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재착수
① 단독취재( ), ② 단독기획(√), ③ 보도자료 심층기획( ), ④ 제보( ), ⑤ 기타( )
2. 출품 보도물 목록(최초 보도부터 순서대로 3건까지 기재)
번호 보도일시 보도 제목
1 8월7일, 19시32분 귀향 간절한 월미도 원주민…“李대통령,대책 마련을”
2 8월13일19시40분 열강 다툼 한복판,살기 위해 떠났다[돌아갈 수 없는 섬,월미도-①그들이 몰려왔다]
3 8월13일19시40분 군화에 짓밟힌 섬…지워지지 않는 수난사[돌아갈 수 없는 섬,월미도-①그들이 몰려왔다]
3. 보도제작경위 -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십시오.
“아직도 못 가고 있으니까 잊을 수 없는 고향이지.”
인천상륙작전 당시 열 살이었던 진창세씨는 지난 8월 말 인천일보 카메라 앞에서 고향을 떠올렸습니다. 8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지금까지도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그의 고향은 인천, 월미도입니다. 인천에 살고 있는 진씨는 왜 실향민 신세가 됐을까요?
섬 아닌 섬, 월미도가 겪은 세월은 근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월미도는 열강 틈바구니에서 1904년 러일전쟁의 시작, 제물포해전을 겪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두 차례 강제 이주에 내몰렸습니다. 그리고 1950년 인천상륙작전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한인덕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우리가 이렇게 핍박당한 건 월미도에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월미도에 군사기지를 만든 일제는 강제 이주 과정에서 마을을 ‘국유화’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닷새 앞둔 1950년 9월10일 미군 전폭기들은 월미도 민간인 거주지에 네이팜탄 95발을 투하했습니다. 월미도 마을에는 120여가구, 600여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원주민들은 초토화한 마을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삶의 터전을 잃고 실향민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월미도에는 왜 포탄이 쏟아졌을까, 월미도 사람들은 왜 내쫓긴 처지가 됐을까, 그리고 월미도로 왜 돌아가지 못했을까. 인천일보는 지난 6월 초부터 특별취재팀을 꾸려 ‘월미도는 왜?’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①그들이 몰려왔다
75년째 실향민 신세에 놓인 원주민 사연을 되짚어보려면 고향, 즉 마을의 위치부터 짚어야 했습니다. 귀향 문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 공론화했지만, 마을은 지금의 월미공원 일대로만 알려졌습니다. 특히 러일전쟁 이후 시작된 강제 이주사는 언론에서 조명된 적이 없었습니다.
인천시립박물관과 협업을 통해 19세기 후반 ‘화도진도’, 1900년대 초반 사진엽서, 1947년 인천항 항공사진에서 월미도 마을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이미 공개된 자료들이지만, 화도진도 등 시각 자료를 통해 월미도 마을 위치를 규명한 시도는 기존 보도나 연구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발간된 ‘인천부사’(1933)에서 ‘조선인 주거지’ 등이 언급된 부분도 확인했습니다. 국가기록원 아카이브에서 당시 월미도 행정구역이었던 ‘만석정 토지조사부’(1912)도 발굴했습니다. 이를 통해 월미도 동북 지역에 마을이 존재했고, 일제 침탈로 강제 이주와 국유화 조치가 이뤄졌음을 고증했습니다.
②사라진 마을
인천상륙작전은 ‘5000분의 1’에 불과한 성공 확률을 딛고 한국전쟁 전세를 뒤집은 작전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상륙 길목이었던 월미도에 집중 폭격이 벌어졌고, 그곳이 민간인 마을이었다는 사실은 반세기 넘게 지난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규명으로 밝혀졌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와 생존자 증언으로 당시 폭격 상황을 재구성했습니다. 1편에서 마을 위치를 규명한 것도 ‘절멸 작전’이나 다름없었던 폭격이 민간인 거주지를 겨냥했다는 점을 조명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불가피한 피해’로 여겨졌던 폭격 실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당시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을 수소문해 직접 인터뷰했고, 한국 전쟁을 연구한 교수와 국방부 자료를 통해 월미도 폭격 배경도 짚을 수 있었습니다. 인천문화재단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을 통해 수집한 월미도 사진을 함께 실어 당시 참상도 시각적으로 전달했습니다.
