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재착수
① 단독취재( ), ② 단독기획( ○ ), ③ 보도자료 심층기획( ), ④ 제보( ), ⑤ 기타( )
"IMF 때 몰락한 재벌 회장이 재기에 성공했다"
취재의 시작은 한 문장의 첩보였습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 국내 계열사 15개, 해외 계열사 10개를 거느리며 연매출 1조 2천억원 이상을 기록, 재계 순위 50위권에 들었던 '갑을그룹'의 박창호 회장이 현재 시가총액 600억원이 넘는 코스닥 상장사 (주)정원엔시스의 최대주주가 됐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정원엔시스 기존 회장 일가와 경영권 분쟁도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을그룹은 무리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수익사업 부재, 차입에 기댄 경영 등으로 90년대 후반 몰락의 길을 걸은 바 있습니다. 수년간 분식회계로 수천억원의 공적자금을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려 쓰다가 금융기관 자금 상태를 부실하게 만들어 IMF 외환위기 사태의 원흉이 된 그룹 중 하나였습니다. 98년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시작, 회생 불가능 판단이 내려져 2003년 회사정리절차를 밟고 해산했습니다.
IMF 사태 이후 그룹 전체가 도산, 몰락의 길을 걸었는데 약 20년이 지난 지금 당시 회장이었던 사람이 백억대 주식투자로 코스닥 상장사의 최대주주가 됐다는 소식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당시 박 회장에게도 수천억 채무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다트)을 통해 어떻게 정원엔시스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었는지 살펴봤습니다. 그러자 수상한 점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 보도제작경위 -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십시오.
<가족 명의로 주식 구입 시작…2016년부턴 본인 등판>
정원엔시스 공시 내역을 전수 분석해 박창호 회장이 최대주주가 된 경위를 파악했습니다. 박 회장이 처음부터 주주명부에 등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부인 최모씨가 최대주주로 있는 법인(윔스)을 통해 조금씩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3월 최초로 최씨 개인과 윔스 명의로 약 85만주(3.4%)를 사들였고, 이후 세 딸 명의로도 수십만주의 주식을 구입했습니다. 구입 방식은 전부 '장내 매수', 즉 '현금'으로 사들인 것이었습니다.
박 회장의 이름이 직접 등장한 시점은 2016년 9월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박 회장 일가는 공격적인 주식 매수에 돌입했습니다. 템피스투자자문, 신한화섬, 자산장학재단, 이콜로지앤푸드 등 박 회장 가족들이 최대주주로 있는 법인들이 모두 주식 매수에 동원됐습니다. 확인 결과 신한화섬은 세 딸이, 템피스투자자문·이콜로지앤푸드·윔스는 부인이 각각 최대주주였고, 자산장학재단은 박 회장이 1990년 만든 공익재단이었습니다.
결국 올해 6월 공시된 내역에 따르면 박 회장 일가가 확보한 정원엔시스 주식은 총 717만주(22.29%)로 시가 약 135억원(주당 가치 약 1900원 계산) 상당에 달했습니다. 주식을 매년 조금씩 사 모았기 때문에 매번 가격은 달랐지만, 평균 주당 가치가 1500~2500원 사이를 오갔기 때문에 이들 일가가 투입한 금액 역시 비슷한 규모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2020년 4월엔 보유 주식수가 최대 1000만주가 넘기도 했습니다. 주식을 사들인지 불과 5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작년 12월 박 회장은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습니다.
