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8편
검경 사건브로커 비리 오마이뉴스
검경 사건브로커 비리
오마이뉴스 김형호 기자
검경 사건 브로커 검거, 첫 보도는 통신사였습니다. 8월4일 금요일 오후로 기억합니다. 몇몇 변호사, 몇몇 경찰과 통화하고 들었던 첫 생각은 “총력 취재해야 할 사안이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말 이틀 취재 내용을 담아 8월7일 첫 기사를 썼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오늘까지 저와 함께 일하는 안현주 선배와 관련 보도를 모두 40개 썼습니다.
타사보다 늦은 기사였지만, 첫 보도 이후 약 4개월 만에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습니다. 열심히 했던 것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운이 좋았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는 기사를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보력 좋고 일 잘하는 선배와 함께 취재, 보도한 것도 수상의 이유였다고 생각합니다.
운이 좋았던 탓인지 취재 초반 저는 이 사안을 잘 아는 사람 서너 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안 선배 역시 이 사건 취재 과정에서 몇몇 귀한 취재원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압니다.
이들 외에도 저희 취재팀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거나 전화로 취재했습니다. 이를 통해 사건 브로커와 유착 공직자 비리의 실체에 타사보다 조금이나마 먼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검찰 수사는 계속되고 있고, 언론의 취재 또한 계속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직분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이번 취재 과정에서 저희에게 도움 준 많은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은행발 홍콩 ELS 불완전판매 사태 MBN
은행발 홍콩 ELS 불완전판매 사태
MBN 최은미 기자
어렵게 수소문해 만났던 74세 할머니는 인터뷰하는 순간에도 자신이 가입한 상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자식보다 은행을 더 믿었다”며 “싱싱한 과일 한 번을 못 사 먹고 모은 돈”이라며 우셨습니다.
실적 압박에 시달리며 원금 손실 가능성을 축소해 판매했던 은행원들도 사안이 공론화되고 금감원 조사가 시작되며 하루하루 고통받고 있습니다. 익명게시판에는 이번 일을 계기로 월급 좀 덜 받더라도 이런 상품 안 팔고 싶다는 글이 수두룩합니다.
DLF 사태도, 라임 등 펀드 사태도 겪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2019년 DLF 사태 당시 언론 매체를 장식했던 기사 제목은 지금 제목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똑같습니다.
부디 이번엔 은행들이 확실하게 각성하길 바랍니다. 가입자들이 전 재산 싸 들고 증권사나 상호금융이 아니라 은행을 찾아간 것은 그곳이 바로 은행이기 때문입니다.
금융당국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유사한 잘못이 계속 반복되는 것은 당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불완전판매 사례를 명명백백 밝혀내고, 억울한 사람 없도록 분쟁을 조정해나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취재 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가입자분들, 현장에서 함께했던 이우진 임채웅 촬영기자, 모든 과정을 이끌어준 김형오 경제부장에게 감사 인사 전합니다.
외국인 250만시대, 달라진 대한민국 일자리 지도 한…
외국인 250만시대, 달라진 대한민국 일자리 지도
한국경제신문 김대훈 기자
코로나19 이후 경상도 말씨를 쓰는 중국동포 ‘이모님’의 아들과 남편이 중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식당에선 동남아 출신 아르바이트생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법무부, 서울시 통계를 살펴보니 정말로 중국동포는 줄어든 반면, 동남아와 중앙아시아 출신 장기체류 외국인이 늘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움직이게 만든 건 결국 일자리였습니다.
기획은 이 지점에서 출발했습니다. 사회부 기자들과 경제부 노동 담당 기자가 ‘외국인 일자리’ 팀을 꾸렸습니다. 전국을 돌며 늘어난 외국인이 바꾼 일자리의 모습을 채집해 시리즈를 내보냈습니다. 여수 국동항, 나주와 영암의 농가, 화성과 시흥의 공장 등은 외국인이 없다면 문을 닫아야 할 판이 된 지 오래였습니다. 마침 저출생과 고령화가 덮친 한국의 일터에 대해 정부도 같은 취지의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부가 현장에 외국인을 더 받아들이고, 숙련된 이들의 한국 정착을 지원하도록 제도 개편을 꾀하고 있다는 내용의 스트레이트를 여럿 실었고, 시리즈는 더 생동감을 얻었습니다. 팀장 김우섭 기자의 리더십과 팀원들의 헌신 덕분입니다. 시리즈 도중 다양한 업종에서 외국 인력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아직 한국인이 취업을 꺼리는 3D업종에 치우친 게 사실입니다. 조만간 이주배경 인구가 5%를 넘게 되면 앞서 미국, 유럽 등에서 나타난 다양한 인종·사회·종교 갈등도 벌어질 전망입니다.