③집으로 가는 길
인천상륙작전이 끝난 뒤에도 원주민들은 월미도 마을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미군기지가 들어섰고, 미군이 철수한 1971년부터 해군이 주둔했기 때문입니다. 해군부대가 평택으로 옮겨지면서 인천시가 2001년 국방부로부터 마을 부지를 매입했지만, 월미공원 조성으로 귀향길은 막혔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귀향대책위원회가 보관 중이던 국방부 문서, 국방부·인천시 간 매매 계약서 등을 단독 입수했습니다. 특히 1970년대 미군기지 인수 과정에서 월미도 마을 주소지가 ‘민유지’로 분류됐고, 인천상륙작전 이듬해인 1951년 ‘징발’된 상태였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행정 문서를 근거로 월미도 마을 존재를 입증한 건 이번 기획이 최초 보도입니다.
귀향 문제를 등한시했던 행정 문제도 지적했습니다. 해군부대 이전을 앞두고 인천시는 공원 조성을 추진하면서 폭격 피해 아픔이 남은 월미도 마을 부지를 ‘유희시설구역’으로 계획했습니다. 이는 인천시청 행정자료실에서 1992년 ‘월미공원 조성 기본계획’ 자료를 발굴하면서 확인한 내용입니다. 귀향 대책 부재는 2000년대 중반부터 10여년간 지속된 천막농성으로 이어졌습니다.
④유예된 귀향
기획 보도를 준비하고 있던 8월 초 원주민들이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취재팀은 현장에서 원주민과 가족 등 17명을 대상으로 일대일 면접조사를 진행했습니다. 폭격 생존자 6명도 만났습니다. 그간 언론 보도는 귀향대책위원회 임원을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고령 문제에 직면한 당사자들 목소리를 직접 들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12명은 정부 또는 인천시가 귀향 문제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답했고, 귀향 지연으로 인한 어려움으로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신”(8명)과 “생계 및 경제적 어려움”(6명)을 꼽았습니다. 시급한 조치로는 “국방부와 인천시의 책임 명확화”(8명) 응답이 가장 많았습니다.
행정기관과 정치권 무관심은 번번이 무산된 특별법 제정 시도에서도 확인됩니다. 2006년을 시작으로 지역 국회의원들은 2017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월미도 폭격 진상 규명과 보상 근거를 마련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모두 폐기됐습니다. 취재팀은 원주민들이 정부와 인천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가 2013년 기각된 판결문도 입수해 미군 주둔과 징발로 인한 ‘토지 소유권’ 증명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⑤끝나지 않는 망향가
진실화해위원회가 귀향 지원 등을 권고한 지 올해로 17년이 지났습니다. 권고 사항 가운데 이행된 건 2021년 월미공원에 건립된 위령비가 유일합니다. 2013년 특별법 제정안 심의 과정에서 국방부는 “원주민들이 거주했던 토지는 1914년 조선총독부가 취득”했다며 일제의 국유화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당시 국회 제출 자료를 통해 확인한 내용입니다. 인천시 행정국장도 기획 보도 과정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국방부 주장을 되풀이했습니다.
취재팀은 실향 문제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 사건의 법적 처리 실태를 되짚었습니다. 월미도 폭격처럼 미군에 의해 발생한 노근리 사건 특별법도 위령 사업, 의료 지원금 등에 관한 규정만 두고 있습니다. 미군 사건은 과거사 규명과 배상·보상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을 지낸 이상희 변호사는 인천일보 인터뷰에서 “한국전쟁 시기 미군이나 북한군에 의해 희생된 경우에는 법원에서 배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며 “전쟁 피해자 전체를 조망하는 구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최근 활동을 종료하며 진실 규명 사건에 대한 배상·보상법의 조속한 입법을 권고했습니다.
이를 통해 월미도 사건을 비롯한 전쟁의 아픔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시사점을 담고자 했습니다. 연재 이후에도 포럼 참석차 인천을 방문한 프랑스 캉기념관 관장을 단독 인터뷰해 노르망디와 인천 사례를 비교하면서 상륙작전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를 기억하는 방식을 재조명했습니다.
단편 다큐로 담은 원주민 기억
기획 보도 과정에서 인천상륙작전 폭격 생존자 2명과 한인덕 귀향대책위원장 인터뷰를 단편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제작해 인천일보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했습니다. 다큐 영상은 원주민 마을이 있던 월미공원과 인천일보TV 스튜디오에서 촬영했습니다. 3분 안팎 분량의 단편 다큐들은 월미도 강제 이주사를 그려낸 1화와 고향을 그리는 실향민 기억을 담은 2화로 구성됐습니다.