<2012년 회생으로 채무 8547억원 중 8523억원 면제>
막대한 자산가가 아니면 불가능한 투자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취재 결과 박 회장이 2012년 법원으로부터 '회생' 결정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 등기부등본이 결정적인 단서가 됐습니다. 박 회장이 98년 갑을그룹 몰락 때 본인 명의 부동산을 가압류 당했었는데, 2012년 회생으로 해제됐다는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회생 결정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몇 년 만에 주식 투자를 시작, 한 코스닥 상장사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었을까. 의문은 '회생 전 돈을 은닉해 둔 것 아니냐'는 의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취재진은 박 회장의 회생 결정문을 확보하기 위해 수차례 법원을 찾아갔고 정보공개 청구, 판결문 열람 신청 등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핵심이 담긴 '별지'는 받지 못하고 고작 3줄짜리 결정 내용만 적혀 있는 판결문만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국회의원실을 통해 자료 요청을 하는 등 법원 문을 계속 두드렸습니다. 그 결과 약 한 달 만에 박 회장이 당시 법원에 제출한 회생계획안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계획안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박 전 회장의 채무가 약 8547억원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박 회장은 "현재 보유한 전 재산이 9억원에 불과해 채무가 너무 과다하다"고 호소했고, 법원은 박 회장에게 약 23억원만 현금 변제하라며 회생 개시를 받아들였습니다. 채무 약 8547억원 중 약 8523억원을 면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채무는 대부분 IMF 사태로 파산한 은행·증권·보험사 등 금융기관에게 갚아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박 회장은 법원에 제출한 회생계획안을 통해 본인 전 재산이 현금(예금) 약 300만원을 포함, 총 9억원에 달한다며 자산을 전부 처분하고 열심히 일해 벌 돈을 합쳐 2018년까지 7년에 걸쳐 23억원을 갚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계획안이 통과되자마자 박 회장은 '조기 변제'를 신청했고, 한 달 만에 23억원을 모두 갚았습니다. 처분하겠다던 부동산도 처분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
더 놀라운 건 전 재산 9억원 중 절반 이상인 5억원 상당이 골프·콘도·호텔피트니스회원권이었지만 회생을 받는 데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가진 재산에 비해 채무가 너무 과다하다"고 호소하며 회생을 신청한 사람의 상황이라고 보기에는 상식적이지 않았습니다. 의심은 한층 강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생 3개월 뒤부터 수억대 지분구입…돈은 어디서 났나>
취재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가족 명의로 된 부동산·법인의 구입·설립 경위와 자금 출처 등을 쫓았습니다. 그 결과 박 회장이 회생 직후 본인 명의로 한 비상장법인 금융회사(템피스투자자문)의 수억원대 지분을 구입한 사실을 추가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회생을 받은 지 고작 3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로, 정원엔시스 주식 투자보다 더 빠른 시점이었습니다.
템피스투자자문 주주명부를 확보해 분석한 결과 박 회장은 2012년 8월 10일 본인 명의로 지분 약 4억원어치를 구입했습니다. 2012년 5월 4일 약 23억원의 현금 변제로 회생 결정을 받은 뒤 3개월이 지난 시점에 4억원이 새롭게 생겨난 셈입니다.
박 회장은 2019년까지 템피스투자자문의 지분을 본인과 가족 명의로 계속 늘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가족 전체 명의로 투입된 금액만 총 29억원으로, 이 중 박 회장 본인 명의 지분만 약 11억원에 달합니다. 박 회장 일가는 총 63.3%의 지분을 보유, 템피스투자자문의 최대주주가 됐습니다.
취재진은 박 회장 가족이나 가족이 보유한 법인 명의로 구입한 정원엔시스 주식들이 어느 시점 박 회장 개인에게 이전된 사실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 명의로 재산을 빼돌려뒀다가 회생 이후 다시 본인 명의로 돌린 정황인 셈입니다.
현시점에서 가족을 제외하고 오직 박 회장 본인 명의로 된 주식만 따지면 템피스투자자문 11억원, 정원엔시스 63억원입니다. 여기에 회생 당시 조기변제에 쓰인 현금 23억원을 더하면 박 회장 개인 명의로만 약 100억원의 돈이 새롭게 생겨난 셈입니다. 박 회장 가족과 가족 소유의 법인이 투자한 금액까지 포함하면 총 200억원에 달합니다. 이 같은 내용을 종합해 첫 번째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관련 기사 : [단독]8500억 빚 탕감 후 100억대 주식투자…몰락한 재벌의 수상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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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월세 50만원 산다"…회생 받자 유엔빌리지로 주소 옮겨>
회생을 받게 된 과정도 수상했습니다. 취재진은 박창호 회장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수원지방법원'에서 회생을 받은 점에 주목했습니다. 거주하는 주소지 관할 법원에서만 회생이 이뤄지는데, 박 회장과 그 가족들에 관련된 부동산·법인 등을 아무리 찾아봐도 수원지법 관할 주소지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회생 판결문에서도 주소는 익명 처리가 됐기 때문에 바로 확인은 어려웠습니다. 특히 10년이나 지난 시점이라 관련자들도 모두 바뀐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수많은 자료를 뒤졌고, 그 결과 당시 박 회장이 기재한 거주지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OO건물 B01'이라는 주소지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박 회장은 법원에 "반지하에서 월세 50만원을 내고 생활하고 있다"고 호소하며 월세 납부 내역까지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확보한 또 다른 자료에서는 박 회장이 2012년 5월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위치한 한 연립주택으로 주소지를 옮긴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2012년 5월 4일 회생 종결 결정을 받고 딱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결국 박 회장이 회생을 받기 위해 경기 지역의 한 빌라 반지하로 '위장전입'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박 회장이 주소지를 옮긴 유엔빌리지 연립주택은 시가 60억원 상당이며, 박 회장 부인과 둘째 딸 명의로 된 곳이었습니다.
