부와 관계기관은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모두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계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사북항쟁 41주년 기념일을 10여 일 앞두고, 기자는 취재 아이템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례행사를 보도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마침, 정선지역 한 연구소가 사북항쟁 시기에 벌어진 국가 폭력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겠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국가 권력이 평범한 광부와 가족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점에 대해 특징적인 점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지만, 이미 과거에 알려진 진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사북항쟁을 재조명하는 데에 특별한 계기를 마련하는 보도를 하고 싶다는 다짐은 올해도 이뤄지기 힘들 듯 싶었습니다.
일단 현장으로 가서 답을 찾기로 했습니다. 기자는 연구소 관계자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사북항쟁 당시, 광업소 측이 가담자들을 정리한 명단 사본을 처음 입수하는 뜻밖의 성과를 얻었습니다. 이후, 본 자료는 일부 매체에서 단독 공개된 것이라며 보도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MBC강원영동은 기획보도 구성을 이유로 조금 늦게 방송하였을 뿐, 사북항쟁 가담자와 관련한 10여 종의 문서 자료를 입수해 보도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습니다. 또, 연구소 취재를 마치고, 사북항쟁 피해 광부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아줌마들 영상도 있다’라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성고문 피해를 입은 부녀자들의 증언 영상이라는 겁니다. 사북항쟁 당시, 부녀자들을 상대로 성고문 피해가 있다는 사실은 알려져 왔지만, 다수의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서 성고문 피해를 구체적으로 증언한 보도는 없었습니다. 이 두 가지 자료를 토대로 사북항쟁을 재조명하는 기획보도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2. 보도제작경위 -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십시오.
*사북항쟁 성고문 피해의 실체를 밝히다
기자는 성고문 피해 여성 4명의 증언 영상을 수소문해 입수했습니다. 무려 6시간이 넘는 분량이었습니다. 이 영상은 2006년부터 2007년 사이 진실화해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일부 광부들의 피해 접수로 조사를 벌이던 중 성고문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녹화한 것이었습니다. 최근 제2기 진실화해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했지만, 보고서 외에 아직 사북항쟁 관련 자료를 직접 공개하지 않아, 이 영상도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영상 소장자는 촬영 현장에서 증언 영상을 받아서 보관해왔다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이 영상은 피해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어떤 목적으로도 절대로 활용될 수 없다고 녹화되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영상이 공개되기는 더욱 어려웠습니다. 지금까지 성고문 피해 여성의 증언도 대부분 구술 자료로만 남아있고, 이번처럼 자세하게 증언된 적이 없었습니다. MBC보도 이후, 일부 연구자들조차 어떻게 영상을 확보했고, 어떤 내용인지에 대해 문의할 정도였습니다.
관건은 성고문 피해 당사자들의 동의였습니다. 영상 소장자로부터 4명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미 3명은 세상을 떠났고, 1명은 수도권 쪽에 살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일단 사북지역에 사는 피해 여성의 가족을 수소문해 만났습니다. 기자는 어렵사리 유족들과 이해 관계인의 양해를 구하고, 영상 속 여성 3명의 피해 증언을 화면 처리한 후에 보도하기로 동의를 얻었습니다. 사북항쟁의 진실 규명과 피해 구제를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준 이들에게 너무 고마웠습니다. 영상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실제 촬영자를 찾아내어, 촬영 경위 등 영상의 진실성을 추가 확인해 보도의 정확성을 높였습니다.