인천상륙작전 75주년을 앞두고 인천일보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영상은 다큐 2편과 쇼츠 3편을 합쳐 4만2000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쇼츠 영상은 구독자가 1만6600명인 인천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하반기 가장 많은 조회 수를 보이며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또한 기획 기사와 다큐, 쇼츠 영상을 한눈에 접할 수 있는 페이지(https://incheonilbo02.creatorlink.net)를 제작하고, 인천일보 홈페이지와 연결해 접근성도 높이고자 했습니다.
다큐 1편 ‘폭격에 사라진 마을… 끝내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
https://youtu.be/svDTPGvPpk4?si=TYE7-KTJl98LAu1P
다큐 2편 ‘75년째 고향을 기다리는 실향민들’
https://youtu.be/KsDuDVV2QSE?si=ulPhSZ-g_yg3Ak9v
4.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기사에 등장하는 취재원은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월미도 원주민과 전문가들은 실명 보도했고, 국방부 등 일부 공무원만 익명 처리했습니다. 취재원들과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기자회견과 추모식, 집회, 포럼 등은 모두 취재팀이 현장 취재한 결과물입니다.
5.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돌아갈 수 없는 섬, 월미도> 이전에도 월미도 폭격과 원주민 귀향 문제를 다룬 보도는 있었지만, 대부분 인천상륙작전의 명암 정도로만 언급됐습니다. 귀향대책위원회 활동에 초점을 맞춘 기사들도 단발성 보도에 그쳤습니다.
지역사회에서도 조명받지 못한 월미도 원주민들의 강제 이주를 시작으로 미군 폭격 경과, 그 이후 행정까지 아우르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당사자 목소리와 함께 공식 문서들을 통해 인천상륙작전과 귀향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한 보도는 이번 기획이 유일하다고 자평합니다.
6. 사회에 끼친 영향
월미도 귀향 문제가 공론화하자 인천시의회도 즉각 반응했습니다. 9월5일 본회의에서 김대영 의원은 귀향 대책을 촉구했고, 유정복 인천시장은 “명예 회복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귀향대책위원회 청원서를 접수한 대통령실도 공식 검토에 착수했습니다. 인천일보는 경청통합수석실 취재를 통해 국방부·인천시 등 관계기관 협의가 시작됐음을 파악하고 이를 보도했습니다.
국정감사에서도 월미도 귀향 문제는 주요 의제로 다뤄졌습니다. 10월2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인천시청 국감에서 민주당 한병도(전북 익산시을) 의원은 인천일보가 보도한 프랑스 캉기념관장 인터뷰를 언급하며 “전쟁의 빛뿐 아니라 그늘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같은 달 30일 국회 행안위 종합감사에서도 민주당 모경종(인천 서구병) 의원은 “인천상륙작전 당시 미군 폭격으로 월미도에서 100여명 민간인이 희생됐고, 진실화해위원회도 2008년 귀향 지원과 추모 사업을 권고했는데 아직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정부 차원의 협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국회 행안위 종합감사에서 월미도 원주민 귀향 문제가 거론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역 정치권도 특별법 제정을 비롯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배준영(인천 중구강화군옹진군) 의원실 관계자는 “법적 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취재팀은 시의회 행정사무감사 등을 통한 후속 조치에도 관심을 갖고 보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7.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이번 기획 기사는 광복 80주년을 앞둔 8월14일자부터 인천상륙작전 75주년이 임박한 9월11일자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인천일보 1면과 종합면에 배치됐습니다. 인천일보 시민편집위원회(9월17일자 15면 ‘월미도 기획 호평…“지역 의제 꾸준하게 제기를”’)도 월미도 보도를 주목했습니다.
조강희(인천업사이클에코센터장) 위원은 “5회 연재로 시점까지 적절했고, 정책 반영 효과까지 이끌어낸 의미 있는 보도”라며 “인천상륙작전을 승리 일변도로만 다루지 않고 당시 서민들의 아픔을 짚어 지역신문 기사로서 가치가 컸다”고 했습니다. 차성수(인천YMCA 사무처장) 위원은 “월미도 원주민 귀향 기획은 크게 주목받지 못한 사안을 심층 취재해 지역신문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호평이 나온다”고 했고, 박소영(법무법인 아틀라스 대표변호사) 위원도 “한국전쟁 역사와 이슈를 연결해 과거의 희생을 현재와 이어 시민들에게 깊은 생각 거리를 줬다”고 짚었습니다.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과 인천일보 윤리강령도 준수했습니다.