특히 법조계 전문가 등을 통해 지방법원별로 배우자 재산을 채무자 재산에 귀속시키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박 회장이 이를 악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로 이어졌습니다. '사기 회생' 정황이 추가로 드러난 겁니다. 취재된 내용을 종합해 두 번째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관련 기사 : [단독]'반지하 월세' 회장님, 8천억 탕감후 유엔빌리지로 이사
https://www.nocutnews.co.kr/news/5792522
<자금 출처 따라가보니…갑을그룹 몰락 직전 자산 빼돌린 정황>
갑을그룹은 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사태로 몰락했습니다. 이후 박 회장에게도 수천억 채무가 발생했고, 회생 결정을 받기 전까지는 본인 명의로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회생 전 은닉한 것으로 추정되는 재산'의 애초 출처는 어디일까. 질문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7611개. '박창호' 이름으로 검색되는 법원 판결문 숫자입니다. 취재진은 이들을 훑어보며 동명이인은 제외하고, '갑을그룹 박창호 회장'과 관련된 민사·형사 판결문 수십여개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퍼즐 맞추듯 각 판결문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조금씩 모으고 모아 '그림'을 그려갔습니다. 지난한 작업 끝에 박 회장과 그 가족들이 소유한 부동산·법인 등을 대부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82개. 취재진이 열람한 박 회장과 관련된 부동산·법인의 등기부등본 개수입니다. 분석 결과 박 회장이 갑을그룹의 위험 징후가 감지된 시점인 1996~1998년 집중적으로 자산을 은닉한 정황을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간 부인과 세 딸에게 본인 명의 토지를 증여했고, 동생에겐 본인 명의 건물을 매매한 것처럼 위장해 명의를 이전했습니다.
당시 부인은 가정주부였고, 세 딸은 미성년자로 아무런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족 명의로 부동산 구입이 이뤄졌고, 부인이 법인들 설립자금을 대기도 했습니다. 이들 자금의 출처를 박 회장 측에 수차례 물었지만 박 회장 측은 "오래전 일을 왜 자꾸 들추냐"라는 식으로 답변했습니다.
다만 반론 청취 과정에서 당시 부인 명의로 설립된 법인들이 실제로는 박 회장 운영 하에 있었다는 간접적인 증언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 : [단독]'8천억 탕감후 백억 주식투자' 회장, 가족 명의 부동산·법인 수두룩
https://www.nocutnews.co.kr/news/5793217
취재를 진행하며 갑을그룹에 몸담았던 노동자들은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그룹 내 노동조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파악,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노조총연맹 관계자들에게 물어물어 당시 노동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완전고용' 시대를 살았던 노동자들은 IMF 사태 이후로 계약직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살아왔습니다. 당시 노동자들은 경영에 관여한 바가 전혀 없는데도, 회사가 망한 책임은 오롯이 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회사를 경영했던 실질적인 책임자인 회장은 자산을 은닉한 채 호의호식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취재진은 박 회장이 거주하고 있는 유엔빌리지 연립주택과 박 회장 일가가 소유한 경기도 양평의 별장을 현장 취재했습니다. 육로로 별장에 접근하는 게 어렵자 배를 빌려 타고 강 쪽으로 접근해 별장의 실체 등을 파악했습니다. 강 쪽으로 설치돼 있는 불법 개인 선착장 발견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 : [단독]갑을그룹 몰락…노동자는 지옥 vs 8천억 탕감받은 회장님은 호의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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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두 달간의 취재가 이어지면서 박창호 회장의 채권단 중 공공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여러 자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금보험공사가 박 회장으로부터 받아내야 할 채권 1억원을 17년간 회수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까지 지연손해금만 3억 3100만원이 추가된 상황이었습니다.
예보는 취재가 시작되자 뒤늦게 이를 인지하고 "철저한 부실책임 추궁을 위해 회수 노력 지속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지금까지 채권 회수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관계자도 인정했습니다. 박 회장이 자산 은닉을 한 후 회생을 받은 사실이 맞다면 '사기 회생'으로 처벌받을 수 있으며,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는 법조계 유권해석까지 받아 기사에 반영했습니다.
※관련 기사 : [단독]8천억 탕감 회장님, 채무 남아있다…"사기회생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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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기사에 등장하는 익명 취재원은 없으며,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다트) 공시 자료와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시스템 공시 자료, 법원 판결문, 부동산·법인 등기부등본 등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모든 취재 과정을 맡았으며, 취재 과정에서 마주친 모든 제보자·취재원 등과의 이해관계는 없습니다.