무려 6시간이 넘는 영상 속에는 차마 입으로 말하기 힘들 정도의 성고문 피해 증언들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뉴스 보도에 사용할 내용을 편집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성고문 피해 증언 영상을 보며, 기자 또한 냉철함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영상 속 증언자들은 4명인데, 사북항쟁 당시에 계엄군 수사단에 끌려간 여성들은 수십 명에 달합니다. 어쩌면 아직도 국가 권력이 두렵고, 가정이 피해를 입을까봐 입을 굳게 다문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성고문 피해 여성들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북항쟁 당시 성고문 피해 여성들의 실제 증언 영상이 보도되자, 지역 사회의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실제로 폐광지역에서 수 십 년간 취재 현장을 뛰어다닌 기자들조차, 피해가 진짜 그 정도였는지를 몰랐다며 사실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성고문 피해 여성들의 고통은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임산부의 몸으로 모진 고문을 당한 한 여성은 7개월여 만에 아이를 조산하고, 하루 만에 잃고 말았습니다. 뉴스에 보도하지 않은 내용이지만, 이 여성은 이른 아침에 숨진 아이를 몰래 버렸는데, 다른 자녀가 잠에서 깨어 ‘아기가 어디 있는지’를 묻는 바람에 마음이 안 좋았다는 일화도 털어놨습니다. 또한 계엄군 수사단에 의해 성고문을 당하고, 외부에 말하지 못하도록 겁박을 당한 여성은 가정 불화로 고충을 겪은 경험을 토로했습니다. 무자비한 공권력에 의해 최소한의 인권마저 유린당했지만, 이들은 오히려 간첩으로, 민주화 세력의 동조자로 내몰려, 이웃에게서도 거의 외면당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생계와 생활 터전마저 던져버리고 떠난 이웃들의 아픈 사연들도 영상을 통해 보도할 수 있었습니다.
*국가는 광부와 피해자들 뒤에 숨었다
사북항쟁 피해자들은 노사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려고 했던 광부와 그 가족들입니다. 당시 비상계엄 상황에서 계엄군과 경찰이 강제로 공권력을 휘두르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철저히 광부와 그 가족들을 속이고 사건을 무마한 뒤 이들을 잡아가두고, 무자비한 고문과 폭행을 가했던 겁니다. 이 과정에서 광부와 가족들이 공권력에 맞서다 경찰관 1명이 숨지고, 어용노조 간부 가족이 감금 폭행된 것 또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들 사건은 사북항쟁에 관한 진실과 광부 가족들의 피해를 모두 가려버렸습니다. 국가권력을 장악해야 했던 계엄군, 신군부에 의해 사북항쟁 그리고 피해자들은 철저히 폭동, 폭도로 내몰렸습니다. 수 천 명의 광부들과 가족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지프차 사건’, 무장 계엄군의 진압 준비 그리고 계엄군 수사단의 강제 연행과 고문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국가가 민간인들 뒤에 숨은 겁니다. 취재진은 진실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이미 고인이 된 ‘지프차 사건’ 피해자의 가족을 찾아 단독으로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날의 상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어용노조 간부 가족의 감금과 폭행이 일어났던 당시, 현장에 있었던 광부로부터 실제 가해자와 구체적인 상황을 얘기 들었지만, 취재를 꺼리는 탓에, 관련자 모두를 취재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북항쟁 당시 국가 폭력의 잔혹함을 정리한 지역 연구소 측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정부의 무책임함을 지적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는 지금도 무책임하다... ‘죽기가 억울하다’
사북항쟁의 진실 규명도 자세히 이뤄지지 않았지만, 정부와 관계기관의 피해자 구제 조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10여 년 전, 제1기 진실화해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피해자의 자발적인 신고 접수를 받아 사북항쟁을 조사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피해자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단지, 사북항쟁이 국가폭력으로 인해 더 확산됐다는 사실은 공식적으로 확인해 줬습니다. 이후 사북항쟁 참여자 20여 명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진실화해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권고한 정부의 사과와 구제 조치는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일부 피해자들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연행 구금 기간이 1개월을 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최소한의 인권마저 유린당한 처지인데도 정부는 자격, 기준을 따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에다 강원도도 정부의 공식 사과와 피해 구제 조치를 돕겠다고 약속해놓고,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피해자들의 불신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강원도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했는데, 강원도는 그제야 정부와의 협의를 지속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제 얼마나 생애가 남아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북항쟁 피해 광부와 가족들은 늘 하늘을 향해 ‘죽기가 억울하다’며 울분만 삼키고 있었습니다.