외국인 이주와 일자리의 재편은 우리 사회가 마주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려는 문화적, 제도적인 준비는 부족합니다. ‘외국인 일자리’ 시리즈를 계기로 관련 논의가 촉발하길 기대해 봅니다.
K 스포츠의 추락, J 스포츠의 비상 한국일보
)K 스포츠의 추락, J 스포츠의 비상
한국일보 유대근 기자
늦여름 식사 자리에서 만난 체육계의 원로는 불쑥 “현장에 가보라”고 조언했다. 한국 구기종목이 위기라고 하는데 여고 농구 경기를 보면 더 참담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선수가 없어 팀원 5명을 못 채우는 학교도 있다고 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탄탄한 유소년 스포츠 저변을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 괄목한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무엇이 차이를 갈랐을까. 취재 기자 4명(유대근, 김지섭, 박준석, 송주용)이 2개월간 한국과 일본의 14개 도시를 돌며 취재한 ‘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시리즈는 이런 문제의식 속에 기획됐다.
스포츠를 취재했지만, 스포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 스포츠는 인구 절벽과 폐쇄적 시스템 탓에 무너져 가고 있다. 사실 다른 분야도 비슷하다. 산업, 경제, 행정, 문화 등도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겪게 될 문제처럼 보였다. 40~50년간 공고했던 K스포츠 시스템의 변화 필요성을 다룬 이번 시리즈가 여러 분야에 힌트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기사를 썼다.
기자들에게 현실을 들려준 한국 스포츠 관계자와 노하우를 숨김없이 알려준 일본 체육계 인사들 덕에 가능한 보도였다. 장기 해외 취재를 결정해준 김영화 국장과 강철원 엑설런스랩장께도 감사드린다.
수의계약으로 뭉친 녹색카르텔 KBS
수의계약으로 뭉친 녹색카르텔
KBS 박상용 기자
대형산불이 잦은 강원도와 경북 동해안은 소나무 등 침엽수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산림당국은 산불이 날 때마다 불에 강한 이른바 ‘방화수림대’를 집중적으로 조성하고 활엽수도 많이 심겠다고 밝혀왔습니다. 하지만 대형산불을 연이어 겪은 주민들의 증언은 달랐습니다. 예전보다 활엽수 비중이 조금 늘기는 했지만, 여전히 소나무나 침엽수를 많이 심는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산불 이후 집단 벌목부터 모든 산림사업은 시작됩니다. 산림청은 산림사업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앞세워 한 해 수천억원의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산하 특수법인인 산림조합에 주고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관련법이 촘촘히 마련돼있기 때문입니다. 부실한 산림사업의 이면에는 수의계약의 길을 적법하게(?) 열어준 ‘산림 관련법’이 있습니다. 또 전문성과 특수성을 앞세웠다는 그 많은 산림사업 현장에서 부실공사의 흔적은 곳곳에 있었습니다. 임도에서는 산사태가 나고 새로 심은 나무는 상당수가 죽었으며 산사태를 막아준다는 사방공사 현장의 상당수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산림청 사업을 감시하고 예산 낭비를 짚어야 할 국회는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취재 중 하나는 산림청 국정감사였습니다. 일부 국감 위원들은 산림청이 산림부로 격상돼야 한다며 편을 들어주고 여러 사업을 면밀히 검증한다기보다 산림청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을 자주 했기 때문입니다. 본편 방송 이후 많은 분이 정말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계십니다. 앞으로도 ‘녹색카르텔’과 관련해 많은 분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서 열심히 듣고 취재하겠습니다.
영구임대30년 보고서 국제신문
영구임대30년 보고서
국제신문 박호걸 기자
“10년 전에 돌아가신 저희 할머니도 영구임대주택에 사셨는데 그때도 엉망이었어요.”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후배 A가 축하의 말과 함께 자신의 경험담을 전했다. A의 할머니는 부산 금정구에 있는 영구임대주택에 사셨다고 한다. 처음에는 네 식구가 살았는데, 자식들이 하나씩 분가하고 마지막엔 할머니 혼자 남아 4년을 더 사셨다. 후배도 할머니를 뵈러 한 번씩 영구임대주택으로 갔던 모양인데, 기사를 보며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 같았다.