4.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타 매체 선행보도는 없었습니다.
5. 사회에 끼친 영향
"오래전 일이어도 문제가 있다면 바로잡아야죠. 공소시효 문제로 형사 처벌은 못 할 수 있겠지만, 사회적으로라도 바로 잡아야죠. 반복돼선 안되니까요"
취재진으로부터 박창호 회장의 현재 상황 등 취재 내용을 전해 들은 갑을그룹 노동자 김소연씨가 했던 말입니다. 취재를 진행하며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씨의 말에서 취재를 이어나갈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늦었더라도 문제가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약 두 달간의 심층 취재 끝에 90년대 후반 IMF로 몰락한 재벌 '갑을그룹'의 박창호 회장이 최근 백억대 주식 투자로 재기에 성공, 시가총액 600억원이 넘는 코스닥 상장사 (주)정원엔시스의 최대주주로 화려하게 부활한 배경에 '회생으로 채무 약 8500억원 탕감'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7600여개의 법원 판결문 조사, 80여개의 부동산·법인 등기부등본 분석 등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박 회장이 '자산을 은닉한 뒤 회생을 받았다'는 정황을 드러냈습니다. 또 은닉한 자산이 90년대 후반 그룹이 몰락할 때부터 빼돌려뒀던 자산이라는 의혹도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제기했습니다.
이외에도 박 회장 일가가 소유한 경기도 양평 별장과 유엔빌리지 연립주택 등 현장 취재를 통해 박 회장이 수천억 채무가 있는 상황에서도 호의호식하며 살아간 정황을 드러냈고, 예금보험공사가 17년간 박 회장에 대한 억대 채권을 회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파악해 뒤늦게나마 채권 회수 절차를 밟도록 만들었습니다.
특히 90년대 재벌 그룹들이 저지른 분식회계가 IMF 외환위기 사태의 원흉 중 하나였고 부실해진 은행을 살리기 위해 투입된 공적자금이 수조원대에 달했던 상황에서, 노동자와 국민만 피해를 보고 정작 사태의 책임자 중 한 명은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았음을 지적해 우리 사회의 불공정과 비상식에 대한 여론을 환기했습니다.
해당 보도를 접한 한 시민단체에서 박 회장의 사기회생 및 세금포탈 등 혐의에 대해 고소·고발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 왔습니다.
6.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재벌들은 다 그런 식으로 돈을 빼돌리지 않냐"
일부 취재원들이 취재 내용을 처음 듣고는 한 말입니다. 맞습니다. 박 회장을 포함해 수많은 재벌들이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재산을 빼돌렸고,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자본권력 앞에서 우리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90년대 후반 터진 IMF 사태는 우리 사회에 커다란 상처로 남아 여전히 후유증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당시 재벌 그룹들이 저지른 분식회계 등은 위환위기 사태의 커다란 원흉 중 하나였습니다. 부실해진 은행을 살리기 위해 투입된 공적자금이 수조원대에 달했고, 이 부담은 국민들이 나눠 짊어지게 됐습니다.
반면 원흉으로 지목된 이들 중 제대로 책임을 진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번 CBS노컷뉴스 보도로 당시 경영진들의 '도덕적 해이', 우리 사회의 '시스템 부재' 등 문제점을 환기하고, 지금도 잔존해 있는 불공정과 비상식에 대해 다시금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취재 및 기사 작성 과정에서 언론윤리강령 기준을 준수했습니다.
7. 기타 고려사항
외부 지원은 받지 않았습니다. 보도 당사자의 반론 요청이나 언론중재위원회 신청 사실도 없습니다.
취재후기
(383회) 몰락한 재벌 회장의 재기 자금 추적기 / CBS
몰락한 재벌 회장의 재기 자금 추적기
CBS 서민선 기자
“IMF 때 몰락한 재벌이 재기에 성공했다.” 시작은 한 문장 첩보였습니다. 90년대 재벌로 불리다 망했던 ‘갑을그룹’의 박창호 회장이 현재 한 코스닥 상장사의 최대주주가 됐다는 겁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수상한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박 회장이 밝힌 전재산의 절반 이상이 골프·호텔피트니스·콘도회원권인데 회생으로 8500억원을 탕감받았고, 반지하에 거주한다더니 회생 직후 60억 유엔빌리지로 이사했습니다. 이후 지분구입을 시작, 현재까지 100억원 이상 투자했습니다.