* 진실 규명·피해 구제 ‘국가의 몫’
사북항쟁은 4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진실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한 모든 자료가 국가에 있고, 근본적으로 국가가 사건을 확산시켰기 때문입니다. 제1기 진실화해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일부 피해자들의 증언과 자체 조사를 통해 진실을 일부 밝혀냈지만, 아직도 과제가 많은 상황이었습니다. 제1기 진실화해 과거사정리위원회 보고서에도 의문들이 많았습니다. 정확한 피해자 규모와 현재 피해자의 행방, 당시 계엄군 수사단의 조사 내용 전반 등을 모두 밝혀내지는 못했습니다. 취재진은 피해자 규모를 약 140여 명으로 정리한 공식 보고서에서, 당시 수사관이 연행자 수를 700~800명으로 추정한 진술을 단독으로 확인해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광업소 측과 수사당국이 정리한 사북항쟁 가담자 명단 자료 10여 건을 비교해, 자료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일부 자료는 한 매체에서 3일 먼저 단독으로 공개하는 자료라고 보도했지만, MBC강원영동은 이전에 자료를 입수해 기획보도 준비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직권으로 조사해야 사북항쟁의 진실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피해자 그리고 이해 당사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화해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명백히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다수의 피해자들과 사북항쟁 과정에서 감금 폭행 피해를 입은 어용노조 간부 가족에 대한 명예 회복과 화해 주선은 민간에서 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감금 폭행 피해를 입은 가족들은 또 다른 피해자, 행정기관과 법적 다툼을 벌이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바로 정부가 나서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이제 정부가 ‘광부가 무식했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가 진실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시점이었습니다.
3.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 모든 취재원은 이해 당사자이며, 직접·현장 취재로 진행됨.
4.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 성고문 피해 증언 영상을 토대로 한 MBC강원영동의 단독 기획보도임.
* 타 매체의 반향
: MBC가 사북항쟁 성고문 피해 증언 영상을 보도하고, 지역 연구소가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다양한 매체에서 성고문 피해 영상 인용 또는 피해 사실 관련, 후속 여론 등이 보도됐습니다.
- '사북항쟁' 부녀자에 끔찍한 성고문…"아비규환" (아시아경제 4. 20.)
- 돼지우리 같은 곳서 성고문…‘사북항쟁’ 국가폭력의 야만 (경향신문 4. 20.)
- 1980년 사북 항쟁..."원인은 광부 향해 돌진한 경찰차" (YTN 4. 21.)
- 폭동 프레임에 가려진 국가의 폭력 (강원도민일보 4. 23.)
- “사북항쟁 고문 피해자 위한 특별법 제정 필요” (강원일보 4. 30)
5. 사회에 끼친 영향
* MBC강원영동 기획보도는 잊혀진 상태에 놓인 ‘사북항쟁’ 재조명 작업과 후속 조치 독려에 기여했으며, 취재 과정에서 강원도는 사북항쟁 피해자에 대한 정부 사과와 피해 구제에 다시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6.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 언론윤리강령기준 준수함.
* “일주일 동안 이 문제를 계속 다루면서,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은 이 문제를 지금이야말로 풀어야 할 때임을 시청자들에게 설명해 많은 공감을 얻은 것 같다. 그렇지만 짧은 시간에 이 문제를 다루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MBC강원영동 시청자 모니터보고서 4. 23.)
7. 기타 고려사항
* 보도 당사자의 반론신청 및 언론중재위원회 피신청사항 없음.
* ‘사북항쟁’ 재조명과 피해 구제를 위해 후속 보도를 계속 준비하고 있음.
회차 심사평
제368회 전체 총평
제368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은 총 7편이다. 하나 같이 수상작으로 손색없는 작품들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아쉽게 탈락한 출품작 중에는 수상작에 버금가는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최종 심사에서 심사위원들의 숙의 과정도 어느 때 보다 치열했다.