8. 기타 고려사항
외부 지원 여부, 보도 당사자의 반론 신청, 언론중재위원회 피신청 등 해당 사항 없습니다.
회차 심사평
제422회 전체 총평
제422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11개 부문에서 73편의 기사가 출품됐다. 특히 지역 취재보도부문에는 15편이 몰려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각 부문에서 올라온 기사들이 모두 빼어나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언론환경 속에서도 현장 기자들이 빛나는 성과를 내고 있는 것 같아 반가움이 컸다. 반대로 기자상 심사를 하는 위원들의 고민은 그만큼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치열한 논쟁과 협의 끝에 이번에는 7편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취재보도1부문에선 매일노동뉴스 <런던베이글뮤지엄 과로사 의혹> 보도가 선정됐다. 최근 가장 ‘핫’한 곳 중 하나로 꼽히는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숨진 청년이 주 80시간씩 일했다는 사실과 직원들에 대한 포괄임금제, 초단기 계약(쪼개기 계약) 등 불법·탈법적 인사·노무 관리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보도는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화려한 브랜드 이면에 숨겨진 업체의 잘못된 경영 방식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에 착수했고 업체 대표가 재발 방지 약속을 하는 등 후속 조치가 이루어진 데에는 이 보도가 핵심 역할을 했다는 데 심사위원들간 이견이 없었다.
지역 취재보도부문에선 제주CBS의 <제주 부장판사들 비위 의혹> 보도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기사로 인한 사회적 파장은 엄청났다. 단순히 판사들이 근무시간에 노래방에서 음주난동을 부린 것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사건을 ‘법원의 제식구 감싸기식 징계’에 이어 ‘판사 유흥접대 논란’, ‘사법거래 의혹’으로까지 끌고간 것은 CBS 기자들의 끈질긴 취재 덕분에 가능했다. 국회에서 이 문제가 다뤄지면서 성역화된 사법부에 경종을 울리고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일깨웠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경제보도부문에선 두편이 수상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노컷뉴스 <이상경 국토차관, 갭투자의 민낯> 보도는 국토부 차관이 10·15 부동산 대책으로 차단된 ‘갭투자’를 오래 전부터 해 오고 있었다는 점을 최초 보도, 당사자 사퇴라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또 이 보도로 현 정부에서 한 명의 차관 사퇴를 넘어, 정부 부동산 정책의 신뢰도와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촉발시켰다는 점도 수상작으로 선정되는데 한몫했다.
KBS 보도는 ‘기부’를 명분으로 거래처에 납품 계약을 유도하고, 이후 기부금 지출분을 다시 식자재 가격 인상으로 보전하는 ‘이중구조’를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면서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심사위원들은 대기업이 복지시설과의 이러한 거래를 통해 이용자 주머니를 갈취하는 행위를 밝혀냈다는 것 자체가 언론의 자본권력 감시 역할을 충실히 한 기사라고 평가했다.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에선 뉴스1 <경계선의 집> 보도와 세계일보 <매니페스토, 내일을 바꾸는 약속> 보도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경계선의 집> 보도는 몇년 전부터 국내에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문제를 전면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실태조사도 제대로 되지 않고, 그 숫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원단체’와 특정인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행과 성폭력 의혹 등을 파헤쳐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린 것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기사였다. 이 보도로 국가인권위원회와 보건복지부가 나선 점 또한 제도 사각지대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언론 본연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세계일보 <매니페스토, 내일을 바꾸는 약속> 보도는 식상한 주제를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다국적 인공지능(AI) 자연어 처리 공약 분석 방법론을 국내 최초로 도입, 13대 대선부터 21대 대선까지 38년간 주요 대선후보 24명의 10대 공약 217개를 직접 분석하고, 여기에 여론조사와 해외 사례 취재까지 더해지면서 자칫 지루할 것만 같은 기사에 힘을 불어넣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공약관리 부실을 문제점으로 꼽은 것도 심사위원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이유였다.
사진보도부문에선 서울신문 <피감기관서 축의금 받은 최민희, 본회의 중 ‘환급 문자’> 보도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국회에서 의원들의 휴대폰 사진을 촬영, 보도하는 것은 많았지만 이 사진은 많은 매체에서 기사는 물론 사설까지 내용을 인용했을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결국 이 사진 보도 이후 최민희 의원이 사과하는 등의 상황이 이어지면서 ‘사진 한 장이 주는 위력’을 새삼 깨닫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