지난여름에 취재했던 영구임대주택이 떠올랐다. 실평수 8평 남짓했던 그곳은 습하고, 낡고, 무엇인가 어두웠다. 하긴, A의 할머니가 사셨던 때보다 10년이 더 지났다. 당시 후배가 느꼈던 것보다 노후화가 더 심해졌을 것이 자명했다. A의 할머니 입장을 생각해 본다. 할머니는 거주지의 낡고, 좁음도 불편했겠지만, 생기를 잃은 아파트 단지에서 홀로 살아내야 했던 게 더욱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건물의 노후화보다 ‘입주민의 노화’ 문제가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는 거다.
이번 기획보도를 계기로 부산에서 관련 논의가 시작된 건 참 다행이다. 그러나 단순히 건물 노후화를 해결하기 위한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길 희망한다. 노인의 담배 연기 대신 아이의 웃음소리 넘치는 놀이터가 있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노인과 청년이 웃으며 인사하는, 10년 후 부산 임대주택을 상상한다. 참, 휴가 때도 회사로 나와 기사를 봐 준 권혁범 부장님께도 감사를 전한다. 그 부지런함에 게으른 부원의 심신이 무척 힘들었다.
형사공탁 1년 보고서 – 판결문 988건 분석 KBS창…
형사공탁 1년 보고서 – 판결문 988건 분석
KBS창원 이형관 기자
형사 재판에는 피해자 자리가 없습니다. 검사와 피고인이 대립하는 형사 재판에서 피해자는 ‘제3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취재진은 방청석 어딘가에 앉아있었을 피해자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어떤 돈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피고인들이 일방적으로 건넨 돈, 바로 ‘형사공탁금’입니다.
형사공탁은 피해자와 합의에 실패한 피고인이 법원에 선처를 구하는 제도입니다. 법원에 공탁금을 맡기면 재판부는 이를 피해자를 위한 피해회복으로 보고 감형을 해줍니다. 그런데 1년 전, 법 개정으로 제도 악용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피고인이 공탁금을 낼 수 있게 되면서 형사공탁이 ‘신종 감형 기술’이 돼버린 겁니다.
피해자가 원하든 원치 않든 돈만 보고 감형이 이뤄지는 현실, 취재진은 사법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제도 시행 이후, 관련 판결문 1700여 건을 모두 입수했고 이 가운데 988건을 심층 분석했습니다. 피고인이 일방적으로 던진 돈 앞에 피해자의 엄벌 탄원 의사가 무력해지는 재판 결과가 수도 없이 잇따랐습니다. 다행히 저희 보도 이후 작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판결문을 보면 피고인의 일방적인 형사공탁에 대한 피해자 의사를 재판부가 확인한 뒤 이를 양형에 적극 반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검찰인권위에서도 부당한 감형을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고, 대법원은 내년부터 피해자 의견 진술권 보장을 위한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저희 취재진은 이번 보도를 계기로 일반 시민의 눈높이에서 정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관련 보도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사람아 사람아-제노사이드의 기억 한겨레신문
사람아 사람아-제노사이드의 기억
한겨레신문 김봉규 기자
2007년 6월28일 서울 용산구와 동작구를 잇는 한강대교 아래 노들섬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한강 다리 교각에 하얀 종이로 만든 사람 모양의 인형들을 거꾸로 매달아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표현(연출)하고 있었다. 평화재향군인회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가 사건 발생 57년 만에 한강인도교 폭파 현장에서 진행한 첫 합동위령추모제의 모습이다. 그 현장에서 ‘이렇게 한 많은 죽음들이 있었구나’라며 민간인학살과 관련해서 눈 뜨게 되었고, 나의 작업 주제로 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뒤로 제주 4·3 학살 터와 대전 골령골을 비롯해 전국에 흩어진 민간인학살 현장을 서성거렸다. 연차 휴가와 안식월 등 긴 휴가가 발생하면 작업지역을 넓혀 아프리카 르완다의 ‘제노사이드’,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비롯한 아시아와 독일, 폴란드, 네덜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등 나치 시절 강제 및 절멸수용소 등을 15년 넘게 헤매고 다녔다.
처음에는 책 출간이나 기사화하지 않고 기자로서 개인 ‘공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편집국에서 신문 지면에 칼럼 연재를 제안받았다. 지난 2021년 10월부터 현재까지 <사람아 사람아-제노사이드의 기억> 문패로 연재를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