취재보도1부문에서 TV조선의 <이성윤 중앙지검장, 공수처장 관용차로 ‘휴일 에스코트 조사’>, JTBC의 <법무부 교정당국 비리> 두 작품이 선정됐다. TV조선 출품작은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에 임하는 공수처(장)의 편법적이고 비상식적인 태도를 특종 보도해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점이 평가를 받았다. 구조적 비리가 아닌 가십성 기사에 불과하다는 소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공수처의 시대적 목적과 역할을 돌아보게 한 상징적 결과를 호평한 다수의견에 따라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외부와 격리된 교도소 내 범죄 행태와 구조를 드러낸 JTBC의 교정당국 비리 보도는 반론없이 무난하게 수상이 결정됐다. 교도소 수감자의 마약 거래가 가능했던 교정당국의 부조리를 고발해 교정행정의 질적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한국일보의 <윤중천·김학의 백서>는 제보 받은 관련 자료를 치밀하게 재구성해 검찰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의 진상조사 문제점을 ‘백서’ 형태의 기록물로 남겨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보도의 바탕이 된 자료가 다른 방송사에 동시에 제공됐고, 해당 방송사 또한 자료 재구성 보도를 한 상황에서 독보성을 인정받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취재보도2부문 수상작인 국민일보 <김한솔 구출작전 등 ‘자유조선’ 크리스토퍼 안 인터뷰> 보도는 ‘인터뷰이(interviewee)’의 일방적 발언에 의지하는 인터뷰 기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유조선’의 핵심 인물을 국내 최초로 취재 보도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스페인 북한대사관 진입과 김한솔 구출작전 관련 보도를 외신에 의존했던 답답한 상황을 만회한 기자의 노력은 평가받아 마땅했다.
시사IN이 출품한 <미얀마 민주화시위(#WatchingMyanmar 캠페인)는 연속보도 보다 ‘워칭 미얀마 캠페인’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호응이 높았다. 특히 캠페인을 솔루션 저널리즘의 모범적 사례로 보아 수상에 부족함이 없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이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취재보도 부문의 특성에 비추어 미얀마 현지인과 외신에 의존하는 국내 언론의 미얀마 사태 보도양식과의 차별성을 인정하기 힘들다는 데 공감했다. 결국 후속 보도를 기대하는 쪽으로 결론을 모았다.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수상작으로 경향신문의 <전자정보 압수수색 시대>를 선정하는 데 이견이 없었다. 휴대폰 등 개인 정보기기 압수수색이 일반화된 시대에 압수된 개인정보를 검찰이 제한과 제약 없이 저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심사위원들에게도 충격적이었다. 경향신문의 발제로 전자정보 압수수색의 문제점을 사회적 의제로 설정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상찬도 나왔다. 경향신문의 선행 보도를 계기로 전자정보 압수 제도의 변화를 위한 언론 전체의 협업이 필요하다는 공감도 있었다.
기획보도 방송부문은 SBS의 <군내 코로나19 격리자 부실처우 고발>과 KBS의 <그림자 과로사, 경비원 74명의 죽음>이 경합했다. 24시간 노동이 아파트 경비원에게 초래한 비극을 전달한 KBS 보도는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하지만 병영 내에서 벌어진 코로나19 관련 각종 부조리가 사회에 던진 충격이 워낙 컸다. 시의성을 감안해 SBS 출품작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지역취재보도 수상작인 강원CBS의 <30년 주민숙원 고속철도, 군수와 군청간부들이 차지한 역세권> 보도는 지역 토착비리의 전형을 가감없이 고발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주민들의 염원으로 이뤄진 동서고속화철도가 경유하는 역세권 토지는 3선 군수를 지낸 전 군수와 군청 전·현직 간부는 물론 군부대 간부의 먹잇감이었다. 개발 정보를 독점하고 유통할 수 있는 소수 토호세력들이 개발이익을 전유하는 현상은 지금도 전국 지자체에서 의혹을 사고 있다. 양구 역세권 일대 등기부등본을 전수조사해 소문을 사실로 확정해 나간 기자의 열정이 아니었다면 의혹에 그쳤을 토착비리였다. 강원도 감사와 검찰, 경찰의 수사로 기사의 고발이 사정으로 이어진 성과도 컸다.
경기일보의 <특별취재반, 동물방역의 표준을 만들다>는 지역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에서 수상했다. 취재 동기는 경기도 동물살처분에서 지역기업이 배제된다는 평이한 문제의식이었으나, 살처분 사업을 둘러싼 공무원과 업계의 유착 비리로 이어졌다. 사소한 문제의 배후에 숨겨진 심각한 비리구조를 찾아낸 것이다. 기사의 완결성이 미흡하다는 일부 지적이 있었지만, 결과를 초래한 원인에 다다른 취재 열정이 수상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