이 돈은 어디서 나온 걸까. 약 두 달간 7600여개의 법원 판결문을 살펴보고, 80여개의 부동산·법인 등기부등본을 열람해 분석했습니다. 가족 명의로 돈을 빼돌린 정황을 파악할 수 있었고, 재산 은닉의 시작이 90년대 갑을그룹 몰락 당시부터였다는 정황도 밝혀냈습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게 아니었습니다. 애초부터 망한게 아니었습니다. 각종 편법·탈법을 이용해 망한 것처럼 꾸몄을 뿐이었습니다. 반면 그룹이 망한 책임은 수천명 노동자가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짊어져야 했습니다. 그룹에 돈을 빌려준 은행이 부도가 났고, 정부 공적자금 수혈로 이어져 국민 전체가 부담을 짊어졌습니다.
과연 공정하고 상식적인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재벌 오너의 ‘도덕적 해이’와 우리 사회 ‘시스템의 부재’ 등 문제점을 지적하고, 불공정과 비상식에 대한 여론을 환기하고자 했습니다.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주신 CBS 보도국 선·후배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배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경찰팀 캡과 바이스, 그리고 경찰팀 팀원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회차 심사평
제383회 전체 총평
383회 이달의 기자상에 6편이 선정됐다. 이례적으로 심사위원 사이에 갑론을박이 오갔다. 아깝게 수상의 영예를 놓친 작품이 많았고, 보도 내용 또한 훌륭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수상작 6편은 심사위원 사이에 이견이 없을 정도로 빼어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취재보도 1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 MBC의 <1호기 속 수상한 민간인…윤 대통령 사적 수행·사적 채용 논란> 보도는 심사위원 사이에 이견이 없는 수작이었다. 우선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말로만 떠돌던 사적 수행 논란을 처음 구체적 물증을 통해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컸다. 단순히 ‘얻어걸린’ 기사가 아니라,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취재원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사실 여부를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는 집요함, 과정에서의 사내 취재 정보 공유와 협력, 기사 출고의 신속함 등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일보의 <수상한 불법 외환거래> 보도는 경제보도 부문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접근하기 힘든 취재 영역을 꽤 오랫동안 추적하면서 특종을 만들어낸 노고가 우선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첫 보도로 인해 금감원이 이례적으로 브리핑을 실시하고, 연이은 언론의 인용·추격 보도로 은행 외환 영업의 구조적 문제점이 드러났고, 나아가 국회와 금융당국의 제도개선 논의까지 이뤄지는 등 사회적 반향이 큰 점도 가산점을 받기에 충분했다.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은 한겨레신문의 <살아있는 김용균들> 보도는 여러 면에서 울림이 큰 기사였다. 우선 산재 사고를 다룰 때, 사망자가 나와야 ‘이야기가 되는’ 기사로 취급하는 언론 관행에 적지 않은 경종을 울렸다. ‘사망자 아니면 부상자’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죽음과 맞먹는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산재 기록과 삶을 진정성 있게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굳이 목소리 높이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한정된 신문 지면에 갇히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온라인을 겨냥해 충분하고도 다양한 기사를 생산해낸 의도도 좋았다.
기획보도 방송 부문 수상작 CBS <몰락한 재벌 회장의 재기 자금 추적기> 보도에도 박수를 보낸다. 재벌은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섣부른 예단을 팩트로 확인하기 위해, 회생계획안 입수에서부터 주거지 이전 확인까지 꼼꼼하면서도 집요한 취재를 했다. 고의 재산 은닉으로 회생 절차를 밟았다면 처벌이 가능하다는 유권해석 기사로 보도의 완성도를 높였다. 타사가 많은 인용·추적 보도를 하지 않더라도 이달의 기자상을 차지하기에 넉넉하다는 데 심사위원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다.
광주, 춘천, 경남, 전주 MBC 등이 힘을 모은 <선거비 미반환 정치인 추적> 보도는 지역 취재 보도 부문에서 수상했다. 정보공개 청구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정치인 125명이 선거비용 230억 원을 내지 않은 사실을 처음 확인했고,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이 지방선거에 출마한다는 사실도 심층적으로 다뤘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구조적 문제점도 충실히 다뤄 기사의 완성도를 높였다. 내용도 신선했고, 완결성도 높은 ‘깔끔한 기사’라는 데 심사위원 모두가 동의했다.
지역 경제보도 부문에서는 경기일보 <청년농부 잔혹사> 보도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귀농 귀촌을 다룬 보도는 많았지만, 청년 농부라는 주제를 한정하고, 이들이 왜 농촌을 포기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지를 구체적 사례와 문제점, 대책 등 15편의 연속 기사를 통해 솜씨 좋게 풀어냈다. 경기도 사례가 중심이 되긴 했지만, 전국 농촌의 문제점이 잘 투영됐다는 점에서도 높은 공감을 얻었다.